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진단]한인 노인들의 일그러진 자화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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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LA인근 발렌시아에서는 한인 노인 김씨의 외로운 장례식이 있었다. 70이 넘도록 평생의 멍에였던 ‘외로움’과 싸우다 생을 마감해야만 했던 고인의 곁은 지켜준 사람들은 생전 한번 만나보지 못했던 주변의 한인들이었다.


외로운 삶의 끝자락마저도 홀로여야만 한 그녀의 죽음은 주변의 안타까움을 자아냈고, 결국 주위의 한인 이웃들이 나서 그녀의 마지막 길을 배웅했다. 영주권을 소유하고 있었지만 주정부를 비롯해 미국정부로부터 어떠한 도움도 받지 못한 그녀를 도와줄 사람은 존재하지 않았다. 한인사회의 또 다른 단면인 독거노인들의 실상과 처지가 적나라하게 드러난 단면이었다.


독거노인 문제가 미주 한인사회의 사회 문제로 떠오르고 있다. 독거노인 문제는 가족이 없어 혼자 사는 노인들의 문제만을 일컫는 것은 아니다. 버젓이 자식이 있는데도 아파트에 혼자 나와 살거나 요양시설에 의탁되어진 한인 노인들도 많다. 성장해가고 있는 한인사회의 이면인 독거노인 문제를 들여다봤다.



<시몬 최 취재부 기자>



“손주라도 자주 볼 수 있으면 원이 없겠어….”


주름진 눈자위에 얼핏 물기가 어린다. 11년 전 손주를 봐주기 위해 미국의 딸네 집으로 이주했다가 갑자기 딸이 병으로 숨지는 바람에 졸지에 외톨이가 돼버린 김모 할머니(78세).


올해로 독거 생활 8년째다. “무슨 희망이 있겠어. 그냥 하루하루 사는 거지….” 재혼한 사위가 손자들과의 접촉마저 차단해 버린 까닭에 ‘몇 달에 한번 학교 등하교 길에 먼발치서나마 손자를 보고 오는 것이 유일한 낙’이다.


김 할머니만의 얘기가 아니다. 수많은 미주 한인 독거노인들 대다수가 저마다 ‘가슴을 저미는’ 과거와 현실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 가족으로부터의 단절, 궁핍, 사회의 외면, 무관심…


한인 독거노인들 대다수의 삶은 말 그대로 고립무원의 섬과 다름없다. 누구도 손길을 뻗치지 않는, 관심권 밖에서 매일 매일 조금씩 ‘박제화’돼 가고 있다.


한국 사회에서는 독거노인 수가 이미 100만 명을 훌쩍 넘었다. 자치단체들이 나서서 기초수급대상자인 독거노인들을 위한 대책들을 쏟아내고 있지만 여전히 부족한 복지예산으로는 모든 독거노인들에게 혜택을 주기란 쉽지 않다.


그러나 이것은 한국의 상황이며 한국의 대책일 뿐 미주한인사회의 노령화와 독거노인 문제와는 다른 세상이야기일 뿐이다.


미주 한인사회의 1세대들을 보자. 어떤 이들은 안 먹고 안 입어가며 성공가도를 달려 큰 소리 ‘떵떵’쳐가며 살아간다. 또 다른 이들은 자식교육에 혼신을 다해 미주한인들이 자랑스러워 할 만큼 키워내기도 한다.


그러나 1세대 중 일부는 힘겨운 이민 생활 끝에 뒷방 늙은이 신세가 되기도 한다. 경제적 능력이 없는 노인들이나 행여 경제적 능력이 있다 해서 홀로 살아가야 하는 외로운 노인들도 많다. 자식들이 독립적으로 살아가기에 힘든 노인들을 자신의 생활반경에서 몰아내는 경우도 심심치 않다. 노인 혼자 거주할 수 있는 아파트를 얻어 내보낸 다던가 노인센터 등의 시설에 의탁하는 사례가 그것이다.
















 ▲ LA 인근 널싱홈에서 몸을 가누기 힘든 노인들이 외로운 삶을 이어가고 있다.

“자식들 본지 오래 전”


LA인근에 위치한 노인복지시설을 들여다보면 전문적 케어라는 명분하에 ‘신 고려장’에 내몰린 한인 노인들을 목격할 수 있다.


이순진(가명) 할머니는 슬하에 6명의 자식들이 있다. 80세가 훌쩍 넘은 나이, 미국으로 이민 온 지도 30여 년이 넘었다.


