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춘훈 칼럼] 제레미 린과 임서호 군

이 뉴스를 공유하기















 ▲ 임춘훈 (언론인)

제레미 린과 임서호 군



미국의 3대 성은 존슨, 스미스, 윌리엄스입니다. 전체 성의 2~3% 정도 됩니다. 독일은 뮐러, 슈미트, 슈나이더가 제일 많은 데 전체의 2% 정도입니다.


한국은 김씨가 전체의 21%나 됩니다. 5대 성인 김·이·박·최·정씨가 차지하는 비율은 50%가 훨씬 넘습니다. 사회 구성 요소의 유기적 상호작용을 연구하는 통계 물리학자들은 한국의 이런 독특한 성씨 구조에 흥미가 많습니다.


얼마 전 한국과 스웨덴의 학자들이 1500년 전 삼국시대의 성씨별 인구를 계산해 발표한 적이 있습니다. 서기 500년경 삼국시대 때는 5만여명의 상류 계급이 30여개의 성을 썼고 그중 20%가 김씨였다고 추정했습니다. “소설책이 두꺼워져도 새 단어수가 그만큼 늘어나지는 않는다”는 것을 밝혀낸 수학적 방법을 성씨 분포 연구에 적용했다고 합니다.


한국의 성씨는 지난 수백년 동안 200여개에 머물렀습니다. 그런데 지난 10여년간 중국과 일본, 동남아인들의 귀화가 늘어 현재 270여개로 성씨가 불었습니다. 일본은 한국과 비슷한 문화권인데도 성씨가 무려 30만개나 된다지요.


내 라스트 네임은 수풀 림자, 영어로는 Lim, 림으로 쓰고, 한글로는 두음법칙대로 임으로 씁니다. 대학 졸업 후 어느 날 , 사촌형님이 우리 집안의 족보라는 걸 만들어 가져왔습니다. 우리 평택 임씨의 시조가 조선조의 명장이며 충신인 임경업 장군이라고 사촌형은 말했습니다. 임경업 장군의 피가 내 몸에서 흐르고 있다는 사실이 젊은 나를 놀래키고 흥분시켰지만 그 족보가 과연 믿을 만할까 하는 의문도 일었습니다.


어느 책에선가 한국에서 나도는 족보라는 것의 70%는 가짜라는 걸 읽었기 때문입니다. 어느 성씨의 족보든지 거슬러 올라가면 대개 시조가 왕후장상인데, 그런 족보를 과연 믿어도 될지 서슴거리게 됩니다. 예를 들어 전주 이씨 문중엔 안평대군파와 회안대군파가 있는데, 이는 가짜일 가능성이 크다네요. 두 대군은 역모로 3족이 몰살돼 후손이 있을 수 없다는 거지요. 인터넷에서 읽은 얘기입니다. 조선 왕조 시대엔 전체 인구의 70%를 차지한 천민계급과 노비계급들엔 성이 없었습니다. 이들이 성을 갖게 된 건 갑오경장 이후인데, 주로 상전의 성씨를 그대로 물려받아 썼습니다. 삼국 시대와 고려시대 이래의 대성인 김·이·박·최·정의 5대성이 그대로 유지된 성씨 구조가 고착된 이유입니다.



현씨의 미국 이름은 하이윤?



수풀 림씨는 중국과 일본에도 있고 최근 인도네시아에도 있는 걸 알았습니다. 한국에서는 임시로 발음되는 수풀 림씨가 중국에서는 린씨, 영어로는 Lin으로 표기되고 일본에서는 하야시가 됩니다. 내가 아는 사람 중에 인도네시아 림씨가 있는데 중국식 Lin이 아니라 한국식 Lim입니다. 인도네시아 림씨의 조상은 중국인이 아니라, 장보고의 후손인 한국인일지도 모릅니다.


