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의 삐걱대는‘3통’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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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임춘훈(언론인)

장팔찬씨를 아는지요. 장씨는 한세기 전 <매일신보>에 연재된 민태원의 번안소설 ‘애사’에 나오는 남자 주인공의 이름입니다. 이 장팔찬씨가 100년의 타임머신을 거꾸로 타고 날아와 오늘에 환생한 사람이 바로 장발장입니다. 프랑스의 대문호 빅토르 위고가 쓴 불후의 명작 소설 레미제라블에 나오는 남자 주인공이지요. ‘애사’는 슬픈 이야기라는 뜻입니다. 한세기 전 근대의 한국인들은, 순수 우리말과 친근한 한글 문장으로 쓰여진 번안소설 ‘애사’를 통해, 비로소 세계문학과 처음으로 소통했습니다. 장팔찬씨는 음울하던 일제 강점기, 우리의 선조 지식인들이 만난 최초의 서구형 휴머니스트이자 자유로운 영혼이었습니다.


박근혜에 대한 경고 ‘레미제라블’


박근혜 후보가 18대 대통령에 당선되던 날, 한국에서는 공교롭게도 세계에서 가장 먼저 뮤지칼 영화 <레미제라블>이 개봉됐습니다. 이 영화가 요새 예상 밖의 흥행돌풍을 일으켜, 개봉 한달도 안 돼 관객 500만을 돌파했습니다. OST 판매도 연일 새 기록을 갈아치우고 있고, 지난해 무대에 올려진 동명의 뮤지칼과 연극도 덩달아 대박입니다.  서점가에선 소설 레미제라블이 불티나게 팔리고 있고, 지난 6일 열린 피겨 스케이팅 대회에서 김연아가 처음 선보인 프리 스케이팅의 배경음악도 쇤베르크 작곡의 레미제라블 삽입곡이었습니다.

뮤지칼 영화 레미제라블의 성공은 높은 작품성과 극적 재미, 음악적 완성도등 세박자의 흥행 요소가 맞아 떨어진 결과라는게 전문가들의 분석입니다. 150년전  프랑스의 시민혁명을 시대적 배경으로, 당시 민초들의 고단하고 비참한 삶의 이야기가 스크린에 파노라마처럼 펼쳐집니다. 주제가 무거운데다 2시간 반의 러닝타임이 거의 노래와 음악으로 채워져, ‘당연히’ 지루할 수 밖에 없는 영화입니다. 헌데 노래와 스토리에 몰입하다 보면 어느새 엔딩 자막이 나오면서, 여기저기서 손수건으로 눈물을 훔치는 관객들을 만나게 된다는군요. 모든 관객이 한 세기 전 매일신보 연재소설의 주인공 ‘장팔찬’이 돼, ‘마음껏’ 슬퍼하고 ‘충분히’ 비참해져 보는 2시간 반입니다.


절망하는 48%들의 외침


 한국사회의 레미제라블 열풍을, 작품 외적인 요소, 이를테면 하나의 정치 문화적 현상으로 해석하는 시각도 있습니다. 여러 해석과 진단중 하나는, 지난 대선에서 정권교체라는 ‘혁명’으로 세상을 바꾸려다 실패한 ‘48%들’의 배신과 상실에 대한 보상과 위로를, 이 영화가 잘 표현해 주고 있다는 것입니다.
관객들은 영화 속 등장인물과 자신을 동일시하며 스토리에 빠져듭니다. 마리우스가 이끄는 시위대가 시민의 외면을 받는 장면을 보며 “5060의 외면 때문에 우리의 간절한 정권교체 바램이 날아갔다”고 좌절하는 2030이 많습니다. 시민군이 합창하는 혁명가 ‘Do you hear the people sing’을 들으면서 ’님을 위한 행진곡‘을 부르며 군부독재와 맞서 싸우던 30년전의 그 치열했던 ’청춘‘을 회상하는 5060들도 있습니다. 현실에 좌절하고 미래에 절망하며 과거를 회한하는 한국의 모든 세대와 연령층이 레미제라블에 빠져들고 있는 셈이지요. “내가 투표한 후보가 패배해 살맛을 잃었는데 불경기에 한파까지 몰아쳐 마음이 거칠어졌다. 그런데 이 영화를 보며 힐링(치유)의 자유와 평안을 얻었다”라는 따위의 댓글이 SNS에 뜨고 있습니다.
 
뮤지칼 영화 레미제라블이 만약 대통령 선거 한달전 쯤 개봉돼 500만의 흥행돌풍을 일으켰다면 어떻게 됐을까요? 박근혜 당선을 가능케한 100만표가 과연 온전히 그녀에게 갔을까요?  “박근혜 당신과 함께 레미제라블을 보고 싶다. 요즘 매일같이 일어나고 있는 근로자들의 자살이 혁명의 신호탄이 될수 있다는 사실을 당신은 아는가.”—. 인터넷과 SNS엔 150년전 마리우스 패의 격문을 연상케 하는 ’좌절한 48%들‘의 이런 분노의 외침이 넘쳐나고 있습니다.


