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A시, 이경원 원로기자에게 공로상 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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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은 ‘아시안 태평양 문화유산의 달’이다.
지난달 27일 오전 LA 시청에서는 안토니오 비야라이고사 시장과 시의회가 이를 기념하는 행사를 가졌다. 특히 비야라이고사 시장은 미주한인동포들에게 4.29폭동의 유산을 중요하게 알려왔으며, LA에서 한인 최초의 영자신문 ‘코리아타운 위클리’ 를 발간한  이경원 원로 언론인에게 ‘로스엔젤레스 스피릿 어워드’ 공로상을 수여했다.
이날 한인사회를 대표해 이경원 원로 언론인 외에도  피겨스케이트의 간판스타 중국계의 미셸 콴과인도계의 UCLA 법학과 조티 난다 교수가 수상의 영예를 안았다.
또한 시청 앞 광장에는 다양한 부스도 마련돼, LA주민들이 아시안 국가들의 전통 문화를 체험할 수 있는 기회도 마련됐다. 
 
이경원 원로기자는 누구인가


“4.29를 잊으면 또 당한다. 엘리뜨 한인들이 책임을 다해  4.29폭동에 대한  진상규명이 이루어 지지 않으면 우리에게는 꿈이 없어진다”
이경원 원로기자는 ‘4.29폭동이 우리에게 증명한 것이 한가지 있다면 그것은 한인들이 그토록 자랑하는 수많은 빛나는 개인적 명예와 업적을 합친다 해도 경쟁관계와 이해집단으로 점철된 이 나라에서는 아무 가치가 없다는 것, 어쩌면 오히려 마이너스라는 것이다. 왜냐하면 우리사회에는 커뮤니티 의식이라는 것이 결여되어 있기 때문’이라고 강조하고 있다.
1980년의 일이다. 당시 이경원 기자는 미국의 여러 도시에서 형성되고있던 한인 커뮤니티를 대상으로 로스엔젤리스에서 최초의 전국판 영자 주간지 ‘코리아타운 위클리 (Koreatown Weekly)’을 창간하고 발행인과 편집인으로서 1년 동안 자동차로 2만5천마일을 달리며 미주 한인사회를 취재했다.
그는 미 대륙 곳곳의 한인들을 찾아다니며 영어는 잘 못하지만 부글부글 끓는, 위험한 대도시 한복판에서 자리잡고 생활하던 수백 명의 한인들과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는 이들 한인들을 “배짱 좋은 코리안”이라고 말한다. 그는 취재를 통해 놀랄만한 현상을 목격했다. 그것은 한인들이 어려울수록 불평하지 않고, 묵묵히 뻗어 나가는 끈기있는 민족이라는 사실이었다. 활기차고 대담하고 실패와 좌절 속에서도 굴하지 않는 것이 한인들의 모습이었다. 더욱 대단한 것은 수많은 이민 1세들이 미국에서 교육을 받고 의사, 교수, 엔지니어, 과학자, 변호사, 회계사, 기업인, 공무원으로 살아가는 모습이었다.









 ▲ LA시 공로상을 받은 이경원 원로기자(오른편에서 두번째), 그 다음이 비야라이고사 LA시장,
 나다 교수(수상사), 미셀 콴(수상자).


그러나 이같은 눈부신 개인적 성공사례에 고무된 것만큼이나 이경원 기자를 악령처럼 괴롭힌 우울한 사실이 있었다. 분열되고 힘없는 코리아타운,  특히 코리아타운의 대부분 엘리트들이 어려운 한인 커뮤니티에 대한 봉사와 참여 정신이 없다는 점이었다.  그는 이런 분위기에 대해 “놀랍고도 아찔한 사실”이라고 말했다. 한마디로 이들에게  ‘노블리스 오블리제 (noblesse oblige)’ 정신이 없다는 것이다.
“아시안 아메리칸 저널리즘의 학장”이라 불리는 이경원 기자는 지난 45년간 미 주류사회에서 신문기자로 활약한 격동의 미 현대사와 한인사회 변천사의 산 증인이다. 1950년에 도미하여 웨스트 버지니아 대학과 일리노이 주립대에서 저널리즘 학사 및 석사학위를 받은 그는 1955년 테네시의 ‘킹스포트 타임즈 (Kingsport Times)지에서 최초의 동양계 기자로 입사해 사건기자로 시작하여 1958년부터 1970년까지는 웨스트 버지니아의 ‘찰스턴 가제트 (Charleston Gazette)’지에서 일하며 50년대와 60년대의 흑인 민권운동, 아팔레치안 산맥의 빈민 탄광촌, 남부 웨스트 버지니아의 부패한 선거운동에 대해 많은 기사들을 남겼다.
그는 1970년부터 20여 년 동안 캘리포니아의 ‘세크라멘토 유니온 (The Sacramento Union)’지에서 추적탐사기자로 활동하면서, 한인 이민역사에 길이 남을 업적을 남긴다. 바로 1973년 샌프란시스코  차이나타운의 갱  살해사건의 용의자로 체포된 한인청년 이철수 사건이었다. 그는 6개월간 이철수 사건을 취재하여 1978년 1월 29일 ‘차이나타운의 앨리스’라는 특종기획기사로 이철수 재판의 부당성을 고발했다.
이철수 기사로 미전국에서 ‘이철수 구명위원회’가 결성되었다. 이후 그는 5년 동안 120여 개의 기사를 통해 이철수에 대해 경찰과 검찰의 수사기록과 재판과정에서 나타난 의문점들을 제기하였고 샌퀸틴 감옥소에서 사형을 기다리고 있던 이철수는 재심에서 무죄를 선고받고 1983년 석방되었다.
‘이철수 사건’은 미국역사에서 소수민족들이 연합해 일군 최초의 인권운동의 승리로 기록되고 있는 기념비적 사건이다. 이 기자의 필봉이 아니었다면 이 사건은 역사가 되지 못했을 것이다.
미국의 주류 언론계에서 이경원은 유색인종과 소수민족에 대해 남다른 통찰력을 가졌던 언론인으로 알려져 있다. 워싱턴DC에 자리잡은 언론박물관 ‘뉴지엄’(Neseum)에는 ‘20세기를 빛낸 언론인’ 중에 유일한 동양인으로 등재되어 있다.
그는 주류 언론계에서 수많은 수상경력이 있으며 한인사회를 위해서도 영자신문 KoreaTown Weekly를 창간해 운영했으며, 한국일보 자매 영자지Korea Times의 편집장을 맡아 한인사회와 흑인 및 라티노사회의 우호적 관계를 위해 노력을 기울였다. 현재 세크라멘토에 거주하는 그는 아직도 정열적으로 기고와 강연활동을 하고있으며 ‘이철수 사건’ ‘외로운 여정-이민 1세기’ 등을 포함해 한인 이민사에 관한 두 권의 저서를 집필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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