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획(3)선데이저널 30년 역사를 재조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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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1988년 2월 26일 당시 안기부와 신동아그룹 최순영 회장의 함정에 빠져 체포-구속된 연 훈 발행인. 공교롭게 노태우 신 정권의 출발을 알리는 취임식날 이뤄진 이날의 구속조치는 해외 반정부 인사에 대한 정치보복으로 꼽히는 등 이후 ‘양심수’ 석방의 중심에 서는 계기가 됐다.


<선데이저널> 30년 역사의 최대 위기로 기록된 의문의 화재. 이로 인해 <선데이저널>은 창간 2주년을 갓 넘어선 새내기 주간지로 그 유명을 달리할지도 모를 뻔 했다.

이렇듯 지난 1984년 10월 26일 <선데이저널>의 임대사옥을 전소시킨 충격의 화재는 발행인 집무실로부터 발화되는 등 테러 가능성이 충분히 점쳐졌으나, 끝내 미제의 사건으로 남겨져 있는 상태다.

불행 중 다행으로 당시 연 훈 발행인을 비롯한 임직원 일동이 모두 무사했으며, 이를 계기로 오히려 제2의 창간이나 다름없는 각고의 노력으로 재기의 날개짓을 펼치는데 성공함으로써 <선데이저널>의 새로운 전성기를 예고하고 있었다.

화재 수일 만에 새 사옥 이전을 추진하는 등 빠른 수습에 나섰던 <선데이저널>. 신문 재발행과 동시에 ‘부정축재자 이후락의 돈이 LA에서 춤춘다’는 제하의 기사 연재를 재개했고, ‘전경환 씨의 LA 재산도피 행각추적’ 등 기존 민주화 투쟁 신문으로서의 색채 또한 더욱 강화했다.

아울러 <선데이저널>은 보다 견고해진 고발정신으로 LA 로컬지역을 무대로 발생하는 정경유착의 숨겨진 부정부패 연결고리를 찾아내 특종기사화하는 등 더욱 유명세를 높이는 발판을 쌓았다.

한편 <선데이저널>은 창간 이후 무수한 음해공작, 고발, 고소 등이 이어져 법정싸움에 맞서야 하는 등 잊을만하면 궁지에 몰리곤 했다. 물론 이러한 얄팍한 꼼수(?)에 맞서 <선데이저널>은 매번 그 진실을 밝혀냄으로써 자칫 뒤집어쓸 수도 있는 누명의 위기를 벗어나기 위해 정면돌파했다.

특히 LA 총영사를 지낸 H씨의 매춘 스캔들을 다뤘던 심층기사는 결국 그의 낙마로 이어질만큼 국내외적 센세이션을 불러 일으켰다. 그러나 불명예 본국 송환 이후에도 복수심을 품었던 H씨의 사주로 <선데이저널>은 두차례나 LAPD-FBI 등으로부터 수사를 받는 등 고초를 겪어야 했다.

이번 제842호에서는 창간 30주년 특별기획 시리즈 ‘선데이저널 30년 역사를 재조명하다’의 제3화 <무수한 음해와 소송, 구속의 아픔까지 이겨내다> 편을 연재한다.

<편집자주>

<선데이저널>의 임대사옥을 전소시킨 화재가 만약 대다수 목격자들의 예상대로 방화사건이었다면, 과연 이를 지시하거나 주도했던 세력은 누구였는지 여전히 의문으로 남는 대목이다.

이미 화재 발생을 전후해 <선데이저널> 사무실에는 협박 전화가 끊임없이 이어졌고, 심지어 밤길에 발행인을 겨냥한 위협성 공갈 행위가 뒤따르는 등 예견된 테러였을 가능성에 무게가 실릴 뿐이다.

이에 뒤늦은 감이 있으나 막연히 그 가능성을 추론해 보자면, 당시 해외 언론으로서 유일하게 정론 시사지임을 표방했던 <선데이저널>의 몇몇 심층추적 기사와 어느정도 연관성이 있어 보인다.

