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살된 ‘朴 5촌 조카’ 사건 매부 신동욱 교수 ‘박지만이 배후’ 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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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대통령의 지난 대선 당시 최대 아킬레스건은 육영재단 재판의 유일한 증인 박용철씨 피살사건 의혹과 고 최태민 교주와의 추잡한 사생활이라고 할 수 있다. 이번 두 언론인의 재판은 바로 5촌동생의 피살사건의 배후가 박지만이라는 박 대통령의 제부 신동욱 교수의 주장과 이에 따른 의혹들을 보도했다는 혐의다.
<선데이저널>은 지난 해 3월 5촌형제들의 잇단 죽음에 의문을 제기하며 박 후보의 동생 박지만의 청부 살해 배후설을 제기하면서 불을 지폈다. 그리고 대선 직전인 10월 시사인 주진우 기자가 거의 대동소이한 내용들을 집중 취재해 박지만 관련 의혹들을 집요하게 제기함으로서 사건은 일파만파 대선에 바람을 몰고 왔다. 박지만은 이 보도와 관련 이미 지난해 4월 본지 취재기자를 상대로 고소를 제기했으며 본지 보도를 전제한 서울의 소리 백은종 편집인에게도 취재를 하지 않고 해외언론 보도를 그대로 전제했다는 이유로 고소했었다.
그리고 지난 해 8월 백 편집인은 이 사건과 관련 사전구속영장이 청구되었으나 기각되었다. 그리고 기소되어 지금까지 5차례나 공판이 진행 중이였다. 그러다가 느닷없이 검찰이 또다시 이미 기각된 백 편집인의 구속영장을 재청구한 것이다. 재판 중에 있는 사건의 피의자를 상대로 재 영장을 청구한 것도 이례적이지만 동료판사가 기각시킨 판결을 또 다른 판사가 발부한 것은 누가보아도 비상식적인 판결이다. 그리고 역시 똑같은 보도 내용으로 사전영장이 청구된 시사인의 주진우 기자에 대한 영장을 기각시킴으로서 각종 의혹을 사기에 충분했다. 박지만의 사법부에 대한 지재한 영향력 행사가 백일하에 드러난 것이다.
지난2012년 4월 <선데이저널>은 ‘박지만 청부살해 배후설 왜 불거지나?’라는 제하의 기사에서 이미 이 사건을 대대적으로 보도했었다. 다음은 보도 내용의 요지를 정리한 것이다.


