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이동흡 덫’에 걸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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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임춘훈(언론인)

LA의 위성방송 디렉 TV는 매주 수-목요일 밤, MBC의 수목 드라마 <보고싶다>를 방송합니다. 미스터리 극 인데다 스토리의 플롯과 얼개가 너무 어렵게 짜여져, 드라마를 건성으로 보는 편인 나는 무슨 얘긴지 제대로 이해도 못하고 대충 이 드라마를 봅니다. 신세대 스타인 박유천이 주인공인 강력계 형사로 열연하고 있는데, 흥미있는 배역은 주인공 보다 그의 동료형사인 단역 탤런트 오정세입니다. 오정세 형사는 긴 머리를 뒤로 묶은  포니테일(꽁지머리)에다, 발끝부터 머리끝 까지 온통 명품으로 치장을 한 ‘강남 건달’ 차림새로, 사건과 범인을 쫓아 다닙니다. 투박하고 껄렁껄렁한 ‘천 티’에다, 형사주제(?)에 ‘귀 티’나는 명품만 걸치고 다니는 오정세 형사의 캐릭터는, 극중에서 독특하고 파격적인 모습으로 그려져 있습니다. 범인 잡는 형사가 아니라, 형사한테 곧 잡혀 감옥에 처넣어질 범인 같은 캐릭터입니다.
보수적 관료집단인 대한민국 경찰에 꽁지머리 형사가 실제로 있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사회 전반의 자유화-개인화-인권화 바람에 따라 경찰 복무규정에 ‘두발 자유화’같은 조항이 신설됐다면, 실제로 꽁지머리 경찰이 존재할 수도 있겠지요. 이 드라마 속 오정세 형사의 펑키 스타일이 시청자들 한테 별 거부감 없이 받아 들여 지고 있는 것을 보면, ‘꽁지머리 경찰’은 미국보다 한국에 먼저 본격적으로 등장할 날이 머쟎아 올 것 같기도 합니다.
미드(미국드라마)와 헐리웃 영화에 나오는 사이코 패스(흉악살인범)나 시리얼 머더(연쇄살안범) 중엔 포니테일이 흔합니다. 영화에 나오는 뒷골목 마약상이나 조폭 똘마니들도 꽁지머리 차림새가 많지요. 허지만 미국경찰이 꽁지머리를 하고 근무하는 모습은 본적이 없습니다. 드라마 <보고싶다>에서 처음 꽁지머리 형사를 봤을 때 사실 조금은 놀랐습니다.


감옥 가야할 사람이 헌법재판소장?


 한국은 요즘 헌법재판소 새 소장 후보인 이동흡 지명자의 국회 인사청문회 소식으로 시끄럽습니다. 이동흡의 헌재소장 지명은 이명박 대통령의 마지막 고위인사이면서, 동시에 박근혜 새 대통령의 첫 번째 고위인사라는 점에서, 관심이 높았습니다. 온갖 비리의 ‘종합선물 세트’ 같은 말 많고 탈 많은 사람을, 이명박 대통령과 박근혜 차기 대통령이 의기투합해 헌법기관의 수장에 기여코 앉히려는 속 뜻이 뭔지, 많은 국민들은 안달 나게 궁금했습니다.
이동흡은 32년의 반 평생을 판사와 헌법 재판관으로 고고하게 살아온 ‘명품 법관’입니다. 법관이 지켜야 할 청렴이나 도덕성, 엄숙주의, 정치적 법률적 균형감각 같은 가치들에 별로 속박 받지 않고 살아온 자유로운 영혼의 소유자 같습니다. 드라마 속의 꽁지머리 형사처럼,  포니테일에 명품 휘감고, 재판정의 높은 법대에 앉아 피고인을 호령하는 ‘펑키형’ 판사일수도 있겠다는 ‘장난스런’ 생각이, 한동안 내 뇌리를 떠나지 않았습니다.

이동흡 인사청문회는 지난 21일 22일 이틀 동안 열렸습니다. 청문의 대상인 이동흡 지명자는 매를 흠뻑 맞고도 멀쩡한데, 그를 다그치던 서영교 의원등 일부 청문위원이 그만 “열불에, 억장이 무너져” 복통을 호소하며 나앉는 해괴한 일이 벌어졌습니다. 인사청문회 제도가 생긴 이래 이렇게 많은 비리 의혹 보따리를 안고 청문회장에 나온 사람은 일찌기 없었다고 야당의원들은 혀를 내두릅니다.
이번 청문회 과정에서 이동흡은 ‘이동흡 라빈스 31’이라는 별명을 얻었습니다. ‘배스킨 라빈스31’ 아이스 크림의 ‘이동흡 버전’이지요. 지금까지 나온 그의 검증꺼리가 개인비리 17건, 각종의혹 14건, 합계 31건이라는 뜻에서, 서른 한가지 맛을 내는 명품 아이스크림의 브랜드 네임이 그의 별명으로 패러디됐습니다. 내용이 너무 고약하고 남사스러워, 그의 비리 종합선물 세트를 여기서 모두 풀어놓을 생각은 없습니다. 일부는 물론 사실이 아니거나 과장된 부분도 있겠지요.

