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적취재> 검찰, 원세훈·김용판 선거법 위반 불구속 면죄부 파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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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이 박근혜 정권의 외압에 무릎을 꿇은 것인가. 검찰은 최근 논란이 됐던 원세훈 전 국정원장의 선거법 위반 혐의와 관련해 구속이 아닌 불구속기소로 결론을 내렸다. 지난 11일 사건을 수사 중인 서울중앙지검 특별수사팀(팀장 윤석열)은 원 전 원장을 공직선거법 제85조 1항 위반 및 국정원법 제9조 위반 혐의 등을 적용해 불구속기소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해당 선거법 조항은 공무원의 지위를 이용한 선거운동을, 국정원법 조항은 국정원장과 직원의 정치 관여를 각각 금지하고 있다. 김용판 전 서울경찰청장은 형법상 직권남용, 경찰공무원법 위반,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로 불구속 기소하기로 했다. 검찰은 “수사 결과 밝혀진 범죄 혐의 내용과 촉박한 공소시효 만료를 감안해 불구속 기소하기로 결론을 내린 것”이라며 “나머지 전직 국정원 직원들의 기밀 누설 사건, 여직원 감금 사건 등에 대해서는 수사 결과 발표시에 일괄해 설명할 예정”이라고 전했다.
하지만 법조계에서는 이번 검찰의 수사결과를 놓고 사실상 정권의 외압에 검찰이 굴복한 것이란 평가가 적지 않다. 사실 수사팀은 원 전 원장과 김 전 청장에 대한 구속을 강하게 건의했었다. 특히 원 전 원장의 경우 원장 퇴임 후 외국으로 나가려하는 등 도주의 우려가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검찰이 원 전 원장에 대해 불구속기소를 결정한 것은 사실상 눈치보기란 지적이다. 원세훈 전 원장의 신병처리여부를 둘러싸고 숨가빴던 순간들을 추적해봤다.
<리차드 윤 취재부 기자>
 
18대 대통령 선거를 일주일 앞뒀던 지난해 12월 13일 본지는 이런 내용의 제목의 기사를 보도했다.
“원세훈 원장, 드러내놓고 조직동원해 박근혜 편들기….정권 재창출위해 선거개입 정황 드러났다”
그러면서 본지는 대선 세달 전 이명박 전 대통령과 박근혜 당시 새누리당 대선 후보가 회동을 가졌던 것에 주목했다. 왜냐하면 원 전 원장은 이 전 대통령의 최측근으로 그가 어떤 식으로든 선거판에 개입할 여지가 크며, 이 전 대통령은 원 전 원장으로부터 받은 보고를 바탕으로 박 후보와 회동을 했을 가능성이 높았기 때문이다. 실제로 선거를 얼마 남겨놓지 않은 시점에서 국정원 여직원 댓글 사건이 터졌고, 국정원은 의혹의 한가운데에 서게 됐다. 하지만 사건을 수사했던 경찰은 선거 이틀 전 이 사건과 관련해 민주당 쪽에 불리한 중간수사결과를 발표했고 이 사건은 대선판도에 적지 않은 영향을 줬다. 만약 경찰이 현재 검찰이 수사한 것처럼 국정원이 정치개입을 했다는 식으로 발표했다면 대선의 결과는 뒤바뀌었을 가능성이 높았다.



본지는 이후에도 김용판 전 서울지방경찰청장을 사건의 키맨으로 지목했으며, 원 전 원장의 이후 행보에도 관심을 기울였었다. 그래서 그가 원장 퇴임 후 스탠포드로 유학을 갈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최초보도했으며, 인수위 보고날 골프를 쳤다는 사실도 단독보도했다. 그리고 이 내용들은 현재 원세훈 전 원장 수사 과정에서 사실로 드러났다.


