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엉남’ 안철수 사랑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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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춘훈 (언론인)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이 미국 나들이를 하고 있습니다. 융기원 신임 교수 채용을 위한 방문이라고 하지만, 내년 총선과 대선을 앞두고 정치적 외연을 넓히기 위한 목적이 아니냐는 시각도 있습니다. 그는 출국 기자회견에서 정치참여 문제에 대해서는 계속 ‘고민중’이라고 말했습니다. “열정을 갖고 어려운 일을 이겨 나갈 수 있을지 고민하고 있다”고 털어 놨습니다. “국민의 기대가 무엇인지 파악하는 게 중요하다. 국민의 기대사항은 복합적인 것 같다”라는 설명도 곁들였습니다.


그는 출국날 공항에서 장장(?) 10분이나 기자들과 얘기를 나눴습니다. 특유의 소이부답(笑而不答)식 답변 대신 하고픈 말을 많이 했습니다. 이렇게 달라진 태도를 놓고, 언론과 정치권 일부는 안철수가 정치쪽으로 한발 더 나아간 것으로 해석합니다.


일본의 여성 칼럼니스트 후카사와 마키가 이름 붙여 유행어가 된 초식남(草食男)이라는 게 있습니다. “남성다움을 강하게 어필하지 않으면서 주로 취미활동에 적극적이고 이성과의 관계엔 소극적인 남자”입니다. 잘 생기지는 않았지만 매력과 순수함을 지닌 2% 부족한 남자를 뜻하는 신조어 ‘우엉남’이라는 것도 있습니다. 젊은이와 네티즌들에게 심어진 안철수의 이미지는 아마도 일본의 초식남과 한국의 우엉남 중간쯤 되는 인간 유형이 아닌가 싶습니다.


대선 후보 지지도에서 그는 40%대 중반의 지지로, 한나라당 박근혜를 5% 안팎의 차로 줄곧 리드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희한한 일이 있지요. “지지는 하지만 대선에 안 나올 것”이라고 응답하는 국민이 50% 가까이 됩니다. 지난해 가을 중앙일보 조사에서는 아예 “안철수가 대선에 안나왔으면 좋겠다”고 답변한 국민이 50%로, 나오기를 바란 28%의 배나 됐습니다. 안철수를 보는 국민의 시각은 이처럼 복합적이고 다면적입니다.


현실정치가 무조건 싫습니다. 그래서 안철수를 좋아합니다. 헌데 대통령감으로서의 안철수는 왠지 미덥지 않습니다. 컴퓨터 쪽에서 명예 지키고 성취를 이루는 게 나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합니다. 치열한 권력의지도 없는 것 같고, 혹독한 검증을 이겨낼 자신도 없어 보입니다. 그래서 국민의 절반이 대선출마에 부정적 반응을 보이고 있는 판에 안철수는 ‘파장에 엿장수’처럼 출마 깃발을 흔들기 시작했습니다. ‘안철수 패러독스’는 이렇게 ‘현재 완료진행형’입니다.



미국 나들이는 대권행보?



안철수의 미국 나들이는 연합뉴스 기자가 동행취재하고 있습니다. 국내 언론은 연합뉴스를 받아 그가 언제 누구를 만나 무슨 얘기를 나눴는지 시시콜콜 보도하고 있습니다. 안철수의 미국 내 일거수 일투족은 이미 ‘대선행보’로 읽혀지고 있습니다.


안철수 연구의 대가(?)라는 윤여준 전 환경부장관은 이런 말을 한 적이 있지요. “…안철수가 말할 땐 워딩(Wording)을 잘 살펴야 한다. 그의 말은 짧지만 정교하다. 보통 정치인처럼 포괄적으로 말하지 않는다….”


안철수는 구글의 에릭 슈미츠회장, 마이크로 소프트의 빌 게이츠회장 등 미국 IT 업계의 거물들을 두루 만났습니다. 혁신과 상생, 고용, 기부문제 등을 주제로 얘기를 나눈 것으로 보도되고 있습니다.


한국 언론은 “짧지만 정교하다”는 그의 워딩에 숨어있는 뜻과 단서를 천착해, 나름대로 그 의미를 대권행보와 연결시켜 나가고 있습니다. 가령 에릭 슈미츠와 만나 나눈 혁신과 기부 등의 주제는 “한국의 개혁과 변화에 앞장서고 싶다는 속내를 내비친 것으로 대권행보와 무관하지 않다”는 식으로 해석합니다.


