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착검증>박근혜의 또 다른 아킬레스건, 육영재단ㆍ한국장학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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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불거졌던 정수장학회의 지분 매각 논란과 함께 박근혜 새누리당 후보가 직간접적으로 관여하는 다른 재단들의 활동에 대한 의혹이 정치권에서 확산되고 있다. 육영재단과 한국장학재단 등이 대표적이다. 정치권에선 “다음 폭탄은 박 후보가 32년째 이사장을 맡고 있는 한국문화재단에서 터질 가능성이 높다”는 관측이 나온다. 한국문화재단은 1979년 삼양식품의 창업자 전중윤 명예회장이 ‘명덕문화재단’이라는 명칭으로 설립했지만 다음해인 1980년 전 회장을 비롯한 관계자 전원이 사퇴하고 박근혜 후보가 이사장이 됐다. 박 후보는 지금까지 재단 이사장직을 유지하고 있다. 하지만 최근 이 재단이 해산되어 그 자본금이 육영수여사기념사업회로 넘어가면서 논란이 되고 있다.
민주당 측은 대선이 단일화 국면과 맞물려 본선에 대비, 박 후보에 대한 공세 수위도 한층 높인다는 전략하에 이 문제를 집중적으로 들고 나올 전망이다. 특히 정수장학회와 육영재단, 영남학원, 한국문화재단을 고(故) 박정희 전 대통령에 의해 `강탈’된 `4대 재산’으로 규정, 검증작업을 본격화하기로 하는 등 과거사 문제 등을 고리로 원내외에서 공세의 고삐를 바짝 죄고 있다. 과연 한국장학재단이 무엇이길래 대선 막판을 뒤흔들만한 변수로 떠오르고 있는 것인지 <선데이저널>이 집중 취재했다.
<리차드 윤 취재부 기자>

한국문화재단은 1979년 3월 삼양식품 창업자 전중윤 명예회장이 인재 양성과 학술ㆍ문화 진흥, 국제 학술ㆍ문화 교류 등을 목적으로 자본금 6억원으로 만든 ‘명덕문화재단’의 후신이다. 명덕문화재단 설립 이듬해 1980년 7월 전중윤 회장 등 삼양식품 관계자 전원이 물러나고 대신 박근혜 후보가 이사장에 올랐다. 이를 두고 민주당을 비롯한 야당 측은 “삼양식품 전 회장이 미국에서 들여온 10만 달러 차관 가운데 절반을 불하받아 라면사업으로 성공한 특혜 보답 차원에서 재단법인을 만들어 박 후보에게 넘긴, 정경유착성 뇌물”이라고 공격하고 있다.

한국문화재단은 여러 가지 면에서 정수장학회와 유사하다. 먼저 재단법인 형태로 정수장학회처럼 장학사업을 주로 한다. 하지만 장학사업의 의도에 대해 의심을 많이 받아왔다.
서울시교육청 자료에 따르면, 1997년부터 2011년까지 한국문화재단의 장학금 수혜자 가운데 대구 지역 학생이 61%나 되었다. 또 박 후보 선거구인 (대구) 달성군 학생이 전체의 28%에 이르렀다. 지역 편중은 박 후보가 정계에 입문한 1998년을 기점으로 두드러졌다. 1997년 장학생 수혜자는 서울(75명), 경기(6명), 인천(1명), 경북(1명) 등 전국적으로 고루 분포되었다. 이때만 해도 대구 지역 학생은 한 명도 없었다. 그러나 박 후보가 달성군 보궐선거에 출마한 1998년부터 대구 지역, 특히 지역구인 달성군으로 장학생 쏠림현상이 나타났다. 1998년 대구가 0명에서 45명으로 늘었다. 45명 가운데 20명이 달성군 학생이었다.


한국문화재단, 정수장학회와 닮은꼴


박 후보의 측근들이 대거 포진하고 있는 점도 정수장학회와 닮은꼴이다. 민주통합당 김경협 의원에 따르면 한국문화재단 이사는 박근혜 캠프의 최외출 기획조정특보를 비롯해 변환철ㆍ김달웅ㆍ김덕순씨 등 친박 인사들로 채워져 있다. 특히 최외출 특보는 정수장학회 지분 매각 논란이 불거진 직후 정수장학회 쪽과 통화를 하고 대책을 협의한 것으로 알려진 인물이기도 하다. 김덕순씨는 한국문화재단과 정수장학회 양쪽에서 모두 이사를 맡고 있다.
때문에 한국문화재단은 박정희 전 대통령 미화 사업이나 ‘정치인 박근혜’를 측면 지원하는 사업을 벌여왔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1997년부터 2011년까지 재단이 선정한 장학금 수혜자는 715명으로, 이 중 538명이 박 후보의 지역구인 대구•달성 지역 학생들인 것으로 전해졌다. 2004년과 2005년에는 박근혜 후보 미니홈피 접속 수 200만 회, 300만 회 돌파를 기념해 수백만원 상당의 물품을 영아원과 어린이 시설에 지원했다. 명목은 ‘문화활동비’였다.












