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획(2)-선데이저널 30년사를 재조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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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의문의 화재발생으로 전소가 된 화재 현장에서 연 훈 발행인이 재기를 다짐하며 실낱같은 희망으로 집기들을 챙기고 있다.

미주 한인사회의 대표 시사주간지인 <선데이저널>.

오는 9월로 다가온 창간 30주년을 기념해 특별기획 시리즈‘선데이저널 30년 역사를 재조명하다’의 연재를 시작했다.

지난 제840호에서는 제1화 ‘군부독재 속에서 피어난 정론직필(正論直筆)의 사명’ 편을 통해 전신<주간만화>의 창간을 시작으로 매체가 급격히 시사정론지로 거듭나게 된 배경, 그리고 민주화 운동투사인 故 김대중 前 대통령(DJ)(DJ)과 본지 연 훈 발행인간의 숙명적 인연 등 <선데이저널>의 태동기를 다룬 바 있다.

특히 태동기 시절 <선데이저널>로 제호를 바꾼 뒤 서슬퍼런 전두환 군부독재 정권에 맞서 시시각각으로 요동치는 본국의 정치변화 상황 등을 여과없이 다루는 ‘정론지(政論紙)’로의 변신에 성공했다.

아울러 지속적인 반군부독재‘민주화’언론활동과 함께 부정축재자들의 해외재산 도피행각을 고발함으로써 본국의 유력 정치인, 대기업, 재벌가 자녀들과 결탁해 소위‘블랙머니’를 조성하는 LA 로컬 재력가들과의 돈세탁 공생관계를 끊임없이 추적 기사화했다.

이 과정에서 <선데이저널>은 일부 세력으로부터 각종 회유, 협박, 때로는 테러 위협에 맞서야 했으며, 일부 기사에 불만을 품은 몇몇 인사들은 LAPD를 비롯해 FBI에 적반하장격 고발조치를 취하는 등 일촉즉발의 위기상황이 전개되기도 했다.

한편 <선데이저널>은 창간 두돌을 갓 넘어선 지난 1984년 10월 26일 임대사옥이 전소되는 의문의 화재발생으로 창간 이래 최대 위기를 맞게 된다. <선데이저널> 발행인 집무실로부터 시작된 이날의 방화사건. 결국 그 원인과 실체가 끝내 밝혀지지 않았으나, 모든 정황상 본지 발행인을 겨냥했던 의도적 테러일 가능성에 아직까지 무게가 실리는 충격의 역사로 남아있다.

이번 제841호에서는 창간 30주년 특별기획 시리즈‘선데이저널 30년 역사를 재조명하다’의 제2화 <잿더미를 딛고 일어선다> 편을 연재한다. 

<편집자주>

1984년 10월 26일 오후 6시 10분. 로스앤젤레스 한인타운 인근에 위치한 <선데이저널>의 임대사옥에 의문의 화재가 발생했다.

전두환 정권에 맞서 반군부독재 언론활동을 지속적으로 펼쳤던 탓일까. 아이러니컬하게도 5년전 박정희 군부독재 정권을 무너뜨린 총성이 울렸던 똑같은 날짜에 <선데이저널>은 오히려 창간 최대위기에 봉착하는 기이한 운명에 맞닥뜨리게 된다.


화마가 휩쓸고 간 충격의 화재현장


<선데이저널>이 입주해 있던 LA 한인타운 7가와 알바라도 인근의 ‘건물(1317 W 7rh St 304호)’.

이 주소지에 화재가 발생한 날은 바로 금요일 오후. 주말을 앞두고 건물에 입주한 수많은 테넌트들이 평소보다 빠른 퇴근 길을 서두르고 있었으며, 본지 발행인을 비롯한 <선데이저널> 임직원들 또한 다행히 모두 퇴근을 끝마친 상태였다.

16개 소방서가 동원돼 2시간 30여분 만에 진화된 이날의 화재는 ABC, CBS, LA 타임즈 등 주류언론 취재진에 의해 앞다퉈 보도되는 등 ‘LA 소방국(LAFD)’이 당시 추산한 피해액만 약 130만 달러에 추정되는 대형 화재였다.

