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희대통령이 꿈꾸던 세상을 만들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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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정희 대통령 서거 33주기 추모식에서 참석자들이 헌화하고 있다.
박정희 대통령 서거 33주기 추모식이 지난 26일 오전 11시30분 LA한국교육원 강당에서 대한민국민족중흥회(미주회장 김정수)와 정수회미주중앙회 (회장 이강원) 공동주최와 박정희대통령-육영수여사 기념사업회 주관으로 약 250명의 많은 한인 인사들이 참석한 가운데 엄수됐다.
이날  추모식에서 참석자들은 박 대통령이 비통하게 숨지기 전 삽교천 공식행사에서 남긴 연설 문을 들으면서 추모의 분위기를 더욱 숙연케 했다. 이날 추모행사에는 박대통령 기념사업회 관계자 이외에도 동포사회에서 많은 사람들이 참석해 생전의 박 대통령의 업적을 기리며 헌화했다.
이날  이재식 교수의 사회로 진행된 추모식에서 김정수 기념사업회장은 개식사를 통해 “이제는 세계도처에서 박정희 대통령의 추모사업이 진행되고 있다”면서  “역사에서 조국근대화의 큰 별인 박 대통령의 정당한 평가가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리고 김 회장은 “박정희 대통령은 부정축재 환수 자금을 정권이나 자신의 개인적으로 사용하지 않았다”면서 “박 대통령은 여타 전직 대통령들처럼 치부를 하지 않은 대통령이다”라고 강조했다. 또 김 회장은 “최근 국내에서 정수장학회 를 두고 여러말들이 있다”면서 “이는 정치적인 음해성 공격이다”라고 반박했다. 특히 김 회장은 “노무현정권과 김대중정권 시절 북한에 제공한 자금을 환수해 ‘노무현 장학회’나 ‘김대중 장학회’라는 이름으로라도 장학사업을 벌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또 “정수장학회의 30% 지분이 있는 MBC방송은 불법 촟불시위를 주도하기도 했다”면서 “정수장학회와  5.16장학회가 더 이상 욕을 먹을 수 없다”고 강조했다.



이날 정성실 정수회 사무총장은 추모사를 통해 “박정희 대통령은 ‘하면된다’라는 신념으로 세간의 비난을 무릅쓰고 역사에서 시대적 사명을 추구한 선구자”라면서 “그는 조국근대화와 부국강병을 최우선과제로 실천한 지도자”라고 강조했다. 그는 “지금 국내에서는 일부 세력들이 지나간 역사를 배척하려고 획책하고 있다”면서 “더 한심스러운 것은 이분법적으로 박 대통령의 업적을 비하시키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정 총장은 “우리는 역사를 통해 박 대통령의 위업을 영원히 기억하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날 ROTC출신의 박홍기 재향군인회장도  추모사를 통해 자신은 4.19세대로서 원래 박정희 대통령에 대해 부정적 시각을 지녔으나 “박 대통령을 존경하게 된 것은 지도자를 잘만나야 국가가 발전할 수 있다는 신념을 가지면서 부터였다”면서 “당시 필리핀보다 낙후된 한국을 경제선진국 으로 발전시킨 박 대통령에게 고마움을 느낀다”고 말했다.

그는 “우리가 어려울 때 박정희 대통령을 생각하면 위기를 극복할 수 있다는 믿음을 갖게 했다”면서 “박 대통령이 남긴 지도력을 앞으로 우리나라는  노벨상 수상자도 더 많이 배출될 것”이라고 밝혔다. 그리고 박 회장은 “우리 모두가 박 대통령의 정신을 지니고 살아가자”고 강조했다.
이날  젊은세대 목회자인 한대명 목사는 추모말씀 순서에서 “나는 박정희 대통령이 다 옳았다고만 볼 수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다”면서 “하지만 그분의 잘못된 점을 버리고 좋은 점을 우리가 실천하는 것이 진정한 추모의 정신이다”라고 주장했다. 이어 그는 “위대한 사람을 추모하는 방법은 성서에서도 찾을 수 있고  책속에서도 배울 수 있다”면서 “잘못된 것을 되풀이 하지 말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마지막으로 한 목사는 “우리는 박정희대통령이 꿈꾸던 세상을 만들어 가야 한다”면서 “그 것이 우리가 그분을 진정으로 추모하는 정신이다”라고 말했다.
한편  이날 정양자 여성회장은 추모시를 통해 “5천만 우리겨레의 가난을 밀어내고 민족사에 금자탐을 세운 박정희 대통령이 이나라의 영원한 수호신”이라고 읊었다. 이강원 정수회미주회장 은 유족인사를 대신하면서 “지난 15년동안 미주에서 박정희대통령 추모행사에 참석하고  후원한 모든 분들께  감사한다”고 인사했다. 이날 추모식은 참석자들의 헌화로 막을 내렸다.














