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춘훈 칼럼] ‘나가수’와 ‘나도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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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임춘훈 (언론인)

메모리얼 데이 연휴에 교회친구들과 여행을 다녀왔습니다. 라스베가스와 데스벨리를 1박 2일로 다녀오는 ‘번개 관광’입니다. 유럽 관광객들은 렌트카를 빌려타고 한달동안이나 돈다는 데스밸리 관광을 우리는 달랑 6시간에 끝냈습니다.
여행 첫날 호텔에 도착해 저녁 먹고, 라스베가스 밤 구경하고 방에 들어온게 자정무렵입니다. 두어시간 자고 이튿날 새벽 5시 시내에 있는 한국식당에서 콩나물 해장국을 먹고 동틀무렵 데스밸리 국립공원 관광에 나섰습니다.
모두가 눈을 감고 잠을 청했습니다. 이른바 ‘잠광’이라는 거지요. 너나없이 잠을 못잔데다가 콩나물 해장국 식곤증까지 몰려와 잠이 쏟아졌습니다. 이럴땐 조용 달콤한 무드 음악이 제격인데, 왠일인지 스피커에서는 헤비메탈 수준의 시끄럽고 템포 빠른 음악이 쏟아져 나왔습니다.
꿈결을 헤메다 악악대는 가수의 노래에 화들짝 놀라 잠이 깬 사람들이 여기저기서 투덜대기 시작했지요. 조용한 노래로 바꿔주든지 아니면 아예 음악을 꺼달라고 간청하는데도 가이드와 운전기사는 식혜먹은 고양이 얼굴로 딴청만 피웠습니다. 볼륨만 약간 줄였을 뿐 ‘안면 방해용’ 헤비메탈 뮤직을 고집스럽게 계속 틀어 댔습니다.
어떤 여성 관광객이 참다 못해 큰소리로 운전기사한테 한마디 쏘아 붙이더군요. “아저씨, 이 버스안의 손님들은 거의가 나이 많은 사람들입니다. 그런 노래 좋아할 젊은 사람 여긴 없어요. 시끄러운 음악 제발 좀 꺼주세요!” 운전기사 역시 만만치 않았습니다. “아주머니 젊어지고 싶으면 젊은 사람 노래 많이 들으세요” 두어시간 지나서야 그놈의 젊어지는 ‘회춘(回春) 음악’은 꺼졌습니다.
예전보다 많이 나아졌다는 LA한인 여행사들의 서비스 수준이 겨우 이정도인가 싶어 씁쓸했습니다.
우리들의 데스밸리 관광은 어쨌든 그렇게 ‘봉사 단청(丹靑) 구경하듯’ 반나절만에 끝났습니다.


관광버스에도 ‘나가수’


한국에서는 요즘 월요일 아침 직장인들이 나누는 인사가 “봤어?”와 “그래, 봤어”라고 합니다. 봤느냐고 물을때 “뭘 봐?”라고 묻거나 “안봤어”라고 대꾸하면 간첩이거나 외계인이라네요. 보지 못했어도 “당근, 물론 봤지”라고 대답해야 남과 말을 섞을 수 있다고 합니다.
‘나가수’ 얘기입니다.
MBC TV는 일요일 저녁 5시 20분 ‘나는 가수다’(나가수)를 방송합니다. 이시간이면 트위터는 온통 나가수 트윗으로 도배질되고 이튿날 월요일엔 전날 방송된 ‘나가수’ 관련 뉴스가 인터넷 포털을 점령해 버립니다. 직장인들이 월요일 아침에 나누는 ‘봤어?” 인사는 바로 어제 저녁 ‘나가수’를 시청했느냐는 물음입니다.
‘나가수’는 가수들이 벌이는 일종의 서바이벌 게임입니다. 일곱명의 가수가 두번씩 겨뤄 가장 점수가 낮은 한명이 탈락하고, 그 자리에 새 가수가 들어와 노래 대결을 벌이는 포맷입니다.
‘나가수’는 한국사회의 무서운 경쟁구조가 만들어 낸 기형적 문화 코드입니다. 누군가를 쓰러뜨리고 깔고 앉아야 자신의 존재감과 정체성을 인정받는 잔혹한 경쟁논리가 안방까지 파고든 문명현상이라 볼 수 있습니다.
‘나가수’ 아류의 프로그램이 미국 TV에 등장하면 어떻게 될까요? 레이디 가가와 브리트니 스피어스, 마돈나와 비욘세 같은 대스타가 가창력 대결을 벌여 한사람씩 떨어져 나가는 구도말입니다. 가수들은 출연 자체를 거부하고, 시청자들 역시 채널을 돌려 프로그램은 결코 성공할 수 없을겁니다.
‘나가수’ 최고의 스타는 단연 임재범입니다. 그의 가창력은 한국 록음악의 수준을 여러단계 끌어올렸다는 평을 듣지요. 이런 가수가 아내의 병수발을 못할 정도로 찌든 가난 속에 살아왔다는 사실, 생부가 5~60년대 최고의 인기 아나운서였던 임택근이라는 사실, 가수겸 탤런트 손지창이 이복 동생이라는 사실, 주한 미국 대사로 내정된 성 김과 사촌간이라는 사실, 좋은 부모 사이에 태어났으면서도 어린 시절 고아원에 보내져 거칠고 괴팍한 성정(性情)을 갖게 됐다는 사실 등등 노래 외적(外的) 가십이 인터넷에 어지럽게 뜨면서 임재범은 단숨에 나가수의 중심 아이콘이 됐습니다.
‘나가수’에 나오는 가수들은 단지 이 프로그램에서 살아남기 위해 필요이상으로 소리를 지르거나 높은 음역(音域)을 넘나드는 고성으로 승부를 겨루려 한다는 비판도 있습니다.
“노래 잘하는 가수는 높은 음역을 잘 소화하는 가수”라는 그릇된 인식을 대중에게 심어주고 있다는 얘기입니다.
데스밸리로 향하던 우리의 ‘잠광’을 방해하던 고음절창(高音絶唱)의 헤비뮤직-그게 바로 알고보니 나가수들의 노래였습니다. 젊은 노래를 듣고 젊어지라고 우리를 준엄하게 꾸짖던 관광버스 기사 아저씨는 ‘임재범앓이’를 하고 있는 ‘나가수 폐인’ 같았습니다.
한국에서는 ‘나가수 폐인’이 늘어 나면서 거리의 호프집이나 커피전문점, 택시속이나 피자배달원의 스피커에서도 ‘나가수’의 노래만 쏟아진다네요. 전국의 고속도로 휴게소에서도 온종일 임재범의 ‘너를 위해’,  ‘여러분’,  ‘빈잔’ 등의 노래가 흘러나옵니다. 임재범의 인터넷 동영상 조회수는 한달사이 2,000만건을 돌파했다는 보도도 나오고 있습니다.
<전 마흔 가까이 된 주부입니다. 음악에 별 관심없이 살았어요. 근데 요즘 제가 미쳤나봐요. ‘나가수’ 본뒤 아이들 학교 보내놓고 하루종일 듣고 또 듣고있어요. 저 이상한거 아니죠? 왜 그의 노래에 빠지는 걸까요?  -경향신문 인터넷판 5월 23일자에 실린 한 네티즌의 편지>


