[임춘훈 칼럼]LA 한인회 스트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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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춘훈(언론인)

고등학교 3학년 때 존경하던 선생님 한분이 계셨습니다. 깔끔, 말쑥한 ‘타이티 챕’ 스타일의 외모에 지적이고 해박하며 수업시간에 내뱉는 말씀 한마디 한마디를 엮어 놓으면 그대로 한 줄의 시가 되는 선생님의 수업이 늘 기다려졌습니다.

자유당 말, 이승만 정권의 권위주의 독재가 종말을 향해 내닫던 무렵이었지요. 선생님은 수업과는 상관없이 세상 돌아가는 얘기를 선문답하듯 자근자근 들려줬습니다. 어떤 정언적(定言的) 메시지를 의도한 것은 아니라 해도 순구무구한 궁도령(宮道令)인 우리들은 선생님의 선문답을 반복해 들으면서 음울하고 어지럽던 시국상황에 대해 조금씩 눈을 뜨고 귀를 열게 됐습니다.

어느 날 선생님은 불쑥 이런 말을 했습니다. “오늘은 참 재수 없는 날이다. 아침에 번호판에 관(官)자 들어있는 차를 보면 온종일 재수가 없는데, 출근하다 처음 본 차가 하필이면 관자 번호판 달린 재수 없는 나으리 차였다.”

장차관 등 정부 고위인사와 경무대 비서 같은 주요 인사들의 자동차엔 커다란 관(官)자 번호판이 예외 없이 붙어있던 때였지요. 순경들은 이들 차만 보면 경례를 올려붙였습니다. 차타고 콩나물 사러 시장에 가는 장관집 식모애들도 순경의 경례를 받고는 기분이 째져 장관 사모님처럼 거드름을 피우는 진풍경이 벌어졌습니다.

관자 번호판만 보면 온종일 재수가 없다는 선생님의 말씀은 이를테면 권의주의 정권을 향한 은유적인 독설이자 에피그램이었지요. 힘없는 민중들에겐 공포의 대상이던 경찰이 관용차 안에 탄 식모를 향해 거수경례를 올려붙이는 참으로 재수 없는 세상 얘기를 선생님은 그렇게 속삭이듯 들려줬습니다.

얼마 후 우리는 대학생이 됐고, 다시 얼마 후 4.19때 거리로 뛰쳐 나갔습니다. 데모를 하며 우리는 관자 번호판 자동차를 향해 죽자하고 돌팔매질을 해댔지요. 선생님의 애제자답게 말입니다. 우리가 고등학교를 졸업한 얼마 후 선생님은 대학교수로 자리를 옮겼습니다. 지금은 은퇴해 서강대 명예교수로 계신 김열규 선생님 얘기입니다.


꼬리 무는 돈 추문


오랜만에 소식이 없던 한 친구의 전화를 받았습니다. 지지난주 내가 쓴 칼럼 <스칼렛 엄의 엄처구니>를 읽고 복장 터져 전화를 걸었노라 했습니다. 이 친구는 얼마 전 그동안 보던 한국신문을 끊었다고 합니다.

아침에 배달되는 신문에서 LA 한인회 기사와 한인회장 얼굴 사진을 보면 그날은 예외 없이 ‘재수 옴 붙는 일’이 생기더라고 뜨악해 했습니다. 50년 전 내가 존경하던 고등학교 선생님이 재수 없어 하던 관(官)자 들어간 고관들 자동차 얘기처럼 말입니다.

LA한인회 웹사이트에 들어가 보면 왼쪽 상단에 ‘일하는 한인회, 변화하는 한인회’라는 슬로건이 뜹니다. 한인회가 정말 일을 잘하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변화한다는 얘기는 맞는 거 같습니다.

지금 한인회는 어찌 보면 지난 30년보다 더 드래스틱하고 드라마틱한 변화를 3년 사이에 이뤄내고 있습니다. 스칼렛 엄이라는 걸출한(?) 여자회장이 ‘변화하는 한인회’를 이끌어 가고 있지요.

한인회의 놀라운 변화를 한마디로 표현하면 이렇습니다.

“있으나 마나한 한인회에서 절대 있어서는 안 될 한인회”로.

“한인사회에서 감투에 유독 연연하는 부류를 보면 학벌이 신통치 못하고 좋은 직장이나 큰 사업체에서 변변한 지위에 앉아보지 못한 함량부족의 사람들이 상대적으로 많다. 감투가 지난날의 자신의 콤플렉스, 가슴속 한을 풀어줄 수 있는 수단이기 때문에 죽어라 놓지 않는다.”

