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경원은 예뻐서 밉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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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임춘훈(언론인)

서양에는 ‘Six Degrees of Separation’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여섯 다리만 건너면 모든 지구촌 사람이 이웃사촌”이라는 뜻을 지닌 말입니다. 내 친구가 300명이고 그 300명의 친구가 또 각자 300명씩의 친구를 갖고 있다면 한 다리만 건너도 9만명의 이웃사촌이 생깁니다. 이런식의 계산으로 4단계를 건너 아는 사람은 9만명의 제곱인 81억명이 돼, 지구의 70억 인구를 모두 내 이웃 사촌으로 만들 수 있다는 계산입니다.
순혈(純血)의 단일민족인 한국에는 “한다리만 건너면 다 통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한국사회의 청탁문화를 얘기할 때 흔히 인용되는 말입니다. 10여년 전 언론인 오명철 씨가 쓴 글에 이런 얘기가 나옵니다.
“… 검찰이나 경찰에 불려갈 일이 있을 경우 무엇때문에 부르는가를 알아보기 이전에 누구 아는 사람이 없는가를 수소문하는 것이 한국인이다. 신병 훈련소 같은 곳에서는 내무반장의 고향 이웃 마을에 살았거나, 그의 애인과 같은 초등학교를 나왔다는 이유만으로 특별대우를 받는 경우가 있었다. 지연과 혈연, 학맥과 인맥에 대한 이해는 한국사회를 통찰하는 핵심 키워드다.”
요 며칠새 판사가 검사한테 걸었다는 한통의 전화가 한국 정치권에 파문을 일으키고 있습니다. 6년전 나경원 전 새누리당 의원의 남편 김재호 판사가 부인의 명예훼손 고발사건을 담당한 박은정 검사한테 전화를 걸었습니다. 이 전화가 판사가 검사를 압박한 이른바 ‘기소청탁’인지 아닌지를 놓고 지금 진실공방이 어지럽게 벌어지고 있습니다.
비록 서울시장 선거에서는 낙선했지만 오세훈 전 서울시장과 함께 가장 유망한 차차기 대통령감으로 여론조사 때마다 이름이 오르내리던 나경원은 6년 전에 있었던 이 한통의 전화로 지금 정치생명이 끝날 중대 갈림길에 놓였습니다. 당장 4월 총선에서 새누리당의 서울 중구 공천을 받는 일부터 물건너 갈것 같습니다.
 
나꼼수의 나경원 ‘확인사살’
 
나경원한테 흔히 따라붙는 별명은 ‘엄친딸’입니다. 공부잘하고 똑똑하고, 고시합격해 판사되고, 판사 남편만나 가정 꾸리고, 국회의원에 서울시장 후보까지 하고… 사회적으로 이만큼 성공한 여자는 드뭅니다. 나경원은 부유한 사학재단 집안 딸에다 용모도 탤런트 뺨치는 김태희급 얼짱입니다. 잘난 여자가 얼굴까지 짱이니 한국사회의 공정치 못함에 열불나 치를 떠는 좌파세력과 나꼼수 같은 너절리즘(?)의 표적이 될 수 밖에 없습니다. 정치에 발을 들여 놓은 후 나경원은 비록 정치적으로는 승승장구했지만 좌파와 반대세력으로 부터 너무나 자주 악의적인 공격에 시달려야 했습니다. 1억원짜리 피부과 치료설 등은 대부분이 허위였지만 그는 거의 무방비로 당했습니다. 이번 김재호 판사 청탁전화 건 역시 ‘잘난데다 얼굴까지 예쁜 나경원’한테 속이 뒤집힌 친북좌파 세력의 나경원 작살내기의 연장선상에서 이해해야 한다는 시각도 있습니다.
지난해 서울시장 선거 직후 인터넷팟케스트 나꼼수는 시장후보 나경원한테 치명적인 강펀치 한방을 또다시 날렸습니다. 1억원 피부샵 폭로에 이은 후속 연타였지요. “김재호 판사가 박은정 검사에게 전화를 걸어 ‘나경원은 친일파’라는 글을 올린 네티즌을 기소해 달라고 청탁했다”는 내용이었습니다. 나경원의 남편인 김판사는 전화 건 사실은 인정하지만 청탁은 안했다고 부인하고 있습니다.
6년 전의 일이고 녹취록이 있는것도 아니어서 누구 말이 진실인지는 명확히 알 수 없습니다. 박검사는 검찰에 제출한 진술서에서 “김판사가 피의자를 기소해 달라는 뉴앙스의 말을 했다”고 밝혔습니다. 전화받은 사람이 청탁으로 느꼈다고 말하면 건 사람쪽에서 아무리 변명을 해도 세상은 믿어주지 않습니다. 수사 당국 관계자는 “기소해 달라”는 표현을 쓰지 않았더라도 이런 경우 기소를 요청하는 뉴앙스로 들릴 수 있다며 “기소청탁으로 보는게 맞다”고 밝히고 있습니다.
법조계에서는 서로 다른 의견이 나오고 있습니다. “판사가 구체적인 내용을 언급하지 않더라도 검사하고 관련 내용에 대해 얘기를 나누는 것 자체가 청탁이 될 수 있다”는 의견이 우선 있구요. “본인이나 가족이 피해를 당한 사건에 대해 형사처벌을 요구하는 것은 어찌보면 당사자의 남편으로 당연한 권리”라며, “검사와 판사가 지시와 복종관계에 있지 않은만큼 압력을 행사했다고 보기 어렵다”고 김판사쪽 입장을 두둔하고 있습니다. 당시 나경원 고소사건은 박은정 검사가 아닌 최영운 검사가 맡았습니다. 최검사는 “논란의 여지도 없는 사건이었다”며, 김재호 판사 압력설을 부정하는 듯한 말을 했습니다.


