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춘훈 칼럼]‘호랑나비’가 축구 잘못하면…

이 뉴스를 공유하기















 ▲ 임춘훈(언론인)

요즘 한국 연예계는 소셜테이너가 ‘대세’입니다. Social과 entertainer의 합성조어인 쇼셜테이너는 사회적 이슈에 자기 목소리를 내는 참여파 연예인을 이르는 말입니다. 최근 제일 많이 뜨고 있는 쇼셜테이너는 여배우 김여진이지요. 사람들은 그녀가 어떤 드라마에 무슨 역으로 출연했는지는 거의 모릅니다.
하지만 요새 어느 시위 현장에서 무슨 구호를 어떻게 외쳤는지는 대개 압니다. 김여진은 어느새 이 시대 쇼셜테이너의 중심 아이콘이자 팔로워 7~8만을 끌고 다니는 문화 권력이 됐습니다.
김여진이 갑자기 의식있는 연예인으로 뜨게 된건 한진중공업 노사분규 때문입니다. 한진 사태로 그녀가 시위현장에서 체포됐다 풀려나면서, 국민의 관심을 거의 끌지 못하고 있던 이 문제가 사회 이슈화 됐습니다.
한국사회는 지금 ‘좌빨’과 ‘수꼴’로 대칭되는 극심한 이념적 양극화로 몸살을 앓고 있습니다. 이명박 정부에 반대하는 세력은 좌빨, 즉 ‘좌파 빨갱이’이고 그 반대편은 수꼴, 즉 ‘보수 꼴통’이라지요.
첨예한 사회문제에 자기 목소리를 거칠게 내는 쇼셜테이너에겐 흔히 ‘개념 연예인’이란 호칭이 훈장처럼 따라 붙습니다. 하지만 보수쪽 목소리를 내는 연예인은 같은 쇼셜테이너라도 ‘개념 없는 딴따라’ 정도로 폄하됩니다.
김여진과 비슷한 DNA를 공유하고 있는 진보좌파 쇼셜테이너는 개그맨 김제동과 김미화를 비롯해 가수 윤도현과 박혜경, 탤런트 권해효와 김규리 등이 있습니다. 이들의 얼굴은 요즘 TV보다는 각종 시위현장과 촛불집회 등에서 더 자주 만나게 됩니다.


김흥국의 ‘백팔번뇌’


노래보다는 축구사랑과 걸쭉한 입담, 콧수염 그리고 10여년 독수공방의 기러기 아빠로 더 유명한 가수 김흥국이 지지난주 MBC앞에서 삭발 퍼포먼스를 벌였습니다. 자신이 진행하던 MBC 라디오의 ‘2시 만세’에서 갑자기 퇴출당한 것을 항의하는 1인 시위를 닷새간 벌이고, 마지막 날 머리를 박박 밀고, 스스로 ‘흥국사의 나비 스님’이 됐습니다.
지난 4.27 재보선 무렵 그는 축구로 인연을 맺은 한나라당 정몽준 의원과 함께 분당의 어떤 조기축구회에서 공을 찼습니다. 反한나라당 정서가 강한 MBC의 좌파노조가 시비를 걸었고, 경영진은 우파색깔의 ‘개념 없는 딴따라’ 김흥국을 희생양 만드는 것으로 골치 아픈 노조와의 갈등과 마찰을 사뿐히 피해 갔습니다.
‘흥국사 나비스님’의 고난은 한국의 보수우파가 겪고 있는 시대적 수난의 한 단면적 사건입니다. 나라가 온통 ‘좌향 좌’로 게걸음을 하면서 이른바 ‘좌 클릭’이 시대정신이 됐습니다. 김흥국 보다 훨씬 더 래디칼한 좌파 연예인인 김제동이 민주당이나 민노당의 차기 대선주자와 어울려 공을 차고 다녔다면 어떻게 됐을까요? 김제동은 공이나 차는 영양가 없고 개념 없는 딴따라 짓은 물론 안합니다.
광우병 촛불시위, 제주도 해군기지 건설반대, 대학 등록금 반값 투쟁, 4대강 반대, 홍익대 청소노동자 해고 항의시위 같은 ‘인화성 강한’ 사회현안만을 영리하게 골라 ‘반 MB’ 구호를 외칩니다. 반값 등록금 시위 현장으로 달려간 그는 햄버거값 500만원을 시위대에 건네주며 진압 경찰관에게도 나눠주라고 말했습니다. 경찰은 시위대가 가져온 햄버거를 내동댕이치며 “국가 공권력인 경찰에 대한 모욕”이라고 발끈했지요.
그때 어느 방송의 노조도 김제동을 퇴출시키라는 요구는 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요즘 여러 방송의 예능프로에 열심히 나가면서 경찰을 놀래줄 햄버거 값을 버느라 귀접스레 바쁘답니다. 만약 방송사에서 그의 정치색을 문제 삼아 퇴출을 결정하고, 이에 항의하는 1인 시위를 그가 벌였다면 어떻게 됐을까요?
좌파 연예인, 정치인, 사회단체, 학생 등이 구름처럼 몰려들어 1인 시위는 금새 1,000인 시위~10,000인 시위로 불어났겠지요. 촛불이 켜지고 국회에서는 야당의원들이 벌떼처럼 일어나 ‘김제동 구하기’ 굿판을 벌였을 겁니다.
김흥국이 안됐습니다. 평생 히트곡이라고는 ‘호랑나비’ 하나뿐인 그가 불쌍하고, 해병대 나온 무용담을 30년이나 우려먹는 그가 안쓰럽고, 예능프로에서 말문이 막히면 ‘으하~’ 너털웃음으로 무식(?)을 얼버무리는 그가 딱하고, 공 한번 잘못 찼다고 밥그릇까지 잃어버리는 그의 허망한 존재감이 무엇보다 가엾습니다.
축구를 하고 싶으면 정몽준이 아니라 유시민과 했어야지요. 쇼셜테이너 아무나 하는 게 아니라는 걸 지금쯤은 김흥국도 알고 있을 겁니다.


