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춘훈 정치칼럼(“박근혜 대통령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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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희 대통령의 리더십을 ‘항문기 고착증’ 이론으로 설명한 정신의학자가 있습니다. 한국사회병리연구소장 백상창 박사가 십 수 년 전에 쓴 글에 항문기 고착증(Anal Fixation Syndrome)얘기가 실려 있습니다. 박정희는 유아기 때 어머니의 젖이 없어 미음에 곶감을 갈아넣어 만든 일종의 이유식을 먹고 자랐다지요. 이 때문에 갓난이 때부터 만성변비로 고생하며 정신분석학적 이론인 항문기 고착증세를 보였습니다. 박정희 집권 18년은 국가최고 지도자의 이 항문기 고착증이 국정전반에 특징적 영향을 끼친 시기였습니다. 박정희 리더십의 요체인 고집스런 근대화 추진, 근검절약 정신과 완전주의적 청렴성, 강박적 반복확인, 항문기적 불신에서 오는 정보기관 활용 등 정치행태의 특징적 현상이 거의 항문기 고착증에서 비롯됐다고 백상창은 주장합니다.

박근혜는 열 살 무렵부터 이런 아버지를 대통령으로 따르고 존경하며, 청와대라는 닫힌 공간에서 살았습니다. 스물두 살 때부터는 죽은 어머니를 대신해 5년 동안이나 퍼스트 레이디 역할도 했습니다.  박근혜 스타일이라 할 권위적이고 독선적인 정치 행태, 완고한 원칙주의, 자신의 사고와 인식의 범위 내에서 모든 일을 독단적으로 재단하고 처리하는 불통의 리더십 등은, 어쩌면 ‘닫히고 갇힌’ 박정희식 항문기 고착증의 의사(疑似)증세인지도 모릅니다. 여기에다 자식이 이성의 부모에 더 집착하는 에디푸스 콤플렉스까지 더해져, 아버지 얘기만 나오면 방어적으로 반응하는 박근혜식 ‘착한 딸 신드롬’까지 형성됐습니다, 집권여당의 대통령 후보자리까지 거머쥔 박근혜의 오늘이 있기까지는  아버지 박정희 대통령의 존재가 절대적 영향을 미쳤습니다.

헌정사상 최초의 여성 대통령, 그것도 선친의 대를 이은 2세대통령의 탄생이 눈에 보이는 듯 했습니다. 두어 달 전 까지만 해도 그랬지요. 심상찮은 안철수 바람에도 불구하고 박근혜가 결국은 대통령이 될 것이라고 믿는 국민이 대다수였습니다. 헌데 지금은 상황이 달라졌습니다.  ‘박근혜는 안될 것이다, 돼서는 안된다’라는 여론이 만만찮습니다. 불과 한 두 달 사이에 일어난 대반전입니다. 안철수와 선두자리를 놓고 엎치락뒤치락 하던 여론조사 지지율도, 지금은 ‘뒤치락’쪽으로 주저앉았습니다. 5ㆍ16과 유신, 인혁당 사건, 그리고 엊그제 정수장학회 관련기자회견에서 보인 박근혜의 박제화된 역사인식과, 박정희 프레임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정서 고착증, 문제의 본질을 꿰뚫어 포착하는 통찰력의 부족등 지도자로서의 자질부족이 여실히 드러났습니다. 박근혜가 지금같은 모습으로 비틀대면 대통령은 언감생심입니다. 그리고 그의 대권 꿈을 앗아갈 상대는 안철수도 문재인도 아닌, 바로 아버지 박정희입니다.


안철수, 화장실서 웃는다.


요즘 화장실에서 웃는 대선후보는 안철수입니다. 어떤 정치학자는 박근혜가 용장(勇將), 문재인이 덕장(德將)이라면, 안철수는 운장(運將)이라고 우스갯소리를 했습니다. 그에게 운이 따르고 있다는 얘기입니다. 지난 한 달사이 안철수는 양자대결에서 박근혜를 줄곧 눌렀습니다. 국민 지지도에서 문재인은 아직 안철수에게 족탈불급입니다. 예상대로라면 안철수는 지금 진행 중인 국회 국정감사에서 호된 검증공세를 받고 휘청거려야 했습니다. 헌데 서해 북방한계선(NLL)과 정수장학회 이슈가 터지면서, 싸움은 박근혜 대 문재인, 새누리당 대 민주당의 치킨게임으로 흘러갔습니다. 안철수 검증은 완전 뒷전으로 밀렸지요. 안철수의 선전은 그의 능력 보다는 박근혜 문재인의 졸전에서 얻은 반사이익 덕입니다. 유권자들의 반사적 지지, 즉 네거티브 서포트가 지지도 1위 안철수의 튼실한 버팀목이 되고 있습니다.



