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춘훈 칼럼]진보좌파의 ‘참을 수 없는 천박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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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임춘훈(언론인)

하지 중장은 8.15 광복 후 대한민국 정부수립 과정에서 큰 영향력을 행사한 미국 군정장관입니다. 1945년에서 1948년까지 재임하고 귀국했다가 6.25가 터지자 다시 한국으로 와 전쟁에 참전했습니다.
해방공간에서 신생 대한민국의 운명을 쥐락펴락한 그는 막강한 권한과 역할 못지않게 여러 가지 재미있는 화제와 일화도 남겼습니다. 이화장에서 이승만 대통령을 만난 그가 “각하, 안녕하십니까”라는 인사 대신 “각하, 엿 잡수십시오”라는 뜻의 ‘팔뚝 감자’를 늙은 대통령에게 먹였다는 웃지 못할 일화도 그중 하나입니다. 6년 전 작가 서정인 씨가 발표한 연작소설 <모구실>에는 이런 대목이 나옵니다.
“…미군중장(하지)이 부산에 상륙해서 특별열차로 서울로 가는데, 선로 연변에 늘어선 조선 아해들이 달리는 기차를 향해서 각단지게 감자를 맥였소. 오른손 주먹을 왼손바닥으로 감싸고 있다가 손바닥으로 팔굽을 치면서 상대방에게 주먹을 쏘아대는 감자 말이요. 미군 장군이 무슨 뜻인지 알 수 없어서 조선 연락장교한테 저게 무엇이냐고 물었소, 조선 장교가, 동포들이 낄낄대면서 팔뚝감자로 부족해 ‘다리 감자’까지 연방 먹이고 있는 것을 보고 민망해서, 저건 조선의 인사로 반갑다는 뜻이라고 둘러댔소. 전 세계를 누비고 다닌 미군은 그날 새로운 인사법을 배웠다고 생각했소. 이화장을 예방한 하지는 현관에서 그를 미국식으로 껴안으려고 다가오는 이승만한테 팔뚝 감자를 계속해서 서너방 먹였소. 서로 상대방 문화를 어설피 한 것이 화근이었소…”
배달민족이 저 멀리 고려 때부터 애용해 온 욕설인 팔뚝감자를 미군 3성장군이 대한민국 초대 대통령을 향해 서너번이나 먹이고 있는 장면은 상상만 해도 웃음이 절로 나옵니다.
하지 장군은 전쟁터에서는 펄펄 날았지만 일상의 언행은 거칠고 직정적이며 때로는 무식하기 그지없다는 평판을 얻었습니다. 맥아더 장군에 의해 군정장관으로 임명된 하지는 해방된 조선 땅에 부임 하자마자 “코리안이나 잽스(일본)나 모두 쥐새끼 같다”는 한국인 비하발언을 해 3천만 국민들을 열 받게 만들었습니다. 하지는 “일본에 주둔해 있는 미국 군인들이 두려워하는 세 가지의 ‘리아’가 있다면서 다음과 같은 망언도 늘어 놨습니다.
“그 세 가지는 다이어-리아(설사), 고오너-리아(임질) 그리고 코-리아 다….”
그가 탄 특별열차를 향해 팔뚝감자를 먹여 댄 조선 사람들의 마음속엔 코리아와 코리안을 모멸하는 하지에 대한 ‘비호감’ 정서가 똬리를 틀고 있었던 건 아닐런지요.


