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전쟁 휴전 60주년 숨겨진 비사 발굴 특집(2)-돌아오지 못한 영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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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994년 조창호 소위(육군종합학교 출신)가 탈북해 전세계를 놀라게 했다. 다름아닌 그는 국군포로였다. 당시 북한에 억류된지 44년만이었다. 국군포로로서는 최초의 탈북이었다. 그의 탈북으로 북한이 6.25전쟁에서 포로로 잡은 남한 군인들을 탄광이나 지하철 공사에 강제노역을 시키는 등 제네바협정을 위반했다는 충격적인 사실이 밝혀졌다. 하지만 北은 지금까지 ‘국군포로는 없다’고 생떼를 쓰고 있다. 인권대통령이라고 불렸던 김대중 전 대통령은 6.15남북정상회담 당시 ‘비전향장기수의 북한 송환’을 공동성명서에  약속하면서 국군포로나 납북자에 대해서는 한 마디도 없었다.  당시 북한 광산에서 노역하던 국군포로들은 남북정상회담에서 남쪽에서 간첩 활동을 하다가 잡힌 비전향장기수가 북한으로 돌아온다는 소식에  ‘우리도 고향으로 돌아 갈 수가 있겠구나’라며 기대를 했다가 오히려 정치범 수용소로 보내졌다는 것이 나중 탈북한 국군포로들의 전언이었다. 나라를 지키기 위해 싸우다가 포로가 된 국군을 찾아오는 것은 바로 국가가 해야 할 책임이다. 6.25전쟁 당시 젊음을 국가를 위해 싸워 지킨 이들의 희생으로 오늘날 대한민국이 세계적으로 이름난 경제대국으로 성장했으나 정부나 국민들은 이들을 잊고 있다. 조창호 소위가 탈북한 이래 81명의 국군포로들이 탈북에 성공했다. 그러나 이들의 탈북은 국가가 도와준 것이 아니라 스스로 탈북했다는 점에서 시사하는 의미가 크다.
<성진 취재부 기자>



6∙25 전쟁 당시 북한군에 붙잡혔던 국군 포로는 약 9만여명이었다. 그러나 1953년 7월 27일 휴전협정으로 북한측이 남한에게 인계한 국군포로는 1만3천여명 정도였다. 나머지는 탄광이나 항만 등에서 강제노역에 투입됐다. 전쟁이 휴전조약으로 멈추었으나 60년이 지나면서 많은 국군포로들을 정부가 찾아 주기만 기다리다 한을 품고 죽어갔다.
하지만  상당수가 지금도 억류된 상태로 북한에  살아있다. 올해가 6.25전쟁 휴전 60주년인데 아직도 국군포로가 북한에 억류되어 있다는 사실은 전쟁 포로의 송환을 명시한 제네바 협약의 명백한 위반이다. 대부분 80을 넘은 고령이라 탈북도 어려운 지경이다. 살아있는 국군포로들은 이제나 저제나 한국정부가 송환을 할 것으로 믿고 60여년을 기다려왔다.

정부 무관심  ‘잊혀진 국군포로’


지난해 7월 6일 물망초 재단(이사장 박선영)은 탈북한 국군포로들을 서울 용산구 전쟁 기념관 에서 열린 ‘생환 국군포로 간담회’에 초청해 이들을 위로했다.
이 자리에 나온 국군포로들은 “조국을 위해 목숨을 바쳤다가 북한으로 끌려갔다. 10년, 20년이 지나도 조국은 찾으려고 하지 않았다. 결국 스스로 탈북해 조국을 찾았다. 하지만 오갈 데가 없는 경우가 많다.”고 하소연했다. 지금까지 자발적으로 귀환한 국군포로는 80 여명. 현재 생존자는 57명이다. 이들 가운데 20 여명은 거동이 불편해 외출이 어렵다.












