흥신소만도 못한 MB 현 정부의 국가정보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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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김정일 전 국방위원장의 갑작스런 사망으로 동북아 정세가 큰 혼란에 빠진 가운데 이명박 정부 국가정보원의 대북정보력이 비판 도마 위에 올랐다.

국정원은 김 전 위원장이 사망한 이틀 뒤 북한 방송의 보도를 보고 사망 소식을 알았을 정도로 한심한 정보력을 드러냈다. 국정원은 이미 지난해 천안함 피격과 연평도 도발 사태 당시에도 북한군 동향을 전혀 파악하지 못해 비판을 받은 바 있다.

하지만 이번에도 국정원은 주변국 정보기관보다 늦게 사망소식을 파악하는 어처구니 없는 작태를 보였다. 국정원은 국내뿐만 아니라 북한 및 해외에서 일어나는 한반도 관련 동향들을 가장 먼저 파악해 선제적으로 대응하는 정보기관이다.

특히 북한 관련 정보 수집은 국정원의 존재 이유다. 그러나 현정권의 국정원은 대통령의 정치적 목적에 의해서만 움직일 뿐 정작 본연의 임무에 대해서는 제 역할을 못하고 있다는 것이 한국 정치권의 대체적인 시각이다. 이는 국정원 내부 분위기에서도 여실히 드러난다.

국정원은 현재 원세훈 원장과 반대파의 대립이 극에 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원 원장이 취임한 이후 주요 보직에 이상득계 인물들로 채워지면서 반대파와의 대립이 심해졌다는 것이 국정원 사정에 밝은 내부 관계자들의 이야기다.

이에 김정은 사망 사태로 비판 도마 위에 오른 국정원의 정보력 부재에 대해 <선데이저널>이 심층 취재했다.
                                                                                                                                                                  <리차드 윤 취재부 기자>

원세훈 원장이 국정원장으로 재임한 기간처럼 국정원과 관련한 구설수가 많이 떠돌았던 적이 없다. 원 원장 재임기간 중 국정원은 ‘국정원장의 이대총장 선거개입 논란’ 및 ‘국정원 외부 관사 문제’가 언론에 불거져 나왔다.

언론에 보도되지는 않았지만 ‘국정원장이 외국 출장 후 귀국하다가 불법 과일을 밀반입했다’, ‘국정원의 반대세력이 원장의 행적을 일일이 감시하고 있다’는 루머가 정치권에 파다하게 퍼졌었다. 국정원은 어느 기관보다 보안이 유지되어야 하는 기관인데 국정원 내부에 대한 각종 소문이 난무했다는 것은 그만큼 기강이 어지럽혀졌다는 것을 의미한다.

국정원의 무너진 기강은 그간의 사건에서도 여지없이 드러났다. 지난달 20일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 방중시 ‘김정은 동행 오보 논란’이 그랬고, 지난해 3월과 11월에 발생한 천안함•연평도 사건 때도 “국정원은 도대체 무엇을 했느냐”는 비판이 일었다. 김정은 가짜 사진 언론 공개 시 국정원의 김정은 사진 미확보 논란(2010년 9월), 김정일의 후계자로 떠오른 ‘김정은’의 직책과 실명 미파악(같은 해 10월) 등도 국정원을 곤혹스럽게 했다.


대북 정보력 부재
















 

국정원의 한심한 정보력은 이번 김정일 사망 사태에서 여실히 드러났다. 국정원은 김정일 사망 후 무려 51시간 30분간 이 소식을 까맣게 모르고 있었다. 김 위원장 사망 4시간 뒤인 17일 낮 12시 40분 이명박 대통령은 경기도 성남 서울공항에서 일본으로 출국했다. 천영우 청와대 외교안보수석도 동행했다.

18일 오후 2시 40분 귀국할 때까지 26시간 동안 북한엔 김 위원장이 없었고 남한에도 이 대통령이 없었다. 숱하게 우려돼 온 김정일 사후 북한군 지휘부 공백 사태가 마침내 벌어졌는데 그에 대처할 우리 군 통수권자도 자리를 비웠던 것이다.

