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제는 박근혜다, 불통 청와대의 비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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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임춘훈(언론인)

방콕의 5월 무더위는 참혹합니다. 이 나라는 우기인  7~8월 보다 건기인 4~5월이 훨씬 더 무덥습니다. 타이 음식은 독한 향신료를 써 맛과 냄새가 역겹고 독합니다. 이런 음식을 먹어야 ‘맹독성’ 냄새가 땀과 함께 스며나와, 모기와 같은 해충이 달려들지 못한다지요.
5월 10일 저녁 125도의 폭염에 거의 파죽이 된 몰골로 호텔에 돌아왔습니다. 방금 전에 먹은 타이 음식이 마치 임신부의 입덧처럼 목에 걸리며 헛구역질이 치밀어 올라 왔습니다. 구토감도 달랠 겸 모처럼 한국 소식이 궁금해 인터넷을 접속했습니다.
절대로 일어나서는 안될 사건이면서 어쩌면 당연히 일어날 수 밖에 없었던 사건이, 워싱턴과 서울에서 실제상황으로 벌어지고 있었습니다. 청와대 대변인 윤창중의 섹스 스캔들입니다. 그 뉴스를 보는 순간 더위 먹어 지쳐 스러졌던 내 온 몸의 세포와 신경들이 곤두서 일어나며, 어느새 헛구역질이 멈췄습니다. 마침내 오고야 말 일이 왔다는 지독한 낭패감과, 누구에게랄지 모를 분노감이 치밀어 올랐습니다. 순간 그 분노는 윤창중 보다 그를 옆에 두고 총애해 마지않은 대통령을 향해 끓었습니다.
윤창중이 통역사로 임시 고용된 교포 처녀와 밤새 술을 마시고 성추행을 했다는게 사건의 요지입니다. 인터넷에 이 소식이 뜨자 윤은 대통령의 LA 방문에 동행하지 않고 곧바로 서울로 야밤 도주했습니다. 대통령에게는 당신이 총애해 마지않는 이 별종 대변인의 ‘미스터리 실종사건’이 하루 이상이나 보고되지 않았습니다.
윤창중은 여자의 허리만 건드렸다 하고, 여자는 엉덩이를 움켜 잡았다고 주장합니다. 윤의 야밤 줄행랑을 놓고 청와대 이남기 홍보수석은 그의 독단 행동이었다 하고, 윤은 이수석의 귀국 종용에 따랐다고 주장합니다. 심지어는 사건자체가 미모의 교포처녀를 ‘천둥벌거숭이’ 같은 윤창중에게 붙여 그를 함정에 빠트리게 한 친노 좌파들의 음모라는 소설같은 얘기까지 떠돕니다.


윤창중 괴담과 막장 청와대


허리를 건드렸거나 엉덩이를 잡았거나 그것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홍보수석이 귀국을 강요했거나 윤이 제발로 귀국했거나 그것도 대수롭지 않습니다. 친노 좌파들이 파놓은 함정에 빠졌다는 일부 우파진영의 주장이 설혹 사실이라 해도, 그게 사건의 본질이 될 수는 없습니다. 문제는 윤창중의 그날 밤 술자리 자체입니다. 대통령은 한미 정상회담과 미 의회 연설, 교포초청 간담회등 바쁜 일정을 소화하는 강행군을 하고 있었습니다. 다음날은 대통령이 공을 들인 상하 양원 합동회의의 영어연설이 예정돼 있었지요. 대변인은 어느 참모보다 먼저 이른 새벽에 대통령을 만나 전날 일정을 보고 평가하고, 홍보와 관련된 지시사항을 전해 듣고 챙겨야 할 사람입니다. 그런 막중한 자리에 술 냄새 나는 퀴퀴한 입과 젊은 처녀 엉덩이 만지던 불결한(?) 손으로 나간다? 더구나 미혼의 여성 대통령 앞에? 이런 ‘무엄 발칙한’ 일이 정권의 최고 권부 안에서 어떻게 일어날 수 있을까요?
대통령을 보좌하는 청와대 참모들의 공직 기강이 이 정도라니 놀랍습니다. 이건 차라리 엽기 수준입니다. 화씨 120도의 날씨와 지독히 냄새나는 음식을 먹고 헛구역 질을 해야하는 방콕 나들이 보다, 본국에서 들려오는  이 윤창중 ‘괴담’이 훨씬 더 참혹스러웠습니다.


