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춘훈 불법 사찰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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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임춘훈(언론인)

미국 이민 오기 2년전쯤 그 일을 당했습니다. 박정희의 유신시절입니다. 그 일로 우리 부부는 미국 이민을 앞당겼습니다. 사실은 이민 5순위 형제자매 초청케이스로 서류를 이미 접수시켜 놓고 있었지만, 꼭 이민을 가야겠다는 치열한 의지나 확신같은건 없었습니다. 헌데 그 일로 ‘가자’ 쪽으로 마음을 굳혔지요. 2년후 우리는 아파트 판 돈 달랑 만 달러를 챙겨 미국행 노스웨스트 비행기에 올랐습니다.
무교동의 오륙도라는 석쇠구이집에서 일어난 일입니다. 신문사 동료들과 소주 몇잔 걸치고 떠들다가 그만 ‘천기누설’의 화를 입게 됐습니다. “유신이 귀신이다” – 이 한마디에 사단이 났습니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그는 우리가 앉은 자리에서 직경거리로 7~8미터 저쪽 구석에서 혼자 소주를 홀짝이고 있었습니다.
떠들썩한 대폿집에서 그 정도면 천기누설을 해도 무방할 ‘안전거리’였습니다. 헌데 그는 참으로 귀신처럼 유신을 귀신으로 욕보인 우리들의 술집 뒷담화를 엿듣고, 오륙도를 나서는 우리를 따라 붙었습니다. 겨드랑이에 팔을 끼며 “잠깐 갑시다” – 저승사자처럼 그는 속삭였습니다.
저승사자는 우리를 북창동에 있는 어떤 빌딩 사무실로 끌고 갔습니다. 현역 기자 신분이어선지 폭력을 쓰지는 않았습니다. 허지만 그날밤 그 저승사자와 함께 한 몇시간은 참으로 음습하고 칙칙한 유신시대의 어두운 잔상으로 남아 있습니다. 40여년의 세월을 건너뛴 지금도 그가 겨드랑이에 팔을 넣으며 ‘갑시다’하던 때의 그 기분나쁘고 스멀스멀한 느낌은 그대로 남아 있습니다.
내가 겪은 첫 번째 불법사찰 사건입니다.


전두환식 불법사찰


80년대초 전두환 신군부의 서슬이 한창 시퍼렇던 때입니다. 나는 뉴욕에서 이른바 반정부 신문이란걸 만들었습니다. 당시 한국일보와 중앙일보가 미주판을 만들고 있었지만 전두환 비판 기사는 물론 김대중 김영삼 두 김씨의 이름조차 쓰지 못하던 때였습니다. 김대중씨는 워싱턴에서 망명생활을 하고 있었지요.
나는 한국내 민주화 세력이 보내오는 불온(?)한 소식과 워싱턴의 김대중씨 근황, 미국과 전세계 반정부 단체와 인사들로부터 취재한 뉴스들만 모아 매일 16페이지씩 신문을 만들어 맨하탄과 플러싱의 한인타운에 뿌렸습니다. 힘은 들지만 신은 나던 때였지요.
어느날 저녁 뉴저지에 있는 우리집에 예고도 없이 아는 영사가 찾아 왔습니다. 그는 고등학교 선배였습니다. 집에 있던 조니 워커 한 병을 꺼내 우리 둘은 주거니 받거니 마시기 시작했지요. 위스키 병이 거의 다 비어갈 무렵, 술이 약한 선배가 해롱거리며 할말을 털어놓기 시작했습니다.
임사장이라고 존대말을 쓰다가 감정이 격해지면 야! 임마라고 반말도 하면서 선배는 짐작했던대로 신문 얘기를 꺼냈습니다. 한마디로 신문발행을 중단하면 팔자를 고쳐주겠다는 제의였지요. 평생을 먹고살 수 있는 큼지막한 비즈니스 하나를 차려 주겠다고 했습니다.
그때는 전두환이 나랏돈을 제 쌈짓돈처럼 꺼내 쓰던 때여서 해외에서 발행되는 골칫거리 반정부 신문 하나 없앨 수 있다면 몇십만 달러 정도 가져오기는 어렵지 않던 시절이었습니다. 선배는 그날 목적을 이루지 못하고 술에 골아 떨어져 잔 후 내 아내가 끓여준 콩나물 해장국을 먹고 돌아갔습니다.
나는 그날밤 나와 선배가 나눴던 얘기를 누구한테도 말하지 않고 가슴속에 묻었습니다. 만일 그 사건을 ‘전두환 언론 매수 공작!’ 어쩌구 떠들며 기사화 했더라면 교포사회에 센세이셔널한 화제와 반향을 일으킬 수 있었겠지요. 실패한 멍청한 공작에 나섰던 선배는 문책을 당하고 어쩌면 본국으로 송환됐을지도 모릅니다.
10여년 전 안타깝게도 그 선배가 병을 얻어 서울에서 타계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내가 겪은 두 번째 불법사찰 사건입니다.


