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취재]한인마켓 ‘제살 깎아먹기’ 무한경쟁 심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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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한인타운 내에서 성업 중인 대형 마켓들이 심각한 경영난에 시달리고 있다. 극심한 경기 침체에 소비자들의 지갑은 예전만큼 쉽게 열리지 않고, 가계 지출규모도 현격히 줄어든 탓이다. 결국 각 마켓들은 너도나도 할 것 없이 과다 출혈이나 다름없는 할인경쟁으로 맞불을 놓은 상황이다.


현재 LA 한인타운 내에는 약 8개의 대형 마켓이 난립하며 포화상태에 이르렀으며, 제살 깎아 먹기 식의 마구잡이 할인 경쟁이 벌어져‘총성 없는 전쟁’을 방불케 하고 있다. 파격적인 할인 세일에 고객들은 반기는 듯하나, 한편으로 유통기한이 지난 제품을 슬며시 세일 품목 속에 끼워 넣어 판매하거나 제품의 질은 뒷전인 채 가격과 개수 경쟁에만 몰두하는 등 소비자에게 실질적인 불똥이 튀고 있어 문제다.


또 벤더사(물품 제공업자)들은 물품 대금 결제도 제대로 받지 못하는 상황에서 마켓의 할인경쟁에‘울며 겨자 먹기’로 물건을 제공할 수밖에 없어 울상이다.‘춘추전국시대’를 맞으며 포화상태를 이루고 있는 LA 한인타운의 제살 깎아먹기 할인경쟁의 실태를 집중 취재했다.


<시몬 최 취재부 기자>


LA한인타운 내의 대형마켓은 웨스턴가에 ‘한국마켓’, ‘플라자마켓’, ‘갤러리아 마켓’이 있으며 올림픽가에는 ‘한남체인’, 8가에 ‘아씨마켓’, 6가에 ‘시온마켓’, 베버리에 ‘가주마켓’, 벌몬트에 최근 그랜드 오픈한 ‘갤러리아 마켓2’ 8곳이 성업 중이다.


LA 한인타운에 위치한 대형 마켓의 연 매출은 2억 달러 규모이다. 한 업계 관계자는 “갤러리아 마켓이 월 매출 300만 달러를 상회하며 가장 실적이 좋고, 한남체인, 아씨마켓, 시온마켓 등이 150만~200만 달러의 월 매출을 보인다. 가주마켓이 100만 달러 정도로 매출 면에서 현재 가장 약세를 보이고 있다”며 “8개 마켓들의 평균 월 매출을 150만 달러 정도로 추정할 수 있다”고 전했다.


현재 한인마켓들은 외적으로는 커지고 숫자는 많아졌지만 몇몇 마켓을 제외한 대부분이 적자에 허덕이며 벤더(식품 도매상)들에게 물건 값을 지불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마켓들마다 차이는 있지만 수백만 달러까지 물건 값을 지불하지 않은 마켓도 있어 벤더들도 ‘불량 마켓’에는 물품 납품을 꺼리고 있다는 상태다.


일련의 상황은 불경기 탓도 있지만 업소들끼리의 과당 경쟁이 주요 원인으로 꼽힌다. 예를 들어 미국 마켓에서 파 한 단에 1달러씩 하는데 비해 한국 마켓들은 5단을 1달러에 팔고 있으니 순익이 남을 리 없다. 결국 야채, 고기는 팔아봐야 마진이 없고 미국 마켓처럼 그로서리 아이템을 팔지 않으면 남는 것이 없는 손해 보는 장사를 하고 있는 것이다.


공정한 경쟁의 룰이 마련되지 않은 가운데서 펼쳐지는 시장 쟁탈전 양상은 필연적으로 저가 덤핑 등 제살 깎아먹기 출혈경쟁이 되기 마련이라는 점에서 우려되는 부문이다. 마켓 관계자들은 너도 나도 할인 대열에 합류하면서 제품을 일반 소비자 가격 그대로 판매하는 마켓을 찾아보기가 어려워졌다.


