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철수의 눈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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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임춘훈 (언론인)

30년만에 모국방문을 하고 온 LA교포 K씨가 서울에서 ‘씩겁을’ 했다며 들려준 얘기입니다. 지금은 이순 무렵 초로의 할머니가 된 아내와 함께, 강산이 세 번이나 변한 모국 나들이를 한 그는, 40년전 아내를 꼬시던 때의 아련한 추억이 깃든 덕수궁 돌담길을 찾았습니다. 덕수궁 돌담길은 사계절이 아름답지만, 그중의 압권은 단연 오색 낙엽 흩날리는 가을입니다. 마침 계절도 가을이겠다, 30년만의 고국 나들이에 생머리 소녀처럼 들떠있는 아내와 모처럼 분위기도 잡아볼겸, K씨는 덕수궁을 찾았습니다. 돌담길은 덕수궁 정문인 대한문에서 서울시립미술관 까지 이르는 2차선 길입니다. 주위엔 한국의 첫 감리교회인 정동제일교회, 옛 경성재판소, 아관파천으로 유명한 옛 러시아 공관등과, 조선왕조 세조임금의 큰아들 월산대군의 사저이던 덕수궁의 전각등 크고작은 건물들이 함께 어우러져, 우아하고 고풍스런 운치를 자아냅니다.


덕수궁 농성촌도 안철수 탓?


덕수궁 대한문 앞에서는 매일 세차례 수문장 교대의식이 치러집니다. 영국왕실의 근위병 교대의식과 비슷한 한국 전통문화 재현행사로, 외국인 관광객들에 인기가 높지요. 그날 K씨부부는 한 무리의 외국인 관광객들과 함께 수문장 교대의식을 구경한후 덕수궁 돌담길로 추억여행에 나섰습니다. 많은 외국인들이 그들 부부를 따라왔습니다. 덕수궁 돌담길이 외국인들에까지 알려진 서울의 관광명소가 됐구나 싶어 뿌듯했는데, 바로 그 때 ‘씩겁할’ 일이 일어났습니다. 외국 관광객들이 찾은건 낙엽 뒹구는 돌담길이 아니라, 돌담길 한 귀퉁이 아스팔트 바닥에서 함부로 뒹굴고 있는 시위 농성자들이었습니다. 외국인들은 알음알음으로, 덕수궁 수문장 교대의식 다음의 필수(?) 관광코스가 아프리카의 어느 난민촌과 흡사한 바로 이 천막 농성장이란 소식을 듣고 몰려든겁니다. 국민소득 3만달러 시대를 앞두고 있는 한국의 수도 서울 한복판에, 1년 365일 장(?)이 서는 이런 <농성촌>이 있다는 사실이 그들에겐 꽤나 흥미로웠겠지요. 손가락질 하며 저희들끼리 수근대고, 일부는 고개를 끄덕이며 의미있는 웃음을 주고 받았습니다. 외국인들이 찾는 관광명소인데다가 문화재법에 따라 보호돼야 하는 500년 고궁인 덕수궁의 담벼락을 따라 다닥다닥 들어선 천막 농성촌–. 서너개의 지저분한 텐트를 쳐놓고, 증오와 광기의 눈빛으로 관광객을 맞고있는 돌담길의 이 망나니 시위꾼들을 만나는 순간, K씨는 기겁을 했습니다. 덕수궁 돌담길의 추억여행은 뒤로 미루고, 30년만에 찾은 고국에서 목격한  ‘끔찍한’ 새 추억 하나를 가슴에 담아안고, 부부는 LA로 돌아왔습니다.


5년 후 안철수 박원순 붙을까?


“내 친구들이 말하더군요. 빨갱이 시장이 서울을 망쳐놨다구요. 돼선 안될 사람 시장하라고  등 떠밀어준 안철수 책임도 크다구요. 나이 든 보수층의 생각이겠지만, 좌파정권의 재집권에 대한 우려가 예상밖으로 크다는걸 느꼈습니다.”
K씨는 30년동안 한번도 고국을 찾지 않아 한국사정에는 비교적 어두운 사람입니다. 미국서는 상상도 못할 도심 한복판의 이 상설 농성촌을 보고 충격을 받아, 친구들에게 자초지종을 물어본 모양이지요. 헌데 친구들은 그게 뭐 대수로운 일이냐며 뜨악한 반응을 보였습니다. 그리고 몇몇 친구는 빨갱이 시장과 안철수 책임론을 꺼냈습니다. 박원순 시장이 물론 빨갱이는 아닐테고, 덕수궁 돌담길을 점령한 농성촌이 안철수 때문이란 주장도 지나친 비약입니다. 허지만 이 두사람의 어정쩡한 야합이 빚어낸  정치적 그늘과 후유증이 만만챦은 것 또한 사실인 것 같습니다.
대한문옆 덕수궁 돌담길이 시작되는 초입에 농성천막이 처음 들어선 것은 지난 4월입니다. 쌍용차 해고노동자들이 천막을 친데 이어 제주해군기지 반대와 용산참사 진상규명, 핵발전 폐기를 촉구하는 전문 시위꾼들이 속속 합류해 3개의 천막이 쳐졌습니다. 지난 11월 12일에는 천막 한 개를 더 세우고 <농성촌>이라는 ‘동네 이름’까지 붙였습니다. 서울특별시 농성촌 하면 편지나 소포도 들어가고, 중국집 짜장면도 배달될 판입니다.