윤창중 살리고 최대석 죽이고–.


박근혜 당선인의 ‘당선자 행보’가 어느새 한달을 넘기고 있습니다. 그의 집권 5년 로드맵을 설계하는 인수위가 출범한지도 2주째입니다. 인수위는 마치 ‘로 핸디캡 골퍼’ 처럼 어깨의 힘을 뺀 채 ‘유연한 스윙’을 하고 있고, 당선인 자신도 조용하고 신중한 행보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국민의 신뢰라는 측면에서 당선자의 이런 자세는 일단 긍정적입니다.
그런데도 박근혜를 향한 국민의 마음은 웬지 조마조마하고, 인수위를 바라보는 시각은 아슬아슬합니다. 역시 문제는 ‘박근혜 표’ 불통인 것 같습니다. 당선 후 가장 먼저 훌훌 털었어야 할 이 불통의 ‘악업’을, 당선자는 아직도 버리지 못하고 있습니다.

요즘 국민들은 매일같이 가장 보기싫은 얼굴을 TV에서 보며 삽니다. 인수위 대변인이라는 윤창중입니다. 야권은 물론 여권에서조차 도리질을 하는 ‘막말의 아이콘’ 윤창중을, 박근혜는 고집스레 감싸고 있습니다. 인수위가 아무리 좋은 정책을 내놔도 그것이 윤창중의 입을 통해 발표되면 시쳇말로 ‘영양가’가 떨어집니다. 기자 브리핑 때마다 그는 언론에 대한 무지와 무시를 드러내고, “영양가 있는 기사인지 아닌지는 내가 판단한다”는 식의 고압적 자세를 보여, 기자들은 물론 다수 국민들로부터 ‘실패한 박근혜 킷즈 1호’라는 불명예를 얻었습니다.

박근혜는 모든 인수위원들의 입에 재갈을 물렸습니다. 깜깜이 인수위, 불통 인사, 먹통 정책, 철통 보안을 우려하는 여론이 높지만 당선인의 마이웨이엔 브레이크가 없습니다.
인수위는 당선인의 개인 보좌기구가 아니라 국가기관입니다. 따라서 모든 업무는 투명하게 공개돼 국민의 감시를 받아야 하지만 박근혜는 오불관언입니다. 인사나 정책에서 보안이 중요할 때도 있지만 지나치면 순기능 보다는 역기능이 많습니다. 임명권자만 아는 밀실인사, 깜깜이 인사는 불신을 조장하고 여론의 검증을 원천적으로 봉쇄해 뒷탈이 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런 식이면 앞으로 내각이나 청와대 인사에서 박근혜 정부는 엄청난 시행착오의 댓가를 치르게 될겁니다.


아슬아슬 조마조마 박근혜 정치


이미 ‘사단’이 나기 시작했습니다. 엊그제 갑자기 물러난 인수위 외교국방 통일분과위원회 최대석 위원의 ‘그것이 알고싶다’ 식 사퇴 미스터리는 생각할수록 고약합니다.  당선자 쪽은 ‘일신상의 이유’라고만 밝히고, 국민들 한테는 ‘알려고도 말고 알 필요도 없다’고 오리발입니다. 박근혜 정치의 이런 식의 ‘과잉 보안’은 최고 지도자의 사망 사실을 며칠씩 숨기다 뒤늦게 발표하는 옛 소련이나 북한의 그것과 빼닮았습니다. 최대석 미스터리는 어느새 5000만이 참여하는 진실게임 양상으로 번지고 있습니다.
최대석은 박정희 대통령이 가까이 했다는 최재구 전공화당 의원의 장남입니다. 오래전부터 박근혜의 대북한 정책 브레인으로 활동해온 온건파 학자로, 박근혜 정부 초대 통일부 장관 1순위로 거론된 인물입니다.

그런 사람이 갑자기 ‘숙청’됐는데, 마치 맹장수술하러 병원에 입원이라도 했다는 식으로 ‘일신상 이유’를 둘러대고 있습니다. 국민들은 그래서 ‘일신상 이유’ 대신 ‘엄청난 이유’를 찾아 나섰습니다. 저명한 구정치인의 아들이자  유수 재벌(GS 그룹)의 사위인 대학교수 최대석은 하루새에 상처 투성이의 ‘의혹남’이 돼버렸습니다. 아마도 그의 사퇴 이유가 개인비리는 아닐겁니다. 두달의 한시직인 인수위원이 개인비리로 사퇴할 까닭은 없기 때문입니다. 그런데도 그는 거의 ‘파렴치급’의 의혹을 국민들로부터 받는 신세가 됐습니다.
밀실인사, 먹통인사, 깜깜이 인사는 이렇게 불신과 의혹만 키우고 국민의 너른 동의를 받기 어렵습니다. 가려진 진실을 알고 싶어하는 국민의 호기심은 공연한 헛소문과 유언비어만 낳고, 임명권자의 정치적 인식체계에 대한 의문만 증폭시킵니다. 아슬아슬 조마조마의 불통, 먹통, 꼴통의 ‘3통’이, 박근혜 정부의 성공여부를 가르는 키워드가 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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