 
박용철 피살과 반사이익
 
지난해 9월6일 새누리당 박근혜 후보의 5촌간에 살인 사건이 벌어졌다. 살해된 박용철(당시 49세)과 박용철을 살해하고 자살한 것으로 경찰이 발표한 박용씨(당시 51세)는 사촌 간이었다. 둘은 박정희 전 대통령의 둘째 형인 박무희의 두 아들 박재석(국제전기기업 회장)과 박재호(동양육운 회장)의 아들들이었다. 살해된 박용철은 박 후보의 동생인 박지만 EG 회장의 최측근으로 꼽히던 인물이었다. 육영재단의 간부를 지내기도 했다. 그는 박 후보의 동생인 박근령-박지만 남매와 관계된 사건에 꾸준히 이름이 오르내린 ‘박씨 가문 송사의 핵심’이었다. 그러나 살해당할 당시 박지만과 관계가 틀어져 있었다. 박용철은 박 후보의 제부인 신동욱 교수의 재판에 증인으로 설 예정이었다. 박근령씨의 남편 신동욱씨가 “박지만 회장이 나를 청부살인하려 했다”고 주장했다가 명예훼손으로 고소당한 법정이었다. 시사인은 지난 12월1일자 발행한 기사에서 이러한 의혹들을 보도하면서 수사과정에서 이들이 남긴 증거와 흔적들이 조직적으로 은폐되거나 증발되었다고 주장한다.
신동욱 교수의 변호를 맡은 조성래 변호사는 ‘9월27일 박용철을 증인으로 신청해놨는데, 그 전에 죽었다’고 말하며 박씨의 죽음으로 반사 이익을 볼 사람은 누구인가 생각해보라며 석연찮은 죽음에 대한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유력 대선 주자의 ‘집안 살인사건’에 여론이 집중되었지만 경찰은 ‘원한에 의한 사촌들의 살인 사건’으로 수사를 종결했다. 그러나 박용철씨와 박용수씨는 사이가 좋았다. 채무 관계도 없었다. 사고 당일에도 별 일이 없었다고 술자리 동석자는 경찰에 진술했다. 경찰 수사는 서두른 기색이 역력했다. 필수적으로 수사해야했던 핸드폰 통화 내역 조사와 필적 감정 등에서 ‘허점을 보였던 것이다’라고 의문을 표시한다. 죽은 박용수의 유서와 박용철·박용수의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의 부검감정서, 그리고 사건 기록을 보면 두 사람의 죽음에 더 의문을 가지게 한다. 부검감정서에 따르면, 박용수씨의 사인은 자살이 아닐 가능성에 무게가 더해진다.
지난해 9월6일 오전 5시30분쯤, 박용철씨가 숨진 채 발견됐다. 서울 강북구 우이동 국립공원 탐방안내센터 앞 주차장에서 쓰러진 박용철은 망치에 얻어맞고 칼에 수차례 찔려 피살되었고 박용철을 죽인 박용수씨는 같은 날 오전 9시 북한산 용문로 등산길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박 씨 호주머니에는 노트를 찢은 한 종이에 “미안하다. 화장해서 바다에 뿌려 달라”는 내용의 짧은 유서가 남아 있었다. 그러나 수사 과정에서 이유서가 박용수씨의 필적을 입증할 수 없다는 취지로 경찰은 서둘러 사건을 종결 처리해 여전히 많은 의혹을 사고 있다.


위에서 향정신성 의약품


피살된 박용철과 자살한 박용수 두 사람은 사건 당일 저녁 함께 술을 마셨다. 1차에 이어 2차까지 이어진 술자리에서 박용철은 만취 상태였지만 박용수는 술을 거의 마시지 않았다. 피살된 박용철의 혈중 알코올 농도는 0.196%, 자살한 박용수는 0.01% 미만이다. 그런데 이들의 체내에서 수면제 성분이 검출되었다. 박용철은 졸피뎀 0.52mg/L, 디아제팜 0.25mg/L로 다량이 검출됐다. 박용수는 졸피뎀 0.01mg/L, 디아제팜은 정량 한계 이하였다. 두 성분은 모두 의사의 처방전이 있어야 살 수 있는 향정신성의약품이다. 경찰 수사에 따르면, 두 사람은 모두 졸피뎀과 디아제팜을 처방받은 사실이 없다. 누군가 술이나 음식에 약을 탔을 가능성이 제기된다. 자살한 박용수의 위에서는 녹지 않은 알약 1정이 발견됐다. 박용수 자살현장에서 발견된 가방에서 정장제(설사약) 약병이 발견된 바 있다. 한 약사는 “건강한 남성의 경우, 대부분의 정장제 알약은 30분 이내 녹는다. 정장제가 아닌 보통 알약은 10분 이내 녹고, 혈압약·심장약·수면제는 투입 즉시 녹는다”라고 말했다. 잔인하게 사촌을 난자하고 자살을 앞둔 사람이 소화를 위해 설사약을 먹은 셈이다. 한 베테랑 강력반 형사는 “목을 매 숨진 사람은 대부분 사정을 하고 용변을 본다. 누군가 자살로 보이게 하기 위해서 설사약을 먹였다는 추리는 지나친 비약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또 자살한 박용수의 목과 팔·손가락·무릎 곳곳에 긁힌 상처가 나 있었다. 목을 맨 것과는 전혀 다른 성질의 상처였다. 누군가와 몸싸움을 벌인 흔적으로 보인다. 이 상처가 박용철을 죽이는 과정에서 생긴 것인지, 죽기 전에 누군가에 의해 끌려간 것인지 현재로서는 확인할 길이 없다. 다만 박용철은 만취 상태에서 약물에까지 취해 있었다. 저항은 거의 불가능한 상태였다.