잠재적 대권주자로서 안철수가 지금까지 분명하게 던진 정책 메시지는 단 한가지입니다. 바로 대기업과 중소기업 사이에 공정한 게임의 규칙을 만드는 시장 개혁입니다. 그는 구글의 슈미츠 회장과 면담하고 나와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상생문제를 다시 얘기했습니다.


“…슈미츠 회장에게 물어보니 실리콘 밸리에서는 대기업이 중소기업과 불공정 거래를 하는 일은 없으며 그게 일종의 ‘문화’라고 하더라. 정부의 규제나 제도보다는 대기업이 중소기업을 불공정하게 대우하지 않는다는 인식의 확립이 중요하다….”


한국의 진보좌파 진영이 거부하는 신자유주의의 폐단에 대해서도 의견을 내비쳤습니다. “…신자유주의의 가장 큰 문제점이 바로 ‘고용없는 성장’이다. 세계화와 기술발전에 따른 불가피한 면이 있지만, 조금만 관심을 두고 노력한다면 어느 정도 해결이 가능할 것이라는데 슈미츠 회장과 나는 의견을 같이 했다….”



돈봉투 스캔들은 안철수의 기회



안철수 교수가 이번 미국방문에서 가장 기대하며 공을 들인 것은 빌 게이츠 마이크로 소프트 회장과의 면담입니다. 세계 최대의 기부재단인 빌&멜린다 재단을 운영하고 있는 빌 게이츠를 만나 내달 출범 예정인 안철수 기부재단의 운영 노하우를 벤치마킹하겠다는 계획입니다. 안철수 정치선언의 주요 모멘텀이 될 기부재단은, 세계적 ‘기부 아이콘’인 빌 게이츠의 후광까지 업게 돼 주목도가 더욱 커졌습니다. 세계적 인물인 빌 게이츠를 만나 장시간 면담을 했다는 사실 자체가 안철수를 글로벌적 인물의 반열에 올려놓는 효과가 있습니다.


한국의 정치권은 지금 추악한 돈봉투 스캔들에 휘말려 거의 정신줄을 놓은 상태입니다. 이런 때 새 정치를 해보겠다는 안철수는 수천억원의 사재를 내놓고, 젊은이들을 위한 기부재단을 만들려 하고 있습니다. 기성 정치권과 안철수가 드래스틱하게 차별되고 비교되는 모양새입니다. 정치권은 안철수가 정치선언을 하는 그날부터 엄혹한 검증을 하겠다고 별렀는데, 돈봉투 스캔들로 검증을 할 자격도 동력도 잃게 됐습니다. 안철수한테 시운(時運)이 따라 붙는 것 같기도 합니다.



연애는 Ok, 결혼은 No?



안철수 일화 중에 바둑이야기가 있습니다. 대학시절 그는 바둑책을 통해서 바둑을 배웠다지요. 헌데 수십권의 바둑책을 완전 섭렵할 때까지 그는 한번도 실제 바둑을 두지 않았다고 합니다. 실전에 들어간 건 더 읽을게 없을 정도로 모든 바둑이론서를 독파한 뒤였지요. 그의 신중한 성격을 보여주는 일화입니다. 그로서는 낯선 영역인 정치에 그가 그토록 신중하고 조심스럽게 접근하는 까닭을 엿볼 수 있는 대목입니다.


안철수는 요즘 민주당 김효석 의원을 매개로 각계 전문가들을 만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를 대권 도전의 준비 과정으로 보는 시각도 있습니다.


그를 지지하든 지지하지 않든 상관없이, 많은 국민들은 그가 정치 참여 여부에 대해 하루 빨리 분명한 태도를 밝힐 것을 주문하고 있습니다. 4월 총선 이전에 결단을 내려야한다는 여론이 많습니다. 너무 미루면 서서히 ‘안철수 피로감’이 생기면서 지지자의 상당수가 떨어져 나갈 가능성도 있습니다.


안철수를 지지하는 국민은 열명 중 다섯명입니다. 그가 대통령에 나오지 않았으면 좋겠다거나, 나오지 않을 거라고 믿는 국민 역시 열명 중 다섯명입니다. 멋진 연애는 한번 해보고 싶지만 결혼은 아니다 싶은 ‘까도남’을 보면서 가슴이 콩닥대는 처녀마음과, 안철수를 사랑하는 국민의 마음이 비슷한 것 같습니다.


연예는 해보고 싶지만 결혼은 아니다 싶은 남자 안철수. 바로 ‘안철수 패러독스’입니다.



2012년 1월 1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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