즉, 첫번째 시나리오로는 당시 지속적 시리즈 기사를 통해 ‘부정축재자 이후락-박종규’ 등의 정치재개를 경고하는 동시에 이들의 해외재산 도피행각을 고발했던 만큼, 이들 박정희 독재정권의 2인자들을 옹호하는 세력들이 개입했을 가능성이다.

두번째로는 전두환 정권에 맞서 ‘민주화 투쟁’ 신문의 길을 고수한 데다, 동생 전경환 씨를 매개체로 한 ‘전두환 일가의 해외재산 도피행각’ 추적기사를 비밀리에 준비하고 있었던 <선데이저널>의 전후상황을 고려했을 때 군부독재 정권의 충성세력들이 주도적으로 움직였을 가능성이다.

아무튼 이밖에도 지난 84년 5월 다뤄진 ‘미성년자 매춘 스캔들’ 기사로 적잖은 불만을 외부에 표출했던 전 LA총영사 H씨(육사 17기생) 등 군부독재 정권과 이래저래 친분관계를 유지했던 LA 유지급 로컬인사들의 개입 가능성 또한 충분히 배제할 수 없는 시나리오 가운데 한가지로 꼽힌다.


LA총영사 H씨의 ‘미성년자 매춘 스캔들’ 파문


사실 <선데이저널>은 창간 이후 수많은 반군부독재 관련 특종기사를 다뤘지만, LA 현지 로컬 언론으로서 유력인사들이 연루된 부정비리를 파헤치는 일 또한 게을리하지 않았다.

이와 관련 <선데이저널> 제52호(1984년 5월 27일자)에는 기성 언론계에서 감히 상상조차 하지 못했던 충격적 기사를 다뤘다.

당시 ‘H 나성총영사-18세 교포소녀들과 매춘행각’이라는 제하의 기사는 이미 제목에서 느껴지듯 큰 파란을 예고하고 있었다. 이 충격적 기사의 전말을 제대로 파악하기 위해서는 당시의 상황을 독자들이 이해할 필요성을 느껴 다소의 부연설명을 게재토록 한다.

육사 17기생인 LA 총영사 H 씨. 그는 당시 전두환(육사 11기) 군부독재 정권에 의해 파견된 낙하산 인사라는 데에 이견을 달 이가 없었던 게 사실이다. 이런 정치적 배경을 감안했을 때 H 총영사는 외교관 직분 뿐 아니라 미국 현지 물정 또한 어두운 편이라 학연-지연 등으로 연결된 동창생 혹은 지인들에게 크게 의존했었다는게 현 시점까지도 몇몇 지인들이 솔직히 전하고 있는 뒷이야기들이다.

아무튼 지난 83년 2월 LA에 부임한 H 총영사. 부임한지 약 1개월 뒤인 3월 초 제5공화국의 실력자인 ‘K 장군(육사 11기생)’의 LA 방문행 이후부터 괴이한 소문에 휩싸이게 된다.

이같은 소문은 해를 넘겨 약 1년여 가까이 LA 장안을 들썩이게 만들었는데, 그 골자는 한마디로 ‘H총영사 주도 하에 이뤄진 미성년자 매춘 스캔들’로 요약된다.

특히 이같은 풍문은 H 씨의 LA총영사 낙점 과정에 전두환-노태우 육사 동기생인 K 장군의 입김이 파다했던 것으로 뒤늦게 확인되면서, 사실상 그 내용이 100% 사실일 가능성에 무게가 실렸던 것이다.

이에 ‘미성년자 매춘 파문 스캔들’의 진위를 파악하고자 <선데이저널> 취재팀은 사실탐문 추적을 오랜기간 펼쳤고, 여러 루트를 통해 충격적 사실들을 확인했다. 아울러 지난 84년 1월 23일에는 마침내 한 ‘제보자(피해자의 친구)’로부터 결정적 증언 내용을 확보해 녹음 테이프까지 보관해둬는 성과를 거두게 된다.