사라진 증거, 의문의 유서














 ▲ 박용철의 제8회 공판조서 신문 원본. 박지만의 매부 신동욱 교수가 주장하고 있는 박의 5촌 동생 박용철씨의 피살사건과 관련해 박지만이 배후에 있음을 암시하고 있다.

경찰은 자살한 박용수의 뒷주머니에서 종이 한 장을 발견했다. 유서라고 적혀 있었다. ‘유서 화장해서 바다에 뿌려주세요. 절대 땅에 묻지 마세요. 매형(○○○) XXX-XXXX-XXXX.’ 경찰은 유서가 쓰인 종이를 자살의 근거로 들었다. 강북경찰서의 한 관계자는 “박용수가 자신이 묵던 여관방에서 발견된 노트에 유서를 적고 찢은 흔적이 있다. 같은 노트에 대고 쓰면 눌러서 뒤에 남는 게 있는데 그 노트가 여관에 있었다”라고 밝혔다. 당시 필적 조회를 해봤느냐는 기자의 물음에는 “현재 남아있는 필적이 거의 없어서 감정불가인데, 어차피 그 여관방에서 노트가 발견되었고 여관주인 말에 의하면 찾아오는 사람이 없었기 때문에 누가 와서 쓴 거라고 볼 수 없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시사IN>이 입수한 국과수 법의학부 문서영상과의 감정서를 보면, ‘매형(○○○) XXX-XXXX-XXXX’ 부분에는 필압(筆壓)이 확인되지 않았다. <시사IN>은 박용수씨가 쓴 한 오피스텔 입주등록신청서에 대한 국과수 필적감정서도 입수했다. 이 또한 “서로 비교 대조할 수 있는 동일내용의 문자도 구성이 단순한 아라비아 숫자를 제외하고는 전혀 없으므로 이들 필적에 대한 특이한 부분과 공통된 부분의 특징을 구분할 수 없다”라는 결과를 받았다. 강북경찰서의 한 담당 경찰은 “유서에 대부분 미안하다거나 원망하는 내용을 쓴다. ‘절대 땅에 묻지 마세요’라고 쓴 것은 이 사건에서 가장 이해하기 힘든 부분이었다”라고 말했다.
경찰이 박용철씨 피살을 ‘박용수씨의 원한에 의한 계획범죄’라고 결론 내리면서 든 근거 중 하나가 두 달 전 미리 사 놓은 흉기였다. 강북경찰서의 한 관계자는 지난 2월 기자와 만나 “(박용수씨가) 범행 두 달 전에 시장에 가서 칼을 사고, 자기 숙소에서 테이프를 감고 준비를 했다. 칼에 감긴 것과 동일한 테이프가 여관방에 남아 있었다. 우리가 보기에는 오래 전부터 원한이 있었고 실행을 두 달 후에 한 것으로 본다”라고 말했다. 실제로 사건 현장에서 발견된 박씨 가방에서 회칼이 나왔다. 그런데 정작 그 칼에서는 박용수씨의 지문이나 DNA가 검출되지 않았다. 사용되지 않은 채 가방에 그대로 남겨져 있었다. 숨진 박용철씨의 혈흔이 나온 다른 한 칼은 범행 장소에서 60m 떨어진 개천에서 발견됐지만 역시 박용수씨 지문은 없었다. 박용철씨의 휴대전화기도 사라졌다. 박씨는 일반 전화와 태블릿 PC를 휴대전화로 썼다. 일반 휴대전화의 행방은 묘연하다. 없어진 박씨의 휴대전화에 관심이 모이는 까닭은 박씨의 발언 때문이다. 박씨는 2010년 9월1일 재판에서 자신의 휴대전화에 사건 관련 녹음파일이 있다고 진술한 바 있다. 그리고 정확히 재판을 10여일 앞두고 박용철씨는 박영수씨에게 피살되고 박씨 역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살해교사 녹취록이 관건