한국문화재단 문제는 2007년 한나라당(현 새누리당) 대선 후보 경선 당시에도 거론된 바 있다. 재단 사무실은 서울 강남구 신사동에 있는데, 당시 박 후보의 비밀 외곽조직 ‘신사동팀’으로 지목된 것이 바로 문제의 한국문화재단이다. 당시 이명박 후보 캠프의 진수희 대변인은 재단의 장학금 지원이 박 후보 지역구에 집중된 사실 등을 거론하며 “한국문화재단은 마포팀과 같은 박 후보 측의 또 다른 외곽조직”이라며 “2002년 박 후보가 탈당 기자회견을 준비한 장소도 한국문화재단 사무실이며, 최태민씨 사위이자 박 후보 비선라인의 비서실장 역할을 해온 정윤회 씨가 재단을 관리하고 있다”고 주장했었다.
문제는 한국문화재단이 대선을 앞둔 민감한 시기인 지난 9월 법인 등기를 말소했다는 점이다. 민주통합당 우원식 의원이 해당 재단의 등기부등본을 확인한 결과 지난달 10일 등기를 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앞서 6월 25일 이사회 의결로 법인을 해산한 한국문화재단은 자산 13억 원을 육영수사업회에 증여한 것으로 전해졌다.


육영재단 재판  새로운 국면


박근혜 후보 친인척이 얽히고설켜 있는 육영재단 문제도 수면 위로 다시 떠오를 조짐이다. 사실 육영재단 문제는 박 후보와 연관된 문제 중 가장 첫 번 째로 꼽히는 아킬레스건이었다. 동생 박근령 씨와의 갈등, 박지만 회장의 재단 강탈 배후 의혹, <선데이저널>이 보도했던 황금돼지 의혹, 청부살인 의혹 등은 모두 육영재단과 관련된 것들이었다. 그런데 이 문제는 어느 순간 소리소문없이 사라지고 말았다. 그러는 사이 정수장학회나 인혁당 발언 등이 부각됐다.
하지만 최근 육영재단 문제와 관련한 진실을 밝혀야 한다는 목소리가 야당을 중심으로 다시 제기됐다.
육영재단 문제는 박근혜 후보를 중심으로 한 친인척간 다툼이 벌어졌던 최전선이다. 박 후보의 동생 근령 씨는 육영재단을 놓고 오랫동안 박 후보와 갈등을 겪었다. 1990년 박근령씨는 당시 육영재단 이사였던 최태민 목사가 전횡을 저질렀다며 문제제기를 했다. 박 후보가 이사장직에서 물러나고 박근령씨가 새 이사장으로 취임했지만 2001년 성동교육청으로부터 이사취임승인 취소 처분을 받았다. 2007년에는 박지만 회장 쪽 인사가 일으킨 ‘육영재단 폭력사건’에 휘말리기도 했다.



근령 씨의 남편이자 박 후보의 제부인 신동욱 씨는 ‘중국에서 자신을 죽일 음모를 꾸몄다’ ‘육영재단을 폭력으로 강탈했다’와 같은 주장을 펴다 박근혜ㆍ박지만 남매에게 고소를 당했다. 명예훼손을 한 혐의 등으로 2심재판부에서 징역 1년6개월을 선고받아 현재 복역 중이다.
박 후보의 5촌 조카 두명인 박용철 씨와 박용수 씨는 지난해 9월, 서울 북한산 국립공원에서 박용수씨가 박용철씨를 흉기로 찔러 죽인 뒤 자살했다. 경찰은 ‘원한에 의한 살인’이라고 결론을 맺었지만 박 후보 제부인 신동욱씨는 석연찮아 한다. 특히 두 오촌 조카의 죽음은 본지를 통해 처음 다뤄졌지만 이내 묻혀버렸다. 하지만 최근 진실을 규명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면서 두 사람의 죽음은 다시 정치권의 주목을 받고 있는 상황이다.

이 문제는 신 씨의 명예훼손 사건과 깊이 연관되어 있다. 2009년 5월 박근혜의 미니홈피에는 ‘박지만이 박근혜의 묵인 아래 박근령으로부터 육영재단을 강제로 빼앗았으며, 매형인 신동욱을 중국으로 납치해 살해하려고 했다’는 글이 40여 차례 올라왔다. 박 대표는 허위사실에 의한 명예훼손 혐의로 검찰에 수사를 의뢰했고, 수사 결과 다른 사람의 아이디로 글을 올린 이가 신동욱인 것으로 드러났다.
신동욱은 2007년 박근령 남매의 5촌 조카 박용철이 자신에게 “박근혜 경선 캠프의 심부름을 간다”며 중국 칭다오에 같이 갈 것을 제안했다고 주장한다. 이에 따라 박용철 및 박용철의 친구인 김아무개와 함께 2007년 7월1일 칭다오에 갔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중국행은 박지만의 비서실장 정용희(48)가 박용철에게 자신을 중국에서 죽이라고 지시한 데 따른 것이었고, 그 배후에는 근령씨와의 결혼을 막으려던 지만씨가 있다는 것이다.


