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갱이 파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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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임춘훈 언론

지난 반세기 동안 한국인들이 가장 사랑한 국민가요 1위는 김정구가 부른 <눈물 젖은 두만강>입니다. 이 노래는 60년대부터 장장 30년간 KBS 라디오의 인기 프로 ‘김삿갓 북한 방랑기’의 주제곡으로  쓰이면서,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즐겨 듣고 부르는 국민 애창곡이 됐습니다.  1936년에 나온 이 노래는 한국적 토속성과 정감이 넘치는 트로트풍의 멜로디도 일품이지만, 77년 전에 쓰여 진 노랫말이라고는 믿어지지 않을 만큼 아름답고 서정적인 가사가 더 가슴에 와 닿습니다.
 “강물도 달밤이면 목 놓아 우는데, 눈물진 두만강에 밤새가 우니-.”
“두만강 푸른 물에 노 젖는 뱃사공-“으로 시작되는 1절도 아름답지만, 밤새와 강물이 목 놓아 운다는 2절(혹은 3절)의 노랫말은 가히 절구(絶句)지요. 가사는 김정구 선생의 친형인 김용환이 썼습니다.
 김용환이 노랫말을 쓰게 된 것은, 항일독립운동을 하다 일제에 쫓겨 소련으로 탈출한 두 남녀의 얘기에서 모티브를 잡았다고 전해집니다. 극렬 공산주의자로 항일운동에 앞장섰던 박헌영과 그의 아내 주세죽이 주인공입니다.
 박헌영은 일제에 검거되자 ‘미친 행세’를 했습니다. 그의 미친놈 짓 중의 ‘압권’은 자기 똥을 자기가 개처럼 몽땅 핥아 먹는 것이었지요. 이 같은 기상천외한 정신병자 행세로 감옥에서 풀려나자, 그는 30년대 어느 날 아내 주세죽과 함께 두만강을 건넜습니다. 이 두 부부의 두만강 도강 소식을 듣고 영감을 얻은 김용환이 가사를 짓고, 이시우에게 곡을 맡겨, 자기 동생 김정구가 부르게 한 노래가 바로 <눈물 젖은 두만강>입니다.


어느 원조 빨갱이의 화려한 부활


박헌영은 60여넌 전 해방정국을 쥐락펴락한 ‘전설적’ 공산주의 혁명가입니다. 남조선 노동당(남로당)을 창당한 ‘원조 빨갱이’면서도, 55년 미국의 스파이란 누명을 쓰고 평양에서 김일성에 의해 처형됐습니다. 그는 48년 월북해 북한정권의 외무상과 부수상을 지냈지요. 6.25 전범의 하나인 박헌영 이름 석자는 그 후 남한에서도 철저히 지워졌습니다.
60년 이상 금기시 돼 온 박헌영이 요즘 좀비처럼 부활하고 있습니다. 한겨레신문 기자 출신 언론인 손석춘이 지난 4월 ‘박헌영 트라우마’라는 책을 펴 내 그를 재조명 하고 나선데 이어, 이달 들어 야당이 정치쟁점화 하고 있는 중고교 역사 교과서 논쟁에서 ‘박헌영식 남로당 사관(史觀)’이 해묵은 이념 논쟁의 불씨를 지피면서, 박헌영이 되살아나고 있습니다.
 박헌영은 특이한 캐릭터의 인물입니다. 행동파 공산주의 운동가로 감방을 제집 드나들듯  하면서도 이혼과 재혼을 4번씩이나 하고, 아들 딸을 다섯인가 여섯인가를 뒀습니다. 첫 번째 부인 주세죽은 박헌영의 공산당 ‘절친’ 김단야와 바람을 피웠습니다. ‘숭고한’ 독립운동과, ‘타락한’ 자유연애를 함께 즐긴 박헌영은 어쨌든 당시로선 보기 드문 ‘별종 빨갱이’였습니다.


박원순과 승려 원경의 역사 뜯어 고치기


한국엔 박헌영의 두 번째 부인 정순년 소생의 아들 원경스님, 속명 박병삼(72)이 생존해 있습니다. 만경사 주지인 원경은 불사 대신 반세기 전에 죽은 아버지의 ‘억울한’ 혼백을 극락왕생 시키는 일에 더 열심입니다. 그는 지난 86년 현서울시장 박원순과 함께 ‘역사문제연구소’라는 것을 만들어 지금까지 27년 동안, 대한민국 건국 이래의 좌익 투쟁사를 합리화시키고 미화시키는 일을 위해 열심히 목탁 두드리며 반야심경을 읊고 있습니다.
박헌영을 죽인 건 공산당이고, 이념적 동지였던 김일성입니다. 박헌영의 아들이 억울하게 죽은 아버지의 혼백을 달랜다면서 아버지를 죽인 공산주의를 옹호하고 자유민주주의를 비판하는 것은 어찌 보면 자기모순입니다.
 젊은이들을 상대로 하는 강연과 계간지 ‘역사비평’ 발간, 박헌영 전집 출간등을 통해 북한체제의 상대적 우월성을 강조해 온 역사문제연구소의 ‘역사적 죄업‘ 중의 하나가 바로 중고등학교 역사교과서의 ’좌편향‘ 편집을 이 단체가 사실상 주도해 왔다는 사실입니다.
 “대한민국은 태어나지 말았어야 할 나라.” “절대선은 분단 극복” “더 나은 체제는 북한체제” “이승만은 악당, 박정희도 그 아류” “통일은 북한주도로-”….
대한민국 역사학계의 패권을 쥐고 있다는 이들이 쏟아내는 ‘박헌영 사관’의 담론은 사뭇 현란합니다. 70여년 전 강물과 달빛이 목 놓아 울던 두만강을 건너던 박헌영의 혼백이, 지금은 아들의 목탁소리를 좇아 한강을 건너며, 평생의 소망이던 남조선 해방을 ‘목 놓아’ 외치고 있는 건 아닐까요.