이렇듯 제보자의 증언 내용과 취재팀의 사실탐문 과정을 비교한 결과 거의 그 내용은 일치하고 있었다.

“K 장군이 나성길에 오른다고 하니 H 씨는 보은차원에서 하늘같은 선배(?)를 융숭히 대접하기 위해 동창생과 지인들의 도움(?)을 얻어 성접대 여성들이 낀 술자리를 마련했다”는 것이다.





그 제보내용을 좀 더 상세히 소개하자면 가히 충격적이다. “베버리 블루버드-버질 선상의 한 아파트에 마련된 밀실 자리에는 미성년자인 18세 교민소녀 2명, 1명의 백인소녀 등 3명이 동원돼 K장군, H총영사, 단체장 J씨, 모 언론사 간부 S씨(경호원 2명 대동) 등의 술시중을 들었으며, 결국 이날 은밀한 성관계로까지 이어졌다”는 내용을 담고 있었다.


적반하장 H총영사 ‘LAPD-FBI’에 고발


사실 이 날의 은밀한 술자리가 외부로 발각됐던 것은 이른바 ‘접대비(?)’로 약속된 1인당 500달러의 금액이 지불되지 않은 까닭에서 출발했다. 한마디로 1급 비밀이 외부로 노출된 것 자체가 ‘자업자득’의 결과를 스스로 자초했던 셈이었다.

이날 뜬금 없이 사기 아닌 사기를 당한 미성년자 교민 소녀들은 속앓이 끝에 불만을 서서히 주위에 털어놓기 시작했고, 이같은 하소연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풍문으로 확산되는 과정에서 <선데이저널> 취재팀 레이다망에까지 포착됐던 것이다.

한가지 중요한 사실은 <선데이저널>이 취재를 끝마쳤다는 사실을 감지한 LA 총영사관 측은 안기부 모 영사를 동원해 가면서까지 당시 ‘국가적 차원의 선처’를 호소하는 등 기사보류를 줄기차게 요청했다는 점이다.

오히려 충격적인 것은 이처럼 기사의 출고를 막기 위해서 <선데이저널> 측과 지속적 협상을 벌이는 등 안간힘을 쓰는 이면에서 LAPD와 FBI의 공조수사를 의뢰를 감행해 소위 ‘함정’을 파는 이중행각을 벌였다는 점이다.

H 총영사의 고교 동창생이자 술자리에 동석했던 J씨는 해당기사 출고 직전 본보 발행인과의 긴급 만남을 요청해 갑작스레 거액의 ‘금전타협’을 제시하는 등 수사기관과 함께 몰래 함정을 파놓는 파렴치 행각도 스스럼 없이 자행했던 것이다.

이렇듯 우여곡절을 거쳐 <선데이저널>은 전격 기사화를 단행했는데, 결국 기사가 출고된지 채 이틀도 지나지 않은 5월 29일 <선데이저널> 사무실에는 LAPD와 FBI 수사관 4명이 조사요청을 의뢰하는 전화가 걸려와 이에 응하는 해프닝도 발생했다.





이에 그 전모를 파악한 결과 H 총영사가 ‘성접대 파문 스캔들’이 끝내 기사화되자 앙심을 품고 ‘사기-공갈-협박혐의’로 <선데이저널>을 해당기관에 고발조치함에 따라 양측의 의견을 취합하는 차원에서 수사기관의 방문조사가 이뤄졌던 것이다.

아울러 H 총영사는 <선데이저널>의 사실 확인기사를 마치 ‘날조기사’라고 본국 정부에 보고하는 등 철면피 행각을 펼치는 한편, 당시 절찬리에 판매되던 본지를 수거(매수)하는 등 판매 방해행위까지 일삼았다.

