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중해부> 박근혜 정부에 드리운 박정희의 흔적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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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정부에 군사정권 시절의 어두운 그림자가 점점 더 드리워지고 있다. 박근혜 정부의 내각과 청와대 핵심멤버 중 다수 박정희 전 대통령과 직간접적으로 연을 맺고 있는 인물들이라는 사실은 이미 잘 알려져 있다. <선데이저널>도 이러한 사실들에 대해 한 차례 언급한 바 있다. 흘러지나가듯 언급됐던 이런 사실들이 파면 팔수록 더욱 분명하게 그 연결고리를 드러내고 있다.
박 대통령이 직접 ‘삼고초려’했다고 알려진 김종훈 전 미래창조과학부 장관 후보자가 대표적이다. 그는 성공한 벤처사업가라는 사실이 부각되며 박근혜 정부 초대 내각의 아이콘으로 발탁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선데이저널>의 취재 결과 김 전 후보자의 장인은 박정희 전 대통령의 핵심측근이었던 정인용 씨인 것으로 확인됐다. 그는 박 전 대통령 서거 후 미국으로 이민을 갔다.
박정희 전 대통령 측근들만 부각되는 것이 아니다. 수십년간 정권을 쥐고 흔들었던 군인들도 다시 권력 핵심부로 다가서고 있다. 김장수 국가안보실장을 비롯해 남재준 국가정보원장 후보자 등 군인들이 핵심요직을 꿰찼다. 군인들이 아니어도 군부 독재시절 핵심실세로 이름을 날렸던 세력들도 부활하고 있다. 대선 전부터 국민들이 우려했던 부분이 그대로 현실로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리차드 윤 취재부 기자>

지난 4일 전격 사퇴한 김종훈 전 미래창조과학부 장관 후보자. 그는 창조융합산업 발전을 위해 박근혜 대통령이 삼고초려한 인물로 알려졌다. 그래서 그가 미국에서 어떤 일을 했는지가 김 후보자와 관련한 최대의 관심사였다. 하지만 김 후보자가 어떤 가족력을 가지고 있었는지는 관심 밖이었다.
<선데이저널>의 취재 결과 김 전 후보자의 장인은 박정희 정권 시절 군 장성을 지냈던 정인용 씨였다. 그는 단순히 군 장성 이상의 영향력을 행사했으며 박 전 대통령의 최측근 중 하나였던 것으로 전해진다. 그는 박 전 대통령 서거 후 어떤 이유에서였는지 곧바로 미국으로 이민을 갔다. 정 씨는 미국에서 김 전 후보자와 함께 자본금 73억원의 유리투자컨설팅(현 유리자산운용)을 설립했다. 그는 현재 미국 자원개발업체인 키스톤인더스트리 부회장을 맡고 있다. 즉 김 전 후보자 역시 정 씨라는 연결고리를 통해 박 전 대통령과 깊은 연관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박정희 키즈들의 급부상













 ▲ 왼쪽부터 남재준 국정원장 내정자와 김장수 국가안보실장 내정자, 박흥렬 경호실장
김 전 후보자뿐만 아니라 초기 내각과 비서진으로 중용된 인물들은 대부분 고시 출신 관료이거나 교수 출신 전문가들이다. 이는 사실 박정희의 인사 스타일과 똑같다.
허태열 비서실장의 경우 1974년부터 85년까지 무려 11년 동안 청와대 비서실에서 근무했다. 1974년 8월 15일 모친 육영수 여사의 사망 이후 청와대에 들어간 허 비서실장은 퍼스트 레이디 역할을 했던 박근혜 대통령과 자주 얼굴을 대했다. 당시 서른 즈음의 행정관 허태열(45년생)은 20대 중반의 퍼스트 레이디 박근혜(52년생)를 만났고, 30년도 훨씬 더 지나서 그녀의 아버지에 이어 이젠 박근혜를 대통령으로 또 모시게 된 것이다. 허태열은 정치권에 입성한 이후로도 자타공인 ‘친박 맏형 또는 원조 친박’으로 활동했다. 