그가 제대로 해명을 하지 못했거나 증빙자료를 제출하지 못해 ‘혐의’가 거의 ‘사실’로 굳어진 것 중 가장 고약한 것은, 헌법재판관 시절 특정업무 경비를 자기 계좌에 넣어 개인적 용도로 사용했다는 공금횡령 의혹입니다. 재판 준비등 특정업무에만 써야할 이 공금중 그가 자신의 크레딧 카드 대금으로 사용한 금액만도 1억3천만원이라지요. 일부 뭉칫돈은 머니 마켓 펀드에 투자돼 이자놀이에 쓰였습니다. 명백한 횡령죄로 구속수사 까지 가능한 사안입니다. 헌법재판관 6년동안 그는 6억여원의 급료를 받고 6억여원을 예금했습니다. 수입을 몽땅 예금한 셈인데, 생활은 어떻게 했느냐는 청문위원들의 질문에  “딸이 매달 수백만원씩 보태줬다”고 둘러댔습니다. 월급이 기껏 3~4백만원일 딸이, 연봉이 억대가 넘는 부모의 생활비를 보태줬다는 얘기입니다.
재판관 시절 9번의 해외출장 중 5번을 부인동반으로 다녀온 사실을 따지자, “비서 대신 아내를 수행시켰다”고 강변했습니다. 청문위원들이 복통에, 헛구역질에, 경기를 일으키며  나자빠질만도 했습니다.


이동흡은 박근혜 작품일까


배우 배용준한테 일본의 팬들이 붙여준 애칭 ‘욘사마’에 빗대, 이동흡을 ‘흡사마’라 손가락질 하는 여론이 확산되고 있습니다. 모든 걸 ‘흡입하듯’ 빨아들여 챙긴다는 뜻이지요. 일부 여론조사에서 헌재소장 임명을 반대하는 여론이 60%를 넘어섰고, 시간이 지나면서 여론은 더욱 더 싸늘하게 식어가고 있습니다.
현재로서 이동흡이 헌재 소장자리에 앉을 가능성은 거의 제로입니다. 여당쪽 청문위원 2명이 이미 청문보고서 채택에 반대하고 나섰습니다. 13명 중 반대가 8명입니다. 국회의장이 직권 상정해 본회의 표결을 강행할 수 있지만, 친박계인 강창희 의장이 그런 무리수를 두기에는 그 자신과 박근혜 당선인이 짊어져야 할 정치적 부담이 너무 큽니다. 방법은 이동흡 지명자가 스스로 물러나든지, 임명권자인 이명박 대통령이 지명을 철회하는 길 밖에 없습니다.

엊그제 열린 새누리당 의원총회가 수상쩍습니다. 이 자리에서는 이동흡의 자진사퇴를 촉구하는 발언이 쏟아졌습니다. 그런데도 당론결정이 유보된 채 의총은 서둘러 종료됐습니다. ‘이동흡 구하기’의 선봉에 섰던 이한구 원내대표가 “아직 당론을 정할 때가 아니다”라며 회의를 서둘러 끝낸 겁니다. 그는 전날엔 ‘도살장’ ‘인격살인’ 운운하면서 “최악의 인사 청문회였다”고, 야당의원들을 비판했었지요. 이한구의 이런 정치적 역주행엔 그럴만한 말 못할 사정이 있는 것 같습니다. 의심이 가는 건 박근혜 차기 대통령과의 ‘교감’여부입니다.
이동흡 헌재소장 카드는 ‘이명박근혜’의 합작품입니다. 임명권자는 이명박이지만 이동흡은 박근혜 정부의 5년과 함께 해야할 사실상의 박근혜 사람입니다. 이동흡 지명에, 박근혜의 입김이 생각보다 깊이 작용했을 가능성이 짐작되는 대목입니다. 현재 권력은 이미 90% 이상이 박근혜 쪽에 넘어 와 있는 상태입니다. 박근혜가 어느 쪽으로든 결심만 하면 이동흡 파동은 금새 결판이 납니다. 이한구 등 여당 수뇌부가 머뭇거리고 있는 것은, 박근혜 쪽의 모종의 사인을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라는 유추가 가능합니다. 어쩌면 박근혜가 이동흡 카드에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있는건지도 모릅니다.


박근혜지지 역대 당선인중 최악


그제 발표된 갤럽의 여론조사에서 “박근혜 당선인이 일을 잘하고 있다”는 응답은 55%였습니다. 5년 전 이맘 때 이명박, 10년 전 이맘 때 노무현 당선인은 각각 85%의 높은 지지를 얻었습니다. 박근혜 지지율은 30%나 뒤지고 있는 셈입니다. 여러 까닭이 있겠지만 지난 선거 때 표를 주지않은 48%가 아직도 마음의 문을 열지 않고 있는 게 결정적 이유인것 같습니다. 이들을 보듬을  적극적-감성적 접근이 필요한데, 당선자는 여전히 ‘구중심처’에 숨어 고집스런 불통-먹통 정치를 계속하고 있습니다.
어제 박근혜는 모처럼 기자들에 잡혀 “총리 지명은 어떻게 되는 거냐”는 질문을 받았습니다. 그는 대답했습니다.
“오늘은 하루 종일 비가 오네요–.”
내일 쯤 또다시 기자들에 잡혀 “이동흡 문제는 어떻게 풀 생각입니까”라는 질문을 받으면,  아마도 이런 답변이 되돌아 올지 모릅니다.
“오늘은 비가 갰네요. 하늘이 환상적이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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