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춘훈 칼럼]’나는 총영사다’ 오디션 하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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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임춘훈(언론인)

이명박 정권 출범 두어달 후인 2008년 4월 중순께 27명의 대사와 10명의 총영사 등 37명의 해외공관장 인사가 단행됐습니다. 새 정권 들어 처음 발표된 인사에서 정통외무관료 아닌 다섯명의 비외교관 출신 인사가 발탁됐습니다. 미주에서만 김재수 LA 총영사와 이하룡 시애틀 총영사, 이웅길 애틀란타 총영사 등 세명이 MB 선거캠프 공신(功臣) 케이스로 임명됐지요.
현지 사정에 밝은 이민자 출신을 총영사로 중용(重用)하겠다는 이명박 정부의 결정이 알려지면서 이곳 동포사회는 큰 기대와 함께 환영의 뜻을 모았습니다. 대기업 CEO출신으로 글로벌 감각이 남다른 이명박 대통령다운 실용-파격 인사라는 찬사도 쏟아졌습니다.
LA 총영사에 이곳 동포출신이 온다는 소식이 전해진 어느날, 미국 주류 사회와 한인사회를 아우르는 정치, 사회단체에서 일하는 세명의 1.5세 젊은이를 만났습니다. 1.5세라고는 하지만 나이는 마흔을 훌쩍 넘긴 ‘1.25세’쯤 되는 친구들이었지요. LA출신 총영사가 온다는데 누구면 좋겠냐고 생뚱맞은 질문을 던져봤습니다.
한인타운에서 감투따먹기 싸움질이나 하고 있는 언필칭 ‘1세 지도자’들에겐 다분히 냉소적인 이들에게서 명쾌하게 특정이름이 거명되리라고는 물론 기대하지 않았습니다. 헌데 뜻밖에도 약속이나 한듯 이들의 입에선 ‘민병수’라는 이름이 튀어 나왔습니다.
75세(당시)의 고령으로 한인사회에서 40여년간 형사법 전문 변호사로 일해온 민병수 변호사의 엄중한 존재감에 그때 나는 새삼 화들짝 놀랐지요. 며칠 후 총영사가 공식 임명됐습니다. 민병수 아닌 김재수라는 낮선 이름이 신문에 실렸습니다.
대부분 동포들은 “김재수가 도대체 누구냐”며 고개를 갸우뚱 했고, 그가 오렌지카운티에서 교통사고 전문 변호사로 일하고 있다는 것을 아는 일부 사람들은 “왜 하필이면 김재수냐”고 의아해 했습니다. 이어서 그의 발탁 배경이 입소문으로 알려지면서 대통령에 대한 감사와 신뢰의 마음은 배신감으로 차갑게 식었습니다. 김재수 총영사의 재수(財數)는 동포들에게는 ‘도나 개나식’ 손수(損數)로 뜨악하게 받아들여진 겁니다.
김재수 씨는 에리카 김-김경준 남매와 MB진영이 법정에서 맞붙은 소위 BBK 네거티브 대책단의 해외팀 담당이었습니다. 그와 팀을 이룬 국내담당이 지금 저축은행 비리 연루혐의로 교도소에 들어가 있는 은진수 전 감사위원이고, 이들을 진두지휘한 사람이 한나라당 새 대표가 된 홍준표 의원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명박 대통령은 대선의 최대고비였던 BBK 사건을 무난히 마무리 지은 김재수 변호사가 끔찍이도 고마워 LA총영사라는 파격적인 인사로 보은(報恩)을 한거지요. “LA동포들을 위해 현지사정에 밝은 이민자 출신 총영사를 임명했다”는 청와대의 배경설명은 허망한 레토릭이자 생색내기 말장난이었던 셈입니다.


