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멘붕’…형님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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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임춘훈(언론인)

예전 현업에서 일할 때 한국에 가면 취재차 청와대 별관 비서동을 자주 찾았습니다. 대통령의 최측근 참모인 특보와 수석비서관들은 대개 위민관이라 불리는 이 별관 비서동에서 근무합니다. 이들은 지근거리에서 대통령을 보필하는 참모들인데, 지근(至近)이라는 말이 무색하게 대통령이 집무하는 청와대 본관과 이 별관사이는 엄청 멉니다. 걸어서 5분이 넘는 거리지요. 비서들이 대통령을 만나러 가려면 초소 두 개를 지나 5분~10분 걷거나, 급할때는 아예 차를 타고 까다로운 검문을 받은후 본관으로 들어갑니다.
미국의 백악관은 대통령 집무실과 참모들의 방이 ‘웨스트윙’이라는 같은 공간안에서 연결돼 있습니다. 참모들은 원하면 어느때나 대통령을 만나 하고 싶은 얘기를 할 수 있습니다. 미국 드라마 <웨스트윙>에서는 대통령과 참모들이 주말밤에 모여 함께 포커 게임을 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이명박 대통령이 주말 망중한의 한때 비서실장이나 정무수석, 홍보수석 등을 불러들여 고스톱판을 벌이면 어떻게 될까요. 언론은 난리법석을 떨고, 정치 못하는 대통령이 이젠 노름까지 한다면서 국민 여론도 들끓을 겁니다. SNS등 사이버 공간은 대통령의 ‘멘붕’을 개탄하고 질타하는 욕설과 조롱이 난무하겠지요.
나는 대통령이 차라리 ‘착한 노름꾼’이 한번 돼봤으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해 봅니다. 다른 역대 대통령들처럼 재벌회장이나 장관들과 골프를 칠게 아니라, 청와대 참모들과 고스톱을 쳐보라는 얘기입니다. 고스톱 판은 며느리가 시아버지와 맞장 떠 돈을 따도 되는 가장 자유롭고 민주적(?)인 서민들의 ‘놀이공간’입니다. 고스톱 치면서 참모들이 대통령한테 ‘님’이나 ‘각하’라는 극존칭을 쓸 필요도 없겠구요.
대통령한테 피박이나 광박 씌웠다고 이튿날 비서자리 짤릴 염려도 없을 겁니다. 자연스럽게 시중의 여론을 대통령한테 전해줄 수 있고, 서민들의 팍팍한 살림살이 얘기도 들려줄 수 있을 겁니다. 이런게 바로 소통이라는 거지요.


청와대를 옮기자…김창준의 제안


김창준 전 미연방 하원의원은 요즘 한국정치에 관심이 꽤 많습니다. 일간신문과 인터넷 매체에 정치관련 칼럼을 자주 씁니다. 지난 5월 그는 <이 데일리>라는 인터넷 매체에 ‘청와대를 옮기자’라는 칼럼을 썼습니다. 글의 요지는 이렇습니다.
“… 청와대는 창살없는 감옥같고 밤에는 너무 외롭다는 어느 전직 대통령의 말이 생각난다. 실제로 청와대는 온통 담으로 둘러쌓여 있고 그나마 뒤는 산으로 막혀있다. 앞면에는 골목마다 정장차림의 경호원들로 온통 무시무시한 분위기다…. 대통령은 낮에는 소수의 비서관들과 측근들의 인의 장막에 싸여 바깥을 볼 수 없고 국무회의 때도 그저 “잘되고 있다”거나 “지당한 말씀”이라는 말만 되풀이 해 듣는다. 누구도 제대로된 직언을 하지 않고, 대통령이 일방적으로 지시하는 얘기만 듣는다.
대통령은 더욱 격리되고 측근들은 웬만한 보고는 하지도 않고 자기들 선에서 결정해 버리고 만다…. 측근들의 권력은 더욱 막강해지고 대통령은 국민들로부터 점점 더 멀어질 수 밖에 없다…. 집권말기가 되면 어느덧 레임덕 현상이 나타나면서 호가호위하던 측근들이 엄청난 뇌물을 먹고 철창신세를 지는 구태가 연출된다….”
김창준씨는 측근과 친인척 비리로 대통령들이 임기말이면 레임덕에 시달리고, 퇴임후에도 구속ㆍ자살같은 불행을 겪는 것은 바로 이 청와대라는 불통(不通) 공간이 갖는 존재적 모순때문이라고 지적합니다. 그래서 첩첩산중에 자리잡은 절깐같은 청와대를 서민들이 복작대며 사는 서울시내 한복판으로 옮기자고 주장합니다.
미국의 백악관은 워싱턴시내 한복판에 있습니다. 바로 옆에는 호텔과 샤핑몰이 있고, 주변은 늘 시민들로 북적거립니다. 백악관 안을 관광하려면 한 차례 검문만 거치면 들어갈 수 있습니다. 전세계에서 온 수천명의 외국인 관광객들도 별 제약없이 백악관 구경을 할 수 있습니다.
미국과는 정반대의 후진국형 대통령 집무실은 독재국가인 미얀마의 수도 네피도에 있습니다. 휑하게 뚫린 16차선의 도로를 30분이나 달려야 이 나라의 대통령궁이 나타납니다. 이런 폐쇄공간에 갇혀있는 절대권력자가 민주주의를 할 수는 없겠지요. 대통령과 참모사이, 대통령 집무실과 국민 거주공간 사이의 거리가 좁아야 민주주의의 꽃은 핍니다. 청와대는 미얀마의 대통령궁 정도는 아니더라도 워싱턴의 백악관이나 런던의 다우닝가 수상관저에 비하면 훨씬 권위적이고 폐쇄적인 공간입니다.
세계 일곱 번째 20-50 클럽 국가의 국격(國格)에 맞지 않습니다. 김창준은 말합니다.
“국민의 손으로 선출한 대통령을 신비의 대상같이 산속에 격리시켜 놓고 측근들이 대통령 대신 권력을 행사하는 제도는 미국에서는 볼 수 없다.”


