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진숙 파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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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임춘훈(언론인)

외모지상주의, 즉 루키즘(lookism)은 “외모에 대한 편견, 혹은 차별”을 뜻하는 말입니다. 1999년에 나온 옥스포드판 ‘20세기 단어사전‘에 처음 실린 이 말은, <뉴욕 타임즈>의 칼럼니스트 윌리엄 새파이어가 2000년 인종 성별 종교 이념등에 이어 인간의 불평등을 만들어 내는 새로운 원인 요소로 ’외모‘를 지적하면서, 널리 쓰이기 시작했습니다.
 흔히 루키즘은 “사람의 용모가 개인 간의 우열뿐 아니라 한 인생의 성패까지 좌우한다고 믿어 외모에 병적으로 집착하는 경향, 또는 그런 사회풍조”를 이릅니다. 좋은 인상, 잘 난 외모를 뜻하는 중성적 의미의 영어 단어로는 pretty나 beautiful 대신 good-looking이 일반적으로 쓰이는데, 루키즘이라는 말도 여기서 유래됐습니다.
 한국에서 “얼굴이 짱이다”라는 뜻의 얼짱이라는 말이 처음 쓰이기 시작한 것은 2000~2001 년 무렵입니다. 3대 포털에 ‘얼짱 까페’가 생겨 젊은이들이 수십만명씩 회원으로 가입하며 한국판 루키즘인 얼짱 문화를 확산시켰습니다.


국회의원도 예뻐야 짱!


현대생활에서 사람의 외모는 연애 결혼등 사생활은 물론, 취업 승진등 사회생활 전반에 까지 큰 영향을 미칩니다. 아무리 학벌이 좋아도 외모가 받쳐주지 않으면 좋은 결혼상대를 만날 수 없고, 우수한 성적으로 대학을 나와도 ‘초고도 비만’ 같은 신체 조건으로는 취직시험에서  면접을 통과하기 어려운게 현실입니다. 한 통계조사에 따르면 자신의 얼굴에 만족한다는 여성은 4%에 불과하고, 96%는 외모 콤플렉스를 갖고 있는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루키즘은 때로는 정치와도 접목됩니다. 18대 한국 국회에는 ‘한 인물’ 한다는 2명의 얼짱 여성 국회의원이 있었습니다. 이들은 의정활동 대신 얼굴로 승부를 내려 작심했는지, 임기 내내 외모경쟁에 열을 올렸습니다. 상대방이 오늘은 무슨 옷에 어떤 헤어 스타일로 등원했는지, 명품 액세서리는 어떤 것을 쓰며 핸드백과 구두는 어떤 스타일에 무슨 브랜드를 애용하는지를 염탐(?)하느라 바빴습니다. 상대방이 예쁜 얼굴로 신문이나 패션 잡지 같은데 나오면 비서를 시켜 반드시 자기도 상대 보다 훨씬 더 예쁘게 그 신문과 잡지에 인터뷰 기사가 나가게 닥달했습니다. 정치에 까지 파고든 별난 루키즘 탓에 비서들만 죽을 맛이었지요.


윤진숙은 루키즘의 피해자?