서울시장 박원순은 반평생을 시위와 농성, 온갖 반대와 선동투쟁으로 살아온 거친 ‘시위 친화적’ 인물입니다. 빨갱이는 아니더라도 덕수궁앞 상설 농성촌의 진보좌파 시위꾼들과 ‘절친’ 사이인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습니다. 시장실에 앉아서도, 그는 덕수궁 농성패들과 함께 동조시위를 하고싶어, 안달이 난 때가 많았을겁니다. 덕수궁 농성촌의 박원순 책임론은 따라서 일단은 맞는 얘기로 들립니다. 오세훈 전시장 같으면  서울 한복판, 외국인 관광객들이 들끓는 고궁앞에, 이런 혐오스런 상설 농성촌이 들어서는 것은 절대 용납지 않았을테지요.

박원순은 5년 후 15대 대통령 선거에 나설 것이라는게 여야 정치권의 대체적인 시각입니다. 안철수가 이번에 단일화 협상에서 문재인에 패배하면, 5년 후 재차 대권도전에 나설 가능성이 큽니다. 야권후보로 박원순과, 그에게 서울시장 자리를 양보해준 정치적 멘토인 안철수가, 대통령 자리를 놓고 운명의 일합을 겨룰 개연성이 점쳐집니다. 그때 가서는 박원순이 양보할 차례지만, 그는 ‘착한 철수’와는 다른 사람입니다. 안철수는 문재인에게 치이고, 다시 박원순에게 밟힐 운명인지도 모릅니다.


‘문철수’는 역사의 죄인


야권후보 단일화가 막바지로 치달으며 안철수가 고전을 하고 있습니다. 그나마 정치를 좀 안다는 문재인과, 그를 노무현 아바타로 내세운 민주당내 친노그룹이 밀어붙이는 야비한 꼼수와 현란한 여론몰이로, 안철수는 지금 처참할 정도로 깨지고 있습니다.  인격남에다 매너 맨이라던 문재인은 요 며칠새 무섭게 표변해, 안철수를 코너에 몰아넣고 잽을 날리고 있습니다.  ‘맏형의 통 큰 양보’라며 단일화 결정방식을 안철수에게 일임하겠다고 해놓고선, 막상 여론조사 플러스 알파 방식을 안철수 진영에서 내놓자  콧방귀를 뀌며 걷어찼습니다. 안철수는 “나 당신같은 맏형 둔적 없소. 그 맏형 소리 집어치쇼”하고 볼멘 소리나 내뱉는게 고작입니다.  안철수의 지지율이 빠지면서 박근혜와 문재인 두 양당 후보에게 지지세가 결집되는 양상이 뚜렷해지고 있습니다. 수요일(21일) 밤에 치러지는 문재인 안철수 TV토론에서 압승을 거두지 않는 한, 안철수의 역전우승은 버거워 보입니다.

안철수는 무모했습니다. 무지하거나 순진하거나 교만했습니다. 뜬구름 같은 2~30대 젊은이들의 지지 함성과 박수 갈채에 헤까닥 해, 섣불리 대통령 꿈을 꾼게 잘못이었습니다. 결과론이지만 지난해 서울시장 선거에서 박원순에게 양보할게 아니라 직접 나서는게  옳았습니다. 시장을 하며 국정경험을 쌓고, 정당정치에 적응해 국가 지도자로서의 내공을 쌓은 후 2017년 19대 대통령 선거에 나서면, 그는 어렵지 않게 청와대 주인이 될 수 있었을겁니다.

대통령 선거가 한달도 남지 않았는데도 야권후보가 결정되지않아, 한국의 대선은 유례를 찾기 힘든 깜깜이 선거로  진행되고 있습니다. 단일화에 모든 이슈가 갇혀, 후보의 정책이나 자질을 검증할 기회는 거의 사라졌습니다. 선거판에 뛰어든지 겨우 6개월 째인 정치 초짜 안철수 문재인 두 사람은, 어쩌면 자신없는 자질공방과 검증공세를 피하기 위해, 지리한 단일화 쇼를 의도적으로 질질 끌어온건지도 모르겠습니다. 두 사람중 한 사람이 실제로 대통령이 될지는 알수없지만, 국민이 진정 바라는 대통령을 제대로 검증해 뽑을 기회를 앗아갔가는 점에서, 안과 문은 역사의 죄인입니다. 다음 정권에서는 되풀이되는 2등 후보와 3등후보의 망국적 야합 쇼를 원천적으로 봉쇄하기위해, 가령 “단일화는 선거 3개월 전에 마쳐야 유효하다”는 식으로, <문철수 규제법> 같은 개정선거법을 만들었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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