윤창중 사건은 예고된 참사


사돈이 남 말을 하고 있습니다. 윤창중이 청와대 대변인이 되기 전 쓴 칼럼에 이런 내용이 나옵니다. 
“청와대 대변인은 단순히 대통령의 입이 아니다. 대통령과 정권의 수준을 압축적으로 보여주는 얼굴이고 분신이다–”
윤창중의 ‘수준’은 이번 ‘엉덩이 사건’ 이전부터 이미 언론계와 일부 식자층엔 ‘압축적으로’ 알려져 있었습니다. 문제는 이번 사건으로 그의 말 마따나 ‘정권과 대통령의 수준까지’ 만천하에 드러나, 대한민국이라는 나라의 국격 자체가 세계의 조롱꺼리가 됐다는 사실입니다.
박근혜 정부 들어 윤창중 처럼 잘나간 공직자도 없습니다. 대선 직후 그는 박 당선자의 첫 번째 인사로 당선인 수석 대변인에 발탁됐습니다. 이어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대변인이 됐고 마침내는 정부출범과 함께 최고 권부인 청와대 대변인 자리까지 꿰찼습니다.
 반면에 이 정부 고위 공직자 중 윤창중 만큼 절대 다수 국민들로부터 미운 오리새끼 대접을 받은 사람도 없습니다. 거의 모든 언론과 야당이 들고 일어나 그의 자질과 평판을 문제 삼으며 임명 철회를 요구했지만, 박 대통령은 조금의 망설임이나 흔들림 없이 인사를 밀어부쳤습니다. 워낙 대통령의 의지가 강해, 윤창중 임명철회를 건의하러 나선 일부 여당 고위인사와 청와대  참모들은 입도 뻥끗 못하고 돌아 섰다지요.
‘별 볼 일 없는’ 해외파 언론인인 나도 윤창중에 관한 칼럼을 대여섯 번은 쓴 것으로 기억됩니다. 일간신문 논설위원 출신인 그의 글은 도무지 기본을 가늠할수 없습니다. ‘–다’로 끝나는 우리말 문장의 끝부분을 과감히 생략해 잘라버리는 윤창중식 칼럼 문장은 생소하고 때로는 당혹스럽기조차 합니다.
보수논객인 그의 글은 보수 이상의 그 무엇을 말하려 늘 조바심을 내는 것 처럼 보입니다. 이분법적이고 분열지향적인 논지의 칼럼들은, 험하고 거침없는 막말 표현으로 일찍부터 악명을 떨쳤습니다. 박근혜 대통령은 윤창중과 일면식도 없었지만 순전히 그의 글에 감명(?) 받아 ‘윤창준 광팬’이 됐고, 그런 인연으로 청와대 대변인 까지 시키게 됐다는 겁니다.
희한한 일입니다. 박근혜 대통령은 영어 중국어 불어를 포함해 5개국어를 구사하는 ‘언어의 달인’ 쯤으로 평가받는 사람입니다. 그런 사람이 윤창중 정도의 글에 매료됐다면, 다른 나라 말은 몰라도, 대통령의 한국어 능력엔 문제가 있다고 볼 수밖에 없습니다. 보수 논객을 곁에 두고 싶었다면 품격과 절제를 지키면서 보수의 가치를 논하고, 많은 이들로부터 존경과 공감을 이끌어 내는 썩 괜찮은 논객들도 많습니다. 왜 하필이면 모두가 고개를 젓는 깜냥 미달의 인물을 고집스레 썼다가 저 망신을 당하는지 알다가도 모르겠습니다.
태국에서 한국은 ‘짱’입니다. 세계적 관광지인 파타야의 민속 쇼인 티파니 쇼엔 다른 나라 의 음악과 춤으로는 유일하게 한국의 아리랑 부채 춤과 장고 춤, 그리고 싸이의 강남 스타일이 공연돼 인기몰이를 하고 있습니다. 유명한 농눅 정원의 악어 쇼에선 조련사가 빨리빨리, 저리 가, 같은 한국어를 구사하며 악어를 다룹니다. 거리의 노점상들은 한국말로 호객을 하고, 어떤 집에선 달러를 내면 한국 돈으로 달라며 도로 내밉니다. 최근 떼 지어 몰려오는 중국인 관광객들과 함께 한국인들은 이 지역 경제를 살리는 버팀목이 되고 있습니다.


박근혜, 변하지 않으면 필패


관광호텔에서 TV를 켜면 서너개의 채널에선 반드시 한국 드라마와 아이돌 쇼가 나옵니다. 10여년만에 찾은 동남아에서 1인당 소득 2만 달러를 훌쩍 뛰어넘은 한국의 위상은 그야말로 상전벽해를 이루듯 달라져 있었습니다. LA에서도 동남아 출신 이민 2세들에게 한국인 2세 배우자의 인기는 요즘 상종가입니다.
태국에서 어깨 좀 펴고 다니다, 한국 대통령의 대변인이라는 사람이 워싱턴에서 애먼 처녀 엉덩이 만지다 쫓겨 났다는 참담한 기사를 태국 사람들과 함께 보게돼 머쓱해졌습니다. 대통령의 외국 공식방문에서 이런 일이 일어난건 아마도 세계 외교사에 없는 일일겁니다.
한국의 일부 언론과 야당은 이번 일로 박근혜 대통령의 첫 미국방문 성과가 물거품이 됐다고 개탄합니다. 대한민국의 국격을 훼손한 참담한 사건이긴 하지만 외교성과가 도로아미타불이 됐다는 식의 평가는 지나친 자기모멸입니다. 윤창중은 어차피 사고를 칠 인물이었습니다. 사고 치고는 너무 큰 사고였지만, 이해할 수 없는 옹고집 인사로 대형 인사사고를 자초한 박 대통령으로서는 어차피 감내해야할 짐이며 업보였습니다. 이번 사건으로 대통령의 사람 쓰는 안목과 솜씨, 그리고 국정운영 스타일이 달라진다면 전화위복이 될 수도 있겠습니다. 헌데 웬지 부질없는 기대같습니다.
윤창중 사건이 터진 직후 여당인 새누리당 대표 황우여는 이런 논평을 내놨다가 여론이  나빠지자 거둬들였습니다.
“이번 사건은 대통령의 인사 실패와는 상관없다. 순전히 윤창중 개인의 실수다.” 대통령은 이런 잠꼬대 같은 소리로 국민들 열 불나게 만드는 황우여 같은 측근들부터 내쳐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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