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수는 아직도 착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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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임춘훈 (언론인)

지난해 10월 서울시장 보궐 선거 때 안철수는 박원순에게 후보 자리를 양보했습니다. 지지율 90%짜리가 5%짜리에게 기꺼이 양보를 했다고 해서, ‘착한 안철수의 통 큰 양보’ 라는 말이 한때 인구에 회자됐습니다. 서울시장 자리는 잃었지만 안철수는 그 일로 일약 전국적 스타로 몸값을 불렸습니다. 그 후 새 정치로 세상을 바꾸자는 ‘안철수 현상’이 일어나면서, 그는 마침내 대통령 선거판에까지 뛰어 들었지요. 의사가 되려다 진로를 바꿔 컴퓨터로 입신한 머리 좋고 야심 많은 한 지식인의 파천황적 세 번째 변신입니다.
여당의 ‘준비된 후보’ 박근혜와, 100만인의 경선투표로 선출된 제1야당 후보 문재인과 3파전을 벌이면서,  무소속 후보 안철수는 선전하고 있습니다. 3자대결에서는 박근혜에 이어 2위, 양자대결에서는 박근혜에 ‘호각 우세’를 보이며, 선두를 지키고 있지요. 민주당 후보 문재인은 계속 안철수한테 열세입니다. 정권교체를 열망하는 무당파와 중도층, 그리고 새누리당에 대한 거부감이 상대적으로 절절한 호남이, 박근혜를 꺾을 수 있다고 믿는 안철수에게 전략적 지지를 몰아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달포전 안철수가 대선출마를 공식 선언하고 나섰을 때, 문재인은 10% 이상의 격차로 지지율에서 안철수한테 밀리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선거경험이 풍부하고, 정치의 속성에 익숙한데다, 진보좌파 진영의 지지를 받고 있는 민주당과 문재인측은, 이에 별로 개의치 않았습니다. 과거 선거에서 이인제 박찬종 정주영등 나름대로 인기가 만만챦던 제3후보들이 한 순간에 무너지는 것을 그들은 봐왔습니다. 일종의 데자뷔지요. 선거판이 달아오르면 야권 지지층은 결국 제1야당인 민주당으로 결집할 것으로 낙관했습니다. 안철수 지지율은 검증공세가 시작되면 ‘이인제 데자뷔’처럼 곧 빠질 것으로 본겁니다.

헌데 민주당의 셈법은 빗나갔습니다. 문재인의 지지율이 오르긴 했지만 안철수는 여전히 넘을 수 없는 장벽으로 민주당의 집권가도를 가로막고 있습니다. 문재인은 3자대결에서 항상 3등이고, 양자대결에서는 한번도 박근혜를 이기지 못했습니다. 안철수-문재인의 단일화도 결국은 문재인으로의 단일화로 귀결될 것으로 낙관한 민주당 전략가들의 계산은 보기좋게 어긋났습니다. 박원순에게 서울시장 자리를 미련 없이 양보한 ‘착한 철수’에 대한 기대도 사라졌습니다. 지금 철수는 1년 전의 그 철수가 아닙니다.


문-안 단일화,
하나사면 하나공짜 세일?


민주당 문재인 후보와 무소속 안철수 후보가 마침내 단일화 합의를 이끌어 냈습니다. 11월 25일 후보등록 마감 이전에 단일화 작업을 끝내겠다며, 엊그제 7개항의 합의문을 발표했습니다. 단일화의 핵심은 결국 누구를 어떤 방식으로 단일후보로 결정하느냐 하는 문제입니다. 시일이 촉박해 국민경선 같은 방식은 어렵고, 여론조사나 두 사람의 담판으로 정해질 가능성이 점쳐집니다. 여론조사 방식이 채택돼도 질문을 어떤 식으로 하느냐에 따라 두 사람의 운명은 갈라집니다. 실무협상이 결코 순탄치 않을 겁니다. 의원내각제가 아닌 대통령 중심제 국가에서, 이런 식으로 국민의 선택권을 박탈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우리부부는 요즘 맥도널드나 칼스 주니어 같은 패스트푸드 음식점에서 가끔 끼니를 때웁니다. 불경기라서 그런지 좀처럼 세일을 하지 않는 맥도널드도 요즘은 쿠폰을 뿌립니다. buy one get one free –하나사면 하나 공짜인 햄버거도 많아, 5~6 달러면 둘이서 콜라까지 곁들여 점심 한 끼를 해결할 수 있습니다.
단일화에 목을 매는 안철수와 문재인은 마치 하나사면 하나 공짜의 싸구려 세일 상품 같습니다. buy one get one free 상품은 대개 안 팔리거나, 질이 떨어지는 상품을 재고정리하기위해 떨이로 팔아 치우는 아이템들입니다. 품질 좋고 잘 팔려 나가는 상품은 좀체로  세일을 하지 않습니다. 저 혼자의 힘으로는 도저히 선거에서 이길 자신도 능력도 없는 두 후보가, 하나사면 하나 공짜식의 패키지 상품으로 ‘선거 시장’에 나온 셈입니다. 이 사람들, 명품인줄 알고  좋아했는데 웬걸 싸구려 짝퉁입니다. 비누 두 개 한데 묶어 한 개 값만 받고 파는 꼴인 안철수-문재인 단일화 쇼를 보며 느낀 ‘나만의’ 소회입니다.

