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의 ‘안틀러 돌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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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임춘훈(언론인)

지난 달 모국여행 중 사나흘을 전라도 광주에서 보냈습니다. 광주에 시집 가 사는 막내 여동생 가족을 만나고, 마침 순천에서 열리고 있는 세계정원축제도 관람하고, 여수 앞바다 한려수도의 아름다운 섬들을 둘러보는 유람선도 탔습니다. 1인당 국민소득 2만달러 중반에 접어든 한국의 경제는, 서울과 지방의 살림살이 격차가 별로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비교적 ‘착한’ 성장을 하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순천정원축제는 한마디로 수준이하였습니다. 명색이 세계 20여개국이 참가한 국제축제인데, 출품된 각국의 정원이라는게, 내가 십수년 전 분수(?) 모르고 구입해 페이먼트 하느라 등골 빠지던 500평짜리 노스리지 집의 아름다운 정원 보다 못한 것들이 많았습니다. 본국인들은 몰라도 미국서 간 교포들은 축제장의 절반도 안보고 발길을 돌리는 이들이 적지 않았습니다.


축제 공화국의 놀자판 먹자판


 한국은 마치 ‘축제 공화국’ 같습니다. 한 달에 치러지는 각종 지방축제만도 70여개나 됩니다. 80년대 50여개에 불과하던 축제는, 95년 지방자치제 실시 이후 폭발적으로 늘어나, 지금은 연간 800여개의 각종 축제가 열리고 있습니다.
지방축제의 폭발적 증가는 지역문화에 대한 관심을 촉발시키는 계기가 됐지만, 양적 증가에 비해 질과 내용이 형편없고 국민의 혈세만 낭비한다는 비판도 많습니다. 순천정원축제가 그 짝이지요.
한국 244개 지방자치단체의 부채는 산하 단체들의 부담액을 합쳐 지난해 126조원을 넘어섰습니다. 언제 터질지 모를 재앙적 수준의 지방부채 시한폭탄이 째깍째깍 타들어 가는데도, 축제와 같은 과시용 포퓰리즘 행사는 해마다 늘어만 갑니다. 미국이나 일본처럼 지자체 파산제를 도입해 과도한 자치권을 제한하거나 박탈해야 할 것 같습니다.
요즘 본국에선 젊은이 늙은이, 남녀 할 것 없이, 등산복 차림이 ‘대세’ 입니다. 등산복이 마치 ‘국민복’이라도 된 것 같습니다. 축제 붐도 등산복 붐도, 모두 소득증대에 따른 여가문화의 확산이 불러 온 사회현상 일 테지요. 간편하고 스포티한 등산복은 산에 갈 때나 가벼운 나들이, 스스럼없는 친구나 친지와의 모임 같은 때는 물론, 장례식이나 결혼식, 심지어 직장에 까지 그 차림새로 출근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IMF 이래 최대의 불황이라는데도, 세상 살기 싫다고 스스로 목숨 버리는 자살자가 해마다 늘어만 가는데도, 가는 곳 마다 축제에다 먹자판 놀자판입니다. 평균의 본국인들은 평균의 재미동포들 보다 어쨌든 훨씬 더  사는게 행복해 보였습니다.


민주당 텃밭서 뜨는 안철수


광주는 ‘정치도시’입니다. 총선과 대선 때 마다 광주와 호남은 똘똘 뭉쳐 특정 정당의 특정후보에 표를 몰아줌으로써 선거의 지형, 나아가 정치의 판도와 나라의 운명 자체를 바꿔놨습니다. 특히 대선 때 이곳 유권자의 80~90%는 호남 기반 지역당인 민주당 후보에 몰표를 던지는 전략적 선택으로, 김대중 노무현 두 좌파정권을 탄생시키는데 결정적 역할을 했지요.
 그런 광주가 변하고 있습니다. 가까이는 오는 10월의 보궐선거와 내년 5월의 지자체 선거,
멀리는 오는 2017년 19대 대통령 선거와 관련해 광주의 ‘또 다른 선택’이 다시 주목을 받기 시작했습니다. 안철수와 그가 추진하는 제3신당 바람이 제1야당인 민주당의 50년 호남 아성을 흔들고 있습니다.
광주 체류 중 이런 일이 있었습니다. 어떤 사적인 모임에서 안철수 얘기가 나왔습니다. 심각한 정치 담론 대신 나는 가벼운 화젯거리로 안철수의 깻잎머리, 일명 ‘히틀러 패션‘이 주는 지적 불편함을 거론하며, 그를 ‘안틀러’라 불렀습니다.
 안틀러는 내가 우스개 소리로 즉흥적으로 붙여 그날 처음 써본 ‘작명’입니다. 젊은이들과 소통하겠다면서 기껏 헤어 스타일 흉내나 내고, 국회의원이 되고서도 의정활동 대신 무슨 무슨 콘서트나 하고 다니는 안철수의 깃털같이 가벼운 정치 행보와 정치적 콘텐츠 부족을 개탄하자, 좌중 분위기가 서늘하게 가라앉았습니다. 짐작했던 대로였지요. 안틀러에 대한 이날의 반응만으로도 민주당과 이곳에서 팽팽한 샅바 싸움을 벌이고 있는 안철수의 만만챦은 존재감과, 변화하고 있는 광주 호남의 정치 기상도가 충분히 읽혀졌습니다.