“박정희 대통령은 여론조사 1위 지도자”













 ▲ 사진설명
 ⓒ2005 Sundayjournalusa


2009년 8월, 여론조사 전문기관 ‘리얼미터’에서 국가발전에 가장 높게 기여한 대통령을 묻는 설문조사에서도 1위로 박정희 전 대통령(53.4%), 김대중 전 대통령(25.4%), 3위엔 노무현 전 대통령(12.4%)이 올랐다. 이어 전두환(2.2%), 윤보선(1.8%), 이승만(1.6%), 노태우(1.3%), 김영삼(1.3%), 최규하(0.5%) 전 대통령 순으로 집계됐다.

박정희 전 대통령은 대구경북(64.0%)과 대전충청(64.5%) 지역에서 많은 응답을 얻었다. 반면 박정희 전 대통령은 50대 이상에서 65.5%, 40대 59.4%, 30대 44.8%, 20대 36.7% 등 응답자의 연령이 높을수록 높이 평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2009년 영남대학교에서 여론조사 전문기관인 ‘리서치 앤 리서치’에 의뢰해 실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75.6%가 박정희 전 대통령이 대한민국 발전에 가장 큰 역할을 했다고 답했으며 이어 김대중(12.9%), 노무현(4.4%), 이승만(0.6%), 전두환(0.6%), 김영삼(0.5%) 전 대통령 순으로 나타났으며 응답자 중에서 72.8%는 ‘박 전 대통령에 대한 제대로 된 평가가 필요하다’고 답해 ‘아직 때가 아니다’(16.8%)를 크게 앞섰다.
2008년, 현대 경제연구원에서는 ‘정권별 선진화 기여 평가와 이명박 정부의 과제’라는 내용의 보고서를 내놓았는데 이 보고서에서는 153.6%를 기록한 박정희 정부를 대한민국 선진화에 가장 큰 기여를 한 정권으로 평가하였다. 이는 정권초 선진화 지수를 100으로 했을 때 정권 말에는 253.6를 달성했다는 의미로서 박정희 정부에 이어 전두환 정부 44.3%, 김영삼 정부 42.7%, 노태우 정부 36.5%, 김대중 정부 28.1%, 노무현 정부 23.8% 순이었다.

2010년 9월에 실시된 역대 대통령 신뢰도에 관한 여론조사에서 박정희는 34.2%로 1위로 나타났다. 2007년에 실시된 조사에서는 52.7%, 2009년에는 41.8%로 나타나 눈에 띄게 하락세를 보였다. 시사IN은 신뢰도 조사 결과에 대해 이명박 대통령의 경제발전 방식이 ‘박정희 향수’를 상당히 소진시킨 것으로 분석했다. 박정희에 대한 평가는 계층별로도 차이가 컸다. 40대 이상, 대구경북, 한나라당, 자유선진당 지지층에서 평가가 높았으며,20~30대 젊은층, 진보성향, 화이트칼라, 대학교 재학 이상의 고학력층을 중심으로 평가가 낮았다.
 2011년 리서치뷰가 조사한 여론조사에서 “전현직 대통령들 중 가장 호감가는 사람을 1명 선택해달라”는 질문에 박정희를 선택한 사람은 31.9%로 노무현 30.3%를 제치고 1위를 기록했다.


외국에서의 평가 1위


1999년 8월에는 미국 시사주간지 타임이 선정한 「20세기 아시아에서 가장 영향력있던 인물 20인」에 오르기도 하였다. 타임은 박정희에 대해 “비록 독재적 성향을 가졌지만 한국의 최장수 대통령으로 집권하면서 경제적 약체 국가를 산업강국으로 변모시켰다고 ” 평가했다. 타임이 선정한 인물들 중에는 인도의 마하트마 간디와 타고르, 중국의 마오쩌둥과 쑨원, 일본의 히로히토와 모리타 아키오, 싱가포르의 리콴유 등이 포함되어 있으며 그 밖에도 베트남의 호치민과 티베트 독립운동의 정신적 지도자 달라이 라마가 선정되었다.

