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연재-삼성가, 비운의 황태자 이맹희 25년 전 충격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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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 이건희 회장의 후계자 선정 문제는 금기시 되어 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장자상속 패턴을 고수하던 한국 기업에서의 승계원칙을 탈피하고 장남과 차남이 경영에 뜻이 없어 3남에게 승계한다고 발표하면서도 이병철은 늘 불안해 했다.
여기에 홍진기 회장의 갑작스런 타계로 인한 이병철은 고육지책으로 당시로서는 거액인 150억 원을 사회 헌납함으로서 이건희 후계자 체제를 공고히 했다.
그러나 안양 골프장으로 가던 중 대형 덤프트럭과 충돌해 가까스로 목숨을 건졌으나 그 후유증은 엄청났다. 한동안 한국사회에서는 이건희 회장이 후유증을 벗어나기 위해 약물복용(마약)을 하고 있다는 소문은 장안에 화제였을 정도로 대단했다.
이건희 회장을 둘러싼 마약 복용설의 내막과 진상, 그리고 3남 후계자 승계에 이르기까지의 내용을 공개한다.                                                                                     <편집자 주>



“기업은 영원한가?”
이에 대한 대답은 ‘노’라고 삼성그룹 총수 이병철은 생전에 말한바 있다. 이병철의 이 말은 그만큼 기업 경영에도 왕도가 없고, 부단한 개척과 창조, 노력 없이는 어렵다는 뜻에 다름 아닐 것이다.
한국의 기업들을 보자. 해방 이후 격동의 40여 년 동안 무수한 기업들이 부침과 명멸을 거듭해 왔다. 이런 한국 기업의 파란만장한 재벌 흥망사 가운데 삼성은 길다면 긴 반세기 동안 우여곡절을 겪으며 오늘의 한국 최대 재벌그룹으로 성장했다.
경영과 소유가 엄격하게 분리된 구미 각국의 기업들과 달리 한국의 재벌기업들은 아직까지도 소유주가 경영의 전권을 행사하고 있으며 이른바 족벌 경영 체제가 세습되고 있다. 이는 삼성의 경우도 예외가 아니다. 더욱이 삼성은 다른 한국 재벌 기업들이 <장자상속>패턴을 고수하고 또 장남을 후계자로 지목, 경영 수련을 시키고 있는 것에 반해 장남 차남을 제치고 삼남 이건희를 승계시켜 재계 안팎에서 시선을 받고 있다.
럭키(현 LG), 쌍용, 한국화학(한화) 등 일일이 열거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기업들이 장남 상속을 관례대로 했는데 그 패턴을 무시하고 삼남을 후계자로 지목한 데는 어떤 불가피한 사연이 있지 않을까?
이미 지난 1971년 이병철은 고문 변호사의 공증을 받아 3남 건희를 후계자로 선정한다는 내용의 유서를 작성, 금고 속에 보관해 놓았다고 밝힌 바 있었다. 해서(楷書) 글씨에 조예가 깊은 이병철은 다섯 장의 화선지에 붓글씨로 단정하게 유서 내용을 기록했는데 그 내용은 이러하다.
<<장남 맹희는 경영에 뜻이 없고 차남 창희는 많은 기업을 하기 싫어한다. 이러한 뜻을 무시할 수 없는 일이다. 3남 건희도 본인이 당초에는 사양했으나 최후에는 ‘역량이 부족하나 맡아 보겠다’는 뜻을 가져 주었다. 이러한 경위로 삼성 그룹의 후계자를 건희로 정한 만큼 건희를 중심으로 삼성을 이끌어 갈 것이며 홍진기 중앙일보 회장이 뒷받침해서 승계해 주기 바란다>>
이병철이 왜 장남과 차남을 멀리하고 3남 건희를 후계자로 정했는지는 <홍진기의 조종>과 <청와대 투서사건> 등 앞에서 이야기한 바와 같다.
어쨌든 이렇게 후계자를 선정한 이병철은 그간 세상이 알게 모르게 3남의 후계체제를 굳히는 작업을 꾸준히 해왔다.
