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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임춘훈 (언론인)

한국 사람들이 좋아하는 외국 작가 중에 프랑스 소설가 베르나르 베르베르가 있습니다. 소설 <파피용>, <개미> 등으로 유명한 베르베르는 작가로서 자신의 존재를 일깨워준 첫 번째 나라가 한국이라며 한국을 제2의 조국이라 부른다지요. 그는 프랑스보다 한국에서 인기가 더 높습니다.
2009년 프랑스에서 출간된 베르베르의 소설 <카산드라의 거울>에는 김예빈이라는 탈북자 출신 한국인이 주요인물로 등장합니다. 미래를 예언하는 17살의 자폐증 처녀 카산드라가 사랑의 감정을 품게 되는 컴퓨터 천재를 한국인으로 설정한데서 작가의 한국 사랑이 엿보입니다.
카산드라는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예언의 여신입니다. 족집게 예언력을 갖고 있지만 아무도 그녀의 예언을 믿지 않아 재앙을 부르게 되는 비극의 예언자이지요. 트로이의 마지막 왕 프리아모스의 딸인 카산드라는 예언의 신인 아폴론이 프로포즈를 하자 사랑을 받아들이는 조건으로 그에게서 예언 능력을 얻습니다. 그렇게 예언의 여신이 됐지만, 아폴론이 자기 스타일이 아니었던지, 끝내 그의 사랑을 받아들이지 않지요. 배신감에 열 받은 아폴론은 보복으로 카산드라가 하는 예언을 아무도 믿지 않게 만들어 버립니다.
카산드라의 ‘아무도 믿지 않는 예언’은 유명한 트로이 전쟁에서 비극을 맞습니다. 트로이를 침공한 그리스군이 거대한 목마를 성 앞에 세워둔 채 거짓 철군하자, 카산드라는 이 목마를 성 안으로 들여놓으면 트로이가 망한다고 예언합니다. 그러나 아무도 그의 예언을 믿지 않고 목마를 성안으로 끌어들여 그 속에 숨어있던 그리스군이 성을 함락함으로써 트로이는 멸망합니다.
그리스 신화 속 재앙의 예언자 카산드라를 현대소설의 주인공으로 새롭게 탄생시킨 베르베르는 <카산드라의 거울>에서 미래를 보려고 하는 인간의 헛된 욕망을 빗대 이렇게 꾸짖습니다.
“미래를 내다본다 해도 미래는 결코 막을 수 없다. 미래는 보는 게 아니라 창조하는 것이다….”


더블딥 몰려오나


지난 해부터 회복기미를 보이던 글로벌 금융위기는 미국의 국가 부도 및 신용등급 하락사태를 거치며 다시 최악의 경기 침체로 이어지는 더블딥 상황으로 내닫고 있습니다. 경제 비관론자들인 이른바 ‘닥터 둠’의 예측이 하나 둘씩 맞아 떨어지면서 글로벌 경제에도 ‘옳지만 아무도 믿지 않는’ 카산드라의 예언이 저주의 망령처럼 떠다니고 있습니다.
2008년 미국발 금융위기를 일찌감치 예측한 누리엘 루비니와 마크 파버 같은 ‘닥터 둠’이 이를테면 이 시대의 카산드라지요. 이들의 경제 예측은 옳았지만 아무도 믿지 않아 100년 만의 대재앙이라는 글로벌 경기침체가 몰아 닥쳤습니다.
지난해를 저점으로 경기는 최악의 상황을 벗어나 회복세에 접어든 것으로, 미국 정부와 경제 낙관론자들은 평가했습니다. 올 하반기부터 시작 돼 내년부터는 실물경제도 크게 호전될 것으로 오바마 정부는 장밋빛 전망을 내놨습니다.
헌데 올 상반기부터 터져나온 유로존의 잇단 재정 위기에 미국 국가신용 등급 하락이라는 돌발악재까지 겹치면서 카산드라의 저주가 다시 지구촌을 덮쳤지요. 장밋빛 전망 대신 잿빛 전망을 고수한 ‘닥터 둠’들의 반갑지 않은 판정승이었습니다.
문제는 더블딥(짧은 경제회복 뒤에 다시 침체에 빠지는 현상)과 제2의 리세션이 다시 올 것인가, 온다면 언제 쯤 어떤 형태로 올까에 지구촌의 관심이 쏠리고 있습니다. 많은 경제 비관론자들은 더블딥을 피할 수 없는 ‘대세’라고 봅니다. 일부는 더블딥이 이미 시작됐다고 주장하기도 합니다.
뉴욕대의 ‘닥터 둠’ 루비니 교수는 “앞으로 1년 안에 다시 리세션이 올 확률이 50% 이상”이라고 예측합니다. 그는 “경제 상황이 이대로 방치되면 내후년 2013년 쯤, 세계 경제는 퍼펙트 스톰(최악의 폭풍. 여러 악재가 겹친 위기의 뜻)에 휘말릴 것”이라고 불길한 예언까지 내놓고 있지요.
‘닥터 둠’은 아니지만 세계은행 총재인 로버트 졸릭 같은 경제 신중론자도 “글로벌 경제는 새롭고 더 위험한 국면으로 접어들고 있다”면서 “유럽 여러나라들의 국가 부채 문제는 미국의 신용등급 강등에서 나타나는 중장기적인 문제 보다 더 걱정스럽다”고 우려를 나타내고 있습니다.