박근혜 정부 초대내각의 최대 졸작(?)으로 꼽히는 윤진숙 해양수산부 장관이 느닷없이 루키즘 시비에 휘말렸습니다.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지나치다 싶을 정도의 인신공격성 질문과 핀잔을 받아, 국민들로부터 “장관이 되면 대한민국 거덜 낼 후보 1순위” 쯤으로 꼽힌 윤 장관이 실은 한국적 루키즘, 즉 얼짱 문화의 피해자라는 주장이 나왔습니다.
윤진숙은 장관 인사청문회의 ‘역사’를 새로 쓴 사람입니다. 의원들의 질문 10가지 중 9가지는 모른다고 답변하거나 뜻 모를 혼자웃음으로 썰렁 분위기를 만들었습니다. 어떤 ‘할 일 없는 사람’이 윤진숙 청문회를 제대로 모니터링해 봤더니 ‘아마’라는 단어만 58번을 쓰며 죽을 쑤더라네요. 야당의원 뿐 아니라 여당의원 대부분도 “이런 장관후보는 처음 봤다”고 혀를 찼습니다. 박근혜 대통령의 사람 보는 눈이 겨우 이 정도냐는 비아냥이 쏟아졌지요.
이에 대한 반박이론으로 제기된 게 바로 “윤진숙은 얼짱문화의 피해자”라는 다소 생뚱맞은 주장입니다. 일부 여당 사람들과 청와대 쪽 사람들이 윤진숙을 엄호하며 이런 주장을 폈습니다.
나경원은 빼어난 미모에 우수한 학벌, 사법고시와 판사 출신이라는 화려한 스펙, 거기다 판사 남편까지 둔 18대 국회 최고의 엄친딸-얼짱 의원이었습니다. 의정활동도 우수한데다 예쁘고 말솜씨도 좋아, 신문과 TV에 가장 자주 얼굴이 나오는 ‘스타 의원’이었지요. 당연히 대중적 인기도 높아 박근혜를 이을 미래의 여성 대통령 감으로 회자되기도 했습니다.
만약 나경원이 장관 후보가 돼 인사청문회에서 ‘윤진숙급’의 불성실하고 무식한 답변을 했다면 어떻게 됐을까요? 장관의 자질을 검증하는 전문적인 질문 외에 “지금 떨고 있니? 답변이 어째 그 모양이니? 공부는 하고 나왔니?” 하는 식의 여성 비하적-인신 공격적 발언이 나경원에게도 쏟아져 들어왔을까요? 나경원의 배시시한 그 고운 얼굴에, 대놓고 남성 국회의원들이 조롱조의 막말을 퍼부어 대지는 못했을 것 같기도 합니다. 한마디로 윤진숙은 자질이 부족한데다가 얼굴까지 ‘얼짱’ 아닌 ‘얼쑤’여서, 그 망신을 당했다는 주장입니다.
박근혜 정부의 초대 내각 구성이 마무리 됐습니다. 지난 17일 대통령은 윤진숙 해수, 최문기 미래부 장관과 이경재 방통위장, 채동욱 검찰총장에게 임명장을 줌으로써, 출범 2달만에 17부 3처 17청의 내각구성을 끝냈습니다. 윤진숙만은 절대 안된다고 야당 뿐 아니라 다수 여당의원들도 반대했지만 대통령의 옹고집을 꺾지 못했습니다.
결과적으로 윤진숙은 루키즘의 피해자가 아니라 수혜자가 된 셈입니다. 루키즘 이론(?)으로는 웬만한 회사의 면접 시험도 못치를 외모로 장관까지 됐으니까요. 22일 장관취임 후 처음 새누리당과의 당정협의회에 나타난 윤 장관의 외모가 또 한차례 화제가 됐습니다.
이날 윤진숙은 베이지색의 롱 재킷에 와인색 뿔테안경, 이마를 반쯤 가린 깻잎머리 스타일로 의원들 앞에 나타났습니다. 여전히 얼짱과는 인연이 없는 얼굴이었지만, 깻잎머리와 큰 뿔테안경이 얼굴의 상당부분을 가린 탓인지, 청문회 때 보다는 외모가 훨씬 세련돼 보였습니다. 청문회 이후 마음고생이 얼마나 심했던지 살이 엄청 빠졌다지요. 이 ‘자연 다이어트’ 도, 그의 얼굴 모양을 확 바꿔놓는데 보탬이 됐습니다. 밤 새워가며 공부를 했는지 이날은 의원들과의 각종 현안 질의 응답에서도 무난하다는 평가를 받았습니다.


박근혜 정부 출발이 불안하다


4월 25일로 박근혜 대통령이 취임 2달을 맞았습니다. IMF 때 출발한 김대중 정부 이래 15년만에 처음으로, 박 정부는 가장 어려운 국내외의 위난적 상황에서 나랏일을 맡게 됐습니다. IMF와는 단순비교가 안되는 안보- 외교- 경제의 3각 파도가, 마악 출범한 박근혜호를 삼킬 듯이 무섭게 덮치고 있습니다.
북한은 전쟁 까지 위협하며 핵 카드를 흔들어 보이고 있습니다. 일본의 우경화와 ‘엔저’ 공세는, 과거 어떤 대통령도 경험하지 않은 ‘일본 리스크’를 박 대통령에게 떠 안겼습니다. 북한의 위협보다 더 심각하다는 경제 문제는 도무지 해답이 없어 보입니다.
아시아 개발은행은 한국의 경제 성장률을 지난해 3.4%에서 올해 2.8%로 대폭 낮췄습니다. 아시아 상위 11개국 가운데 싱가포르에 이어 꼴찌에서 둘째지요. 박근혜 정부 출범 후 한국경제가 무섭게 추락할 수도 있다는 경고음이 여기저기서 들려오고, 1인당 국민소득 2만달러 문턱에서 경제가 그대로 주저앉게 될지도 모른다는 비관론도 고개를 들고 있습니다.
박 대통령의 선거공약인 경제 민주화는 단기적으로 경제상황을 더욱 악화시킬 수밖에 없습니다. 각종 경제민주화 입법과 규제강화, 세무조사 확대는 기업의 투자 위축과 고용시장 침체를 불러올 수밖에 없습니다. 정부나 정치권이 위기의식을 거의 갖고 있지 않다는 사실이 위기의 핵심이기도 합니다.
박근혜 정부의 고위직 후보 7명이 청문회 과정에서 낙마했습니다.
임명된 장관급중 상당수는 야당의 부적격 판정으로 청문 보고서 채택이 무산됐지만, 대통령은 고집스레 임명을 강행했습니다.
 윤진숙 해양수산부 장관은 해양 환경, 그 중에서도 갯벌 전문가라고 합니다. 갯벌에서 조개 잡고 게 잡으며 해양환경이라는 것을 연구하던 학자가, 만 몇천명의 직원과 해양경찰을 진두지휘 하며 대한민국의 해양주권을 넓히고 지킬 신설 해수부의 수장이 됐습니다. 국회의원 300명의 생각보다 대통령 한 사람의 생각이 옳았다는 것을 입증해 보여주기 위해서도, 또한 자신이 얼짱이 아니어서 불평등의 대우를 받고 있다고 속 상해 하는 96%의 루키즘 피해 여성들을 위해서라도, 윤진숙이 ‘얼짱’ 대신 ‘일짱’ 장관으로 거듭났으면 합니다.  “윤진숙 파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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