한편 ‘미성년자 성매매 스캔들’ 등으로 물의를 일으킨 H 총영사는 이듬해 임기를 채우지 못한 채 사실상 불명예 송환되는 결과를 낳았다. 따라서 이러한 <선데이저널>의 심층 폭로기사로 촉발된 당연지사 결과물을 놓고 H 총영사는 두고두고 분노를 표출했으며, 이러한 연장 선상에서 최측근인사로 훗날 LA 한인회장 직에까지 오른 이기명 씨를 앞세워 제2의 복수전을 꾀하는 무리수로 이어졌던 것이다.


33개 로컬단체 동원 FBI 수사의뢰














▲ 젊은 시절의 연훈 발행인
지난 1986년 <선데이저널>은 또 한차례 FBI 수사 선상에 오르는 위기를 겪게 된다.

이번 사건의 발단은 그간 로컬 한인사회에서 전두환 독재정권과도 상당한 친분관계를 유지하는 등 앞서 퇴출된 H 총영사의 최측근 인사로 꼽혀왔던 이기명 씨가 LA 한인회장에 당선된 뒤 발생했다.

LA 한인회장 직에 오른 이기명 씨는 돌연 “<선데이저널>이 무려 100만 달러가 넘는 돈을 갈취했다”는 음해 내용으로 FBI에 수사를 의뢰함으로써 약 60여명에 달하는 로컬 인사들이 본지 발행인과의 친분을 이유로 조사를 받게 되는 등 황당한 결과를 초래했던 것이다.

더군다나 당시 이씨는 LA 로컬 33개 단체를 동원(LA 한인상의 참여거부)해 기자회견을 자청함으로써 미주 한국일보-중앙일보 등 양대 일간지까지 포섭해 해당 내용을 1면 톱기사로 다루는 등 신출귀몰한 언론플레이 능력을 발휘해 눈길을 끌기도 했다.

결국 이 모든 공작은 FBI에 의해 전혀 사실무근으로 혐의 없음이 밝혀짐으로써 <선데이저널>에 대한 무수한 음해공작들에 대해 오히려 확실하게 누명을 벗게 되는 결과를 낳았다.


<제4화 ‘구속에서 풀려난 발행인…복간을 시작하다’-다음 호에 계속>






























▲ 지난 1987년 <선데이저널>은 심층취재를 통해 ‘신동아그룹 최순영 회장과 통일교 문선명 교주간의 수상쩍은 밀월관계’를 집중해부하는 시리즈 기사를 다뤘다. 이러한 시리즈 기사는 지난 1988년 2월 연 훈 발행인이 전격 구속되는 결과를 낳았다.


서슬 시퍼런 군부독재 정권 하에서 반군부독재 언론활동을 펼쳤던 <선데이저널> 연 훈 발행인은 해외 반정부 요시찰 인물로 분류돼 한국 입국이 통제되는 등 알게 모르게 고초를 겪어야 했다.

그러나 지난 86년부터 서서히 해외 반정부 인사들에 대한 탄압이 해제되면서 발행인은 민주화 항쟁의 현장 취재차원에서 DJ-YS와의 인터뷰 등을 꾀하는 등 과감히 한국행에 오르곤 했다.

또한 1987년 6.29 선언 이후부터 해외 반정부 인사들의 대한 출입국이 보다 자유로워지는 결과를 낳자, 발행인은 재벌기업과 사이비 이단 종교단체 등에 대한 심층취재를 현장에서 철저히 취재하는 열의를 나타냈다.

특히 철저한 인터뷰 등을 통해 야심차게 준비했던 심층기사인 ‘신동아 그룹과 통일교의 밀월관계’ 보도는 연 훈 발행인에게 결과론적으로 뼈아픈 상처를 남겼다.

‘현대판 바벨탑은 무너지는가’라는 제하의 심층기사는 주로 신동아그룹 최순영 회장의 가족들과 통일교 문선명 교주간의 얽히고 설킨 관계를 집중적으로 파헤쳤고, 그 과정에서 여의도 63 빌딩의 불법 인허가 건축 등을 고발한 초대형 기사였던 것이다.