모두가 도둑이라네


데스밸리 관광을 하고 온 날 저녁, 밀린 한국신문을 손에 집어 들었습니다. 어떤 신문 본국판은 1면에서 5면까지가 온통 부정, 비리, 구속, 소환, 출국정지, 불법로비 같은 답답한 단어들로 거의 도배질이 되어 있더군요. 부산-보해-삼화 저축은행의 비리는 대한민국 역사상 최악의 경제범죄입니다.
은행관계자와 대주주, 그들을 감독감시하는 금감원, 공직 사회의 비리를 감시하는 감사원, 여기에 다수의 정치인까지 끼어들어 한통속 ‘비리 잔치’를 벌였습니다. 국가기능의 총체적 마비사태입니다.
같은 신문, 같은 날짜엔 김영 편입 학원비리, 전 농림장관의 함바집 비리, 축구 K리그 비리, 청호나이스 비리, 금호그룹 비리 등의 기사가 실렸습니다. 비리의 종합세트를 펼쳐 놓은 듯 합니다.
요즘은 자고나면 새로운 사건, 새로운 이름들이 검찰의 수사선상에 떠오르며 국민을 당혹시키고 있습니다. 거의 확실한 미래권력이라는 박근혜 의원의 동생 박지만의 이름까지 저축은행 사건으로 거론되는 판입니다.
며칠전 한국일보 임철순 주필이 쓴 칼럼 ‘가슴이 없는 공직자들’엔 30여년전 유행한 일본말 ‘민나 도로보데스’ 얘기가 나옵니다. 전두환 집권초 TV 드라마 <거부실록>에서 공주갑부 김갑순이 입만 열면 했다는 ‘민나 도로보데스’는 ‘모두 다 도둑놈들’이라는 뜻입니다.
때마침 터진 장영자 어음사기 사건과 맞물리면서 당시 크게 유행했지요. 장영자 사건에 비해 이번 저축은행 사건은 죄질이 엄청 더 크고 무겁습니다. 국가와 사회의 기본틀이 무너지고, 서민들에게는 배신감과 박탈감, 살아가는 맛을 잃게 했습니다. ‘나가수’에 이은 ‘나도둑’ 신드롬입니다.
“임재범이라는 ‘불행한 존재’에서 대중은 채워지지 않는 욕망의 끝을 본다. 임재범이라는 개인을 통해 대중은 자기의 삶에도 내재해 있는 결핍의 의미들을 찾아낸다.”
‘임재범 신드롬’에 대한 문화 평론가 이택광의 진단입니다. 채워지지 않는 욕망과 결핍을 ‘나도둑’ 대신 ‘나가수’에서 찾는 대중이, 이시대의  부끄러워할 줄 모르는 많은 ‘도로보’들 보다 훨씬 아름답고 위대해 보입니다.


                                                                                                                             2011년 6월 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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