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물연구> 문선명 통일교 총재 사망 외신반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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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교 창시자인 문선명 총재가 지난3일 새벽 통일교 성지인 경기도 가평에서 사망하자 한국은 물론 미국 등 외국에서도 이를 신속하게 보도했다. AP통신, AFP통신 그리고 로이터 통신은 문 총재의 사망 사실을 속보로 전했다. 특히 문총재가 전력 투구해 인수한 미국 수도 워싱턴DC에서 발행 되는 워싱턴 타임스 (WT)는 문 총재가 이날 오전 2시께 타계했다고 보도했다. 워싱턴타임스는 일요일인 2일(현지시간) 문선명 총재의 사망소식을 일단 인테넷에 거의 6쪽에 달할 정도로 특집 으로 꾸며 비교적 상세하게 전하며 애도의 뜻을 밝혔다. 워싱턴타임스와 경쟁지인 워싱턴 포스트 (WP)지도 문 총재의 사망소식을 비교적 비중있게 다뤘다. 문 총재의 사망은 미국 정계에도 상당한 영향을 주고 있다. 하지만 통일교는 막대한 재산을 두고 한국측과 미국측 운영진간에 갈등도 표면화 될 것으로 종교분석가들은 전망하고 있는 가운데 실제로 7형제들간의 헤게모니 전쟁이 치열하게 불붙고 있다. 7형제들을 둘러싼 ‘왕자의 난’에 대해 통일교 붕괴의 조짐까지 이어질 우려의 시각이 팽배하다. <선데이저널>이 외신을 중심으로 비쳐진 향후 문제점들을 집중 점검해 보았다.


<편집자주>








미국정가의 1번지 언론이라고 불리는 워싱턴 포스트지는 다른 언론과는 달리 문선명 총재를
“Mr. Moon(문 선생)”이라고 칭했다. 평소 문선명 총재와 통일교를 비판적 시각으로 보도했던 워싱턴 포스트(WP)지는 이날 문 총재의 사망 소식을 AP통신과 경쟁지인 워싱턴 타임스(WT)가 보도한 내용을 함께 보도했다.
특히 WP는 에릭 웸플 컬럼니스트의 칼럼을 통해 문 총재와 미국과의 인연을 소개하면서 문 총재는 미국에 통일교를 진출시켜 정치권과도 인연을 맺었으며, 특히 미국 정계 보수층과 가까워 닉슨 대통령 당시 백악관에도 초청을 받아 화제가 되기도 했으며1982년에는 탈세혐의로 연방교도소에서 복역하기도 했다고 보도했다.


종교 빙자한 기업가에 불과

무엇보다도 지난 1982년 뉴욕 매디슨 스퀘어 가든에서 2,075명의 커플의 결혼예식을 개최해 미국과 세계에 화제를 뿌리기도 했다. 문 총재는 1970년대 베트남 전쟁으로 침체된 미국사회에 새로운 가치관을 통일교 이념으로 소개하여 진출했던 인물이다. 미국내 통일교 신도들 중 여성들은 꽃을 팔던가, 땅콩이나 초를 팔아 통일교 자금을 모았다는 것도 화제였다.

미국정치권에서 가장 화제는 통일교가 워싱턴 포스트지에 대항하기 위해 경쟁지 워싱턴 타임스 지를 1982년에 창간한 것이다. 올해로 창간 30주년을 맞는 워싱턴 타임스지에 통일교 측은 수십억 달러를 투입했는데, 전직 신문사 간부에 따르면 매년 3,000만 달러를 투자한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의 전직 대통령인 로널드 레이건이 워싱턴 타임스지를 매일 읽었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1980년대 통일교는 니카라구아 내전에도 관여해 반군을 지원하기 위해 모금운동을 펼치기도 했으며, 정치모금 단체인 American Freedom Coalition에 2,400만 달러를 헌금하기도 했다.
통일교는 지난 1981년 영화계도 투자해 영국의 일류배우인 로렌스 올리비에를 맥아더 장군으로 분해 ‘인천’이란 영화를 4,600만 달러를 투입해 화제를 모았다.

한편 미국의회는 통일교의 미국사회에 영향을 주는 것을 예의 주시해 한 때 통일교와 한국의 중앙정보부와의 커넥션을 두고 조사하기도 해 논란을 부추기도 했다. 통일교의 영향력이 크게 떠오르자 한 때 미국 정치권에서는 ‘통일교의 승인이 없으면 의원이 될 수 없다’라는 소문까지 나돌았다.


평가 엇갈리는 도덕적 가치


통일교 소유의 워싱턴 타임스(WT)는 지난 2일(서울은 3일 새벽) `타임스 창간인 문선명 총재 92세로 별세’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예지력 있는 기업인 이자 자유언론의 투사인 문 총재는 미국, 일본, 한국을 비롯해 남미와 아프리카, 유럽 등의 여러 국가에서 신문과 잡지, 전자매체 등을 창간했다”고 소개했다.
WT는 문 목사의 출생에서 성장 과정, 결혼, 별세에 이르기까지의 생애와 함께 공산주의 반대 운동, 문화전사(cultural warrior)로서의 활동, 언론분야의 업적 등을 자세하게 소개했다.
토머스 P. 맥더비트 WT 사장은 “지금 내 마음을 말로 다 전달할 수 없다”면서 “문 총재는 미국을 사랑했다. 그는 자유로운 세상에서 사람들에게 정확한 정보와 도덕적 가치를 전달하기 위해 강력한 자유 언론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믿었다”고 추모했다.


