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춘훈 칼럼]MB의 낯가림 人事, 막장 人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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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임춘훈 (언론인)

미국 공화당 대선 전초전에서 선두를 달리고 있는 미트 롬니 전 매서추세츠 주지사는 요즘 소설 <트와일라잇>을 열심히 읽고 있다고 합니다. 이 소설은 정치 소설도 아니고 ‘대통령이 되는 팁(tip)’같은 내용이 들어 있지도 않습니다. <트와일라잇>은 롬니의 손주가 재미있게 읽었던 소설이라고 하지요. 롬니는 대통령이 되기 위해서가 아니라 손주와 좀 더 가까워지고 소통하기 위해 바로 이 소설을 성경 읽듯 정독하고 있다는 겁니다. 미국 조부모들의 손주 사랑 방식은 확실히 우리 한국 사람들과는 다른 것 같습니다.
나는 지난해 12월 25일 크리스마스 날에 늦둥이 손자를 봤습니다. 이름도 크리스찬이라 붙였습니다. 손녀딸만 셋이 있었는데 별로 기대하지 않던 우리 집안의 장손(長孫)이 드디어 태어난 거지요. 세상에 나온 지 일곱 달 밖에 안 된 크리스찬은 한 달이나 두 달에 한번 꼴로 할머니 할아버지를 보러 우리 동네인 발렌시아까지 올라옵니다. 우리 집에서 60마일이나 떨어진 오렌지카운티에 살고 있어 자주 보지는 못하는 편이지요.
이 아이는 낯가림을 심하게 합니다. 한두달 새에 부쩍 커버린 아이가 대견스럽고 귀여워 덥석 안으면 녀석은 얼굴을 창밖이나 천정위로 향하며 딴청을 부립니다. 할아버지의 사랑에 공포와 불안과 거부로 반응해 실망과 배신감(?)을 안겨주지요. 얼굴을 돌려 강제로 눈을 맞추면 ‘못볼 꼴’이라도 봤다는 듯 ‘으앙~’하고 놀라 울어 제낍니다. 미트 롬니의 경지까지는 못하더라도 나도 낯가림하는 손자 녀석과 소통할 수 있는 나만의 어떤 방법을 빨리 찾아야 할 것 같습니다.


새 법무장관은 ‘누님라인’


낯가림은 영어로는 stranger anxiety라고 합니다. 어린애가 낯선 사람에게 노출될 때 느끼는 불안감으로 보통 생후 6개월에서 8개월 사이에 ‘증세’가 나타납니다. 엄마, 아빠에 대한 애착이 형성되면서 낯선 사람 대하기를 싫어하고 고집이 세지는 시기가 6~8개월 때지요. 낯가림은 아기들의 자기 보호 과정의 하나로 통상적으로는 돌을 전후해 대개 사라집니다. 이와 비슷한 증상이 성인이 된 후까지 이어져 사회활동이나 대인관계에 영향을 미치는 경우도 있는데 이를 사회불안증(andropophobia)라 부릅니다.
이명박 대통령은 사람을 대할 때 – 특히 사람을 쓸 때, 유달리 낯가림을 하는 사람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자기가 아는 사람, 자기가 소속됐던 공동체 출신, 대하기 편한 사람만 돌아가며 골라 쓰는 독특한 인사 스타일이 바로 stranger anxiety나 andropophobia 증세와 비슷하다고 얘기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지난 1월 11일자 조선일보 양상훈 편집 부국장의 칼럼엔 이런 대목이 나옵니다.
“인사를 잘못하는 대표적인 것이 자신이 알고 친한 사람, 편한 사람만 쓰는 것이다. 그런데 이 대통령은 아는 사람, 친한 사람, 편한 사람만 골라서 쓴다. 왜 그러는지 궁금해서 물어 보았더니 어떤 사람이 ‘대통령은 알고 보면 수줍음을 타는 성격’이라고 했다. 모르는 사람과 금방 잘 어울리지 못하고, 전에 알던 사람들과 계속 교류하고 싶어 하는 성격이라고 했다. 결국 이 대통령이 자신의 마음에 따라 인사를 하면 앞으로도 계속 이럴 것이라는 얘기다.”
이 칼럼이 쓰여진 6개월 후 이 대통령은 양 국장의 예상대로 또 한 차례 특유의 ‘낯가림 인사’를 단행했습니다. 이번에는 부인의 초등학교 후배이며 대통령과 동향인 TK 출신 청와대 비서를 법무부장관에 지명했습니다. 많은 국민들이 또다시 이맛살을 찌푸렸고, 야당은 법무장관 내정자의 자질과 정치적 성향을 문제 삼아 내주에 있을 인사청문회 과정에서 반드시 낙마시키겠다고 벼르고 있습니다. 같은 고향, 같은 대학, 같은 고교, 같은 교회 사람만 골라 쓰더니 이번엔 부인의 초등학교 ‘절친’ 후배입니다. 다음엔 유치원 친구를 찾아 쓸 판입니다.
이번에 임명될 법무장관은 내년에 있을 총선과 대선을 관리할 사람입니다. 대통령이 선거에 영향력을 행사하고 싶지 않다면 굳이 법무장관에 여론이 좋지 않은 최측근 청와대 수석을 앉힐 까닭이 없습니다.
권재진 법무장관 내정자는 대통령 부인 김윤옥 여사의 대구 수창 초등학교 7년 후배로, 일찍부터 누나 동생하며 10여년을 이웃사촌으로 지낸 사이라고 하지요. 이런 인연으로 청와대 민정수석에 발탁돼 23개월 동안이나 최측근 실세로 대통령을 그림자처럼 보좌해 왔습니다.
민정수석이라는 엄중한 자리에다 이른바 ‘누님라인’이라는 소문까지 덧칠해지면서, 그는 과거 어느 정권의 어떤 민정수석보다 힘 센 왕수석 노릇을 했습니다. 한계례 신문은 최근 사설에서 “권 후보자는 민정수석 재임시절, 후배인 김준규 검찰 총장과 이귀남 법무장관을 사실상 지휘하며 ‘상왕’ 노릇을 했다는 소문이 무성했다”고 쓰고 있습니다.
이번 인사에서는 또 하나의 낯가림 인사로 검찰 총장 후보에 한상대 서울중앙지검장이 지명됐습니다. 내년 양대선거를 다룰 핵심 사정라인이 모두 TK, 고려대 출신으로 채워진 셈이지요. 한상대 검찰총장 후보자는 중앙지검장으로 에리카 김에게 기소유예 처분을 내리는 등 이명박 대통령 관련 의혹사건에 대해 축소, 왜곡, 은폐 의혹을 받고 있는 장본인입니다. BBK, 다스, 에리카 김 의혹은 이명박 대통령의 퇴임 후를 불편하게 만들 가능성이 높은 인화성 강한 사건입니다. 법무장관-검찰총장 라인을 완고한 ‘낯가림 인사’로 강행한 대통령의 절박한 의중이 읽히는 대목입니다,