차기 대통령은 앞으로 5년, 역사상 어느 때보다 한반도 주변이 요동칠 엄중한 시기에, 대한민국의 운명을 책임져야 하는 사람입니다. 군소후보들이야 그렇다 치더라도, 박근혜 문재인 안철수등 빅 쓰리만이라도,  앞으로 5년 대한민국을 어떻게 이끌어 나갈지, 뚜렷한 국정철학과 미래비전을 제시해야 합니다. 기껏 이미지 정치나, 실현성 없는 헛공약의 남발. 상대후보 말꼬리 잡고 늘어지기,  50년 전 과거사 놓고 볼썽사나운 드잡이나 하면서, 아까운 세월 다 보냈습니다. 안철수의 등장으로 사실상의 대선정국이 개막 된 건 거의 1년이나 됐는데 그 흔한 TV토론 한번 없었습니다. 하늘 아래 둘도 없는 ‘찌질이’ 대통령 선거입니다.


후보 단일화는 만능일까


“목 마른 놈이 우물 찾는다”는 속담이 있습니다. 문재인 안철수 샅바싸움에서 먼저 목이 탄 쪽은 문재인입니다. 지지율은 오르지 않고 후보등록일은 다가오면서, 문재인 진영은 초조해졌습니다. 지지율 격차가 더 벌어지면 단일화 협상에서 더욱 불리한 상황으로 내몰릴 수 있다는 위기감이 엄습했습니다. 그래서 단일화를 고리로 문재인은 승부수를 띠웠지요. 연일 안철수를 압박하고, 좌파원로 모임인 원탁회의와 문화예술인등  민주당의 외곽 지원세력들까지 동원해 안철수를 몰아부쳤습니다. 이쯤 되자 시간은 내편이라며 느긋해 하던 안철수도 목이 타오기 시작했지요. 국민사이에 안철수 피로감이 고개를 들고, 10월 말께부터는 자신의 확실한 우군이던 호남민심이 조금씩 떨어져 나가는게 감지됐습니다. 게다가 보수표는 확실하게 박근혜쪽으로 뭉치기 시작했습니다. 호남과 중도보수를 잃으면 안철수의 입지는 고단해집니다. 이렇게 목이 탄 두 사람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져, 11월6일의 단일화 합의 담판이 이뤄졌습니다.

지금 상대적으로 여유가 있는 쪽은 문재인입니다. 단일화의 주도권을 잡으면서 안철수의 상승세를 일단 꺾어놓는 일석이조의 성과를 거뒀습니다. 전통적인 야당표가 결집하고, 특히 호남 민심만 돌아서면 어떤 방식의 여론조사에서도 충분히 승산이 있다고 자신하고 있습니다.  안철수 역시 후보 자리를 양보하거나 빼앗기는 상황은 꿈도 꾸지 않는다는 입장입니다. 캠프안의 40대 젊은 참모들의 결기가 대단하다지요. 이들은 “안철수는 세상을 바꾸러 나왔지 민주당에 표 몰아주러 나온게 아니다”라며, 단일화 자체에 대해서도 완강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습니다.
박근혜 입장에선 야권단일후보로 누가 나오는게 더 유리할까요? 학자마다, 전문가 마다, 각후보 진영 마다, 의견이 제각각입니다. 지지층의 외연 확장성이 강하고 본선 경쟁력이 이미 입증된 안철수가, 문재인보다는 박근혜에게 더 버거울 것이라는 견해가 있구요.  안철수는 준비가 안돼있고, 국가 통치능력에 의문을 품고 있는 국민이 많아, 정당의 지지를 받는 문재인이 선거 막바지로 가면서 더욱 힘을 얻게 될 것이라는 분석도 있습니다.

세 사람의 확실한 지지층은 박근혜가 45% 내외, 안철수와 문재인을 합친 지지층이 50%를 약간 웃돌고 있습니다. 문-안 단일화가 되면 단순 셈법으로는 야당이 이깁니다. 문제는 이탈표 입니다. 문-안 단일화에 반대하는 안철수 지지자는 29%나 되고, 문재인 지지자는 8%입니다. 이들은 단일화가 되면 기권을 하거나 박근혜 쪽으로 갈 가능성이 있습니다. 야권 단일후보가 득표율 50%를 얻기가 쉽지 않다는 얘기입니다.
개인적으로 나는 박근혜가 가장 힘든 싸움을 해야 할 경우의 수로, 다음과 같은 상황을 그려봅니다. 야권후보로 문재인이 결정되고,  안철수가 결과에 깨끗이 승복하고, 안철수와 문재인이 어깨동무를 하고 개혁과 변화를 외치며 전국유세에 나서는 경우입니다. 박근혜한테는 악몽의 시나리오일 수 있습니다. 다만 안철수가 지금도 그렇게 착한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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