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eople]국군포로 송환운동 펴는 정용봉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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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여년전 한국전쟁에서 북한에 포로가 되어 지금껏 돌아오지 못한 국군포로들의 송환을 위해 홀로 한국과 미국에서 노심초사해온 정용봉 박사(국군포로송환위원회장)는 요즈음 잠을 이루지 못한다. “북한에 남아 있는 국군포로들의 나이들이 80이 넘어 언제 세상을 뜰지 모른다”며 “그들이 죽고나면 모든 것이 허사다”면서 이들의 송환에 미지근한 한국정부의 자세에 분통을 터뜨리고 있다.



지난 2월과 4월에는 각각 국제형사법정(ICC)과 UN인권위원회에 북한의 국군포로미송환 문제에 대해 고발과 청원을 했다. 국군포로 송환문제를 두고 국제기구에 고발은 처음이다. 아직도 이들 국제기구에서는 시원한 대답을 주지 않고 있다.


 


최근 정 박사는 한국정부가 성의있는 자세를 보이지 않을 경우, 역대 대통령들과 책임있는 당사자들을 상대로 ‘직무유기’로 법적투쟁도 신중히 고려하고 있다. 행정수반은 헌법상 국군 통수권자이기에 포로가 된 자국 군인들의 송환을 우선적으로 조치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역대 대통령들은 이를 방기했다는 것이 정 박사의 주장이다.



정용봉 박사는 1950년 한국전쟁에 참전해 부상을 당해 제대한 후 58년 도미 유학길에 올랐다. 그는 전쟁 중 전사한 전우나 실종 또는 포로가 된 전우들을 잊은 적이 없었다. 1994년 국군포로였던 조창호 소위가 기적적으로 탈북해 귀환했다는 소식에 정 박사는 한동안 잊고 살았던 동료 전우들, 특히 북한에 억류된 국군포로들의 송환을 위해 무엇인가를 해야 한다는 사명감으로 재향군인회 등 관련 단체들을 찾아 호소했다.


2004년 정 박사는 북한인권법안이 미국회에 상정되는 계기에 북한 인권문제에서 미귀환 국군 포로들의 송환을 최우선 과제로 설정하고 본격적인 운동을 추진하면서 그 해 6월 북한인권법안을 주도한 샘 브라운백 상원의원을 LA에서 만난 자리에서 국군포로 인권문제를 제기했다.


 


정 박사는 국군포로송환 문제를 효과적으로 추진하기 위해 국제한국전기념재단 산하에 ‘국군포로 송환위원회’(Korean War POW Affairs)를 조직했다. 그 해9월 27일 KCC 전국대회가 LA공항 힐튼 호텔에서 개최됐을 때 정 박사는 디펜스 포럼 재단 (Defense Forum Foundation)의 수잰 솔티 회장과 만나 당시 미의회에 상정된 북한인권법안에서 북한에 생존하고 있는 국군포로 인권사항을 다루는 문제를 논의했다.(디펜스 포럼 재단은 북한 인권문제를 중점적으로 다루는 NGO 단체. 과거 황장엽씨를 미의회로 초청한 단체)


 


정 박사와 수잰 솔티 회장은 우선 국군포로 문제를 국제사회와 미국사회에 인식시키기 위해 국군 포로들의 증언이 미의회에서 이루어지는 것이 효과적이라고 판단해 이를 추진하기로 합의했다. 정 회장과 솔티 회장은 그 해 11월 8일 한국 국회의사당에서 개최된 ‘북한 홀로코스 전시회’ 개막식에 함께 참석하게 됐다. 


 


 


                        


 


 


 


미의사당서 참상 고발


 


한편 정 박사는 서울에서 북한을 탈출한 귀환 국군포로 6명(조창호, 장진환, 강대성, 방흥길, 허재석, 유영복)을11월 8일 오후 6시 30분 서울 6.3빌딩내 Roof Garden에 직접 초청해 북한에서의 억류생활에 대한 증언을 청취했다. 정 박사는 이들 탈북 귀환 국군포로 중 미의회 증언에 나서겠다는 조창호씨와 김창석(가명)씨를 미국에 초청키로 했다.


 


2005년에 들어서 국군포로 문제를 미국정계에 인식시키기 위해 미의회에서의 국군포로들의 직접 증언을 추진하였으며, 그 해 4월 22일 미의사당에서 디펜스 포럼재단과 공동주최로 ‘한국전쟁 국군포로의 증언’이란 주제로 의회포럼을 개최했다.


 


이 자리에 정 박사가 초청한 탈북 국군포로 1호 조창호 예비역중위와 김창석(가명)씨가 사상 최초로 북한에서의 국군포로들의 참상을 고발했다. 이날 의회 증언에는 한국전 참전 국가들의 대사들이 초청됐으며, 과거 한국전에 참전했거나 주한미군에 복무했던 상•하원 의원들이 초청됐다.


 


미의사당에서 최초 국군포로들의 증언은 그 해 5월 26일 미하원 국제위원장 헨리 하이드 의원 ‘국군포로 석방’ 등을 포함한 납북자 석방을 위한 대북결의안 제안에 영향을 주었으며, 그 해7월 11일 미의회 상•하원에서 ‘북한의 납치행위 규탄 및 국군포로 납북자 석방을 위한 대북결의안’ 이 통과되었다.


 


정 박사는 평소 “대북원조를 늘려서라도 국군포로를 데려와야 한다”면서 “이들 국군포로들의 여생이 얼마 남지 않았다”고 호소했다. 박근혜 전 대표가 한나라당 대표 시절에는 “국군포로 처우문제에 관심을 갖고 당 차원에서 국군포로 인권문제를 남북회담의 의제로 설정토록 정부 당국에 제기할 것”을 약속했으며, 당시 방북하고 돌아온 정동영 통일부장관에게 남북장관급 회담에서 우선적으로 국군포로 문제를 제안하도록 요구했다. 당시 남북장관급회담에서 남측은 ‘국군포로 생사확인’ 등 문제를 최초로 제기하기에 이르렀지만 그후 이 문제는 계속 진전이 이뤄지지가 않았다.


 


정 박사는2006년 들어 국군포로 인권문제를 미의회 청문회에서 공식적으로 개최하기를 요청해  그 해 4월 27일 미 하원 국제위원회 아태소위원 청문회에서 납북자 및 국군포로 문제 청문회 최초로 열리게 되었다. 이 청문회에 정 박사는 국군포로 조창호 예비역중위를 초청해 최초로 증언토록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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