▲ 고향 땅으로 몰래 보낸 국군포로들이 쓴 편지
이 자리에서 박선영 이사장은 “우린 너무 빠른 기간 안에 산업화와 민주화를 이뤄냈다. 그래서 꼭 돌봐야 할 분들을 잊고 있다.”고 말했다.
국군포로로 북한에서 48년간 억류됐던 유영복(83)씨는 북한에 끌려갔던 날에는 희망을 잃지 않았다고 했다. “대한민국 정부가 있고. 국민과 국군. 통수권자인 대통령이 있는 한. 포로가 된. 수만명이 되는 우리들을 반드시 찾는 날이 올 것이다.”라고 말했다.
유 씨는 “10년이 지나고 또 수십 년이 지나도 그날은 오지 않았다. 단 한 번만이라도 조국 땅을 밟고 싶은 생각뿐이었다”면서 “2000년 6월 김대중 대통령이 북한으로 온다고 해서 우리들은 기대가 컸다. 그런데 결과는 너무나 도 실망스러웠다. 우리들 얘기가 전혀 없었다.”고 했다.
유 씨는 “남북회담이 끝나고 한 달 뒤인 7월 27일. 목숨을 걸고. 두만강을 넘어 조국땅으로 돌아 왔다”면서 “한국에 와서 보니 비전향장기수는 북한으로 돌려보냈다. 하지만 국군포로나 납북자는 왜 단 한명도 찾아오지 않았는가. 참으로 실망스러웠다.”고 말했다.  끝으로 그는 “북한에 국군 포로들이 남아있다. 6.25 전쟁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고 강조했다.


 “북에 생존 국군포로 113명”


손명화 <국군포로가족회> 사무국장은 “제 아버지는 6.25 휴전 3개월을 앞두고 포로가 됐다”며 입을 뗐다. “아버지는 제게 고향 주소와 형제. 자신의 군번을 알려주며 ‘내가 죽으면 내 고향에 꼭 가라. 나도 억울한데 이 고난을 되물림하는게 억울하다’고 했다.” 손 씨는 “국군포로 자녀들은 평생 맞을 매를 다 맞고 살아왔다”고 했다.



“국군포로 가족은 원망과 멸시를 받으며 살아야하는 가장 낮은 신분이다. 저는 불법 마약 제조와 유통에 강제 동원됐다가 전기고문을 당해 오줌을 싸기도 하고, 심하게 맞아 피가 우수수 땅에 떨어지기도 했다.”
이 자리에 나온 김태영 전 국방장관은 “42년간 군생활을 했다. 여러분 앞에 선 것이 죄스럽다. 정전이 되면 포로교환으로 당연히 돌아왔어야 하는데 국제법을 모두 어긴 김일성 때문에 정말 힘들게 사신 분들이다.”고 말했다.












▲ 6.25 전쟁당시 북으로 끌려가는 국군포로들.
최근 박선영 전 의원은 기자 회견을 통해 북한에  아직도 생존한 국군 포로 명단 113명의 명단을 공개했다. 박 전 의원은  중국 근처인 함경북도 탄광 지역, 그 가운데서도 샛별군에 집중 억류돼 있는데 고건원 탄광과 하면 탄광, 용북 탄광 등에서 생활하고 있다고 밝혔다.
박 전의원은 고건원 탄광에서 전천탄광으로 옮겨 명단 확인이 어려운 27명까지 포함하면 새별군 에만 생존 국군 포로가 140명이 넘을 것이라고 밝혔다. 박 전 의원은 지난해 11월부터 지난 2월까지 대북 소식통 등을 통해 조사한 결과라면서 구체적 인 조사방법은 밝히지 않았다.  현재 정부는 북한에 생존해 있는 국군 포로 수를 500여 명으로 추정만 하고 있다.
박선영 전 의원은 국군포로 문제 해결의 방법으로 “분명한 국제법 위반이기에 UN에 건의해야 하고 국제형사재판소에 제소하는 등으로 정석으로 풀어야 한다”면서  “국제법을 위반했다는 것을 명시하기 위해서 범정부 기구 대책을 만들어야 한다.”고 제시했다.
LA에 본부를 두고 있는 국군포로송환위원회(회장 정용봉)은 이미 2011년에 당시 북한의 김정일 등 포로억류에 관련된 자들을 국제형사법정(ICC)에 제소했으며,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에도 건의했다.

 






다음 글은 국군포로와 납북자 그리고 탈북자를 위해 인권운동을 펴는 18대 국회의원을 지낸 박선영 동국대 법과대 교수(헌법학)가 국민들에게 호소한 내용이다.












