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의 ‘철수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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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임춘훈(언론인)

불교용어로 역행보살(逆行菩薩)이라는 게 있습니다. “부처님의 가르침을 방해하거나 거스르는 인연이지만, 정진력을 더욱 강하게 만드는 계기가 되는 일”입니다. 좀 더 쉽게 풀이하면 “선행이 아니라 악행을 함으로써 사람들에게 깨우침과 좋은 영향을 주는 일”이라는 뜻입니다. 비슷한 세속적 표현 중 ‘전화위복’이라는 말이 있지만, 역행보살이라는 심오한 종교적 진리의 말씀과는 거리가 멉니다.
부처님한테는 제바달다라는 역행보살이 있었지요. 부처의 4촌이며 제자인데, 어느 날부터 야심의 노예로 변해 부처를 죽이려합니다. 서너번에 걸친 암살시도가 실패로 돌아가고 마침내는 자신이 파멸합니다. 기독교의 가롯 유다와 비슷한 사람이지요.
한국 불교계는 한때 불교를 탄압한다며 이명박 대통령을 역행보살이라 불렀습니다. 전국 각 사찰 경내엔 ‘MB정부 인사와 한나라당 인사 출입금지’ 플래카드가 걸렸습니다. 정부의 화해 노력으로 현수막은 내려졌지만 껄끄러운 관계가 말끔히 씻기지는 않았습니다.
이명박 대통령을 ‘전과 14범’의 역행보살로 몰아치고 있는 불교승려가 있습니다. 전 봉은사 주지 명진스님입니다. 얼마 전 ‘중생이 아프면 부처도 아프다’라는 책을 냈지요. 책의 부제도 ‘쥐 귀에 경읽기’라는 뜻의 서이독경(鼠耳讀經)입니다. 쥐는 ‘쥐박이’ 즉 이명박 대통령을 비하하며 조롱하는 상징조작적 표현입니다. 거짓말장이, 사기꾼, 쥐, 부동산 투기꾼, 전두환보다 나쁜 최악의 대통령, 역행보살 등 천박하고 상스런 표현으로 이 대통령을 공격하고 있습니다.
지난해 수도권지역 최대 사찰인 봉은사는 조계종 직영사찰로 바뀌면서 주지 명진을 퇴출시켰습니다. 여기에 이명박 정부의 입김이 작용했다고 명진은 판단한 것 같습니다. 명진에게 따라 붙는 역행보살에, 이른바 ‘룸쌀롱 스님’ 꼬리표가 있습니다. 불교계의 대표적 진보좌파 정치 승려인 명진은 몇 해 전 강남에 있는 어떤 룸쌀롱에서 스님 몇몇과 어울리다 어떤 불자한테 딱 걸렸다고 하지요.
룸쌀롱의 스님과 아가씨 중생들 얘기가 인터넷에 뜨면서 쪽팔리게도 검색어 1위에 올랐습니다. 승려가 가서는 안 될 곳, 해서는 안 될 짓을 하다 딱 걸려 어리석은 중생들에게 깨우침을 줬으니 그도 MB나 다름없는 역행보살이지요. 한국은 좋은 일로 깨우침을 주는 순행(順行)보살보다 나쁜 짓하는 역행보살이 나라의 운명과 역사를 변화시키며 만들어가는 희한한 나라인 것 같습니다.