박근혜 정부 경제정책의 수장인 현오석(63)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후보자는 1974년 공무원이 된 뒤로 1975년 ‘제4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1977~1981년)’의 수립에 참여했던 인물이다. 그는 유신시절 성장 위주 경제 정책을 주도했던 경제기획원 출신이다. 참여연대 시민경제위원회는 “현오석 내정자가 박근혜 정부의 핵심 국정운용기조인 경제민주화 과제를 수행하는 데 적임자가 아니다”고 평가한 바 있다.
이 외에도 박근혜 정부 초대 국토부 장관 후보인 서승환 내정자 역시 아버지가 박정희 정권 시절 참모총장과 특별보좌관을 거쳐 국방장관을 역임했다. 그는 육참총장 시절 전두환 대령을 수석부관으로 삼았고 그 후임도 노태우 대령을 데려다 썼다고 한다.
통일부 장관 후보자가 된 류길재 내정자 역시 2대에 걸쳐 박정희-박근혜 정권과 연을 맺고 있다.


군사정권 부활 신호탄


더욱 우려스러운 것은 핵심 요직에 군인들이 등용되고 있다는 것이다. 벌써부터 군사정권으로의 회귀라는 비판이 나아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이 중용한 육사출신은 4명이다. 김장수 국가안보실장 내정자와 박흥렬 경호실장, 김병관 국방장관 내정자에 이어 남재준 전 육군참모 총장이 국가정보원장에 내정된 것이다. 국방장관은 거의 대부분 육사출신들이 차지해왔으니까 제외하더라도 경호실장과 신설된 국가안보실장에 이어 국가정보원장까지 육사출신을 임명하니까 ‘육사전성시대’라는 말이 나오는 것이다.

특히 남재준 국정원장 내정자와 김장수 국가안보실장 내정자 박흥렬 경호실장은 매우 각별한 인연을 맺어온 것으로 드러났다.
남 후보자가 육사 25기로 가장 선배인데 육사 27기인 김장수 내정자가 남 후보자가 거친 6사단장자리와 합동참모본부 작전본부장, 한미연합사 부사령관, 육군 참모총장 등을 이어 받았다. 육사 28기인 박흥렬 경호실장은 김 내정자로부터 육군참모총장 등 주요 직위를 이어 받았다.
남 후보자가 36대 육군참모총장을 김장수 내정자가 37대, 박흥렬 경호실장이 38대 육참총장을 역임했는데 세 명 모두 노무현 정부시절 육참총장이다. 외형적으로 보면 김장수 내정자가 인수위 외교안보분과 간사였으니까 중심 역할을 한 것으로 보이지만 실제로는 남 후보자가 핵심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남 후보자는 박 대통령의 오랜 측근으로 2007년 한나라당 대선후보 경선 이전부터 박 대통령에게 안보 분야를 자문해왔으며, 지난해 새누리당 대선캠프에선 국방안보 분야 특보로 활동했다. 박 대통령에게 김장수 국가안보실장 내정자를 ‘연결’해준 사람도 남 후보자로 알려져 있다.