2주일 사이에 무슨 일이


원 전 원장이 이처럼 선거에 개입했으며, 각종 개인비리 의혹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검찰은 원 전 원장을 불구속기소하는데 그쳤다. 검찰은 최초에 구속수사 의지를 밝혔으나 결국에는 불구속하는 것으로 결론을 내린 것이다. 검찰의 입장이 바뀐 이주일 사이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졌던 것일까.
원 전 원장의 신병처리에 대해 보름 넘게 내부공방이 계속된 것은 상당히 이례적인 일이다. 서울중앙지검 특별수사팀은 이날 불구속 배경에 대해 “촉박한 만료일 등을 고려해 불구속 기소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공소시효를 단 8일 남긴 시점까지 계속된 ‘시간끌기’가 결국 원 전 원장 구하기에 성공했다는 것을 인정한 셈이다.













 ▲李-朴 청와대회동: 이 전 대통령은 원 전 원장으로부터 받은 보고를 바탕으로 박 후보와 회동을 했을 가능성이 높았기 때문이다. 실제로 선거를 얼마 남겨놓지 않은 시점에서 국정원 여직원 댓글 사건이 터졌고, 국정원은 의혹의 한가운데에 서게 됐다.

하지만 검찰은 수사 결론을 내리는 과정에서 사분오열하는 모습으로 의혹을 자초했다. 사실 검찰 내에선 열흘 전부터 이상 기류가 감지됐다. 검찰이 원 전 원장에 대한 처리 문제를 놓고 두 그룹으로 갈라져 있다는 내용이었다. 수사팀은 국정원 직원들이 작년 대선 때 특정 후보 일방에게 유리한 댓글을 달도록 하는 등 선거에 영향을 미친 사실이 드러났기 때문에 책임자인 원 전 원장에게 선거법 위반 혐의를 적용해야 한다는 입장이었다. 대선 때마다 의혹이 제기되는 국정원의 행동에 경종을 울리자는 것이다. 윤석열 팀장과 함께 ‘특수통’으로 분류되는 채동욱 총장이 수사팀을 집으로 초대해가며 힘을 실어줬다고 한다. 수사팀은 원 전 원장에 대해 구속영장을 청구해야 한다는 주장도 했다.
반면 황교안 법무장관을 중심으로 한 검찰 일각에선 “원 전 원장이 선거 개입을 지시한 직접 증거가 부족하고, 특정 후보 당선·낙선을 도우려는 ‘목적 인식’이 있었다고 보기 어렵다”고 보고 있었다. 이편에 선 검사들은 주로 공안통·기획통이 많았다. ‘원 전 원장이 선거에 개입하려 했다면 문재인 후보를 비방한 댓글이 몇개밖에 안 나왔겠느냐’ ‘현재 수사 결과물로는 유죄를 받기가 어렵다’는 논리도 제시됐다.