한 때 삼성의 주력기업 사장들로 구성된 해외 사업 추진위원회 위원장으로 경영의 안목을 넓히게 했고 이병철의 삼성 계열 기업 순시 때도 빠짐없이 수행하게 하는 등 아버지의 배려가 늘 뒤 따랐다.
한편 71년 당시 중앙일보 평 이사였던 이건희는 그 후 부회장에 선임되어 삼성 건물 본관 28층 회장실 옆에 마련된 부회장실에서 미래의 삼성그룹 총수로서의 경영 수업을 닦아 왔다.
이런 가운데 조직과 인사에 있어 일사분란하다는 삼성 그룹은 <중간 회장제>가 도입된 적이 있었다. 1978년 이후의 일로 삼성전자 등 5개 전자계열회사와 매스컴 계열회사를 홍진기가 맡고 삼성조선, 삼성중공업, 삼성종합건설 등의 회사를 조우동 삼성조선 회장이 각각 맡아 경영을 통괄하도록 한 것이다. 그 후 조우동 고문은 그룹 고문의 자리로 물러서게 되었다.
당시 이 같은 <중간 회장제>의 도입은 이건희 부회장을 뒷받침하는, 즉 이병철-이건희로 이어지는 승계 작업의 일환이었음이 밝혀졌다. 또한 이병철은 후계자 선정과 더불어 재산 상속 역시 확고하게 매듭지었다.
지난 1971년 2월 18일의 일이다.
이병철은 삼성그룹에 그의 명의로 되어 있는 전 재산(주식과 부동산 포함) 150억 원의 처리방안을 확정, 그룹 산하 사장 간담회에서 발표했다. 이 때 이병철은 사재 150억 원 가운데 삼성문화재단에 50억 원을 희사하고 50억 원은 직계 자녀(3남 4녀)와 그룹 유공사원에서 물려주는 한편, 나머지 50억 원 중 40억 원은 삼성 사원과 회사에 주고 10억 원은 삼성사원 공제회에 희사한다고 재산 처리 결과를 밝혔다
이렇게 사재 처리방법을 결정한 동기에 대해 이병철은 ‘돈이 많이 축적되어 한 개인의 사용 가능한 범위를 넘어 서면 이미 내 개인의 것이 아니라고 느껴지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이병철의 이러한 재산 처리 발표는 당시 재계 안팎에서 엄청난 충격과 반응을 불러 일으켰다. 일부에서는 이를 두고 <노사관계 개선을 위한 쾌거>라는 반응도 있었다. 그러나 그 반대로 재계 일각에서는 이병철의 이런 재산 처리 결정은 <후계자 선정을 둘러싼 재산 단속을 위한 고육지책>의 소산으로 받아들이기도 했다.
바꿔 말하자면 앞서 있었던 <청와대 투서사건>을 통한 차남 창희의 아버지 이병철의 친권에 대한 도전을 받고 이병철은 뒷날을 대비해 결정을 내린 것이 <사재 처리방안 발표>였다는 것이다.
그러나 어찌 되었던 그 후 <이병철-홍진기-이건희>로 이어지는 삼성의 트로이카 체제는 별 다른 진동 없이 계속되어 왔으며 이병철의 서거 후 삼남 이건희의 후계자 승계는 확실하게 되었다.


자동차 사고와 그 후유증


86년으로 들어서자 후계자 문제를 둘러싼 몇 가지 이상한 변수와 말썽이 삼성 내부에서 계속 발생되어 한 때 후계자 문제에 큰 불똥이 튈 뻔 했었다. 그러자 이병철은 87년 벽두에 모 신문과의 인터뷰를 통해 <예정대로 삼성은 이건희 부회장에게 물려 줄 것>이라고 거듭 재천명했다. 그렇다면 이병철은 이미 공식적으로 3남 승계가 결정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거듭 부연해서 말한 것일까? 이는 3남 승계가 이루어지지 않을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사전에 봉쇄하겠다는 의미를 간접적으로 시사하는 것일 수도 있다는 것이었다.
3남 건희의 후계자 승계에 첫 번째 변수 요인으로 나타난 것은 지난 86년 7월에 일어난 홍진기 회장의 갑작스런 타계였다.