19일 아침 청와대에선 이 대통령 생일파티가 열렸다. 71세 생일이자 결혼 41주년, 대통령 당선 4주년인 ‘트리플 기념일’이었다. 청와대 직원 200여명은 본관에 모여 불을 꺼놓고 있다가 오전 7시 20분쯤 출근한 이 대통령을 맞이하며 ‘서프라이즈’ 파티를 열었다. 해외언론은 나중에 이 문제를 신랄하게 꼬집었다.

오전 8시부터 1시간 30분 가량 진행된 수석비서관 회의에서도 북한의 이상 동향은 전혀 거론되지 않았다. 오전 10시쯤 북한 조선중앙 TV가 정오 ‘특별방송’을 예고했다. ‘중대발표’ 예고는 간혹 있었지만 ‘특별방송’은 1994년 김일성 주석 사망 때 외엔 사용된 적이 없는 용어다.

하지만 통일부 외교통상부 등 관련 부처에선 “북한이 우라늄농축프로그램(UEP) 중단을 발표하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왔다. 통일부 당국자는 특별방송이 시작되고 북한 아나운서가 검은 옷을 입고 나오자 사색이 돼서 장관실로 향했다. 류우익 통일부, 김성환 외교부 장관도 북한 방송을 보고서야 알았다고 한다.

김관진 국방부 장관은 북한 방송 발표 때 국방개혁법안 처리를 부탁하려고 국회에 가 있었다. 낮 12시 20분쯤에야 국방부로 돌아가 북한군 동향을 점검한 뒤 국가안전보장회의에 참석했다. 정승조 합참의장도 전방부대를 방문했다가 낮 12시 17분쯤 이 대통령 전화를 받고서야 급히 서울로 돌아왔다. 전군에 2급 경계태세가 발령된 건 낮 12시 30분. 김 위원장 사망 52시간 만이다.

오히려 김 위원장 사망을 먼저 감지한 건 민간 쪽이었다. <선데이저널>의 취재 결과 북한 조선중앙방송이 김정일 위원장의 사망을 발표하기 전 휴전선 인근 파주와 문산 주민들 사이에서는 ‘김정일 사망’이란 문자가 급속도로 퍼졌다고 한다. 문자를 받은 주민들은 장난으로 넘겨버렸지만 이 소식은 몇 시간 뒤 사실인 것으로 드러났다. 그러나 국정원은 이런 문자에 대한 확인조차 하지 못했다.

증권가와 기업도 국정원의 정보력보다 한 수 위였다. 북한의 특별방송 예고에 증권가엔 사망설이 퍼지며 주가가 급락했고 한 대기업 임원들은 중국 지사로부터 ‘이상 징후’를 보고받고 확인에 나서기도 했다.

사건이 터진 후 민주통합당 안규백 의원은 “2008년 김 위원장 중병설 때 양치질 모습까지 파악한다고 자신하더니 이번엔 우리 군 통수권자의 공백 사태가 벌어졌다”고 비판했다. 오히려 대북정보로 인해 군과 부딪치는 등 말썽만 빚어왔다.


내부 권력투쟁


















이런 일련의 사태로 인해 정치권에서는 국정원의 정보력이 흥신소만도 못하다는 비아냥거림이 나오고 있다.