결국 이런 시리즈 기사에 부담을 느낀 신동아그룹 최순영 회장은 직접 발행인에게 해명성 인터뷰를 요청했고, 이에 멋모르고 한국행에 올랐던 연 훈 발행인은 영문도 모른 채 인터뷰 약속장소에서 전격 체포돼 구속되는 아픔을 겪어야 했다.

0.8평에 불과한 독방에서 10개월여간 구속생활을 감수한 연 훈 발행인. 평소 친분관계가 두터웠던 DJ(당시 평민당 총재)는 조승형 비서실장을 변호인으로 선임해 주는 선의를 베푸는 한편, 발행인을 양심수 명단에 포함시켜 석방을 촉구하는 의리를 과시한 일을 널리 잘 알려진 일화다.

한편 연 훈 발행인의 난데 없는 구속으로 <선데이저널>은 부득이하게 약 1년여 가까이 휴간됐으며, 구속에서 풀려난 발행인이 미국으로 복귀해 수습을 거친 지난 1989년 3월에 이르러서야 복간호(제227호)를 재개하는 재기에 성공할 수 있었다.






















▲ <선데이저널>이 본국의 대기업인 대한항공(KAL)의 비리를 고발한 ‘애국의 날개인가? 매국의 날개인가?’라는 제하의 기사에 불만을 품은 대한항공 조중훈 회장은 32개 항목에 걸친 정정보도를 요구하는 등 600만 달러 규모의 배상소송을 제기했다. 결국 이 법정싸움에 대해 법원은 사실보도를 고수한 <선데이저널>의 손을 들어줬고, 부득이한 법정밖 합의를 통해 사안이 일단락됐다.

<선데이저널>은 창간 이후 30여년 역사를 거치는 동안 수건의 굵직굵직한 법정소송에 휘말리는 등 파란만장한 한편의 드라마를 연출했다.

지난 1985년 3월 제74호를 필두로 연재된 ‘대한항공의 실상과 허상-애국의 날개인가? 매국의 날개인가?’라는 제하의 기사는 당시 현지 로컬 여행사를 상대로 무리한 담보를 요구하는 등 악덕횡포를 펼치는 본국 대기업에 대한 사회고발성 내용을 담고 있었다.

그러나 대한항공 측은 당시 ‘연재 시리즈 기사물’을 게재하는 <선데이저널>의 취재 정신을 두려워했던 탓인지 “연재물을 중단해 달라”는 취지를 담아 정정보도를 요청하는 동시에 소송제기 가능성으로 으름장을 놓았다.

결국 이에 불복해 시리즈 연재물을 다뤘던 <선데이저널>을 상대로 대한항공 측은 당시로서는 천문학적 금액이라 할 수 있는 600만 달러 피해보상 소송을 제기했고, 오랜 법정싸움 끝에 ‘사실보도’에 충실했던 <선데이저널>의 손을 들어준 법원의 판결에 따라 양측이 법정밖 합의를 보는 결과를 낳았다.

이밖에도 <선데이저널>은 미주 지역에서 최대 공룡언론으로 자리잡은 모 대형 언론사의 비리 등을 고발하는 기사를 연재함으로써 끝내 1,000만 달러 규모 배상소송에 휩싸이기도 했다.
이 언론사와의 힘겨운 법정싸움 또한 법원 측이 언론사로서의 역할을 고수한 <선데이저널>의 보도를 정당하게 판단함으로써 법정밖 합의로 양측이 화해하는 선에서 마무리됐다.

이와 관련 연 훈 발행인은 “돌이켜보면 두 소송 모두 법정밖 합의로 원만히 해결됐지만, 사실 엄청난 금액의 변호사비를 충당할 수 없어 중간합의로 결말을 볼 수밖에 없었다”며 다소 싱거웠던 결말에 대한 아쉬움도 뒤늦게 토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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