고객들은 일반 소비자 가격보다 40% 정도의 세일가격이 정상가격이라고 인식하고 있을 정도이다. 나아가 소비자들은 세일가격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는다. 40% 할인된 세일가격에서 더 나아가 A마켓에서 1.99달러에 판매했다면 그 다음주 B마켓에서는 1.75달러에 판매하는 방식으로 앞서거니 뒤서거니 덤핑에 나서는 바람에 마켓별로 가격 눈치 보기가 일반화되고 있다.



















유통기한 지난 제품도 버젓이


이런 마켓들의 덤핑 할인 경쟁의 불똥은 고스란히 소비자들에게 튀고 있다. 하루가 멀다 하고 소비자 고발 사이트와 본지에 마켓 할인 제품의 불만들이 쏟아지고 있다.


한인타운에 거주하고 있는 제보자 K씨는 며칠 전 타운 내 A마켓에서 구입한 음료를 마시고 큰일을 치를 뻔 했다.


K씨는 집 근처 마켓에서 물건을 골라 계산대에서 차례를 기다리다가 캐셔가 계산대 옆의 감귤 주스를 권해 싼 세일가격에 무심코 샀다.
다음날 아침 주스를 마셨는데 한참이 지나자 배가 살살 아파오기 시작했다.


마실 때 일반 과일음료와는 다른 쾌쾌한 냄새가 났던 감귤 쥬스를 의심하고 유효기간을 확인해보고는 깜짝 놀랐다. 전날 샀던 주스의 유통기한이 사흘이나 지나있었다.


또 한인타운에 직장을 두고 글렌데일에 거주하는 직장인 Y씨는 회사 근처 B마켓 과일코너에 진열된 사과 박스를 보고 물건이 좋아 보여 지인들에게 선물하려고 다섯 박스를 샀다. 그런데 집에 가져와 사과를 보니 대부분이 썩어 있었다.


바로 마켓으로 달려가 물건을 보여주니 매니저가 죄송하다는 말도 없이 귀찮다는 듯 서둘러 다른 물건으로 바꿔주고 시치미를 뗐다.


Y씨는 “미안하다는 말도 없이 귀찮다는 듯 다른 물건으로 교환만 해주고 돌아서는 직원의 불친절에 더 화가났다”며 “과도한 업체들 간의 세일 경쟁이 썩은 사과를 팔며 소비자를 우롱하고 있다”고 전하며 한인마켓의 세일경쟁 폐해를 꼬집었다.


또 마켓에서 만난 많은 주부들은 냉장 보관된 제품이나 야채의 신선도가 떨어진다는 점을 지적하며 “시들은 야채를 민망할 정도로 다듬어 파는 것은 예삿일이며 오래되고 안 좋은 야채들을 싼 가격에 진열해 놓은 게 많다”고 말했다.


“질 낮은 제품 한두 가지를 보면 아무리 다른 제품이 좋아도 전반적으로 그 마켓의 신뢰도가 떨어지더라”는 얘기다.


이밖에도 소비자고발 사이트에는 ‘세일하는 배추를 샀는데 속이 다 썩어 버렸다’, ‘라면을 샀는데 유통기한이 한참이나 지나 라면스프가 딱딱하게 굳어있었다’, ‘세일가를 버젓이 붙여놓고 집에 와서 영수증을 확인해 보니 2달러나 비싼 정상가가 찍혀 있었다’, ‘프로모션용으로 나온 조그만 샘플 제품을 세일한답시고 버젓이 진열해 팔았다’, ‘유통기한이 아예 찍혀있지 않은 어묵을 모르고 샀다가 뜯어보았더니 표면이 미끌미끌 거리고 역한 냄새가 나서 버렸다’ 등등 한인 마켓을 이용하는 많은 고객들로부터 제품에 대한 불만이 쏟아지고 있다.


이런 소비자들의 불만의 목소리에 A마켓 측은 “절대 유통기한이 지난 제품을 팔지 않는다. 아마 유통기한이 지난 제품은 물건을 진열하는 라티노 직원의 실수였을 것이다”고 궁색한 변명을 했다. 또 B마켓의 담당자는 “세일하는 야채의 신선도가 떨어져 보이는 것은 많은 손님들이 야채들을 만지고 뒤적거리다 보니 그렇게 보일 수도 있을 것 같다”며 나쁜 야채 상태의 이유를 손님들에게 돌리기까지 했다.