제2의 검란 오나


양측의 이런 이견(異見)이 표면화되자 검찰 수뇌부는 “갈등은 없다”며 봉합에 나섰다. 지난 4일엔 채 총장과 조영곤 서울중앙지검장이 각각 “불필요한 오해를 살 행동을 하지 마라” “의견 조율 과정으로 봐달라. 사건을 몰아가지 마라”고 했다. 하지만 이런 조치도 별다른 효과를 보지 못했다.
검찰이 구속영장은 청구하지 않고 선거법 위반 혐의는 적용하는 ‘절충안’을 택해 결과적으로 장관의 수사지휘를 받아들인 모양새가 됐다. 장관은 주요 수사상황을 보고받을 권한은 있지만 개별 사건을 지휘하려면 검찰총장을 통해 ‘수사지휘권’을 발동해야 한다. 그러나 황 장관은 공식적으로 수사지휘권을 발동하지 않고도 ‘내부 의견교환’과 ‘시간끌기’라는 수단을 통해 사실상 자신의 의견을 수사팀에 관철시킨 셈이다. 이런 일이 가능하다면 앞으로도 법무장관은 많은 사건에서 ‘의견전달’이라는 명분으로 수사에 개입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수사팀의 ‘우산’ 역할을 한 채동욱 검찰총장도 체면을 구기게 됐다. 채 총장은 이날 불구속 기소 발표 후 “그동안의 수사를 통하여 드러난 사실에 대하여 있는 그대로 법률을 적용하였으며 이 결정은 검찰 내부적으로 충분한 논의를 거쳐 검찰의 책임하에 이루어진 것”이라고 밝혔지만, 법무부와의 ‘의견 조율’을 거쳐 최종처리 방침을 확정했다는 것이 검찰 안팎의 정설이다. 채 총장은 지난 4월 취임 후 서울중앙지검장 독대보고까지 폐지하며 “일선에 권한과 책임을 준다”고 강조했다. 수사팀의 뜻을 적극 수용하되 결과에도 책임을 지우겠다는 뜻이다. 그러나 수사팀의 결론은 법원의 판단을 받아보기도 전에 내부에서 꺾이게 됐다.
국정원 압수수색에 이은 원 전 원장 소환 등 수사 초기 거침없는 모습을 보여준 검찰은 막판으로 갈수록 ‘장관과 총장의 힘겨루기’와 ‘공안-특수의 대결’ 등으로 후유증을 예고했다. 일각에선 이번 수사에서 보여준 검찰의 모습이 결국 검찰 개혁을 앞당기는 계기가 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국정원이 도와 대통령 됐나


황교안 장관이 공직선거법 위반을 놓고 몽니를 부렸던 가장 큰 이유는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가 적용되면, 당장 박근혜 대통령이 국정원의 도움을 받아 당선됐다는 논란을 부를 수 있기 때문이다.
국정원의 불법 활동이 대선 결과에 얼마나 영향을 미쳤는지 계량할 수는 없지만, 불특정 다수의 누리꾼들에게 영향을 끼쳤을 개연성을 배제할 수 없다. 원 전 원장의 재판 결과에 따라 정권의 정당성에 의문이 제기될 수 있는 상황인 것이다.
청와대가 이날 공식적인 반응을 내놓지 않는 등 침묵에 가까운 반응을 보인 것도 같은 맥락으로 풀이된다.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해 대선을 앞두고 국정원의 대선 개입 의혹이 불거지자, 선거를 닷새 앞둔 12월14일 기자회견을 열어 “이번 사건이 저를 흠집내고 선거에 영향을 미치기 위한 터무니없는 모략으로 밝혀진다면 문재인 (민주통합당) 후보는 책임을 져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선거 승리를 위해 국가의 안위를 책임지는 정보기관마저 정쟁의 도구로 만들려고 했다면 이는 좌시할 수 없는 국기 문란 행위”라는 게 박 대통령의 주장이었다. 민주당 쪽이 국정원 직원의 차를 들이받아 집을 알아낸 것을 두고는 “성폭행범들이나 사용할 수법”이라며 ‘인권침해’를 강조했다. 그런데 이런 주장이 검찰 수사에서 180도 뒤집힌 셈이다.
일각에서는 검찰의 특수통들이 원 전 원장의 개인비리를 통해 그를 구속시키려 한다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이날 검찰 발표에는 포함되지 않았지만 서울중앙지검 특수1부가 캐고 있는 뇌물비리 역시 메가톤급 조짐을 보인다. 원 전 원장을 오랜 기간 지원한 것으로 알려진 황보연 황보건설 대표가 지난 5일 구속되면서 그의 입을 통해 전 정권의 검은 커넥션이 쏟아질지 관심이다. 원 전 원장은 황 대표로부터 수천만원대 뇌물을 수수한 의혹을 받고 있다. 검찰은 특히 2010년 7월 한국남부발전이 발주한 삼척그린파워발전소 제2공구 토목공사에 황보건설이 하청업체로 선정된 과정에서 원 전 원장의 입김이 작용했는지 살펴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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