평소 이병철의 정보통으로 그의 눈과 귀, 손과 발이 되어 절대적 신임을 받아 왔던 홍진기 회장의 갑작스런 타계는 이병철에게는 충격적인 사건이었다. 이건희의 장인이기도 했던 홍진기에게 이건희 체제의 수호를 부탁했던 이병철이고 보면, 믿음직한 홍진기가 갑자기 세상을 떠나자 3남 건희의 후계자 승계가 제대로 될지 우려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두 번째 변수 요인으로는 이병철 자신의 건강문제였다. 이병철의 중병설은 상당히 심각한 것으로 재계 일각에서는 소문이 나돌고 있었는데 이는 86년 11월 중순 <이병철이 갑자기 병이 악화되어 일본을 거쳐 미국까지 가서 치료를 받았다>라는 사실이 확인되면서 더욱 확실하게 나타났었다.
이병철은 자신의 건강문제가 재계의 관심사로 등장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인터뷰를 자청해 자신의 진찰을 담당했던 재미 한국인 이름을 공개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늘 연말은 일본에서 보내던 관례를 깨트리고 이건희와 함께 86년 12월 26일 이례 적으로 미국행을 결의함으로써 그의 건강을 둘러싼 억측은 불식되지 않았다.
여기서 지금까지 이병철 자신이 그랬고 삼성 그룹 핵심 간부들도 쉬쉬해 온 그의 건강문제가 실제로 어느 정도였는지 알아보기로 하자.
이병철의 건강에 적신호가 나타난 것은 86년 봄 이후의 일로 지난 74년 위암 수술과 79년에 있었던 뇌종양 수술과 무관하지 않다. 당시 이병철의 건강에 대한 책임 있는 위치에 있었던 한 의사는,
<암입니다. 뇌에 이상이 생겼는데 여러 모로 정밀 진찰한 결과 수술은 불가능한 것으로 판단되었습니다. 지금까지 고단위 약물 치료 등으로 병 확산을 지연시켰고 또 현재까지 크게 문제가 없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만…>



또한 장남 맹희는 아버지의 건강 상태를 걱정하면서 이렇게 말해 주었다.
<요즘 아버지의 병세가 어느 정도이지는 알고 있지만 사실 당신 측근의 누구도 ‘사실이 이 정도다’라고 용기 있게 말해 주는 사람이 없습니다. 아버지 자신에게도 문제가 있다고 봐요. 요전번에 고려병원에 와서도 의사들에게 ‘내 병은 이것 밖에 안 돼, 더 이상 진전이 안 되었지’하시고 다른 말도 못 붙이게 할 정도였어요. 아버지 스스로 병을 진단하고 판단하십니다. 정말 걱정이 됩니다. 당신의 병을 자꾸 알리는 것이 좋다고 생각하는데 그렇게 하시는 게 싫으신 가 봅니다. 그렇지만 그럴수록 주위에서 용기 있게 진언을 해야 하는데 그렇지가 못해요. 내가 저번에 미국에 가서 주치의들을 통해 직접 알아본 바에 의하면 상당히 심각한 쪽으로 이야기 하더군요.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곰곰이 생각해 보니 화가 나서 비서실에 전화를 했어요. ‘당신들 도대체 회장님 병세를 알고도 모른 척 하는 것이냐, 그게 아니면 강제로라도 입원을 시켜야 될 것 아니냐’고 따끔하게 말한 적도 있었습니다.>
아무튼 이병철의 건강문제는 그의 유고 시 삼성의 후계자 문제가 본격적으로 거론되고 예상치 못했던 변화가 나타날 수도 있다는 점에서 중요한 요인의 하나로 보인다.
세 번째 변수 요인은 이병철의 네 아들에 관한 것이다. 삼성 후계자설에는 3남 건희의 교통사고 후유증에 대한 것과 4남 태휘의 삼성 입성에 이은 그룹 내의 위치 부상, 공기업으로 기업 공개까지 서두르며 변화를 모색하고 있는 차남 창희, 그리고 장남 맹희의 움직임 등이 복합적 변수 용인으로 작용하고 있었다.