조지 H.W. 부시 전 대통령의 아들이자 미국 촛불재단 이사장인 닐 부시는 “문 총재는 미국에서 논란이 있는 사람이지만 각자 다른 신념을 지닌 사람들을 하나로 만드는 마음을 가진 사람”이라고 평가했다.
통일교 창시자인 문선명 총재가 3일 새벽 통일교 성지인 경기도 가평에서 별세했다고 통일교 관계자들이 밝혔다. 향년 92세. 통일교 관계자들은 문 총재가 이날 가평의 자택 근처에 있는 청심 국제병원에서 운명했다고 전했다.

문 총재는 지난달 폐렴으로 서울성모병원에 입원했다가 8월 31일 병원을 떠나 청심국제병원으로 옮겼다. 안효열 통일교 대변인은 문 총재의 부인 한학자 여사와 자녀들이 임종을 지켰다고 발표 했다.
통일교 창시자인 문선명 총재가 3일 새벽 통일교 성지인 경기도 가평에서 별세했다고 통일교 관계자들이 밝혔다. 향년 92세. 통일교 관계자들은 문 총재가 이날 가평의 자택 근처에 있는 청심국제병원에서 운명했다고 전했다.













 ▲ 통일교의 합동 결혼식 장면


문 총재는 지난달 폐렴으로 서울성모병원에 입원했다가 8월 31일 병원을 떠나 청심국제병원으로 옮겼다. 안효열 통일교 대변인은 문 총재의 부인 한학자 여사와 자녀들이 임종을 지켰다고 발표 했다.

문선명(92) 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 총재가 사망(통일교에서는 ‘성화’로 표현)하면서 부인 한학자 (69)여사에게로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한 여사는 1943년 1월6일(음력) 평남 안주에서 태어났다. 1960년 문 총재와 결혼(통일교에서는 성혼), 7남6녀를 낳았다. 이 가운데 4남이 세계기독교 통일신령협회 유지재단 문국진(42) 이사장, 7남이 통일교의 수장인 문형진(33) 세계회장이다.

한 여사는 미국 뉴저지 브룸필드대, 브리지포트대, 타이완 중국문화대, 키르기스스탄 국립사범대 와 국립과학아카데미, 러시아 우퍼볼타대 등에서 명예박사학위를 받았다.
문 목사가 벌여온 세계평화 관련사업을 헌신적으로 뒷받침해 온 동반자이기도 하다. 1982년 세계 언론인회의 강연을 시작으로 30년 간 세계평화와 참가정 실천을 위한 운동을 펼쳐왔다. 1990년 고르바초프 당시 대통령 초청으로 소련을 방문, 세계평화를 위한 협력과 문화교류를 했다. 1991년 12월 북한을 방문, 김일성 당시 주석과 남북교류의 물꼬를 텄다.
1992년 이후 미국, 일본, 중국, 러시아 등 세계 113개 도시에서 ‘세계평화와 여성의 역할’을 주제로 강연했다. 1993년 미국연방의회, UN본부, 일본국회, 러시아 크렘린궁에서 강연했다. 1997년부터 120개국을 순회하면서 ‘참가정 실천 지도자대회’와 ‘여성평화운동’을 전개하고 있다. 1994년 3월 미국 하버드대 강연을 시작으로 100개 대학 순회강연도 했다.

한 여사는 글로벌 단위로 참가정운동, 여성인권운동, 청소년순결운동, 세계 구호사업과 평화운동 을 주도하고 있다. 사단법인 세계평화여성연합 총재, 자원봉사 애원 총재, 재단법인 세계평화 통일가정연합선교회 이사장이다. 지난 3월15일 선문대, 선화예중고, 선정중고, 선정관광고, 경복초교, 선화유치원 등 8개 학교를 거느린 학교법인 선문학원 제7대 이사장으로 취임했다.


‘왕자의 난’에 세계가 주목


연합통신은 통일교 창시자인 문선명(92) 총재가 3일 새벽 별세하면서 통일교를 비롯한 재단의 향방과 후계 구도에도 관심이 쏠리고 있다며 통일교는 최근 소위 ‘왕자의 난’으로 불린 형제간 다툼으로 한바탕 술렁였다고 보도했다.
현재 고인의 4남과 7남이 통일그룹과 통일교를 나눠 맡고 있어 사실상 후계구도가 갖춰지긴 했지만 다툼의 불씨가 완전히 사그라진 것은 아니다. 문 총재는 교회를 설립한 1950년대부터 통일교의 최고위직을 유지했으며 선교 활동 외에도 고도의 사업 수완으로 다양한 사업체를 운영했다.
장남과 차남이 먼저 세상을 떠나는 바람에 사실상 ‘장남’인 3남 문현진(43) 씨는 애초 유력한 후계자로 이름이 오르내렸지만 후계 구도에서 밀려난 형국이다. 이는 문 총재의 ‘메시아론’에 대한 관점 차이 때문이라는 해석이 유력하다. 현진 씨의 빈자리는 이미 다른 형제들이 채웠다.