검사와 나꼼수가 한통속?


김재호 판사 청탁전화건을 폭로한 나꼼수 방송은 지난해 10월말 인터넷 팟캐스트에 올려졌습니다. 나경원이 서울시장 선거에서 패배한 직후입니다. 나경원은 선거직전 나꼼수의 소위 1억 피부숍 폭로에 치명상을 입고, 예상보다 큰 표차로 박원순한테 졌습니다. 자기네 허위 보도 탓에 결정타를 맞고 쓰러진 나경원한테 나꼼수는 확인사살이라도 하듯 또 한번의 총질을 해댄 겁니다. 나꼼수의 좀비들은 원래 인간의 선의에 대한 믿음 같은건 없는 정신적 건달패입니다. 나꼼수에 열광하는 ‘사이버 양아치’들은 심지어 나경원을 ‘국민쌍X’으로 조롱합니다.
아무래도 이 사건은 종북좌파 세력의 정치적 음모 프레임에 나경원 부부가 걸려든것 같은 느낌을 지울 수 없습니다. 서로가 잘 아는 사이이던 선배 판사와 후배 여검사 사이의 전화 통화 내용이 하필이면 6년이나 지나 너절한 나꼼수한테 제보됐다는 사실이 우선 수상쩍습니다. 박은정 검사는 이 사실이 어떻게 나꼼수한테 알려졌는지 자신은 전혀 모른다고 잡아떼고 있습니다. 헌데 나꼼수는 박은정이 양심선언을 했다는 식으로 떠벌리고 있습니다. 박검사 주변의 인물이 나경원을 죽이기 위해 나꼼수와 박은정 사이를 연결시켜 줬다는 얘기도 나돕니다.
박은정이 어쩌면 요즘 가카새끼 짬뽕이니 어쩌니 떠드는 법조인들과 코드가 맞는 좌파쪽 검사일지도 모릅니다. 만약 박은정이 김재호 판사의 압력으로 부당한 기소를 했다면 6년후인 지금 양심선언을 할 수도 있습니다. 헌데 그는 당시 재판에 관여하지도 않았고 기소담당 검사도 최영운이었습니다. “김판사의 전화가 기소를 해 달라는 뉴앙스로 들렸다”는 박은정 검사의 주장은 궁색하게 들립니다.
나경원은 ‘엄친딸’에 걸맞지 않은 험한 정치판에 뛰어들게 된 이유를 “아픈 딸을 키우면서 사회를 바꿀 필요성을 느껴서”라고 말합니다. 그의 딸은 다운증후군을 앓고 있습니다. 강남의 피부과 의원을 찾게된 것도 이 아픈 딸의 피부관리를 위해서였다고 하지요. 이를 나꼼수는 ‘멤버쉽 1억원짜리 피부관리를 하고 다니는 부자 시장 후보’로 조작해, 서울시장 선거의 막판 흐름을 바꿔 놨습니다.
좌파세력은 왜 나경원을 물고 늘어질까요? “나경원 자체가 대한민국의 정체성이자 기득권이기 때문에, 종북세력으로서는 타파해야 할 대상”이라고 우파논객 변희재는 지적합니다.
“여섯 다리만 건너면 70억 지구촌 인구 모두가 이웃 사촌”이라는 서양 격언과 “한 다리만 건너면 대한민국 사람은 다 통한다”는 한국의 청탁문화를 생각해 봅니다. 추잡한 돈거래나 힘있는 자들의 압력만 아니라면 아는 이웃끼리 서로 부탁하고 부탁들어주는 한국의 청탁문화가 꼭 부정적이지만은 않다는 생각도 듭니다.
신병훈련소에서 만난 내무반장한테 “반장님 애인이 내 초등학교 동창생”이라고 말하고 그 덕에 내무반 생활 편안하게 했다는 어떤 병사의 얘기에선 사람 냄새가 제법 묻어납니다.
나꼼수와 한 패거리가 돼 인간의 선의와 믿음을 배반한 어떤 여자 검사 얘기 보다는, 사람 냄새 물씬 풍기는 신병훈련소의 어떤 내무반장 얘기가 훨씬 더 아름답습니다.

<2012년 3월 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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