사찰이냐, 감찰이냐


그후 뉴욕과 LA에서 신문과 방송, 또는 칼럼으로 전두환 정권에 미운털이 박히면서도 나는 영사관의 정보영사나 문화ㆍ공보담당 영사들과 스스럼없이 어울렸습니다.
그들이 나를 찾는건 요즘 김제동이나 김미화가 떠들어 대는 것처럼 ‘사찰목적’일 수도 있습니다. 사찰이건 감찰이건 국가의 녹을 먹는 그들로서는 마땅히 할 수 있는 일입니다.
1년에 한번 정도 한국에 큰 정치 이벤트가 있을 때 나는 용감무쌍(?)하게 취재여행을 다녀왔습니다. 제일 으스스한 것은 김포공항 입국심사대를 통과할 때 였습니다. 이민 오기전 오륙도에서 따라붙던 그 저승사자같은 사람이 마중나와 북창동으로 또 끌고가는건 아닌지 켕겼습니다.
정보계통에 있는 대학후배가 어느날 자기가 알아봤다며 내가 요시찰 해외언론인 리스트에 올라 있다고 알려줬습니다. 호텔방에서 도청을 할 수도 있으니 조심하라는 말과 특히 약점을 잡히지 않으려면 여자문제나 돈문제에 각별히 신경을 써야할 것이라고 후배는 귀뜸해 줬습니다.
서울로 출장을 떠나는 전날밤엔 왠지 불안해 자고있는 아이들을 몇 번씩 어루만졌습니다. 아내한테는 내가 저승사자한테 이끌려 북창동 가게되면 도움을 청할 워싱턴의 모모인사와 모모 미국기관의 전화번호를 알려주고 떠났습니다. 후배의 충고대로 한국에 가면 도청조심, 여자조심, 돈조심에 도 닦은 스님 흉내내며 지냈습니다.
지금은 아련한 사찰의 추억입니다.


사찰 안 받으면 팔불출?


이명박 정부의 민간인 불법사찰 문제가 큰 쟁점이 된 4.11 총선이 끝났습니다. 불법사찰 이슈는 총선과 함께 끝난게 아니라 어찌보면 이제부터 시작입니다. 새누리당은 특검을, 민주통합당은 청문회를 열어 이 문제를 끝장내자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민간인 불법사찰을 이명박 정권 심판용으로 계속 쟁점화해야 하는 민주당과 노무현 김대중 정권의 불법도청, 사찰까지 함께 파헤치면 결코 손해 볼 것이 없다고 믿는 새누리당의 이해가 맞아 떨어져 12월 대선까지 이 문제는 계속 정치이슈화 되면서 정국의 긴장도를 높여갈 것 같습니다.
엊그제 좌파언론인 한겨레신문과 경향신문은 이명박 정부가 언론인에 대한 사찰을 통해 방송을 장악하려는 음모를 드러냈다고 보도했습니다. 정계 언론계 경제계 학계 연예계 등에서 저마다 불법사찰을 당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쏟아져 나올판입니다. 이 시대에 사찰을 한번 안받아 본 사람은 영락없이 팔불출이라도 될 것 같은 분위기입니다. 바람 피우다 마누라에게 ‘딱 걸린’ 스커트 체이서(Skirt Chaser)들이, 마누라한테 불법사찰 당했다고 앙앙불락하고 나서면 어쩌지요?


<2012년 4월 1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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