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춘훈 칼럼]안철수-박원순이 만들 세상

이 뉴스를 공유하기















 ▲ 임춘훈(언론인)

미국과 한국에서 프로야구 결승시리즈가 열리고 있습니다. 미국에선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와 텍사스 레인저스의 월드시리즈가 이번 주 승패를 가릅니다. 한국에선 삼성 라이온스와 SK 와이번스의 한국시리즈 우승팀이 역시 이번 주말께 가려지지요.
출범 30년이 된 한국의 프로야구는 규모나 경제 파급 효과면에서 아직은 미국야구에 족탈불급입니다. 한국선수 전체의 연봉은 뉴욕 양키스같은 명문구단 특급선수 한두 명의 연봉에도 못 미치지요. 허지만 야구열기만큼은 한국이 미국보다 훨씬 뜨거워 올해엔 전 국민의 12%인 600만명이 야구장을 찾았습니다. 한국에서는 바비큐 굽고 소주잔 기울이며 야구 경기를 관람할 수도 있습니다. 올해 코리안 시리즈에 진출한 SK의 연고지인 인천의 문학구장에 바로 바비큐 관람석이 있지요. 한국인들이 가장 좋아하는 음식의 하나라는 돼지 삼겹살과 소주에 가장 열광하는 스포츠라는 프로야구를 접목한 한국만의 독특한 스포츠 문화입니다.
올해 한국야구는 한층 더 재미있어졌다네요. ‘맞춤형 편파중계’라는 기이한 포맷의 야구중계가 새로운 서비스를 시작해 폭발적 반응을 얻고 있습니다. 편파중계는 특정야구팀을 일방적으로 응원하며 상대팀을 조롱하고 깎아내리는 색다른 중계방송 서비스지요. 예를 들어 대구의 삼성과 광주의 기아가 경기를 벌일 때 삼성을 편드는 해설과 기아를 응원하는 해설을 각각 따로 제작해 시청자들이 둘 중 하나를 골라볼 수 있게 합니다. 서너 개의 방송 중 스카이라이프 방송은 각 팀이 연고를 두고 있는 지역 사투리로 방송해 친근감과 재미를 더해주고 있습니다. 홈런이 터질 때 ‘오매 좋은거~’ 방송을 즐길 수도 있고 ‘와이리 좋노~’ 방송을 즐길 수도 있지요. 편파중계는 방송 보는 재미를 한차원 높였다는 상품성 외에도, 시청형태 변화를 가늠하는 지표로 볼 수 있다는 점에서 야구계와 관련업계의 주목을 받고 있습니다.


5000만의 패싸움


편파를 국어사전에서는 “생각이나 처사가 한편으로 치우쳐 공평하지 못함’으로 풀이하고 있습니다. 부정적 의미가 강한 단어지요. 사실과 공정의 가치에 준엄해야 할 신문과 방송 등 언론에겐 특히 가장 경계해야 할 부(負)의 가치입니다. 헌데 요즘은 편파보도나 편파방송이 언론의 대세인 듯 온라인과 오프라인, 방송과 신문 가릴 것 없이 저마다 편파경쟁에 열을 올리고 있습니다.
인터넷이나 트위터, 팟캐스트같은 온라인 매체는 그렇다 쳐도 공정과 신뢰를 생명으로 하는 중앙 일간지와 지상파 방송들조차 내편 네편을 가르는 편파적 시각의 보도와 논평을 어마지두 마구 쏟아내 우려를 낳고 있습니다. 여당과 야당, 정치권력과 시민세력, 보수우파와 진보좌파, 젊은 세대와 노년 세대의 편가르기 대결에 언론매체들까지 가세해, 나라를 갈기갈기 찢어놓고 있는 모양새지요. 그 바람에 서울시장 보궐선거 캠페인이 벌어진 지난 열흘 동안 대한민국은 5000만의 패싸움장 처럼 변했습니다.
선거기간 내내 유권자들은 세대와 이념성향에 따라 자기 입맛에 맞는 신문만 읽고 자기가 보고 싶은 방송만 봤습니다. 편파야구 중계방송에서 ‘오매 좋은거~’ 방송만 골라보고 ‘와 이리 좋노~’ 방송만 골라보듯 말이지요. 야구야 편파방송 편파응원 아무리 해도 세상 망가지지 않고 나라가 망하지도 않습니다. 헌데 정치에, 선거에, 갈등 수준을 넘어선 편가르기 패싸움이 개입되면 사태가 심각해집니다. 한국은 세대간의 문제에 이념갈등까지 덧칠해져 극단적인 세대간 단절은 공동체의 붕괴로 이어질 위험이 크지요. 정치를 바꾸고 세상을 바꾸겠다는 안철수식 반(反) 정치 실험이 세대 갈등을 오히려 부추기고 있는 것 같아 개탄스럽습니다.


선거葬을 아시나요?