못난 동생…잘난 형


이명박 대통령의 친형인 이상득 전 새누리당 의원이 엊그제 검찰에 불려가 포토라인에 섰습니다. 저축은행 퇴출저지 로비등과 관련해 수억~수십억의 검은돈을 챙긴 혐의입니다. 이상득은 영일대군, 만사형(兄)통, 형님예산, 형님세탁소, 형님공천등 숱한 신조어를 만들어낸 MB정부 최고의 실세입니다. ‘가장 깨끗한 정부’라던 이명박 대통령의 호언이 무색하게, 두달전 파이시티 인허가 비리와 관련해 구속된 최시중 전 방송통신위원장과 박영준 전 지식경제부차관에 이어, 소위 ‘영포라인’의 최정상인 이상득마저 쇠고랑을 차게돼, MB정권의 도덕성은 거의 초토화됐습니다.
이상득의 불행은 4년전, 정치권과 다수 국민의 여론을 무릎쓰고 혼자 공천연령 제한을 거스르며까지 국회의원을 한번 더 한 과욕에서 비롯됐습니다. 그때 동생은 위험을 예감하고도 형의 권력의지를 꺾지 못했습니다. 이명박에게 여섯 살 터울의 큰형 상득은 ‘하늘같은 형’이었다지요. 2007년 대선때 이상득은 대통령이 될 동생 얘기를 이렇게 했습니다.
“우리 집안은 서열이 명확하다. 명박이는 나를 좀 어렵게 생각한다….”
MB가 대통령이 된 뒤에도 ‘못난 동생’은 ‘잘난 형’의 그림자 속에서 좀처럼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2007년 대선직후 이런 일이 있었다지요. 경주의 한 리조트에 이명박 당선의 일등공신들이 모여 자축 파티를 열었습니다. 한 인사가 “이런 날은 한방 돌려야지요”라며 폭탄주를 제안했습니다. 이명박 당선인은 평소대로 형님의 눈치를 살폈습니다. 그러자 이상득은 주저없이 “폭탄주는 안돼”라는 폭탄선언(?)으로 분위기를 썰렁하게 만들었습니다.
사석에서의 권력은 이렇게 이미 대통령의 것이 아니라 형님의 것이었다는 얘기입니다. MB정부의 권력은 형님에게서 나온다는 만사형통(萬事兄通)이라는 신조어는 두 형제의 이런 특수관계에서 필연적으로 생겨났습니다.
지난 2월 22일 이명박 대통령은 취임 4주년 기자회견을 가졌습니다. 그때 대통령은 취임 4주년을 맞는 소회의 일단을 이렇게 드러냈습니다.
“…요즘 가슴이 꽉 막히고, 화가 나며, 가슴을 치고 밤잠을 설친다….”
측근이던 청와대 김두우 수석과 신재민 문화부 차관이 뇌물수수로 구속된 사건이 당시 이렇게 대통령을 괴롭혔습니다. 헌데 그후 대통령의 멘토라는 최시중 전방통위원장과 제일의 심복이라는 박영준 전 지식경제부차관이 잇따라 구속되고, 이제는 마지막 남은 피붙이 측근인 맏형까지 철창신세를 지게 됐습니다. 정권은 이미 ‘식물정권’이 됐습니다. 청와대 서쪽 창문에 어른거리는 계절의 황혼처럼 찾아든 권력의 어스름이 처연하고 스산합니다.
<2012년 7월 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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