6남매를 훌륭하게 키워냈다는 자부심에 가득 찬 할머니는 시종일관 자녀들 자랑에 침이 마른다. 어떤 아들은 ‘의사 선생’이라며 의기양양 자식자랑을 늘어놓는다. 하지만 곧 거동이 불편한 이 할머니는 “근데, 자식들 못 본지가 한참이여”라고 눈시울을 붉힌다.


다른 할머니들 앞에서 ‘의사 선생’ 아들 자랑할 때와 정반대의 모습을 보이시는 할머니. 그녀의 눈시울이 벌겋게 달아오르며 “막둥이가 보고 싶어도 통 안와”라고 하신다.


또 다른 할머니인 김을녀(가명) 할머니는 이 곳에서 반장이다. 널싱홈에 사신 지 올해로 10년 차로 장기투숙자이자 중풍환자이기도 하다.


김을녀 할머니는 다른 사람들 앞에서 자신은 보청기 없이도 잘 듣는다고 자랑을 늘어놓기도 한다. 중풍으로 한쪽 몸이 자유롭지 못하지만 안경을 쓰지 않아도 성경책을 술술 읽어나갈 정도로 아직 정정하다.


매주 두 번씩 먹을 수 있는 한국식 밥시간이 행복하다는 김 할머니는 자식들과 함께 사는 것보다 널싱홈이 편하다고 말한다. 동무들도 있고 아플 때 돌봐주는 간호사도 있어 좋다는 것이다. 가족들도 자주 오기 때문에 외롭지 않다고 강조하기도 한다.


자신의 방에 들어간 후 움직이기 힘든 신체의 반쪽을 이끌고 전동휠체어를 충전한다. 이마저도 너무 오래된 것이라 방전되는 속도가 점차 빨라지고 있다.


작동모드를 수동으로 바꿔야 하는데 손이 닿지 않아 누군가의 도움을 받아야 하는데 미국생활 30년 동안 말할 줄 아는 벙어리 신세로 살았기에 주변 사람들이 먼저 알아봐주지 않으면 한참을 혼자서 바동거려야만 한다.


전동 휠체어를 수동으로 바꾸는 것 마저 힘든 김을녀 할머니의 침대 한 켠에는 낡은 성경책과 십자가가 놓여 있을 뿐 한 장의 가족사진도 없다.


 



 


좌절감, 무기력, 절망감 느껴


남편의 병간호를 위해 매일 널싱홈에 출근하는 최연자(가명) 할머니는 올해 74세이다. 치매를 앓고 있는 남편을 집에서는 도저히 간병할 수 없어 널싱홈을 택했다. 그 어떤 자식에게도 피해를 주지 않으면서 남편을 간호하는 마지막 방법이 널싱홈이었던 것이다.


오랜 세월을 미국에서 살아왔지만 운전을 하지 못해 남편에게 오는 길마저 자식들에게 의존해야 하지만 그마저도 자식들이 눈치를 봐야 한다. 바쁜 이민 생활에 방해를 주고 싶지 않다는 것이 최 할머니의 생각이다.


최 할머니는 자신의 남편의 현실을 보면 다른 사람보다는 나은 편이라고 말한다. 부인이 곁에 있기 때문에 자식들에 대한 의존도가 낮은 편에 해당된다는 것.


미국은 노인복지가 전적으로 국가차원에서 이뤄지는 유럽과는 달리 미국은 민간체계를 통해 노인복지가 이루어지는 경우가 더 많다.


노인을 케어하는 미국의 요양시설은 널싱홈과 같은 시설보호와 재가서비스로 나눠지는데 널싱홈은 주정부와 연방정부 차원의 지원을 기반으로 하고 있다.


민간주도 차원인 재가서비스의 경우 가정간호서비스가 대표적이다. 이와 함께 독거노인이 거주하는 가정으로 간호사 및 봉사단체가 직접 방문하는 가정봉사원 서비스, 주말을 이용해 보호하는 주간보호 서비스, 식사를 제공하는 급식 서비스 등으로 나눠진다.


널싱홈의 사례처럼 가정 내에서 돌봐줄 노인이 장애나 만성질환 및 치매 등으로 고생할 경우, 이들은 의료 및 간호 서비스를 종합적으로 제공받을 수 있다. 이런 시설들은 독거노인들이 심리적 안정감을 갖고 건강회복에도 도움이 되는 것이 사실이다.


널싱홈의 환자들은 치매환자를 포함해 거동이 불편하거나 정신이 혼미해지는 증상을 보이는 거주자도 있고, 일부 노인들은 심각한 우울증을 겪고 있기도 하다. 널싱홈에 거주하는 노인들은 사회적 지지를 받지 못하기 때문에 좌절감, 무기력, 절망감을 느끼게 된다.