그 중에서도 특히 <3남 승계>에 이상신호를 보였던 것은 3남 건희의 교통사고 후유증에 대한 것이다.
이건희가 삼성 그룹 후계자로 책봉되어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하던 중 불의의 교통사고를 당했다. 그러면 이건희가 당했다는 불의의 교통사고 내막이 무엇이지 살펴보기로 하자.
이건희의 교통사고는 1983년 안양골프장으로 가던 도로에서 마구 달려오던 트럭과 정면충돌하여 발생하였다. 사고 당시 건희가 타고 있던 승용차는 일설에 의하면 대한민국에서 두 번째로 좋은 차로 알려진 최고급 외제 승용차로 충돌 순간, 뒤 자리에 타고 있던 이건희의 몸 전체가 총알같이 차 밖으로 튕겨져 나가 그대로 도로 주변의 돌바닥에 처박혔다는 것이다.
대형 트럭과 충돌한 승용차는 답배 갑처럼 구겨진 채 불타 버렸다.
이건희와 운전기사가 불행 중 다행으로 생명을 건질 수 있었던 것은 순전히 차체의 대인보호에 따른 우수성 때문이었다고 한다. 건희가 탔던 이 승용차는 일정한 한계를 넘어 충격을 외부로부터 받았을 경우 차체의 탄력으로 인해 차에 탄 사람의 몸이 자동적으로 차 밖으로 튕겨져 나오도록 설계되어 있는 차라고 한다. 이렇게 좋은 차 때문에 생명을 건지기는 했지만 충격에 따른 후유증만은 어쩔 수가 없었던 모양이다. 이 사고로 건희는 86년 봄까지 미국 등지의 해외를 돌며 치료와 요양을 했을 정도로 후유증은 심각했던 것으로 알려져 왔다.
그러나 건희의 경우, 문제는 교통사고 후유증 그 자체에 있지 않고 그 이후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는 또 다른 이상 증세 때문이라는 것이 <삼성 후계자설>의 새로운 변수 요인으로 등장하고 있었다. 말하자면 건희는 교통사고로 인한 후유증이 아닌 다른 <후유증>에 시달리고 있다는 것이다.
최근까지도 건희는 요양을 핑계로 사고 이후 지금까지 계속 삼성 본관 그의 집무실에 거의 나오지 않고 있으며 이런 3남의 공석을 염려한 부친 이병철이 ‘이제는 나와서 일할 때도 되지 않았느냐?’고 묻자 건희는 곧 나가겠다며 차일피일 계속 미루기만 했다는 것이다.
삼성 그룹 부회장이며 적어도 아버지로부터 후계자로 공식 지명돼 머지않아 총수에 오를 가장 가능성 있는 위치임에도 불구하고 이렇듯 경영과 아랑곳없이 밖으로만 돌고 있는 이유도 의문의 대상이라 하겠다. (이 대목은 이건희 회장의 교통사고 후유증으로 인한 마약 복용 설에 관한 소문을 우회적으로 표현한 듯함 -편집자 주-)
언젠가 정부 각료들과 이건희 등 경제인들이 함께 경제 관계일로 해외에 나간 일이 있었는데 이때도 건희는, 함께 동행 했던 정부 각료 모 인사 등이 이상하게 생각했을 정도로 이해하지 못할 행동을 보였다고 한다.
이런 건희의 상태에 대해 잘 알고 있다는 한 인사는, <내가 알기로는 교통사고 후유증이라기보다 그 후유증을 잊으려고 시작한 약물 투여가 새로이 심각한 후유 증상으로 된 걸로 알고 있습니다. 그 정도 되자 모 기관에서도 두 차례인가 부회장 집을 체크했던 적도 있다고 알고 있습니다.>
이 인사는 또 <이건희 부회장이 집무실에 나타나지 않고 요즘은 덩치 좋은 보디가드를 항상 두세 명씩 데리고 다니며 호텔 방을 한꺼번에 여러 개씩 잡는 등…. 그를 아는 사람은 걱정하는 사람도 많아요.>라고 덧붙이기도 했다.

<다음주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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