3차 양적완화 불가피할 듯


오바마 대통령은 요즘 가는 곳마다 “더블딥은 없다”고 외칩니다. 미국 경제는 곧 회복돼 다시 힘찬 성장가도를 내딛게 될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이지만, 시장과 국민의 반응은 썰렁하고 냉소적입니다. 국가부도까지 볼모로 잡고 정파 다툼을 벌인 워싱턴의 ‘허접 쓰레기 같은 인간들’(대표적 닥터 둠인 마크 파버의 표현)을 보며 진저리친 미국 국민의 정치 혐오감은 지금 극에 달해 있지요. 그래서 이번 경제위기는 신뢰의 위기이며 정치의 위기라고 평하는 전문가도 많습니다.
GDP 대비 100%를 이미 넘어선 미국의 국가 채무를 줄이는 방법은 어찌 보면 단순 간단합니다. 부자증세 등 세수를 늘리고 여러 복지혜택을 축소 조정하는 길 밖에 없지요. 내년 대선을 앞둔 공화당 의회의 정치적 ‘딴지 걸기’에 우두망찰하고 있는 오바마 대통령의 리더십 부재가 아쉬운 까닭입니다. 이번 위기의 변곡점이 된 S&P의 미국 국가등급 하향조정 사태 역시 오바마 행정부가 현명하게 선제적으로 대처했더라면 피할 수도 있었을 것이라고 아쉬워하는 국민이 많습니다.
루비니 교수가 카산드라의 예언처럼 언급한 세계 경제의 또 한 차례의 대재앙인 퍼펙트 스톰이 몰려온다는 시기는 내후년, 2013년입니다. 그는 “경제상황이 이대로 방치되면”이라는 전제를 깔았지요. 이대로 방치하지 않고 적당한 대응 방안을 마련한다면 퍼펙트 스톰은 피하거나 피해를 최소화할 수도 있다는 얘기지요.
그는 버냉키 FRB 의장이 만지작거리고 있는 3차 양적완화(QE3)가 결국은 시행될 것이라고 전망합니다. QE3는 각 주와 지방의 부채 문제에 대응하기 위해 시행될 것이라며 경우에 따라 QE4, QE5의 시행 전망도 내놓고 있지요. 전문가들은 3차 양적완화가 큰 효과를 거두지는 못한다 해도 “최소한 아무것도 안 해 파국을 맞는 것보다는 나은 카드가 될 것”이라는 데에 의견을 모으고 있습니다.
중국 등 채권국들이 미국의 부채를 대폭 탕감해 줌으로써 미국뿐 아니라 전 세계의 경제가 또다시 수렁에 빠지는 위급상황을 피해가자는 아이디어도 나오고 있습니다. 세계를 견인하는 경제대국이며 소비대국인 미국 경제가 파탄에 빠지면 수출 주도형 국가인 중국, 일본, 독일 등 어느 나라도 혼자 독야청청할 수 없다는 일종의 글로벌 대마불사(大馬不死) 이론이지요. 미국 채무 탕감은 모기지 채무의 절반가량이 탕감되는 등 엄청난 파급효과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지난 11일 열린 공화당 대선후보 아이오와 토론에서 8명의 후보 전원은 “세금 인상 절대 반대”를 외쳤습니다. 정부 지출을 줄여 재정적자를 보전하면서 경제도 함께 살리라는 억지 춘향식 주장을 세계 초강대국 대통령 후보들이 공공연히 떠벌리고 있습니다. 빈사상태의 경제를 정부지출 삭감으로 살려내라는 말은, 영양실조로 죽어가는 환자를 다이어트 요법으로 살리라는 말에 다름 아니지요. 워싱턴의 멍청이들다운 발상입니다.


한국 정치권의 ‘복지 잔치’


한국 정치판의 요즘 화두는 ‘복지 포퓰리즘’입니다. 무상보육, 무상급식, 반값 등록금 등 내년 총선과 대선을 겨냥해 여야 정치권이 쏟아내는 ‘공짜 시리즈’가 장난이 아닙니다. 이들이 요구하는 내년 복지예산은 정부 예산의 10%에 육박하는 30조원이라지요. 미국 등 선진 각국은 과도한 국가부채에서 벗어나기 위해 정부지출과 복지예산을 줄이는 등 허리띠를 졸라매고 있는데, 한국만 나홀로 과잉복지와 포퓰리즘의 광풍 속으로 겁 없이 걸어 들어가고 있습니다.
오는 24일 서울에서는 ‘무상급식 주민투표’가 실시됩니다. 초 ․ 중등학교에서의 전면 무상급식에 반대하는 오세훈 시장이 정치 생명을 걸고, 래디칼한 좌파관료인 곽노현 교육감과 한판 승부를 벌입니다. 그동안의 여론조사를 보면 오시장의 선택적 무상급식을 지지하는 여론이 약간 높은데 문제는 투표율입니다. 주민투표는 유권자의 33.3% 이상이 투표해야 유효한데 이를 넘기는 게 간단치 않지요. 야당은 투표승리 보다는 무효화를 위해 투표 불참 운동을 펼치고 있습니다. 여당 내에서도 박근혜 쪽은 내년 표 계산을 하느라 주민투표에 나몰라라입니다. 대선 불출마라는 승부수까지 던지고 복지 포퓰리즘 저지에 올인하고 있는 오세훈 시장의 ‘나 홀로 싸움’이 오히려 돋보입니다.
제2의 글로벌 경제위기는 3년에서 5년을 지나야 벗어나게 된다지요. ‘닥터 둠’들도 대체로 그렇게 전망하고 있습니다. 워싱턴도 서울도 그 몹쓸 정치가 문제입니다.


                                                                                                                         <2011년 8월 1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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