널싱홈의 환자들은 자신들이 외부세계에 의해 버려져 왔거나 잊혀졌다고 지각할 때 불안과 우울이 증가한다. 


















‘끼니만 때우기’에 급급


하지만 널싱홈이나 재가서비스를 받을 수 있는 노인들은 어느 정도 경제적인 뒷받침이 되어야 그나마 혜택을 누릴 수 있다. 현재 노인아파트 등에서 삶을 이어가는 많은 한인 노인들은 재정적 · 물리적 도움 없이는 정상적인 생활을 하기 힘든 상태로 어렵게 살아가고 있다.


기존의 사회보장 제도 혜택은 사실상 ‘끼니만 때우기’에 급급한 수준과 다름없기 때문이다. 자녀들을 보러갈 여비도 없고, 차량이 있다하더라도 가스를 넣을 돈이 없다. 이런 상태에서 자녀들을 보러간들 부담만 지우게 될 것이 뻔하기 때문에 이들은 차라리 자녀들에게 “나를 잊어라”는 생각으로 산다.


메릴랜드 대학 아시안 아메리칸 연구팀의 최신 연구결과에 따르면 한인 노인층의 빈곤율은 무려 30.9%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미국 내 평균 노인 빈곤율 21%에 비해 크게 높은 수준이다. 즉 한인 노인 3명중 1명은 “가까스로 끼니나 이어가고 있을 정도”라는 의미다.


한 전문가는 “현재 한인 노인분들은 이민 1세대로서 온갖 고생을 해오면서 자녀교육과 내집 마련 등에 휘둘리는 바람에 자신들에 대한 노후 준비는 매우 부족했던 것이 현실”이라며 “은퇴 후에도 일을 해야 하지만 고령으로 인해 취업 기회가 부족하기 때문에 빈곤을 벗어나기 힘든 구조”라고 설명했다.


또한 이민자라는 특수한 신분 때문에 겪는 어려움도 상당한 것으로 지적된다. 한 사회복지사의 설명에 따르면 시민권자의 경우 연금이나 메디케어 등의 복지 혜택을 누릴 수 있지만, 비영주권자들은 이같은 혜택에서 제외된다.


여기에 미국 복지 시스템에 대한 지식이 전무할 뿐만 아니라 소통 문제까지 있기 때문에 매우 어려운 처지에 있는 한인 시니어들이 적지 않다는 것이다.


 




 


10명 중 1명, 자살충동 경험


경제 문제 이상으로 심각한 것이 노인들이 겪는 ‘외로움’이다. 외로움은 노인들로 하여금 만성적인 우울증을 유발하고, 방치 시 자살 등과 같은 극단적 상황으로까지 이어지게 하는 심각한 문제다.


한 사회복지 전문가는 “혼자 사는 노인들은 경제적으로 매우 어려울 수밖에 없으며 정신적으로도 우울증과 같은 질병이 생길 확률이 높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한인 노인의 34%가 심각한 우울증에 시달리고 있으며 10명 중 1명꼴로 자살 충동 경험을 겪고 있다는 충격적인 연구 결과가 발표되기도 했다.


사우스 플로리다대의 장유리 심리학교수 연구팀은 2010년 미국 내 한인 노인 472명을 대상으로 한 면접 연구 결과를 통해 이같이 밝혔다. 이 연구는 또한 경제상황과 건강이 우울증의 주요 원인으로 작용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했다. 즉, 경제적 여유가 없는 노인일수록 우울증 정도가 높다는 설명이다.


한인 사회 내 노인 인구가 점점 증가함에 따라 빈곤, 질병 등 노인 문제는 사회문제화 되고 있지만, 아직까지 이를 개인 문제로 보는 시각이 지배적인 것이 미국 내 한인 사회의 현주소다. 도움이 필요한 노인 인구는 많은 반면, 지속적으로 도움을 주는 곳은 몇몇 비영리단체나 종교기관에 그치고 있다. 또 명절 등이 되면 각종 행사들이 넘쳐 나지만, 몇 시간으로 끝나는 이벤트에 그칠 뿐 빈곤 노인들에 대한 ‘근본적인 문제’에는 큰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


독거노인들도 한인사회의 구성원이다. 한인 독거노인 문제는 한인사회가 안고 가야 할 필수과제이며, 이들의 삶을 지역사회와 연결시키는 것은 홀로 사는 노인들의 사회문제를 해결하는 출발점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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