안철수와 배철수


“안철수면 어떻고 배철수면 어떤가. 철수가 새누리당을 잡아 정권을 되찾아 오기만 하면 된다–.”
호남사람들의 ‘철수사랑론’은 마치 등소평의 ‘흑묘백묘론’ 같습니다. 검은 고양이든 흰 고양이든 고양이는 쥐만 잡으면 되고, 정치인 안철수건 가수 배철수건 ‘철수’는 새누리당만 잡아주면 된다–.
 안철수가 훌륭한 정치인이고, 정책이나 비전이 좋고, ‘새 정치’에 대한 기대 때문에 그를 지지한다는 사람은 별로 만나지 못했습니다. 민주당으로는 정권 탈환의 희망이 보이지 않고, 그나마 일말의 가능성이라도 엿보이는 야권 정치인이 안철수밖에 없으니 일단 그를 지지하고 보자는 심리–. 일종의 ‘묻지 마’ 정서라고나 할까요?
 안철수는 요즘 기자들한테 밥도 사고, 귀찮은 전화도 받아 주고, ‘안하던 짓’을 곧잘 합니다. “목숨 걸고 정치를 하고 있다”는 식의 ‘오버성’ 발언으로, ‘대통령감’ 안철수의 최대 약점으로 지적되던 ‘권력의지’를 옹골차게 내비치는 일도 잦아졌습니다. “지난 대선 때는 내가 뭘 몰랐다. 미국 가서 반성 많이 했다”는 투의 ‘쪽 팔리는’ 자기반성도 스스럼없이 내 비칩니다. 기자들은 “안철수가 무섭게 변했다”고 혀를 찹니다.


신선도 떨어진‘안의 정치’ 성공할까


안철수 신당에 대한 국민들의 기대는 예상 밖입니다. 최근 실시된 각종 여론조사에서 나타난 각 정당별 지지도는 새누리당이 30% 중 하반, 민주당이 10% 중반인데 반해, 안철수 신당은 민주당을 더블 스코어로 제치고 20% 중 하반으로 올라섰습니다. 안철수의 다소 성급한 광폭 대선행보가 일단은 탄력을 받고 있는 모습입니다.
안철수는 요즘 자주 호남을 찾고 있습니다. 지역기반이 없는 그로서는, 호남과 그 이웃인 충청권을 우선 확실한 지지기반으로 다져놓은 후에, 수도권등으로 세를 넓혀 나가는게 바람직하다고 판단한 것 같습니다. 안철수 지지율이 민주당을 단숨에 뛰어넘은 것은 50%에 가까운 호남의 지지와 40%에 육박한 충청권의 지지가 큰 몫을 한게 사실입니다.
지난해 대선 때 50%까지 치솟았던 안철수의 지지율은 지금은 많이 떨어졌습니다. 대선과정에서 드러난 그의 우유부단한 행보와 석연치 않은 몇몇 과거 행적, 과대 포장된 정치-정책 능력, 잦은 말 실수등이, 김지하 시인이 면박을 준 이른바 ‘깡통론‘과 맞물리면서, 그의 정치적 ’신선도‘를 많이 떨어트렸습니다.
안철수의 호남공략도 생각처럼 쉽지만은 않을 것이라는 주장도 만만챦습니다. 미우나 고우나 민주당은 호남인들에게 고락을 함께 나눈 피붙이 같은 존재인데, 쉽게 혈육의 정을 끊지 못할 것이라는 얘기입니다. 과거 김대중계 호남 정치인들이 주로 이런 말을 많이 합니다.
안철수는 자신이 ‘호남의 사위’ 라는 정치적 레토릭으로 호남 정치인들의 ‘피붙이’론을 되받아 치고 있습니다. 안철수 부인 김미경의 고향은 전남 순천입니다. 호남의 ‘적자’인 민주당과 ‘사위’를 자처하는 안철수–. 아들과 사위의 한판 싸움이 볼만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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