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A총영사관 개관 64주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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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총영사관이 오는11월21일 개관 64주년을 맞는다.  재외공관 탄생의 역사는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된 1948년 8월 15일부터 시작됐다. 대한민국이 1948년 8월15일 정부 수립후 외국 땅에 제일 처음 외교공관으로 탄생한 것이 바로 LA총영사관이다.  LA총영사관은 LA 총영사관은 정부 수립후 8월에 미국과 재수교를 한후 워싱턴DC의 주미 대사관보다 4개월이나 빠른 1948년 11월21일 문을 열었다.  한국은 2010년 9월 현재 수교국가는178개국이며 이중 해외 공관이 설치된 곳은 171개이다. <성진 취재부 기자>














LA 총영사관은 대한민국 전체 재외공관 가운데 가장 오래됐을 뿐 아니라 규모 면에서도 주요국 대사관을 제외하면 최대 수준이다. 지난 1948년 10월 민희식 초대 총영사가 부임하여 60년 8월까지 장장 12년간 최장수 총영사로 재임했다. 초대 민 총영사는 현재 타운의 원로 변호사인 민병수 변호사의 부친이다.
LA총영사관은 초대 민 총영사 이후 2012년 현재 신연성 총영사까지 총 19명의 총영사를 맞았다.
총영사관을 거쳐간 총영사만 해도 지금까지18명이나 된다. 이들 중에는 이승만 정부의 초대 교통부 장관을 지낸 민희식씨와 노신영 전 국무총리, 김항경 전 외교부 차관 등이 있다. 19명 총영사 중  제 18대 김재수 총영사는  대한민국 외교통상부 역사상 재외동포 출신이 현지 공관장 으로 선임된 첫번째 기록으로 꼽힌다.

역대 총영사 중에서 올드타이머들이 기억에 남는 총영사로서는 제3대 노신영 총영사와 14대 김명배 총영사가 있다. 노 총영사는 총영사를 지내고 나중 국무총리까지 역임했는데, 총영사 시절에는 공관을 사랑방으로 만든 장본인이며 교민들을 두루 보살핀 공직자로 신뢰와 인기를 모았다.
김명배 14대 총영사는 강직하고 청렴한 공직자로 재임기간 동안 이민사회의 지도자인 도산 안창호 선생의 정신을 이민사회에 전파시키는데 한 역할을 하여 동포들의 신뢰를 모았다. 그러나 김명배 총영사는 재임기간 동안 DJ측근들로부터 모함과 멸시를 당해 수모를 겪었다.
총영사관에서 근무했던 외교부 직원 뿐 아니라 법무부․경찰 등에서 파견돼 근무했던 직원들까지 서울에서 정기 모임을 한다고 한다.


4월폭동때 센터역할

미국속의 한국정부인 LA총영사관은 1992년 4월 발생한 LA 폭동에 따른 한인타운 피해 등 이민사의 희로애락을 함께 겪었다.  당시 LA총영사관은 4.29폭동을 대처하는 한인사회의  센터가 됐었다. 하지만 이 센터에서 4.29 폭동 성금을 두고 치졸한 추태가 밤낮으로 이어져 아직까지 여운이 남겨져 있다. 이는 오늘날 LA 총영사관의 역사가 됐다.
 LA 총영사관은 ‘LA코리아타운’ 등을 중심으로 맡고 있는 관할지는 남가주를 포함한 네바다, 아리조나 그리고 뉴멕시코주 등이다.
관내 한인동포만도 100만명에 육박한다. 그리고 총영사관의 영사 및 현지 행정직원도 50여명이나 된다. 또한 우리나라 재외공관 중 가장 큰 민원실을 운영하고 있다. 민원 창구도 14개나 된다. 관할 지역에서 활동하는 LA한인회 등 동포단체만 해도 300여개에 이른다.
1948년 개설 당시에는 LA 다운타운의 542 사우스 브로드웨이의 한 빌딩 4층에 방 2개를 빌려 시작했다. 그 후 현재 LA한국문화원 건물이 있는 근처 3층 빌딩 건물에 있다가  1957년에 5455 윌셔불러버드 건물 11층에 있다가 1988년 10월에 현재의 공관 건물로 이전했다.



LA총영사관이 개설 당시에는 초기 이민자를 중심으로 한인동포수가 약  1000명정도였다. 하지만 당시 우리나라 공관이 문을 열자  290명이 재외국민으로 첫 등록해  화제가 됐다.
LA 총영사관이 지금과 같은 위용을 갖추게 된 것은 지난 1972년 도산 안창호 선생의 아들 영화배우 안필립 씨가 한국 정부에 건의, 당시 16만달러를 들여 관저를 매입하면서 시작됐다.  현재 LA의 전통 고급 주택가에 있는 총영사 관저는 싯가 400만달러가 넘는다.
공관 건물도 서울올림픽 직후인 1988년 10월 현재의 건물로 입주해  20년이 넘었다.
LA 총영사관은 개설 당시 소수 민족으로 미국에 정착한 동포들을 위한 업무 뿐 아니라 한국을 제대로 알리는 일에 총력을 기울여야 했다. 미국인들이 한국을 일본의 속국 정도로 알고 있었던 탓이다. 그러나 지금은 세계적으로  최대 규모의 한인 동포사회를 담당하면서 글로벌 코리아의 상징 공관으로 발전하고 있다.
미주 땅의 한인의 역사가 160년이 넘으면서 이민 5세대까지 뿌리를 내리고 있으며 동포사회 주역도 이민 1세대에서 2세대, 3세대로 넘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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