당장 남재준 전 육참총장을 국정원장 후보자로 내정하자 민주통합당 김현 대변인은 논평에서 “주요 안보라인이 모두 육사를 나온 육군 출신으로 채워지면 안보와 관련한 정부 내 다양한 논의 구조가 보장되기 어렵고, 육사 권력독점 현상이 생길 수 있다. 또, 대북관계가 사실상 단절된 상황을 풀어가기 위해서는 전문성과 유연함을 가진 인사가 국정원장을 맡는 게 필요하다”고 비판했다.
여권에서도 군사정권이라는 단어를 언급했다. 새누리당의 한 당직자는 “군인 출신 국정원장이라니, 군사정권이 부활한 것 같다. 이전까지 발표한 인선도 그렇게 비판을 받았는데, 어떻게 또다시 이런 인선을 할 수 있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국정원장에 육군 장성 출신이 임명된 것은 김대중 정부 시절인 2001년 임동원 원장(육군 소장 출신) 이후 처음이다. 12년 만에 ‘문민 국정원장’ 임명 관행이 깨진 것이다. 그렇지만 임동원 전 원장의 경우 햇볕정책의 핵심이었으므로 ‘군 출신 전문가’를 앉힌 것은 여러 가지로 논란이 일수 밖에 없는 대목이다.
비단 군인들뿐만 아니라 정치권에서 군사독재 시절과 깊은 연관을 맺고 있는 인물들이 적지 않다. 새누리당 길정우 의원이 대표적이다. 길 의원은 본지가 보도했던대로 극비 대북 접촉을 하면서 물의를 일으켰던 인물이다. 그는 박정희와 함께 5.16 군사구테타의 주역 중 핵심 멤버인 길전식 전 공화당 대표의 조카다. 길의원은 중앙일보 기자 출신으로 알려져 있지만 사실 운산그룹 부회장이기도 하다. 운산그룹 회장은 전두환과 사돈지간이다.


박정희 용인술 빼닮은 朴


정치권에서는 지금까지의 인선을 두고 ‘육.법.관’이라는 말이 나온다. 육사출신에 법조인출신 그리고 관료출신을 중용하는 걸 두고 하는 말이다. 그런데 이들의 공통점이 바로 철저한 ‘상명하복’이라는 점이다. ‘군인은 명령에 죽고 명령에 산다’는 말이 나올 정도이고 법조인 중 검사들은 ‘검사동일체 원칙’이라는 이름으로 철저한 기수중심의 위계질서가 강조된다. 관료출신들도 인사권자의 입장을 최우선으로 고려한다. 우스갯소리지만 이런 얘기가 있다. ‘국회의원들은 아무리 부패해도 투표를 하는 유권자(비록 표이긴 하지만)의 눈치를 보지만 관료(공무원)출신들은 아무리 훌륭해도 인사권자의 눈치만 살핀다’는 말이다.













▲ 대북접촉 파문의 당사자인 길정우 의원은 전 공화당 사무총장 길전식씨의 조카로 박근혜 대통령과 2대에 걸쳐 직·간접적인 인연을 맺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의 인사스타일이 철저하게 2인자를 두지 않는 원칙에 충실하다는 평가를 받아왔다. 이는 박 대통령의 아버지 박정희 전 대통령의 용인술을 닮은 것이다. 박정희 전 대통령도 정권의 2인자를 허용하지 않았는데 권력을 가진 특정 측근에게 과도한 힘이 실리지 않도록 등거리를 유지하면서 견제와 경쟁을 이끌어냈는데 박근혜 대통령도 철저하게 2인자를 두지 않는다.
특히 박근혜 대통령은 ‘자기 의견이 있는’ 인물의 중용은 철저히 배제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자기주장이 강하면서 바른 소리를 하는 정치인들을 멀리한다는 얘기이기도 하다.

대표적인 인물이 대선과정에서 선대위 총괄본부장을 맡았던 김무성 전 의원이다. 박근혜계 좌장으로까지 불렸던 그가 한때 계파를 이탈했던 배경에는 2인자를 인정하지 않는 박 당선인의 리더십 스타일 때문이었다. 또 유승민 의원과 김종인 이상돈 전 비대위원들도 비슷한 사례라는 평가가 나온다.
박정희 시대와 군사정권의 부활. 현재까지 박근혜 정부 인사에서 나타나는 두가지 코드다. 이런 경향이 강화되면 강화될수록 국민들의 마음속에는 과거 유신시절 상처들이 다시금 생각될 것이다. 인사가 만사라는 말이 있다. 과연 박 대통령이 성공한 대통령으로 남기 위해서 새겨들어야 할 말이 무엇인지 되짚어 보아야 할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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