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동생 지만대군, 국민재산가 360위 랭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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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태준(작고) 회장
한국 재력가들의 재산문제들을 집중적으로 다루는 인터넷 언론인 재벌닷컴이 박근혜 대통령 당선자의 친동생인 박지만EG그룹 회장의 축재과정 낱낱이 폭로해 화제를 모으고 있다.
박정희 전 대통령의 가족들, 그중 큰딸 박근혜 대통령 당선자와 아들 박지만EG 회장 재산은 천문학적인 숫치를 훨씬 웃돌고 있다. 둘째 딸 박근령씨는 언니의 남자 고 최태민목사 때문에 언니와 철천지원수가 되어 왕따를 당하고 그녀의 남자는 박근혜-지만과의 처절한 다툼 끝에 1년 넘게 감옥에서 수형생활을 하고 있다.
박지만의 재산 규모는 583억원으로 국민 재산가 360위에 랭크되었다는 점에서 시사하는 의미가 크다고 할 수 있다. 지만 대군의 천문학적 재산은 부친 고 박정희 대통령이 독재시절 민간인 재산을 빼앗아 가로챈 뒤 갖가지 교묘한 방법으로 딸에게 주었고 박지만의 재산은 박정희 심복부하 박태준에 의해 박지만에게 특혜를 준 것이나 다름이 없다.
<재벌닷컴>이 지만대군의 재산 형성과정과 의혹 보도를 전문 게재한다.
(편집자 주)
 
“박지만 EG 회장은 재산 규모 583억원으로 한국 재산가 360위에 이름을 올렸다. 2000년대 초반까지도 사회 적응이 힘들었던 박 회장이 어떻게 불과 10년 만에 재벌이 될 수 있었을까?” 지난해 10월 초 재계 정보 제공업체인 재벌닷컴이 집계한 ‘올해 한국 400대 부자’에는 그 동안 외부에 알려지지 않았던 54명의 새로운 다양한 인물들이 포함돼 있었다.
새로운 인물군 중 박지만 EG 회장은 재산 규모 583억원으로 360위에 이름을 올렸다.
대중은 상습 마약 복용 혐의로 6차례에 걸친 구속과 선처 등으로 이어졌던 박지만이 2000년대 초반까지도 사회 적응이 힘들었던 그가 어떻게 신흥갑부로 떠올랐는지 궁금해 한다.


박태준의 절대적인 도움으로 출발


기업인으로서 박지만 회장을 취재하기 위해 충남 금산군 추부면 신평리에 위치한 ㈜EG와 서울 청담동에 위치한 EG 서울사무소에 연락을 취했다. 청담동에 거주하고 있는 박 회장은평소 서울사무소에서 업무를 보고 있다. 오랫동안 그의 수족이 돼 비서실장 역할을 하고 있는 정용희 실장은 “지금은 언론에 나갈 때가 아니라고 하십니다.
필요한 자료는 충남 금산의 본사로 연락을 취해보라고만 했다. 하지만 본사의 입장도 별반 다를 게 없었다.
박 회장은 이미 알려진 대로 중앙고등학교 1학년 재학 당시 어머니의 죽음을, 육군사관학교 3학년 때 아버지의 죽음을 경험했다. 1986년 육군 대위로 전역했지만 사회 적응이 쉽지 않았다.
“머리가 맑아진다”는 친구의 말에 빠져 코카인 흡입으로 1989년 처음 불구속 입건된 이후 10년간 5차례 (4차례 구속)나 적발, 선처, 재 적발이 이어졌다.



2000년에도 히로뽕 복용이 뒤늦게 적발돼 2002년 구속 영장이 청구되기도 했다. 그를 조금이라도 아는 이들은 “마지막 구속이 그에게 큰 자극을 줬다”고 말한다.
당시 그가 구속된 뒤 가족은 물론 아무도 찾는 이가 없었다. 선처를 부탁하는 전화가 검찰과 청와대에 잇따르던 때와는 전혀 다른 상황이었다.
그의 재기를 도운 건 박태준 포스코 명예회장이다. 박 명예 회장과 박정희 전 대통령은 육군사관학교 스승과 제자로 관계가 각별했다. 세계적인 철강업체 포항제철의 탄생도 이러한 관계가 배경이 된다. 인연은 이후에도 계속됐다.