선거장(葬)이라는 게 등장했습니다. 노부모를 투표 못하게 멀리 관광여행을 떠나보내는 새로운 선거 풍속이지요. 선거장은 고려장을 빗대 내가 한번 붙여 본 신종 조어입니다.
나라 망친 한나라당은 안된다며 아들은 부모한테 박원순을 찍으라고 협박합니다. 반면에 부모는 서울시를 빨갱이한테 내맡길 수 없다며 나경원을 찍으라고 아들을 윽박지릅니다. 여기서 아들이 궁리해낸 아이디어가 바로 선거장이지요.
“서울 노친네들 설득하기 힘드네요. 그래서 아부지랑 엄니한테 25일부터 27일까지 수안보 온천 예약해 드렸습니다.”
서울대 법과대학원 조국 교수의 트위터에 이런 글이 떴습니다. 조국은 무릎을 쳤지요. 감동 먹고 “진짜 효자!”라는 트윗으로 답했습니다. 조국은 좌파학자로, 박원순 시장후보 멘토단의 단장 쯤되는 인물입니다. 나경원한테 갈 ‘노친네 표’ 두 표를 효도관광 아이디어로 간단히 날치기한 아들이 하도 예뻐 효자소리까지 해가며 격려했습니다.
명색이 법학을 가르치는 국립대학 교수인데 투표방해를 칭찬하고 선동하는 비법(非法)적 언행을 스스럼없이 드러냈습니다. 조국 교수 자신도 효자되고 싶어, 노부모 골방에 가두고 투표 못하게 한건 아니겠지요. 참으로 별놈의 효도가 다 있습니다.
장군이 있으면 멍군도 있는 법입니다. 노부모들이 박원순한테 몰표 줄 것이 뻔한 자식들을 투표장 못 가게 하는 아이디어도 있겠지요. 서툰 솜씨로나마 트위터에 이런 글을 올렸다면 어땠을까요?
“젊은 놈들 설득하기 힘드네요. 그래서 다 모이라고 했습니다.. ‘좌빨’한테 표 찍을 놈은 유산 한 푼 못 받을 각오하라고 협박했더니 효과 100%더군요. 다음 선거 때부터 한번 써먹어 보시지요. 대한민국 노친네들 파이팅!”


박원순 당선 – 정치권 쓰나미로


이변은 없었습니다. 서울시장 보궐선거는 안철수 바람과 젊은층의 반란을 등에 업은 무소속 박원순 후보의 승리로 결판났습니다. 당초 박빙의 승부가 예상됐지만 20~40대의 분노의 몰표가 쏟아지며 박원순의 압승으로 끝났습니다. 막판에 터진 이명박 대통령의 내곡동 사저 파문, 신재민 등 측근비리 악재가 나경원 후보의 표를 4~5%는 잠식했을 거라는 분석입니다. 부모를 선거장 시키는 ‘진짜 효자’ 자식들과, 이를 선동한 조국 교수와 김제동 개그맨 등도 승리자가 됐지요. 반면에 유산을 미끼(?)로 자식들과 담판을 벌인 노부모들의 작전은 별무효과였습니다.
한국 정치판은 이제 안철수-박원순의 등장과 함께 한나라당과 민주당 등 기존 정당을 중심으로 한 낡은 정치 시스템에 근본적인 변화가 불가피해졌습니다. 안철수를 중심으로 한 신당 창당세력과 제1야당인 민주당, 그리고 친 노무현 세력 등이 주도권을 다투게 될 범야권 단일화 방정식은 한층 복잡해졌습니다. 민주당은 공중분해되고 손학규 대표의 대권 꿈도 무산될 공산이 커졌습니다.
여당인 한나라당도 당의 깃발을 내릴 때가 됐습니다. 재창당 수준의 변화가 불가피해졌지요. 박근혜를 중심으로 당의 강령은 물론 당명을 바꾸고 젊고 참신한 인재들을 대거 끌어 들여야 한다는 목소리가 당 안팎에서 커지고 있습니다. 이명박 대통령의 탈당을 포함한 청와대와의 선긋기도 본격화할 조짐입니다. 이대통령의 조기 레임덕이 불가피해졌습니다.
박근혜는 이번 10.26 보선을 지원하며 절반의 성공은 거뒀습니다. 서울시장 선거에서는 졌지만 한나라당 후보가 고전하던 부산, 경북, 충청, 강원 지역 기초단체장 선거의 판세를 뒤집는 저력을 보였습니다. 그의 존재감과 대중성이 다시 한번 확인된 셈이지요. 홍준표 등 친 이명박계가 장악하고 있는 현 지도체계가 붕괴되면 결국 박근혜 중심으로 여권의 새판 짜기가 시작 될 겁니다. 박근혜 신당과 안철수 신당이, 내년 4월 총선과 12월 대선에서 맞붙는 상황이 오겠지요.
박원순 당선자를 에워싸고 있는 이른바 ‘친북-종북’ 좌파들의 움직임도 주목되고 있는 부분입니다. 참여연대 등 좌파 시민단체와 윤모라는 정치 전문가가 민주당과 민노당을 흡수해 극좌성향의 통합야당을 만들 것이라는 설이 여권 내에서 흘러나오고 있습니다. 이념 성향이 박원순과는 다른 안철수의 대응방식이 주목됩니다. 세상 물정에 어두울 것 같은 귀동자(貴童子) 스타일의 안철수가 검증대에 본격적으로 오르게 됐습니다.
자질, 도덕성, 정치적 비전 등이 정치판의 거친 엉머구리 소리들과 만나 어떤 생명력을 이어갈지도 주목되는 부문입니다. 한국사회 전반에 혁명적 돌개바람이 몰아치고 있습니다.


@SundayJournalUSA (www.sundayjournalusa.com),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뉴스를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