유독히 춥고 눈도 많았던 지난 겨울, 중국 번호로 걸려온 전화 한 통.
“저 국군포로 ○○○입니다. 군번은 034××××. 6ㆍ25 나자마자 붙잡혔습니다. 저 죽기 전에 고향에 꼭 좀 가고 싶습니다. 저 좀 구해주세요.” 발음도 정확치 않고, 전화 상태도 매우 나빴지만 그는 이미 남한의 가족과 통화도 했다며, 급히 도움을 청해왔다.
그때는 나는 함경북도 지역에 생존해 계시는 국군포로 할아버지들의 실태를 은밀히 조사하고 있던 중이었다. 몇 분이나 생존해 계실까? 그분들은 한국행을 지금도 원하고 계실까 하는 생각이 몇 달째 내 뇌리를 떠나지 않고 있던 시점에 그 할아버지가 내게 전화를 하신 것이다. 그 묘한 시점에 나도 놀랐지만 동시에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다는 사실에 좌절해야 했다.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 끝에 평소에 존경하던 장관급의 어느 공직자 분께 전화를 드렸다. 조용히 들으시던 그분이 침묵 끝에 말씀하셨다. “대한민국의 이름으로 그분을 모셔올 수 없다면 평생 국민의 녹을 먹고 산 제가 필요한 돈을 대겠습니다. 그분을 모셔오세요.” 많은 분이 애를 쓰셨지만 여러 가지 이유로 결국은 실패했다.
청춘을 빼앗기고 60년 세월을 억류된 채 고향과 가족을 그리워하며 통한의 삶을 사시는 분이 어찌 이 한 분뿐이랴? 이미 돌아가신 많은 국군포로의 원혼도 구천을 떠돌고 있을 터. 그분들을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생존 국군포로 명단이라도 국민에게 알리는 일이라고 생각해 도와주시는 분들을 독려했다.
그 결과 얻은 생존 국군포로 명단. 일단 북한의 샛별군 한 군데만 집계했는데도 113분이었다. 대한민국 남성의 평균수명이 72.8세인데, 그 열악한 탄광지역에서 평생을 보내고 80이 넘은 연세에 113분이나 살아 계시다니? 그 답은 귀환하신 국군포로 할아버지가 퉁명스럽게 하셨다.
“우리가 어떻게 죽어? 살아서 고향에 가고 싶다는 일념으로 살아왔는데…. 내 군번 잊을까봐 밤마다 누워서 마누라도 모르게 외웠는데.”
툭하면 ‘북한을 자극한다’는 이유로 대한민국 정부가 ‘국군포로’라는 단어조차 입 밖에 내지 않고 있던 그 순간에도 탄광에 억류된 국군포로들은 자신의 군번을 되뇌었고, 비전향 장기수 63명을 무조건 북송시킨 사실을 알고 울분을 토하다 그 연세에도 정치범 수용소로 끌려가야 했던 국군 포로들. 왜 대한민국은 그들을 애써 외면하려 하는가?
자신들을 구해주리라 믿고 또 믿다가 끝내는 스스로 탈북해 온 국군포로가 81분이나 되지만, 그분들은 이 땅에 돌아와서도 포로같은 생활을 하고 있다. 언론에 노출돼서도 안 되고 가족들도 부담스러워하고, 정부로부터 받은 쥐꼬리만한 보상금은 사기를 당하거나 대부분을 북한에 있는 자녀들에게 보내고 자신들은 험하디 험한 삶을 이어가고 있다. 심지어는 그분들이 돌아가셔도 언론에 단 한 줄, 부고조차 나지 않는다. 일본군 위안부 할머니들은 한 분씩 돌아가실 때마다 이제 몇 분 남았다며 사진과 함께 기사화되는데, 왜 국군포로들만 그렇게 꼭꼭 숨겨야 할까? ‘라이언 일병 구하기’ 영화를 보면서는 뜨거운 눈물을 흘리며 기립박수를 보내면서 왜 우리는 국군포로 할아버지들을 잊어 달라고 강요하는 것일까?
국군포로를 잊어버리고 숨기는 한, 군대 가기 싫어 어깨를 빼고 무릎을 깨는 젊은이들은 결코 줄어들지 않을 것이다. 국가가 무한(無限)책임을 져야 하는 분들을 잊어버리고 외면하는 한, 대한민국의 미래는 신기루일 뿐이다. ‘라이언 일병 구하기’는 미국만 하는 게 아니라는 사실을 정부는 행동으로 보여줘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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