내 중국인 종씨 중엔 임어당 선생, 중국식 발음으로는 린위탕 선생이 있고, 일본인 종씨 중엔 협객 김두환과 싸운 하야시상이 있습니다. 중국이 낳은 세계적인 작가이며 문명비평가인 린위탕 선생과 김두환과 맞장 뜨던 일본인 주먹 하야시 상과 나는 같은 수풀 림자 성씨와 과연 어떤 인연의 끈으로 맺어져 있을까 상상을 해 봅니다.


지난 50년, 한국인의 미국이민이 폭발적으로 늘어나면서 미국 전화번호부에 낯선 한국식 라스트 네임이 오르기 시작했습니다. 우리 이민 1세들은 앞으로 50년, 100년 후 후손들에게 이 땅에 디아스포라의 씨앗을 파종한 시조(始祖) 할아버지·할머니로 기억될 겁니다. 내 증손자·고손자가 임경업 할아버지 대신 임춘훈 할아버지를 시조로 모시고, 추모예배나 제사상을 차려주는 모습을 상상해 봅니다.


림씨가 린씨와 하야시씨로 현지 발음화 됐듯이, 우리의 한국식 성씨 발음도 언젠가는 미국식으로 바뀔 겁니다. 강씨는 이미 캥씨가 됐고 최씨 역시 초이씨로 불린지 오래됐습니다. 캥이나 초이는 강이나 최와 비슷한 발음이어서 그렇다 치더라도 미국사람들이 발음에 애를 먹는 복모음인 현씨나 편씨, 명씨, 표씨 등은 한두세대가 지나면 완전 딴이름으로 불릴 가능성이 있습니다.


현씨는 영어로 Hyun인데, 미국식으로는 하이윤이 되고, 표씨는 Pyo인데 파이요가 됩니다. 편씨는 파이윤, 명씨는 마이융으로 바뀔지 모릅니다. 내 친구 아들 중에 현종이란 애가 있는데, 친구들은 그 애를 하이윤이라고 부릅니다. Hyun-jong의 퍼스트 네임만 부르면 꼼짝없이 하이윤이 되는 거지요.


엊그제 인터넷을 보니까 한국 성씨 열람에 274번째 마지막으로 올라온 성씨가 초(初)씨, 273번째가 장곡(長谷)씨, 272번째가 소봉(小峰)씨, 271번째가 강전(岡田)씨였습니다. 장곡이나 소봉, 강전은 일본 이름 같은데 성씨 등록을 하는 순간부터는 한국식 발음으로 불리게 됩니다. 현씨가 하이윤씨가 될 수밖에 없는 선험적 이치입니다.



린새너티가 주는 기쁨



하바드 경제학과 출신 대만계 농구선수 제레미 린이 요새 전 미국을 열광시키고 있습니다. 불과 2~3주 전까지만 해도 완전 무명으로 이 팀 저 팀에서 방출당한 제레미 린은, 뉴욕 닉스의 주전선수들이 부상당하는 바람에 땜빵 선수로 출전기회를 잡아 지금 펄펄 날고 있습니다.


농구계는 린을 매직 존슨 이래 30년 만에 나타난 대어라며 흥분하고 있습니다. 매직 존슨은 고등학교 때부터 두각을 나타낸 준비된 스타였지만 린은 불과 두주 사이에 7연승을 거두며 벼락스타가 됐습니다. 린과 광기를 뜻하는 인새너티를 합성한 ‘린새너티’라는 단어는 어느새 초등학생들도 입에 담는 가장 유명한 단어가 됐습니다. 아시아계에 대한 주류 사회의 부정적인 고정관념을 깬 제레미 린의 성공스토리는 우리 한인 교포들에게는 각별한 의미로 읽힙니다.


제레미 린의 중국이름은 수풀 림(林)에 글 서(書) 호걸 호(豪)자, 임서호입니다. 우리 임씨 집안의 중국인 종씨입니다.


반듯하고 영민하게 잘 자란 내 조카같이 사랑스럽고 자랑스런 임서호 군. 그가 펄펄 나는 모습을 코트에서 오래도록 보고 싶습니다.



<2012년 2월 22일>


 


@SundayJournalUSA (www.sundayjournalusa.com),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뉴스를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