소망교회 집사인 박태준 명예 회장은 방황하던 박 회장을 교회로 인도한다. 박 회장의 지인들은 “그가 소망교회에 다니기 시작 하면서 마음의 안정을 찾았다”고 전했다.
이른바 정신적인 지주 역할을 마다하지 않던 박 명예회장은 경제적인 면도 챙기기 시작했다.
현재 박 회장이 EG 회장에 오를 수 있었던 건 박태준 명예 회장의 도움이 절대적이었다.


김우중이 8억원 출자 대주주 등극


1987년 설립된 EG(당시 삼양산업)는 포항제철의 냉연강판 생산 과정에서 나오는 폐산을 독점해 전자용 산화철을 만드는 곳이다. 산화철 가공 부문에 수입 대체 기술을 갖고 있어 신기술 개발 벤처기업으로 지정돼 정부의 지원을 받기도 했다.
1989년 마약 혐의로 구속됐다 석방된 직후 박 회장은 박태준 당시 포항제철 회장의 도움으로 이 회사의 부사장이 된다. 이후 1990년 2월 대표이사가 된 뒤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의 도움을 받아 8억원을 출자해 대주주가 됐다.
2000년 코스닥 시장에 상장되며 박 회장을 벤처사업가로 탈바꿈 시킨 EG는 당시 삼양산업이었던 사명을 1999년 9월 ㈜ EG로 바꾼다. 그 시기 박 회장은 “EG는 새로운 출발을 다짐하는 뜻을 담은 영문 이니셜”이라고만 소개했다.

박 회장에게 2004년 겨울은 인생의 분수령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해 12월, 16살 아래인 변호사 서향희씨와 백년가약을 맺었다.
당시 오랜 친구로 알려진 오명식 EG 상임고문은 “두 사람이 두 달 전 지인의 소개로 만나 최근 양가의 허락을 얻어 결혼식을 올리기로 했다”며 소식을 알렸다. 결혼식 당일 각계각층의 인사들이 몰리면서 미처 입장하지 못한 하객은 별도의 그랜드볼룸에서 스크린으로 예식을 지켜봐야 했다.
당시 식장 앞쪽에는 박정희 전 대통령의 조카사위 김종필 전 자민련 총재와 박태준 포스코 명예회장, 김성진 전 문공부장관, 박승규 전 민정수석, 민관식 전 문교부장관, 정서영 전 경제수석 등 3공화국 당시 내각과 청와대 핵심인사들이 총 출동했었다.

박 회장은 결혼식 직후 아내 서 변호사와 함께 국립묘지를 찾아 부모님을 참배하고 폐백의 예로 축문을 읽었다. 그는 “불효자 지만이가 한 가정의 지아비가 되어 이렇게 찾아왔다”며 “근혜, 서영 두 누님과 박태준 회장님 내외분 등 수많은 어르신들이 참석하셔서 축하해 주셨다. 그분들의 뜻을 잘 받들며 사는 것이 곧 아버님 어머님의 뜻을 받드는 길이라 생각하고 꿋꿋하고 의연하게 살아가겠다”고 덧붙였다.
박 회장은 결혼 후 이듬해 3.58㎏의 건강한 아들을 출산했다. 지금도 주말이면 아내와 다섯 살 난 아들과 함께 소망교회를 찾아 마음을 다스린다고 한다. 아내 서 변호사는 결혼 전 독실한 불교신자였으나 박 회장이 전도해 함께 교회에 나가고 있다.


핵심 정치 테마주 주가 상승곡선


EG는 현재 전자기기의 주요부품인 페라이트 코어의 주원료인 자성 재료용 산화철을 수거해 재판매하거나 이를 활용해 복합 재료를 만들어 판매하고 있다.
영상·정보통신·전자·전력기기 등 전기를 이용하는 모든 기기에 적용되는 부품 분야의 핵심 소재로 지속적인 성장이 예상된다.
이러한 성공 요인에도 EG에 대한 증권가의 관심이 결코 호락하지만은 않다. 우선 박정희 전 대통령의 아들이자 차기유력 대권주자의 동생이 회장인 탓에 이른바 ‘정치 테마주’로 평가받기도 한다.
2007년 대선에선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의 입지가 높아지자 주가도 덩달아 상승곡선을 그렸다.
그해 두달 사이 두배 이상 뛰기도 했다. 회사를 이끈지 20년 만에 한국 400대 부자로 떠오른 박지만 회장! 10년 전 EG의 코스닥 등록 예비심사를 청구하며 그가 언론 인터뷰를 통해 한 말이 새삼 새롭게 조명되고 있다.
“제 직업은 전직대통령 아들이 아니라 사업가입니다. 회사가 커지면 그동안 사회에 진 빚을
 하루라도 빨리 갚을 수 있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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