한국 공기업의 감투잔치


김재수 LA총영사와 함께 임명된 이하룡 시애틀 총영사와 이웅길 애틀란타 총영사(내정자) 역시 MB 선거 캠프에서 비서와 정책특보로 일한 공로로 보은인사에 포함됐습니다. 이웅길 씨는 임명 사나흘 만에 낙마했습니다. 정부는 그가 미국 시민권자여서 임명을 취소한다고 발표했습니다.
하지만 진짜 이유는 현지동포 신문과 일부 국내 신문이 잇따라 제기하고 나선 자격-자질 시비 때문이었지요. 그는 애틀란타에서 ‘오거스트 문’이라는 일본식당과 잡화점을 운영하며 이명박 후보 캠프에서 해외담당 특보로 일한 인물입니다.
조선일보 2008년 4월 17일자 사설의 일부입니다.
“이(웅길) 씨가 자기가 장사를 하는 (애틀란타)지역의 총영사 자리를 얻게 된 것은 대통령 선거 캠프의 실세가 청와대에 추천했고, 청와대가 이 추천안을 외교부에 밀어 넣고, 정권으로 코드를 맞춘 외교부 고위층이 앞장서 이런 터무니없는 인사안을 넙죽 받아먹었다는 소문이 사실일 것이다.”
이명박 대통령의 인사 스타일은 흔히 4명의 인기 연예인 이름으로 패러디 돼 온라인과 오프라인 공간을 떠돕니다. 강부자(강남사는 부자)와 고소영(고려대-소망교회-영남출신)은 세  살짜리 코흘리개도 아는 이름이지요.
신문보다는 인터넷에서 주로 패러디 되는 연예인으로 장동건과 서인영도 있습니다. 이시대 최고의 미남 장동건은 ‘장로-동지상고-건설업자’의 또 다른 이름이고, 걸그룹 주얼리 출신가수 서인영은 ‘서울대-인수위원회-영남출신’을 뜻합니다.
역사에 만약 이명박 대통령이 실패한 대통령으로 기록된다면 그 까닭의 상당부분은 인사 실패 탓이고, 인사 실패 책임의 상당부분은 강부자-고소영-장동건-서인영 등 네명의 ‘애먼’ 연예인이 짊어져야 하는게 아닐런지요. 우스개로 해본 말입니다.
요즘 한국에서는 공기업 인사바람이 불고 있습니다. 6월부터 8월까지 공기업 사장 등의 임기가 모두 끝나기 때문입니다. 이번에 자리가 비는 공기업 사장과 이사장, 감사 자리는 무려 300여개나 된다고 합니다. 대선 캠프와 인수위에서 일한 ‘MB의 아바타’들이 저마다 한자리씩 꿰찰 수 있는 마지막 기회지요.
대통령직 인수위원회에서 재떨이 심부름을 하던 사람, 청와대에서 커피 끓이던 사람, 폭력 국회에서 의사당 문짝 때려 부수던 한나라당의 말단 사무직원, 이들이 저마다 부푼 꿈을 안고 바쁘게 움직이고 있습니다.
박찬종 전 의원은 며칠전 조선일보 이한우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286개 공기업의 CEO와 감사의 면면을 보라. 대차대조표도 모르는 한나라당 부대변인 출신 감사만 10여명이다. (중략) 한국의 대통령은 5년짜리인데다가 제대로 할 수 있는 기간은 3년 정도이다. 그 기간 안에 선거 ‘공신’들을 챙겨 줘야하니 과부하(過負荷)가 걸릴 수밖에 없다”고 공기업 인사 대란(大亂)의 실상을 꼬집었습니다.


LA의 ‘민병수 앓이’


민병수 변호사는 요즘 암과 싸우고 있습니다. 안구암이라는 희귀한 암에 걸려 지난 3월말 왼쪽 안구 적출수술을 받고 한쪽 눈을 잃었습니다. 그의 한쪽 눈 실명과 투병 사실이 알려지면서 LA동포사회가 시쳇말로 ‘민병수 앓이’를 하고 있습니다.
이곳 한인들은 그의 노년을 덮친 불의의 병마에 안타까워하다가도 의외로 강인하고 의연한 모습으로 암과 맞서 싸우며 주위 사람들을 다독거려주는 그에게서 “오히려 위로를 받았다”고 감격스러워하고 있습니다.
그에게 병문안을 갔던 올드타이머 언론인 변홍진 씨는 “그의 정신력과 남을 배려하고 세상을 사랑하는 마음가짐에 놀랐다”며 “한눈으로 보는 또 다른 세상이니, 그동안 두 눈으로 살 수 있어 행복했다느니, 한눈으로 더 넓은 세상을 보게 됐다느니, 하는 ‘선문답’만 실컷 듣고 왔다”고 혀를 내둘렀습니다.
지난 1975년 변호사가 된 민병수 씨는 한미변호사협회(KABA) 창설 회장, 한인재단 이사장 등을 역임했고, 2003년엔 LA시와 카운티, 캘리포니아주와 연방정부가 1월 13일을 ‘미주 한인의 날’로 제정 선포토록 하는데 앞장 섰습니다. 2006년엔 ‘찰스 김 중학교’, 2009년엔 ‘김영옥 중학교’ 명명운동을 주도했지요.
십수년 전 한인 할아버지가 어린아이의 ‘고추’를 만졌다가 성추행 혐의로 기소된 사건을 맡아 해결하는 등 많은 형사 관련 사건의 무료변론도 맡아 동포사회에 짙은 인상을 심어줬습니다.
원래 교육자가 되고 싶었다는 그는 원어민 수준의 영어를 구사하며 한인 2세들이 미국 주류사회에 진출하는데 필요한 노하우를 전수시키고, 미국 정치인들에게 실제로 연결시켜주는 등 젊은이들의 멘토이자 롤모델이 돼 왔습니다.
그를 존경하고 사랑하는 후배와 2세들은 ‘미스터 민의 친구들’이라는 모임을 만들고 수년째 민 변호사에게 깜짝 생일파티를 열어주고 있다지요. LA판 ‘민사모(민병수를 사랑하는 모임)’인 셈입니다.
LA총영사나 LA한인회장을 <나는 총영사다>, <나는 한인회장이다>라는 공개 오디션으로 뽑으면 어떨까하는 생뚱맞은 생각을 해 봤습니다. LA한인회는 요즘도 줄기차게 싸우고 있고, 한인회 총연합회는 또다시 두 쪽으로 갈라져 서로 내가 회장이라며 악머구리 놀음을 하고 있습니다. 단체장 공개 오디션 아이디어가 반짝 떠오른 까닭입니다.
                                                                                                                         <2011년 7월 1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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