현재까지도 의문으로 남는 몇가지 사실은 화재의 시발점이 발행인 집무실 천장으로부터 시작되었다는 점, 그리고 빠른 시간 안에 건물이 전소된 것을 고려했을 때 <선데이저널> 사무실에 고의적으로 인화 물질과 폭발물이 설치되었을 가능성 등이 제기됐다는 점 등이다.





연 훈 발행인은 그 날의 아찔했던 순간을 어렵사리 끄집어냈다. “아마 퇴근이 5분만 늦었더라면 난 저 세상 사람이 됐을 것이다”며 “설마했던 몇몇 협박 시나리오가 막상 현실화되니 솔직히 겁부터 덜컥 나더라”고 회고했다.

여러 목격자들의 목격담을 종합해보면 이날의 화재는 본지 발행인 집무실에서 원인을 알 수 없는 폭발음과 함께 불길이 번지기 시작했다는 것 만큼은 분명했다. 아울러 화마가 휩쓸고 간 <선데이저널> 사무실에는 말 그대로 아무 것도 남아있지 않았다. 사무실 내의 각종 자료 및 비품, 가구 등 집기류, 보관신문 등이 모두 불에 타 소실되는 최악의 결과를 낳았던 것이다.

당시 화재로 같은 건물에 입주해 있었던 한미 케이블 방송국 또한 전소의 아픔을 겪었으며, 방화로 인해 정기간행을 멈춰야 했던 <선데이저널>과 마찬가지로 한미 케이블 방송국 또한 한동안 방송송출을 중단하는 동병상련의 처지를 감수해야 했다.

당시 진화에 나섰던 여러 소방관들은 화재원인 조사과정에서 ‘방화’에 무게를 싣는 등 “발행인 집무실에 폭발물이 설치됐을 가능성도 상당히 높다”는 의견을 제시했으나, 결국 의문의 화재사건은 끝내 원인을 제대로 규명하지 못한 채 마무리되는 미제 사건으로 남겨졌다.

사실 소규모 영세 주간지로 출발한 <선데이저널>. 화재 당시는 창간 두돌을 갓 넘어서 그나마 어느 정도 언론 매체로서의 인지도를 높이는 출발점에 불과했다. 따라서 예기치 못한 방화사건으로 <선데이저널> 임직원 모두 망연자실할 수밖에 없는 암울한 현실에 부딪혔지만, 오히려 이를 ‘전화위복’으로 삼아 불굴의 투지로 똘똘 뭉쳐 재기의 꿈을 불사르는 계기가 됐다.



















▲ <선데이저널> 제59호 커버스토리로 다뤄진 ‘박종규 씨 IOC 위원선출은 국제적 망신’이라는 제하의 기사.


돌이켜보면 발행인을 겨냥한 테러 가능성에 무게가 실리는 등 계획적 방화사건으로 추정됐던 게 사실이다.

이와 관련 연 훈 발행인은 “이미 화재가 발생하기 전 갖은 테러위협과 공갈협박, 그리고 회유책이 난무하는 등 이상징후가 느껴졌었다”며 “하지만 막상 화재로 모든 것을 잃고나니 오히려 언론인으로서의 사명감을 도저히 접을 수 없다는 굳은 결심을 하게 됐다”고 강조했다.

이어 연 발행인은 “화재발생 직전에 <선데이저널>이 다뤘던 주요기사들은 주로 박정희 독재정권의 2인자였던 이후락 씨, 또 따른 실세 박종규 전 경호실장 등의 정치재개 움직임을 추적한 내용들이었다”며 “지금 와서 솔직한 고백이지만 달빛 그윽한 한 밤에 복면을 하고 나타난 무장 강도가 등 뒤로 다가와 야쿠자용 검을 들이대 협박을 가하는 순간 실례(?)를 저지른 적도 있었다”고 고백했다.