MB일가의 역행보살들


‘전과 14범’이라는 MB의 열네가지 죄상(?)이 뭔지는 명진의 얘기를 직접 들어보지 않아 알 길이 없습니다. 추측건대 친인척-측근 비리 하나는 분명 들어있지 않을까 여겨집니다. 정권출범 초 대통령의 4촌 처형이라는 간 큰 여자가 국회의원 공천 받아준다며 30억원의 뇌물을 받고 걸려들었습니다. 엊그제는 대통령의 4촌 처남인 김재홍 세방학원 이사가 제일저축은행으로부터 4억원의 로비자금을 챙긴 혐의로 구속됐습니다. 대통령 처가의 4촌 역행보살들이 무섭게 용맹정진(勇猛精進)하고 있습니다.
대통령 본가 쪽의 역행보살은 단연 친형인 이상득 의원입니다. YS정권에 김현철, DJ정권에 김홍일, MH정권에 노건평이 있었다면 MB정권엔 만사형통(萬事兄通)이라는 이상득이 있습니다. 집권여당의 권력이 ‘박근혜 시대’로 옮겨가면서 이명박 정권의 권력붕괴가 본격적으로 시작되고 있습니다. 친인척 비리의 포커스는 단연 이상득에 모아지고 있지요. 정치권에선 벌써부터 ‘형님 게이트’ 얘기가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형님 라인’을 둘러싼 온갖 잡음은 MB정권 출범직후부터 지금까지 계속 이어왔습니다. 각종 인사전횡과 민간인 불법사찰, ‘형님 예산’ 등의 논란이 일어날 때마다 정치권은 이상득을 배후로 지목했지만, 지난 3년여 동안은 동생인 대통령 힘으로 버텨왔지요. 청와대 핵심 참모들의 퇴장, 한나라당의 붕괴, 20%대로 주저앉은 대통령의 지지율… MB는 지금 고립무원 상태로 역대 어느 대통령보다 이른 레임덕에 빠져들고 있습니다.
‘형님 게이트’의 뇌관은 이상득의 보좌관으로 7억5천만원의 로비자금을 챙긴 박배수와, 보좌관 출신인 박영준 전 지식경제부차관입니다.
왕차관으로 불리며 형님라인의 핵심고리로 위세를 떨친 박영준은 SLS그룹, 카메룬 다이아몬드 스캔들 등과 관련해 의혹의 눈길을 받고 있습니다. 이들에 대한 수사가 본격화하면 민간인 사찰과 한나라당 소장파 의원들에 대한 사찰, 박연차 전 태광실업 회장에 대한 이 의원의 세무조사 지시 의혹 등 인화성 강한 정치 의혹사건의 사실관계가 드러날 것으로 보입니다. 사건의 파장이 어디까지 어떻게 튈지 예측하기 어려운 상황입니다.
한나라당 비대위원장을 맡은 박근혜 의원은 이명박 대통령과의 선 긋기에 본격적으로 나설 채비입니다. 한나라당을 리모델링하면서 이 대통령을 자연스레 출당시키는 방안이 검토되고 있습니다.
대통령 일가에 대한 비리수사는 이제 첫 단추를 끼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한국의 정치 검찰은 힘이 빠진 대통령의 눈치를 더 이상 보지 않고 검찰권을 휘두를 태세입니다. 민주당도 어제 ‘대통령 측근비리 진상조사위원회’를 구성하고 공세를 펴기 시작했습니다.


위기의 박근혜…돌파구는?


지난 9월 8일 이명박 대통령은 이른바 ‘안철수 신드롬’에 대해 이런 말을 했습니다. “… 안철수 교수의 모습을 보면서, 아! 우리 정치권에 올 것이 왔다고 생각했다. 국민의 변화욕구가 안교수를 통해 나온 것이 아니겠는가?” 듣기에 따라서는 변화하지 못하는 정치권, 변화를 거부하는 박근혜 대신 안철수를 옹호하는 듯한 발언입니다. 벌써부터 자신을 핍박(?)하는 박근혜에 대한 견제 사인일 수 있습니다.
청와대는 12월 14일 안철수의 멘토인 법륜스님을 초청해 ‘토크 콘서트’라는 송년행사를 가졌습니다. 박근혜 의원이 한나라당을 ‘접수’하고 이 대통령과의 정치적 몌별(袂別)을 준비하고 있는 시점에, 청와대가 법륜에게 손을 내민겁니다.
한나라당의 쇄신파 의원들이 박근혜의 전횡에 반기를 들며 탈당위협으로 맞서고 있습니다. 재창당되기도 전에 분당위기가 먼저 닥쳤습니다. 박근혜는 비상대책위원장을 맡아 내년 총선을 진두지휘하는 조건으로 최고위원 인사권과 공천권을 모두 거머쥐려하고 있습니다. 공천보장이 안되는 쇄신파들로서는 탈당카드로 승부수를 던질 수밖에 없는 상황입니다.
한나라당이 쪼개지면 박근혜의 흔들리던 대세론은 주저앉는 대세론이 되고 맙니다. 상황은 점점 더 안철수 진영에 유리하게 전개되고 있습니다. 내년 총선에서 박근혜당이 100석도 못건지는 참패를 하면, 박근혜는 대선에 출마도 못하는 상황이 올 수도 있습니다. 마치 사전답사라도 하듯 안철수의 멘토 법륜이 먼저 청와대 구경을 하고 나왔습니다.
반 이명박-비 박근혜 성향의 정치승려 명진은 요즘 전국을 돌며 역행보살론으로 새 인물-새 정치를 설파하고 있습니다. 이명박의 ‘철수 생각’이 깊어질 수밖에 없는 2011년 세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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