이상한 나라, 별난 시위


흔히 ‘엿 먹어라’라는 의미로 쓰이는 팔뚝감자 욕은 국민소득 2만 달러의 세계화 시대를 살고 있는 한국에서는 지금 거의 쓰이지 않습니다. 요즘은 시골의 개구쟁이 중학생들도 수틀리면 팔뚝 대신 가운데 손가락을 씁니다.
한국사회에서 거의 사라지고 잊혀진 팔뚝감자가 다시 등장했습니다. 지난 7월 18일 낮 12시, 서울의 MBC본사 정문 앞에서는 난데없는 팔뚝감자 공연(?)이 열렸지요. 감자를 날린 주인공은 ‘조선아해’아닌 대학교수였고, 감자를 먹은 상대는 미 군정장관이 아닌 MBC였습니다. 곁들여 이승만 대통령 대신 이명박 대통령이 한방 우아하게 먹었습니다.
성공회 대학이라는 데가 있다네요. 진보좌파 학자들이 바글바글 모여있는 곳이라지요. 이 대학의 탁현민 교수라는 사람이 중인환시리에 팔뚝감자 퍼포먼스를 열었습니다. 불교 의식인 ‘삼보일배’를 패러디해 ‘삼보일퍽’이라 이름붙인 이벤트였습니다. ‘퍽’은 감자를 먹일 때 팔뚝에서 나는 소리라는데, 내 생각엔 f자 들어가는 영어 욕을 ‘반편이 명산폐묘(名山廢墓)하듯’, 차용해 쓴 것으로 짐작됩니다.
‘삼보일퍽’은 세 걸음을 걸은 후 팔뚝감자 한번을 먹이는 ‘의식’이라네요. 탁씨는 미리 준비한 세 가지 버전의 삼보일퍽 퍼포먼스를 선보였습니다. 그중의 하나가 미국식인 가운데 손가락과 한국식 팔뚝감자를 합친 ‘한미합작’ 쌍(雙)욕입니다. 가운데 손가락을 펴 하늘로 향하게 한 후 한국전통의 팔뚝 때리기를 하는 것이지요. 그의 트위터를 보고 왔다는 10여명의 시민들이 퍽소리 나고 딱 소리 날 때마다 박수로 응원했습니다.
대박흥행을 기대한 탁씨의 이날 퍼포먼스는 그러나 실패로 끝났다지요. 대부분의 MBC 직원들이 차가운 시선을 보냈고, 지나가던 시민들도 천박한 짓거리에 질린 듯 외면해, 당초 예정됐던 한시간짜리 쇼가 20분도 안 돼 끝났습니다.
지난 7월 13일 MBC 이사회는 새로운 방송심의 규정을 만들어, 정치색 짙은 소셜테이너의 방송출연을 제한하는 조치를 취했습니다. 이에 따라 시사 프로인 ‘손석희의 시선집중’에 출연키로 한 좌파배우 김여진의 출연이 봉쇄됐습니다. 진보좌파 진영은 발끈했고 서울대 조국 교수, 작가 공지영 등 지식인 여러 명은 항의의 뜻에서 MBC 출연거부를 선언했습니다.
MBC 이사회의 결정은 섣부르고 서툰데다 요즘의 시대정신이나 문화 트렌드에도 맞지 않는 패착이었습니다. 이마에 붉은 띠 동여맬 구실만 찾고 있는 좌파진영에는 굿판 벌일 멍석을 깔아 준 셈이지요. 시대의 아픔과 고민을 말하고 고발하겠다며 개그콘서트식 깜짝쇼나 1인 퍼포먼스를 벌이는 것은 요즘 뒤바뀐 시위 문화의 한 트렌드이기도 합니다. 탁현민의 1인 쇼도 그중의 하나지요.
광우병 파동 때 유명한 청산가리 발언을 한 탤런트 김민선(규리)이나 삼조일퍽의 창시자(?) 탁현민 같은 사람을 생방송 시사프로그램에 출연시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요. 지적 미숙아 단계인듯한 김민선은 “미국 쇠고기 먹인 우리 아이들 열일곱살 되기 전에 다 죽어요” 울부짖으며 난리를 피우겠지요. 탁현민은 우리 대통령께 인사한번 드리겠다며 라이브로 카메라를 향해 삼보일퍽을 날릴지도 모릅니다. 진보좌파들의 욕설 퍼포먼스 같은 천박하고 무책임한 행동반응은, 시대착오적인 소셜테이너 출연제한 조치를 취한 MBC의 결정을 역설적이게도 정당화시키는 불가역(不可逆) 반응을 몰아오고 있습니다.