재미 수필가 C씨는 언젠가 한인회장들의 감투놀이를 이렇게 꼬집은 적이 있습니다. 학벌 신통찮고, 경력 별 볼일없고, 스펙 후줄근한 사회적 루저(Looser)들이 한인회장이라는 이름 그럴듯한 감투에 목을 맨다는 설명입니다.

스칼렛 엄 회장은 지난 2008년 한인회장으로 무투표 당선 됐습니다. 직전 회장인 남문기 전 회장이 재출마하겠다고 바람을 잡다 돌아서는 바람에 무주공산으로 입성하게 되었지요. 두 사람의 담합설이 나돌았지만 흐지부지 됐습니다.

당시 스칼렛 엄 후보의 회장출마 홍보 브로셔에는 “동포들이 신뢰하는 믿을 수 있는 한인회를 만들겠다”는 출마의 변이 실려 있었습니다. 학력은 적혀있지 않고 사회봉사 경력과 모 식품회사 사장이라는 간단한 스펙만 소개됐습니다.

“학벌 신통찮고 경력 별 볼일없고 스펙 후줄근한 사회적 루저”라고 정의한 수필가 C씨의 지적이 스칼렛 엄 한테도 마땅한 얘기가 되는지는 모르겠습니다.

<선데이저널> 785호에는 스칼렛 엄이 ‘인천도시 축전’ 설치비 2만 달러를 지불하지 않아 한국의 영세 하청업체로 부터 클레임을 당한 기사를 실었습니다. LA시로부터 지원비를 받고도 지불하지 않아 사실상 공사비를 횡령했다는 내용입니다.


엄 회장 무리수에도 입 다문 언론


2주후인 이번 주 <선데이저널>엔 ‘간도땅 회복본부’라는 단체에서 2만 5,000달러를 받아 개인적으로 착복한 그의 또 다른 금전비리가 폭로되고 있습니다. 간도땅 회복운동은 지난 2001년부터 뜻있는 교포들이 십시일반 자금을 모아 중국에 빼앗긴 우리의 옛 영토 간도(만주)땅을 찾아오자고 펼치는 민족운동입니다.

사업이 지지부진하자 미주 최대의 한인 밀접지역인 LA의 한인회와 접촉하게 됐고, 자금 2만 5,000달러를 스칼렛 엄에게 건넸다고 하지요. 스칼렛 엄은 이 돈을 자기한테 준 개인 후원금이라 주장하며 꿀꺽했습니다. 봉사단체인 한인회장이 후원금이라는 걸 챙기고 있는 것도 ‘변화하는 한인회’의 변화된 일그러진 모습입니다.

스칼렛 엄은 천적(?)이라는 하기환 전 한인회장과의 싸움을 10년 가까이 굳세게 계속 해오고 있습니다.

최근엔 LA시 커뮤니티 개발청이 노인과 커뮤니티센터에 지급키로 한 190만 달러 중 1차 지급분인 90만 달러가 회수조치 됐습니다. 하기환-스칼렛 엄 싸움 때문입니다. “동포들이 신뢰하는 한인회를 만들겠다”던 스칼렛 엄의 LA한인회는 요즘 이렇게 뒤뚱대고 있습니다.

그와 40년 친분을 맺고 있다는 올드 타이머 S씨의 얘기입니다.

“예전의 스칼렛 엄과 지금의 스칼렛 엄은 완전 딴 사람이다. 마치 측천무후처럼 군림하려드는 그녀가 어찌 보면 애처롭다. 하기환과 싸우고, 한인회장이 되면서 사람이 변했다. 예전엔 겸손할 줄도 알고 남의 말에 귀를 기울일 줄도 아는 ‘상식선의’ 아낙네였다. 지금은 귀엔 콘크리트, 얼굴엔 철판이 깔린 상식 밖의 인간이 됐다. 그녀가 불쌍하다.”

동포사회의 여론을 이끌어가는 양대 일간신문과 TV, 라디오 매체들은 스칼렛 엄과 한인회의 난폭질주에 오불관언 침묵을 지키고 있습니다. 언론이 한통속인지, 무기력한 건지, 직무유기를 하고 있는 건지 헷갈립니다. 한인회장 얼굴 보기 싫어 신문을 절독했다는 내 친구의 객기어린 항변은 절대 다수 한인들의 뜻이며 생각입니다.

다음 회장 선거 때부터는 투표 전에 후보 인사청문회를 먼저 열어보면 어떨까 싶네요. 한인회 정관 때문에 어렵다면 언론사들이 뜻을 모아 지상 청문회 같은 것을 마련하는 방법도 있을 겁니다.

참으로 ‘엄처구니’없는 엄씨의 한인회가 다음번엔 또 무슨 깜짝 쇼로 동포들을 놀래 킬지 가슴이 콩닥콩닥입니다.
                                                                                                                              
2011년 6월 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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