4남 문국진(42) 씨는 통일교 재단 이사장 겸 통일그룹 회장을 맡아 한국•일본 조직을 장악 했고, 형제 중 유일하게 목회자의 길을 걷는 7남 문형진(33) 목사는 2008년 4월 통일교  세계회장에 임명 됐다.
종교적 측면에서 사실상 후계자인 문 목사는 미국 뉴욕에서 태어나 하버드대 철학과를 거쳐 하버드 신학대학원에서 비교종교학을 전공했다.
문 목사는 2007년 12월 청파동 통일교 본부교회 당회장을 맡아 목회 활동을 시작했다. 청파교회는 문 총재가 직접 목회를 한 통일교의 상징적인 교회라는 점에서 당회장 취임 시부터 문 총재의 후계자로 지목됐다.

이런 가운데 형제간 헤게모니와 재산 문제 등에서 불거진 갈등은 결국 법정 소송으로도 이어졌다.
글로벌피스페스티벌(GPF) 재단을 이끄는 3남 현진 씨는 최근 어머니 한학자(69) 여사가 대표로 있는 재단을 상대로 240억원대 부당이득금 반환소송을 내 일부 패소 판결을 받았다. 작년 말에는 통일교 재단 측이 3남의 장인을 상대로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배임 혐의로 검찰에 고소 하기도 했다.
하지만 통일그룹 내부에서는 이미 후계구도가 사실상 갖춰진 만큼 문 총재의 유고라는 변수가 있다고 해도 큰 변화가 있지는 않을 것이라는 전망도 적지 않다.
통일그룹 한 관계자는 연합뉴스와 통화에서 “통일교 세계회장은 이미 막내아들인 문형진 목사가 맡아 온 만큼 큰 타격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통일교 총재직은 생전 고인의 언급에 따라 부인 한학자 여사가 물려받을 것으로 알려졌다.
2일(미국시간) 사망한 통일교 창시자인 문선명(92) 총재의 ‘종교적 후계자’는 고인의 7남 문형진 (33) 통일교 세계회장으로 사실상 낙점된 상태다. 7남6녀 중 유일하게 부친의 뒤를 이어 목회자의 길을 걷는 문 회장은 2008년 4월 통일교 세계회장에 취임했다.
문 회장은 미국 뉴욕에서 태어나 하버드대 철학과를 거쳐 하버드 신학대학원에서 비교종교학을 전공한 뒤 2006년 귀국했다. 이후 2007년 12월 통일교의 상징적인 교회이자 문 총재가 목회했던 용산구 청파교회 당회장으로 취임, 사실상의 후계자로 지목돼 왔다.
하버드대 재학시절 불교에 심취해 삭발하고 승복을 입고 다녀 세간의 주목을 받았고 종교지도자 달라이 라마와 작고한 전 조계종 총무원장 법장스님 등을 직접 만나는 등 이웃 종교를 이해 하는데도 노력한 것으로 알려졌다.

문 회장은 언론 인터뷰에서 “삭발하고 전통 두루마기 차림으로 가족 공식 모임에 나타나자 아버지께서 다른 사람들에게 ‘형진이를 핍박하지 마라’고 말하는 것을 듣고 아버지께서 몸소 초교파적으로 생각하고 실천해왔음을 절감했다”며 “그때부터 통일교인이 됐다”고 전한 바 있다.
2010년 2월 ‘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 등의 다양한 명칭을 ‘통일교’로 통일했고 430여 개에 달하던 교회를 200개로 통폐합하는 등 변화를 시도하고 있다.
특히 작년 12월9일 방북해 문 총재와 북한 김일성 주석간의 만남 20주년을 기념한 데 이어 같은 달 24일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 조문을 위해 방북하는 등 대북 활동도 활발히 펼치고 있다.
하지만 법정 다툼으로 이어진 3남 현진(43) 씨와의 갈등은 여전히 풀어야 할 숙제다. ‘메시아’를 잃은 전 세계 300만 신도들을 다독여 이끌어나가는 것도 30대의 젊은 문 회장에게 주어진 과제 중 하나다.
네티즌 반응도 다양했다.

<어떻든, 종교를 통해 세계를 호령한 뛰어난 기인으로 평가한다.>면서 일부 네티즌은 <초월적인 이단아의 죽음, 인생은 무상 남가일몽이라 했던가.>라고 했다. 나름대로 “영웅”이라고도 했다.
<어쨋든 뛰어난 사람 영어도 못하면서 수많은 외국인을 신자로 삼은 한국의 영웅>이라는 평가도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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