한편 방화사건이 일어난 직후 <선데이저널>에는 각계각층의 격려와 응원의 목소리도 이어졌던 반면, 일부 20대 남성들로부터 “다음에는 불이 아닐 것이다. 몸조심해라”라는 내용의 공갈협박 전화도 상당수 이어지는 등 계속되는 긴장감이 한동안 지속됐다.


발빠른 사옥이전…잿더미 속에서 일어나다


결국 <선데이저널>은 의문의 화재사건으로 사옥을 이전한 이후에도 무수히 많은 공갈, 협박, 음해, 탄압, 시련 등을 겪었지만, 오히려 이러한 위기상황을 극복하며 보란 듯이 일어서는 등 남부끄럽지 않은 30년 역사를 이어가는 토대를 마련했다.












한마디로 각종 테러, 위협, 협박 등의 결정판이라 할 수 있는 방화사건을 딛고 일어서면서, 오히려 신문의 성격이 더욱 강하게 군부독재에 맞서 항거하는 저력의 ‘민주화’ 매체로 거듭나게 되었다.

결국 이때부터 <선데이저널>의 모토가 된 ‘굽히지 않는 고발정신’은 본국의 위정자와 기득권 세력의 감시자 역할을 펼치는 ‘정론지(政論紙)’로서의 기개를 높이는 결과를 낳았던 것이다.

이에 비록 먼 이국 땅이기는 하나 ‘바른 말’과 ‘비밀 폭로’ 등의 특종을 전혀 두려워하지 않는 <선데이저널>만의 탐사보도 정신의 배경이 됐다.

하지만 이러한 <선데이저널>의 곧은 ‘정론직필(正論直筆)’의 사명감은 무수히 많은 소송에 연루돼 재판정을 드나들어야 하는 한편, 심지어 연방수사기관(FBI) 등으로부터 수사를 받는 등 실로 감당할 수 없는 여러 시련과 아픔을 안겨주기도 했다.

이는 본국을 기반으로 했던 일간지도 아닌 영세 주간지로서 겪어야 하는 재정적 한계와 경영의 어려움 속에서 또 한차례의 위기를 예고하고 있었다. 특히 LA 총영사를 지낸 H 씨의 미성년자 매춘 스캔들을 다뤘던 심층기사는 마침내 그의 본국 송환으로 이어졌으나, 이같은 낙마로 복수심에 불탄 그와 최측근들의 잇딴 음해공작으로 <선데이저널>이 FBI로부터 수사를 받는 등 창간 두번째 위기로 이어졌던 것이다.


<제3화 “FBI 수사선상 위기 등 각종 소송에 휘말리다” – 다음 호에 계속>













선데이저널의 눈부신 특종들


 


<선데이저널>1982년 창간 이후 국내외적 이슈를 불러 일으키는 수많은 특종들을 양산해냈다.



특히 80년대 중반까지 <선데이저널>은 박정희 정권의 2인자였던 이후락 씨 일족의 해외재산 도피













▲<선데이저널> 제69호는 부정축재자 이후락 씨를 표지인물로 다루며, 그 일족의 해외재산 유출행각을 고발했다.

행각을 고발한 특종 시리즈 기사를 비롯해, 박종규 전 경호실장의 IOC 위원선출 등 정치재개 복마전, 그리고 전두환 군부독재 정권의 2인자인 동생 전경환 씨의 재산도피행각-KTE 방송설립의 비화 등을 집중적으로 다뤘다.


 


부정축재자 이후락 일족을 LA에서 몰아내다


 


지난 1983 4월부터 <선데이저널>은 박정희 독재정권 당시 최고의 실세로 꼽혔던 이후락 전 중앙정보부장 일가의 해외도피자금을 추적하는 고발기사를 시리즈로 다룬 바 있다.



당시 “LA 땅에 이후락 돈이 춤춘다는 제하의 시리즈 기사는 무려 10여 차례 이상 집중적인 심층기사로 연재됐으며, 이 과정에서 사위 정화섭 씨가 설립을 주도한 한미은행의 비리가 파헤쳐지는 등 마침내 본지의 고발기사에 따른 여론 악화에 못이겨 이들 일족(一族)이 사실상 지분 전체를 매각하고 LA 한인사회를 떠나게 하는 개가를 올리기도 했다.