그렇다면 국정원의 이같은 한심한 정보력 부재는 어디서 온 것일까. 정치권에서는 이명박 정부 들어서 심화된 편중인사가 화를 자처했다는 분석이 가장 설득력 있게 제기된다. 특히 국정원은 권력갈등의 한가운데 서 있었다. 그만큼 외부압력에 많이 시달렸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특히 2008년 이명박 대통령 취임 이후 국가정보원과 기무사령부 인력 ‘물갈이’가 있었던 것도 정보력 부재에 영향을 미쳤다. 국민의 정부, 참여정부를 지내면서 10년간 축적됐던 노하우가 일시적인 인력 교체로 사장된 측면이 없지 않다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김대중 정부 출범 후 햇볕정책 추진으로 인적정보 자원인 ‘휴민트(Humint•Human intelligence)’를 축으로 한 대북 정보 시스템이 와해됐고, 이명박 정부 들어 서울시 공무원 출신인 원세훈 원장 등 정보 비(非)전문가들이 국정원을 이끈 데 따른 결과라는 지적을 내놓고 있다. 첨단 전자장비를 통한 정보 수집 체계인 ‘시진트(Sigint•Signal intelligence)’에 주로 의존한 데 따른 지적이다.

이 대통령 취임 직후 국가정보원장 교체에 이어 내부 대규모 인사를 통해 과거 정부 색채를 희석시키는 데 주력했다. 군 정보당국인 기무사령부 역시 마찬가지였다. 이 과정에서 정보 수집의 노하우와 최근의 북한 동향과 관련한 축적된 정보가 상당 부분 사라졌다.

정권 초 국정원은 이상득계 라인으로 꾸려졌다. 특히 김주성 기조실장 임명을 둘러싸고 이상득 의원과 정두언 의원이 갈등을 보였다는 것이 정치권의 정설이다. 무엇보다 원 원장의 경우 대통령의 서울시장 시절부터 함께 한 측근으로 정보기관 수장으로서는 부적절하다는 의견이 적지 않았다. 때문에 그간 원 원장에 대한 경질여론이 끊임없이 제기되어 왔다.


국정원 무용론


상황이 이렇게 되자 한국 정치권에서는 국정원 무용론까지 제기되고 있다.

이에 대해 20일 열린 국회 정보위 대정부 질문에서 한나라당 홍준표 의원은 “김대중 정부 때 대북 휴민트가 무너져 복원이 안 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김관진 장관도 국방위에서 “현재 국방정보감시 체제만으로 김정일의 사망을 아는 것은 다소 어려운 측면이 있다. 정보능력을 키우고 확장해야겠다는 절실한 필요성을 느끼고 있다”며 대북 정보력 한계를 토로했다. 국정원 내 인적 난맥상도 문제라는 지적이다. 정보위 소속 한나라당 의원은 “국정원 고위 간부들을 만나보면 ‘무슨 일을 하려 해도 도무지 하부 조직에서 움직이지 않는다. 어디서부터 잘못됐는지 모르겠다’고 호소하더라”고 전했다.

90년대 국정원의 정보력은 놀랄만한 수준이었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1997년 16대 대선 당시 기획된 소위 ‘총풍사건’이다.

당시 오정은 청와대 행정관 등 이른바 ‘총풍 3인방’이 당시 중국 베이징에서 북측 인사를 만나 ‘판문점 무력시위’를 요청했으나 실패했다. DJ정부 출범 후 검찰은 이들이 베이징 켐핀스키 호텔에서 평양으로 보낸 팩스 감청 자료를 증거로 확보했다.

훗날 검찰 간부는 “당시 팩스 감청은 국정원이 서울에서 한 것”이라고 실토했다. 1990년대만 해도 국정원의 대북 정보•첩보망은 놀랄 만한 수준이었다. 1997년 2월 황장엽 노동당 비서의 탈북, 같은 해 8월 이집트 주재 북한대사 장승길 씨의 미국 망명 등은 정보기관의 고급 정보 확보가 없었다면 성공할 수 없는 일이었다.

현재는 당시보다도 훨씬 훌륭한 장비를 가지고 있으나 오히려 정보수집력은 당시보다도 훨씬 못하다는 것이 잇따라 증명되고 있다. 앞으로 북한에서 어떤 급변사태가 일어날지 알 수 없다. 하지만 현재의 국정원 정보력으로는 북한의 이상 징후를 전혀 알 수 없을 것이라는게 대체적인 분석이다. 이제 국가정보원을 대통령의 품이 아닌 국민에게 돌려줄 때가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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