희망버스가 주는 절망


이번 주말 7월 30일, 부산 영도 한진중공업입니다. 수만명의 시위대가 수백대의 버스에 나눠 타고 이곳에 몰려옵니다. 200일 넘게 35미터 높이의 고공크레인에 올라 나홀로 시위를 벌이고 있는 김진숙이라는 열혈노동운동가를 지원하기 위해서 입니다.
1,800명의 직원 중 400명에 대한 정리해고 방침이 정해진 후 불거진 한진중공업 사태는 어느새 밥그릇 잃는 당사자인 해고 노동자들은 뒷전에 밀려나고 김진숙이라는 전업 시위꾼한테 모든 촛점이 모아진 채, 영도섬 일대는 긴장감이 날로 더해가고 있습니다. 전국에서 모인 시위대를 실어 나르는 버스를 희망버스라고 이름 붙였다지요. 1, 2차 희망버스에 이어 바로 7월 30일 이번 주말엔 3차 희망버스가 몰려들어 ‘끝장 시위’를 벌일 예정입니다.
대표적인 좌파 인터넷 매체인 <프레시안>은 3차 희망버스 이벤트를 앞두고 이런 글을 쓰고 있습니다.
“…김진숙. 지금 그녀를 빼놓고 어떻게 한국사회를 이야기할 수 있을까. 희망버스. 이 멋진 조어에 마음이 움직이지 않고 어떻게 한국사회를 이해할 수 있으며, 또 살아갈 수 있을까? 외로운 촛불 같기만 했던 그녀의 투쟁이 한국사회를 움직이고 있다. 그 촛불이 꺼지지 않기를….”
한진중공업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는 민주노총 간부인 김진숙 씨의 고공 크레인 시위는 이미 절반의 성공을 거뒀습니다. 사태를 전국적인 이슈화 하는데 성공했고, 그 결과 6월 27일 정리해고자 400명중 300명이 회사가 제시한 조건에 따라 희망퇴직을 하는 노사합의가 이뤄졌습니다. 가족의 생계와 회사의 존폐에 위협을 느낀 직원들은 절대 다수가 파업철회와 작업 정상화를 바라고 있습니다.
그쯤에서 김진숙 씨의 1인 퍼포먼스는 끝나야 했습니다. 헌데 노사 당사자가 아닌 산별노조인 금속노조와 상급기구인 민주노총이 자기들이 참여하지 않은 노사합의는 무효라며 김진숙 씨의 시위중단과 근로자들의 조업 정상화를 희망버스라는 물리적 이벤트로 막고 있습니다. 노동현장에서 벌어지는 많은 갈등과 소요는 주막집 강아지처럼 내닫는 바로 이 노동훼방꾼들 탓인 경우가 태반입니다. 국가와 사회의 발전에 대한 책임이나 고민 없이 폭력적인 거리운동 자체를 즐기는 진보좌파 진영의 자기 분열적 행태가 문제입니다.
희망버스는 <프레시안>의 보도처럼 과연 한국 사회를 움직일 희망의 촛불이 되고 있는 걸까요. 아마도 수십억원의 경비가 소요됐을 세 차례의 희망버스 이벤트는 영도섬은 물론 부산시 전체의 경제와 소매상권에 거의 궤멸적 피해를 입혔습니다. 대가수의 시민과 기업이 나서 중단을 요구했지만 이들은 꿈쩍도 않고 있습니다.
시민들이 희망버스에 절망하며 눈살을 찌푸리고 있는 가운데 시위대는 여기저기서 맥주와 소주 파티를 열고, 망원경으로 고공 35미터를 관찰하는 사람, 파파라치처럼 크레인속의 여인을 카메라에 담기위해 셔터를 눌러대는 사람… 희망버스가 아니라 단풍관광 버스 같더라고 혀를 내두르는 사람도 많았다지요.
김진숙과 탁현민. 이 시대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입니다. 
                                                                                                                         <2011년 7월 2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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