재판 유일한 증인 5촌 형제들의 이상한 주검


그러나 <조선일보>가 보도한, 당시 주칭다오 한국영사관이 외교통상부에 보고한 문서엔 ‘신동욱이 단란주점과 호텔에서 환각제를 복용한 것으로 추정되고 공안에서 조사를 받았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 이 문서를 보면, 신씨 일행은 1일 단란주점에서 술을 마시고 호텔로 돌아온 뒤 성매매 혐의로 공안의 조사를 받았다. 박씨와 김씨는 다음날 귀국했지만, 신씨는 공안 사무실로 연행돼 다음날 오후 5시께 증거 부족으로 석방됐다. 신씨는 이날 밤 호텔 속옷만 입은채 창문 밖으로 뛰어내리다 허벅지 골정상을 입었고, 시내를 배회하다 택시기사 신고로 파출소로 인계됐다. 파출소는 시 공안국에 ‘신원불명 외국인 행려자’로 신고했고, 신씨는 외사과 경찰관에게 자신을 “박근혜 전 대표의 동생인 육영재단 박근령 이사장 약혼자”라고 말했다. 공안의 연락을 받고 도착한 김아무개 영사를 보고 신씨는 “믿을 수 없는 인물이다. 나를 납치하고 있다”고 했고, 중국 외사경찰관에 대해선 “김책이라는 북한공작원”이라고 하는 등 “환각상태가 지속됐다”고 문서는 적었다.



이에 대해 신동욱은 “당시 박용철 일행의 꾐에 빠져 술을 마시고 여종업원과 호텔에 갔으며, 갑자기 공안이 들이닥치고 박용철이 나를 놔둔채 귀국해버리는 등 생명의 위협을 느껴 호텔에서 뛰어내렸다”고 주장한다. 신동욱은 귀국 뒤 경찰 조사를 받았다. 박용철이 스스로 “중국에서 신동욱과 함께 마약을 했다”고 경찰에 자수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국립과학수사연구소가 신씨 소변을 검사한 결과 마약 성분은 검출되지 않았다.












 
그런데 신동욱에 대한 재판이 진행 중이던 2010년 7월 박용철은 갑자기 육영재단 여직원 이아무개씨에게 전화를 걸어 “‘박지만이 중국에서 신동욱을 죽이라고 지시했다’고 이야기한 정용희의 말을 녹음한 테이프가 있다. 정용희를 통해 박지만이 살인 청부 비용을 보내준 통장 자료도 가지고 있다”고 말했다. 박용철은 2008년 5월 육영재단 어린이회관 관장에 임명됐지만 7개월 만에 정용희에게 자리를 내줬다. 그는 그 뒤 “박지만 회장을 위해 열심히 일했건만 오히려 박 회장 쪽이 나를 쫓아냈다”고 섭섭함을 드러내기도 했다. 그러나 그는 신동욱 재판의 증인으로 채택돼서는 이를 모두 부인했다. 그는 오히려 “박지만이 직접 지시했는지는 모른다”며 “그런데도 신동욱 쪽이 나를 납치해 ‘박지만이 주모자라고 말하라’고 강요했다”고 증언했다. 신동욱에 대한 1심 판결문은 청도 사건에 대한 신동욱의 주장을 모두 배척하고, 이를 허위사실로 결론지었다.
지난해 9월6일 박용철(당시 49살)이 서울 우이동 북한산 안내센터 부근 노상 주차장에서 얼굴과 상체 등 모두 15곳을 흉기로 찔린 주검으로 발견됐다. 그리고 곧바로 3㎞가량 떨어진 북한산 용암문 인근 등산로에서 박용수(당시 51살)가 나무에 목을 매 숨진 채 발견됐다. 둘은 박정희 전 대통령의 둘째형인 박무희씨의 친손자들로, 사촌간이다.


제부 신동욱, 박지만이 청부살해 지시 주장


수사 결과 경찰은 박용수가 박용철을 살해한 뒤 자살한 것으로 결론지었다. 수사를 맡았던 경찰 관계자는 “자존심이 강했던 박용수가 몇년 전부터 생활이 힘들어졌는데, 애초 친하게 지냈던 사촌동생 박용철이 자신의 전화도 잘 받지 않는 등 무시하는 듯한 태도를 보여 이에 원한을 품고 ‘박용철을 죽여버리겠다’고 했다는 주변 사람의 진술이 있다”고 말했다.
우연의 일치일지 몰라도 이런 일련의 과정들은 어딘가 모르게 얽히고설켜 있다는 느낌이 들지만 어찌된 일인지 언론의 주목을 받지 못했었다. 하지만 대선이 다가오면서 사건은 다시 고개를 들고 있는 상황이다.
한국장학재단의 해산, 그리고 육영재단을 둘러싼 의문의 죽음. 우연이라 하기에는 박 후보의 주변에서 너무나 이상한 일들이 많이 일어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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