6.15가 도대체 뭐길래


한국의 6월은 호국의 달입니다. 6.25 때 전사한 국군장병들이 많이 잠들어 있는 현충원등 국립묘지에는 현충일인 6일, 수만의 유족이 모여들어 호국영령들의 명복을 빌며 충절을 새겼습니다.
이틀 뒤 좌파단체들은 저희들이 추모하고 싶은 빨치산, 남파 간첩, 공산주의 혁명열사들만을 위한 별도의 추모행사를 가졌습니다. 박헌영의 ‘광팬’ 인 듯 싶은 서울시장 박원순은 서울의 얼굴격인 광화문 광장을 이들에게 기꺼이 내줬습니다. 노무현 정권 때 항일 독립운동가로 화려하게 ‘복권’된 박헌영의 처 주세죽의 혼령도, 아마 이날 광화문 광장 나들이를 했을 겁니다.
14일과 15일엔 6.15 선언 13주년 기념행사가 서울과 임진각, 그리고 개성에서 각각 열렸습니다. 이들 행사는 북한이 남북합동으로 열자며, 그 ‘미끼’로 지난 6일 남북장관회담 까지 제의했던 행사입니다. 한국 측이 개성 합동행사를 거부하자, 북한은 기다렸다는 듯 장관회담의 판을 깨버렸지요.
6.15선언은 2000년 6월 15일 김대중 대통령이 한국 대통령으론 처음 평양을 방문해 김정일과 함께 발표한 5개항의 합의문입니다. 통일문제의 자주적 해결, 1국가 2체제 통일방안 협의, 이산가족 조기해결, 경협등 남북교류 활성화, 김정일의 서울 답방을 위한 실무회의 계속등에 합의했습니다.
분단 55년만에 남북의 정상이 만나 민족문제를 허심탄회하게 논의했다는 사실만으로도 6.15 선언의 의미는 결코 가볍지 않습니다. 김대중 대통령은 한국인으로는 최초로 노벨상 까지 받았습니다. 허지만 거기까지입니다. 북은 입만 열면 6.15를 얘기하지만 그들이 합의 내용 중 실천적으로 보여준 것은 없습니다. 그들이 ‘자주적’으로 실천한건 남측의 자금을 받아 핵과 미사일을 자체 개발한 것 뿐, 나머지 4개항은 모두 공수표가 됐습니다. 남쪽의 야당까지 저들의 선전공세에 휘둘려, 조자룡 헌 칼 휘두르듯, 보수정권을 향한 정치공세용으로 6.15 정신을 써먹는 것은 웃기는 일입니다.


6.25는 북침, 을지문덕은 을지로 살던 장군


한국 고등학생의 69%는 6.25 한국전쟁을 남침 아닌 북침전쟁으로 믿고 있습니다. 엊그제 박근혜 대통령은 최근 실시된 한 방송사의 이같은 여론조사 결과를 예로 들며, 좌편향 역사교과서의 내용을 가치중립적으로 과감히 시정해 줄 것을 당부했습니다. 현재 역사학계는 좌파적 시각을 가진 학자와 교사들이 전체의 90%를 차지하고 있고, 교과서들은 대부분 이들이 집필하고 있습니다.
역사 교과서의 좌편향 못지않은 문제가 역사학의 푸대접입니다. 대학입시에서 역사가 선택과목이 되는 바람에, 고교생의 5%만이 한국역사 공부를 하고 있습니다. 독일은 고교 교과의 20%를 역사수업에 할당하고 있습니다. 2세들에게 나치의 유태인 학살 같은 부끄러운 역사까지 사실대로 가르침으로서, 독일은 세계인들의 존경을 받는 일류국가로 거듭나고 있습니다.
며칠 전 어떤 케이블 방송에 나온 한국 대학생들의 거리 인터뷰 중 다음과 같은 질문과 대답이 나와, 나는 그만 뒤집어졌습니다.
“을지문덕이 누구죠?”
“글쎄요. 옛날 을지로에 살던 어떤 장군 아닌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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