싱가포르에서는 리콴유 전 수상이 박정희에 대해 “아시아에서 위기에 처한 나라를 구한 위대한 세 지도자로 일본의 요시다 시게루와 중국의 덩샤오핑 그리고 한국의 박정희를 꼽고 싶다, 오직 일에만 집중하고 평가는 훗날의 역사에 맡겼던 지도자”라고 평가하며 그를 극찬하였으며 독일 정부 국정교과서에서는 박정희를 “강력한 손으로 남한을 농업 국가에서 공업 능력을 가진 국가로 이끌어낸 지도자”로 평가하며 대한민국의 경제성장에 대해 타 국가들의 경제성장 과정과 비교하여 ‘기적’으로 평가하였다.

마하티르 빈 모하마드 전 말레이시아 총리는 “박 대통령은 매우 강한 지도자였으며 국부를 증진시킨 훌륭한 지도자”라고 평가하였으며 그가 추진한 ‘동방정책’ 또한 박정희 정권의 경제개발 정책을 벤치마킹한 결과였다고 한다. 훈센 캄보디아 총리는 2009년 6월, 제주도에서 개최된 한ㆍ아세안 특별정상회의에 참석하여 “캄보디아 경제발전을 위해 여러 사례를 연구했는데 박 전 대통령 모델을 가장 많이 따르고 있다”고 말했다.
2004년, 북한의 김정일 조차 여러 차례에 걸쳐 박정희를 언급하면서 눈길을 끌었다. 김정일 위원장은 KBS 박권상 사장에게 KBS가 제작한 ‘영상 실록’ 가운데 박정희 편을 구해달라고 부탁했으며 박정희에 대해 “박 대통령의 평가는 후세가 할 일이지만 그 시대, 그 환경에서는 유신인지 뭔지 그런 길밖에 없었다. 민주화도 무정부적인 민주화는 좋지 않다”며 박 전 대통령을 높게 평가했고 2002년에는 박정희의 딸인 박근혜 한나라당 의원을 평양에 초청하여 영화 ‘실미도’의 소재가 된 청와대 습격사건에 대해 사죄하며 “남한을 방문하면 박 대통령 묘소를 찾아가겠습니다. 그것이 예의입니다”라고 말하였다.

에즈라 보겔(Ezra Vogel) 교수는 조선일보와의 인터뷰에서 박정희에 대해 각각 “중화학공업 정책 이후 그가 폭력을 사용하고 나라를 경찰국가로 만들었을 때 우리는 매우 화가 났고 흥분했었다. 하지만 동시에, 박정희가 없었더라면 오늘날의 한국도 없었을 것으로 생각한다.”고 주장하며 동시에 “큰 발전을 이룩한 아시아의 많은 나라에서 그 변화를 가능케 했던 독재적인 리더가 있었다. 1920년대 일본의 메이지 유신(明治維新)이 그랬고, 대만과 한국이 그랬다.


북한 김정일도 높게 평가


중국은 덩샤오핑 치하에서 발전을 이뤘다. 모두 독재적이었고, 중앙집권적이었다. 먼저 민주화부터 하라는 미국인들의 충고는 성공하지 못했다.”며 개발독재의 불가피성을 지적했다.
기미야 다다시는 박정희를 복잡한 과정이 들어있는 민족주의 사상을 가진 인물로 정리했다. 그는 박정희가 사회주의자인 일부 인물을 경제적으로 미국에서 자립하고 공업화하는 데에 등용했다고 기록했다.[250] 2006년, 후진타오 중국 주석은 당시 중국을 방문한 박근혜 전 대표와 면담하며 “박 대표의 부친인 박정희 대통령이 주창한 새마을운동을 깊이 공부했다”고 발언하였다.
이밖에도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1990년대 초반 레닌그라드대 총장 국제문제 보좌관으로 재직할 당시 국가가 대기업을 키우고 경제발전을 주도했던 한국 경제의 발전 방식에 관심을 보였고 한국 외교관을 통해 “한국어 책이든 외국어 책이든 박정희 전 대통령에 관한 책을 있는 대로 구해달라”고 요청하기도 하였다. (출처: 위키 백과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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