여기도 고려대, 저기도 경상도


지금 MB 내각엔 박재완, 이주호, 김성환, 맹형규, 최중경 등 다섯명의 청와대 수석 출신 장관이 포진해 있습니다. 권재진이 입각하면 여섯명으로, 장관의 3분의 1이 청와대 비서출신으로 채워지게 됩니다. 헌정사상 일찍이 없던 ‘비서 내각’입니다.
낯선 사람은 좀처럼 쓰지 않는 대통령의 인사 스타일이 바뀌지 않는 한 ‘비서 내각’은 앞으로 몸집이 점점 더 불어날 겁니다. 당장 류우익 전 대통령실장이 통일부장관 등 다음번 개각을 기다리며 정중동 행보를 보이고 있습니다. 이명박 대통령은 서울대학에서 지리학을 가르치던 류우익 씨한테 장관 등의 요직을 맡기지 못해 거의 강박증 수준의 조바심을 보이고 있습니다.
지난봄 개각을 앞두고 류우익 주중대사는 대사직을 버리고 돌연 귀국했습니다. 신문에는 그가 국정원장, 국토부장관, 통일부장관, 교육부장관 후보에 올라있다는 기사가 연일 실렸습니다. 대통령 실장으로 다시 컴백할거라는 보도도 나왔지요. 이쯤되면 전공이 지리학인지 장관학인지 헷갈립니다.
지리 선생 출신인 그가 남다른 정치감각이나 정무능력이 있어 대통령의 총애를 받는 것으로 보이지는 않습니다. 2008년 초대 대통령 실장이 된 그는 광우병 사태 때 대통령을 재대로 보좌하지 못한 책임을 지고 단명으로 물러났습니다. 곧 주중대사가 돼 대통령 곁을 떠났지만 그의 재임 2년 몇 개월 동안 중국과 북한의 급속한 밀착 등 한국의 대중 외교는 결코 성공적이지 못했습니다.
이런 사람이 개각 때마다 어떤 부처도 맡을 수 있는 전천후 장관감으로 떠오르고 있는 것은 이명박 대통령 ‘낯가림 인사’의 한계이자 폐해로 밖에 설명할 길이 없습니다.
한국의 4대 권력기관인 국정원장, 검찰총장, 경찰청장, 국세청장은 모두 TK출신과 고려대 출신으로 채워졌습니다. 육군, 해군, 공군 참모총장도 전원 경상도 출신입니다. 임기 말까지 사정권력을 틀어잡아 레임덕을 막고 퇴임 후 안전도 보장받으려는 이명박 대통령의 뜻이 이런 식의 TK-고려대 천하 ‘막장인사’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자기들도 멋쩍었던지 경북 출신인 박종헌 공군총장은 홈페이지에서 출신지역과 출신고교 이름을 아예 지웠더군요.
인재를 널리 고르게 찾아 써야 할 대통령이 낯선 사람은 한사코 외면하는 유아기 stranger anxiety에 갇혀 스스로 정부의 인재 풀을 좁혀놓고 있습니다. 이런 인사를 하면서 국민화합과 공정사회를 외치니 대부분의 국민에게는 대통령이 오히려 낯설게 느껴질 수밖에 없습니다. 8월께에 또 한 차례 부분 개각이 있다는데 이번엔 대통령이 유치원 짝꿍을 찾아내 장관 감투를 씌워주는 건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다음 일요일엔 내 손자 크리스찬이 할아버지 생일을 축하해 주기 위해 온답니다. 그날은 내 얼굴보고 ‘으앙~’ 안했으면 얼마나 귀여울까요?
                                                                                                                         <2011년 7월 2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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