전두환 동생인 전경환 개입 KTE 탄생의 비화


 















▲<선데이저널> 제62호는 ‘전경환 씨의 관저 초청 만찬회’ 취재를 거부당한 본지 취재진을 향한 제재조치 내용 등을 다루기도 했다.

지난 80년대 초반 국영방송인 KBS가 사실상의 미주지역 자회사 역할을 하게 될 KTE(현재의 KBS 아메리카 전신)’를 설립하는 과정에서 변칙적 편법을 도모했다는 사실이 <선데이저널> 레이다망에 포착됐다.


이를 추적하는 과정에서 전두환 군부정권의 2인자였던 친동생 전경환 씨가 깊숙이 개입했음을 고발 기사화하는 동시에, 전경환 씨의 해외재산 도피행각 등을 폭로하는 심층기사가 이어졌다.



특히 KTE 방송국은 전두환 정권과 친분이 두터운 현지 인사들을 주축으로 설립이 주도됐으며, 이는 미주 한인들에게조차 언론통폐합이라는 미명 아래 마치 전두환 군부정권의 홍보방송을 송출하려는 얄팍한 술책임을 폭로했던 것이다.



당시 전두환 독재정권의 사생아 KTE 설립의 흑막이라는 제하의 시리즈 기사는 결국 KTE 방송의 미주 진출 시도가 연방통신법에 전면 위배된다는 사실로 확인돼 그 음흉한 의도가 발각됐다.


 


이 기사화로 KTE는 끝내 연방정부에 의해 이 방송은 한국 정부의 지원을 받아 방송하는 것입니다”라는 문구를 삽입하게 하는 전대미문의 결과를 낳았다.







 

















 


<선데이저널>은 지난 1984년 10월 발생한 의문의 화재사건으로 과거의 모든 신문을 비롯해 자료들이 소실되는 아픔을 겪었다.

하지만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이 있다”고 했던가. <선데이저널>과 유독 인연이 깊은 애독자의 힘에 의해 유실됐던 자료를 어느 정도 복구할 수 있는 기회가 훗날 주어지게 된다.

<선데이저널>은 1982년 창간 이후 지난 92년 4.29 폭동 당시 심각한 경영난을 이기지 못해 한차례 발간이 중단됐다가, 지난 2003년 4월 복간돼 현재에 이르고 있는 상태다.

지난 2003년 복간 당시에 <선데이저널>의 부활을 반긴 독자들이 상당수에 달했다. 특히 그 중에서도 충효태권도 정종오 관장은 오랜 애독자로서 <선데이저널>의 전신인 <주간만화> 창간호부터 92년까지의 모든 신문을 보관하고 있었다.

이는 과거 의문의 화재로 소실된 <선데이저널>의 귀중한 자료를 보관하고 있는 유일한 사람이라는 의미였다.

이에 복간 당시 선뜻 해당자료를 <선데이저널>에 쾌척했던 정종오 관장. 창간 30주년을 맞게 된 <선데이저널>에게 축하 메시지를 전달한 정 관장은 “선데이저널에 담긴 기사내용은 또 하나의 이민역사다”고 전제한 뒤 “그러한 역사적 자료를 보관하겠다는 의지로 수집해 왔으나, 지난 2003년 복간하는 의지에 감동해 당시 주인에게 돌려줘야겠다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회고했다.

어느덧 <선데이저널>의 30년 역사에 버금 가듯 창립 28주년 째를 맞은 충효태권도의 살아있는 전설이 된 ‘정종오 관장(태권도 9단)’.

“내가 수집해 놓은 <선데이저널>을 몇천 달러에 넘기라는 제안을 숱하게 받았던 것도 사실이다”고 깜짝 토로하며 “이제는 소중한 역사적 자료를 제 주인에게 되돌려 줬다는 긍지 하나만으로도 그 행복감이 영원할 것 같다”고 영원한 애독자임을 과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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