박근혜는 지금 제 표를 제가 갉아먹고 있습니다. ‘착한 딸 신드롬’에서 연유된 박제화되고 삐뚤어진 역사인식이 화근입니다. 그는 여당의 대선후보가 된 최근까지도 아버지가 남긴 부(負)의 정치유산인 5.16과 유신 등에 대해 줄곧 ‘구국의 결단’ ‘불가피한 최선의 선택’이라 옹호했습니다. 박정희 시대에 저질러진 대표적 사법살인인 인혁당 재건위 사건에 대해서도 “두개의 판결이 있었다”며 국가범죄 사실을 부인했습니다. 지지율이 떨어지자 한 달 이상 뜸을 들이더니, 마지못해 사과를 하기는 했지요. “5.16과 인혁당 사건 등은 헌법가치가 훼손되고 대한민국의 정치발전을 지연시키는 결과를 가져왔다”고 처음으로 고개를 숙였습니다.
이 사과 이후 까먹었던 지지율을 조금씩  되찾나 싶었는데 엊그제 또다시 일을 냈습니다.  정수장학회 문제에 대한 기자회견이라는 걸 열고는 문제를 갈무리하기는커녕 더 악화시키는 ‘대형사고’를 쳤습니다. 장학회를 박정희정권에 강탈당했다고 앙앙불락하는 피해유족과 야당은 벌떼처럼 들고 일어났고, 대다수 국민들도 ‘유신의 딸’의 이 못 말리는 역사 역주행을 떫은 감 씹은 얼굴로 바라보고 있습니다. 역시 과거사 문제에 대한 그의 뿌리 깊은 편견이 문제입니다. 박근혜 캠프는 다시 표 떨어지는 소리로 시름이 깊습니다.


박근혜 고전하면 야권단일화 깨질 수도


정수장학회 이슈는 진작부터 박근혜의 대선가도에 돌출할 최대의 악재로 꼽혀왔습니다. 새누리당 선대위와 핵심 참모, 법 이론에 밝은 당내 율사등 공식기구에서 미리미리 ‘모범답안’을 만들어 놨어야 했습니다. 새누리당 선대위는 내부논의를 거쳐, 나름의 해법을 마련한 것으로 전해집니다. 그러나 당 공식기구의 이 해법은 박근혜의 책상서랍 속에 처박혀졌습니다. 박근혜는 걱정하는 측근들한테 “내가 알아서 할 테니 맡겨 달라”고 큰소리를 치고는, 그만 사고를 쳤습니다.

박근혜를 에워싸고 있는 이른바 ‘문고리 권력’에 대해, 최근 일련의 사태를 계기로, 거센 비판이 일고 있습니다. 박근혜가 총애하는 최측근 비서 4인방…이재만 이춘상 정호성 안봉근 등을 바라보는 당내외의 시선이 싸늘합니다. “박근혜는 국회의원 등 다른 사람은 모두 자기정치 하느라 믿을 수 없고, 비서 4인방만이 자기를 위해 헌신한다는 생각이 너무 강해, 이들과만 상의한다. 이러다 보니 소통이 안 되고 문고리 권력이 정치를 흔드는 비정상적인 박근혜식 정치가 계속되고 있다”고, 엊그제 한겨레신문은 보도했습니다.

박근혜의 지지율은 지금 대선판에 뛰어든 이래 최악입니다. 정수장학회 관련 기자회견 후(10월22~23일) 실시된 여론조사에서 그는 처음으로 야권의 두 후보 안철수와 문재인 모두에게 패배하는 수모를 당했습니다. <리서치 뷰>의 조사에서 박근혜는 안철수한테 50대 45, 문재인한테 48대 45로 뒤졌습니다. 과거사와 관련해 한두 번만 더 패착(敗着)이 나오면 선거는 해보나 마나라는 위기감이 새누리당을 짓누르고 있습니다.
박근혜의 추락은 12월 대선을 예측불허의 익사이팅한 선거판으로 변모시킬 가능성이  있습니다. 바로 야권단일화가 무산되고, 선거가 3자대결로 치러지는 상황입니다. 3자 구도에서 박근혜가 훨씬 앞서가면 문재인과 안철수는 ‘반드시’ 단일화 동맹을 합니다. 그러나 박근혜가 쳐지면서 세 사람의 지지율이 엇비슷해 지면, 승리를 예감하는 문재인 안철수 어느 쪽도 양보하기가 어려워집니다. 야권 단일화가 물 건너가고 세 사람이 각개약진하면서 3자대결을 벌일 가능성은, 예상보다 높습니다. 이 경우 누가 이길지는 현재로서는 가늠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독재자 아버지의 덫에 갇힌 박근혜의 대권야망은 과연 이대로 꺾일까요?  그가 스스로 빠져든 과거사의 덫이 오히려 전화위복이되, 33년 만에 다시 청와대의 앞뜰을 밟게 될까요? 글자 그대로 한치 앞이 보이지 않는 대선정국입니다.

<2012년 10월 2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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