하지만 모든 마켓 관계자들은 제품 하자에 대한 사과는 없이 한결같이 “질 좋은 제품을 손님들에게 최대한 싸게 공급하려고 노력하고 있다”는 말을 덧붙이는 것을 잊지 않았다.


















매출은 늘었지만 마진은 줄어


이런 마켓들의 과열경쟁 속에서 한인마켓들은 살아남기 위해 통폐합을 활발히 하면서 몸집 불리기에 여념이 없다. 하지만 마켓을 키우거나 신규로 오픈했지만 매상이 예상에 못 미치는 현상이 비일비재하다.


또한 몸을 불리는 대형 마켓들의 수가 많다보니, 업계에서는 수요와 공급의 균형이 무너져 자칫 향후 몇 개의 마켓이 파산하지 않을까하는 우려를 낳고 있다.


대형마켓에 물건을 납품하는 벤더사 한 관계자는 “마켓수가 늘면 제품 판로가 확장되는 만큼 반길만한 일”이라면서도 “고객 유치경쟁으로 할인 전략에 매달리면 벤더사들로서도 울며 겨자먹기로 마켓이 요구하는 세일행사와 프로모션에 참여할 수밖에 없어 실익이 줄어든다”고 토로했다.


고객들은 이러한 마켓들의 무한 경쟁을 대체로 환영하는 분위기다. 마켓이 새로 오픈할 때마다 프로모션과 세일이 줄을 잇기 때문에 오픈하는 마켓들을 돌며 저렴한 가격에 구입할 수 있기 때문이다.


반면 마켓들의 입장은 정반대다. 대형 한인 마켓 관계자는 “경기회복이 늦어지면서 고객 1명 당 구입액이 한 때 30달러에 가까웠으나 최근에는 25달러까지 내려갔다”고 전했으며, 또 다른 마켓 관계자는 “마켓 업계의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매출은 늘고 있으나 마진은 줄어들고 있는 것이 현실”이라고 밝혔다.


한인타운의 한 마켓 매니저는 “앞으로 경기가 활성화 된다는 보장도 없는 상황에서 한인마켓이 지나치게 포화 상태가 되다보니 소규모 마켓들은 살아남기가 어렵고 대형 마켓들 역시 언제까지 출혈 경쟁을 감당할 수 있을 지 재정 상태에 의구심이 생긴다”며 불안함을 드러내 현장에서 느끼는 위기의식을 대변했다.


또 다른 마켓 관계자는 “가열 경쟁을 하다 보니 조금이라도 더 파격적인 프로모션으로 고객을 모을 수밖에 없다. 하지만 세일 가격이 너무 낮다 보니 실제 이윤을 기대할 수 없는 실정이어서 오히려 재정 적자를 보는 경우도 많다. 이런 제살 깎아먹기에서 얼마나 버틸 수 있을지 걱정이다”고 털어놓았다.


그는 “지나친 할인 경쟁을 중단하고 싶어도 경쟁 마켓이 연이어 프로모션 행사를 열다보니 그만두기도 힘들다”며 고충을 호소했다.


마켓에 물건을 납품하는 벤더들도 현 상황을 위기라고 단언한다. 일부 마켓은 지불 연체 혹은 불능 상태이며 몇몇 벤더들은 미수 금액만도 수십만 달러 이상인 것으로 알려진다. 대금 결제를 못한 채 파산한 마켓들로 인한 피해금액은 2000만달러대에 이르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벤더들은 이러한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2009년 12월 한국식품도매협회를 출범시키기도 했다.


이들은 올해 4월 말 공개 모임을 갖은 자리에서 협회 회원들은 “마켓들의 지나친 가격경쟁은 결국 마켓뿐만 아니라 식품을 공급하고 있는 도매업체 및 소비자들에게 이롭지 못한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며 “마켓의 과당 경쟁은 지양돼야 한다”고 한 목소리를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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