밥집 아줌마의 힘


미국엔 쇼셜테이너라는 개념자체가 없습니다. 대신 정치학자 데이빗 슐츠가 1999년 한 논문에서 쓴 ‘폴리테이너’가 있습니다. Politician과 Entertainer의 합성어로, 정치참여 연예인이나 혹은 연예인적 능력을 행사하는 정치인을 뭉뚱그려 이르는 개념입니다.
미국의 연예인들은 지지정당에 가입하고 특정 사회이슈에 대해 찬반 의견을 내는 따위의 정치 행위를 자유롭게 합니다. 정치참여가 이처럼 일상화 돼 있기 때문에 ‘정치적 목적이 없음’을 전제하는 쇼셜테이너라는 용어나 개념 자체가 필요없는 건지도 모릅니다.
UN 난민기구 친선대사로 활동하고 있는 안젤리나 졸리, 에이즈 퇴치운동에 헌신한 엘리자베스 테일러, 아동인권운동에 앞장섰던 오드리 햅번 등이 대표적인 ‘미국형 쇼셜테이너’입니다. 제도적으로 마음껏 정치참여를 할 수 있지만 미국 연예인들은 정치적으로 첨예해 국론분열의 위험이 있는 건강보험 문제나 세금정책, 해외파병, 외교문제 같은 이슈엔 자기 목소리를 내지 않습니다. 전문성이 요구되는 문제에도 섣부르게 발언하지 않지요.
한국은 정반대입니다. 쇼셜테이너를 자처하는 연예인들은 광우병, 한미 FTA, 4대강, 군 기지 건설 같은 첨예한 정치적 이슈들만을 골라 ‘반대’와 ‘결사투쟁’을 외칩니다. 야당과 좌파 사회단체 등 특정 정치세력을 위한 홍위병 역을 자임하고 있는 셈이지요. 대중의 사랑을 받고 있는 연예인을 앞세우면 임팩트가 빠르고 확실해 정치 세력은 끝없이 이들을 유혹합니다.
쇼셜테이너로 명성을 얻고 있는 연예인들은 대체로 본업에서는 빛을 보지 못하고 있습니다. 부업하느라 바빠서 본업이 시들한지, 본업에서 할일이 없어 부업에 더 매달리는 건지 잘 모르겠습니다.
쇼셜테이너의 원조격인 ‘노사모’의 문성근과 명계남은 배우 생명이 거의 끝난 것 같습니다. TV나 연극 어느 쪽에서도 그들의 얼굴을 보기 힘듭니다. 김여진은 ‘밥집 아줌마’라는 별명에 걸맞게 드라마 단역전문 탤런트로 활동했지만 그나마도 요즘은 뜸하지요.
김규리는 광우병 파동때 청산가리 발언으로 유명해진 김민선인데 이름까지 바꾸고 재기를 노렸지만 여의치 않은 것 같습니다. 개성파 탤런트인 권해효도 거의 TV에서 자취를 감췄습니다.
권력의 핍박으로 이들의 활동 공간이 좁아졌다는 일부시각이 있지만 그런 건 아닌 것 같습니다. 밉보인 연예인을 자의로 퇴출시킬 수 있는 힘도 의지도 이명박 정부엔 없습니다. 김흥국의 퇴출에서 보듯 지금은 ‘친여 연예인’이 오히려 역차별을 받아 수난을 겪는 시대입니다.
연예인은 다중(多衆)의 사랑 속에 존재감이 드러나는 직업인입니다. 한국같이 이념갈등이 첨예한 나라에서 이들이 어느 한 쪽 편에 서면 다른 쪽 편에 서있는 대중들은 고개를 돌립니다. 쇼셜테이너 스스로가 자신의 활동공간을 좁히고 있는 셈이지요.
김여진은 이화여대 독문학과 출신 학사입니다. 여배우 중에서는 서울대 출신인 김태희에 버금가는 빵빵한 학력입니다. 그녀의 이름 ‘여진’을 놓고 한 좌파논객과 한 우파논객은 이렇게 ‘뜻풀이’를 하더군요.
◆정영무(한겨례신문 논설위원) = “지진이 무서운 건 여진때문이란다. 이슈가 터지면 현장에 달려가고 기득권층이 듣기 싫어할 말들을 재잘거리는 김여진을 두고 하는 말이다.”
◆황의건(패션 칼럼리스트) = “연예 뉴스에는 한번도 못나온 대신 9시 뉴스에 매일 나오는 밥집 아줌마처럼 생긴 여진족 여자…토 쏠려서(토할 것 같아) 조금 전에 소화제 한 병 마셨다.”
대중에게 사랑과 기쁨을 나눠주던 연예인들이 쇼셜테이너로 분장을 새로 하고 세상을 이렇게 시끄럽게 만들어 가고 있습니다.
                         
                                                                                                                        <2011년 6월 28일>


@SundayJournalUSA (www.sundayjournalusa.com),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뉴스를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