 지난 6월 이 사건을 심층취재했던 본지 보도로 촉발된 의문의 피살사건은 결국 박지만 회장이 본지 기자를 형사 고소했다. 당시 본지 보도에 따르면 <사건을 담당했던 강북경찰서의 한 관계자는 “사건 당사자가 모두 숨져 추정할 수밖에 없지만, 박용수씨가 10년 전 이혼하고 혼자 살면서 경제적으로 어려워졌다. 아파트를 팔고, 원룸에서 살았다. 죽기 전에는 여관에서 생활했는데, 그 원인이 박용철씨에게 있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라고 말했다. 돈을 빌려가 놓고 안 돌려주고 후배들이 보는 앞에서 무시했다는 주변 사람 증언 등으로 사건을 단순 살인사건으로 결론을 냈다.
하지만 박근령 전 육영재단 이사장의 남편인 신동욱 전 백석문화대 교수는 경찰 수사 결과에 의문을 표시한다. 박용철 씨는 육영재단을 둘러싼 박 씨 가문 송사의 핵심 인물 중 한 사람이기 때문이다. 박용철 씨는 2007년 벌어진 육영재단 폭력 강탈 사건으로 징역 8개월,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은 바 있다. 또 신 씨가 주장하는 중국 칭다오 납치 사건의 현장에 있었던 인물이다. 신 씨에 따르면 박용철 씨는 2010년 “박지만이 중국에서 신동욱을 죽이라고 했고 녹취록을 가지고 있다”라는 말을 했다. 박 씨의 증언을 바탕으로 박지만 회장을 고소했던 신씨는, 오히려 무고 및 명예훼손 혐의로 구속되는 신세가 됐다. 신 씨는 지난해 9월26일 재판에서 자기 쪽 증인으로 박용철씨를 신청해놓았던 터라 그의 사망 시점이 석연치 않다고 주장한다. 신 씨는 이와 관련 “나에게 증언하기로 하고 바로 죽었다. 용철씨의 죽음은 용철씨나 나 두 사람 모두 걱정하던 바였다”라고 말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또한 그는 “용철씨 죽음으로 가장 큰 이익을 보는 사람이 누군지 물어봐야 한다”라고 말했다.


목구멍의 가시 제거


박 씨 피살 사건 이후, 조성래 변호사는 신 교수의 재판 내용에 살인 사건도 포함해달라고 요청했지만 재판부는 “본 재판과 관련성이 없다”라며 거절했다. 하지만 박용철이 박지만의 사주를 받았을 가능성은 여전히 적지 않다. 육영재단 경영권 분쟁 과정에서 박 씨가 박지만의 비서실장인 정용희와 손잡은 흔적이 적지 않게 발견되기 때문이다. 우연의 일치였는지 몰라도 박 씨는 공판출석을 앞두고 살해됐고, 결국 신 씨의 주장을 입증해줄만한 인물은 사라졌다. 신 씨는 명예훼손으로 인해 실형을 선고받았고, 오는 대선 전까지는 출소가 불가능해졌다. 결국 박 후보 입장에서는 목구멍의 가시가 사라진 셈이다. 이 역할을 한 인물이 바로 박지만 회장인 것이다. 중간에 잡음이 일기는 했지만 최대 걸림돌을 제거하는데 박지만의 역할은 무시할 수 없다. 그러나 박용철이 죽기전 캐나다 뱅쿠버에 살고 있는 가족에게 문제의 녹취록을 보냈다는 소문이 흘러나왔다. 사실 여부에 따라 엄청남 메가톤급 파장을 불러일으킬 중대한 사안이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박지만은 잘못된 보도라며 배후설을 일축하면서 선데이저널 리차드 윤 기자와 시사인의 주진우 기자 그리고 이번에 구속된 서울의 소리 백은종 편집인을 허위사실에 의한 명예훼손으로 고소하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박지만의 항변에는 어딘지 모르게 석연치 않은 부분들이 많다. 지금까지 마약에 손을 대고 있다는 항간의 풍문이 사실이 아니라고 해도 지난 과거의 행적을 살펴보면 충분히 개연성이 있다는 판단이다. 이번 판결을 계기로 검찰은 5촌동생 피살사건의 전면 재조사가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이 여론이다. 즉각적인 재조사를 촉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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