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동맹 60주년 기념, 6.25전쟁 사진전 성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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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한미동맹 60주년을 기념하고 6.25전쟁 발발 63주년과 휴전60주년을 기억하면서 개최된 6.25전쟁 사진전시회는  지난 6월 28일부터 7월 4일까지 코리아타운 대표적 쇼핑  문화공간인 ‘갤러리라 마켓’(올림픽 & 웨스턴)에서 개최되어 많은 참관자들에게 6.25전쟁을 되돌아보고 통일을 다지는 의의있는 행사가 되었다. 이번 사진전은 육군종합학교미주전우회LA(회장 정용봉) 와 9.28수복동지회(공동회장 안재득)가 공동주최했으며 국군포로송환위원회, 6.25전쟁 납북인사 가족협의회, 6.25전쟁참전소년병전우회미주지회가 협찬했다. 지난해에 이어 두 번째로 개최된 사진전은 한층 보강된 사진 자료들을 포함해 약 200점이 전시됐는데, 특히 납북자와 소년병 관련 사진 등과 미국립 기록보관소 소장 자료들과 주한미군사령부에서 제공한 전쟁 중 생활상 등 사진 등이 전시됐다. <성진 취재부 기자>

‘잊지말자 6.25 전쟁, 기억하자 호국영령’이라는 대형배너가 걸린 코리아타운 갤러리아 마켓 2층 분수대 광장에서 개최된  6.25 사진전시회에는 특히 자녀들을 데리고 전시장을 찾은 부모들이 많았다. 마켓을 보고난 후 카트를 끌고 전시장을 찾은 동포도 있었고, 한손에 장 바구니를 들고 사진 한장 한장 유심히 보는 참전 노병들도 있었다. 어떤 동포는 매일처럼 사진 전시장을 찾기도 했다.
자녀들을 데리고 나온  부모들은 사진 한장 한장을 보면서 자녀들에게 지난날의 역사를 설명 해 주기도 했다. 한국 아이를 입양한 미국인도 전시장을 찾아 모국의 역사와 미국의 해외참전 역사를 설명하기도 했다.


6.25 잊혀진 전쟁 아닌 역사


롱비치에서 왔다는 제임스 차씨는 “미국에서 자란 아이들에게 모국의 역사를 이곳에서 사진을 통해 설명해주게 되어 좋았다”면서 “가능하면 이번 사진전을 책으로도 발간한다면 2세 교육에도 도움이 될 것”이라고 제안했다. 한 동포 여성은 흥남부두 철수 장면을 담은 사진을 보며 “내가 저 LST를 타고 피난했는데 그때를 생각하면 언제나 가슴이 아프다”면서 “더 이상 전쟁은 없어야 한다”고 말했다.
최근 미국에 유학 온 나영지라는 고교생은 밸리에서 고등학교에 재학하고 있는데 학교에서 ‘6.25전쟁’을 주제로 한 에세이 숙제를 받고 마침 사진전시회를 여는 안재득 회장을 만나 이야기를 듣고 사진들을 보며 “왜 한국에서는 이런 역사적 사실들을 가르쳐 주지 않은지 모르겠다”면서 “미국에 와서 6.25전쟁의 실상을 알게 되어 보람을 느낀다”고 말했다.



서울에서 방문차 LA에 왔다가 사진전시회 소식을 신문을 통해 보고 전시장을 찾은 예비역인 강희원(6.25참전 유공자, 중앙대의원)씨는 “6.25전쟁 사진전시회를 마련하신 해외동지들은 정말 훌륭하고  노고에 감사합니다”라며 “이런 행사는 정부에서 더 열심히 해야 하는 것이 아닌가”라고 말했다.
또한 서울에 거주하는 국군포로 출신 배인구씨(별첨 박스 기사 참조)도 전시장을 찾아  “북한에 아직도 남아있는 국군포로를 데려와야 한다”고 호소했다.


국군포로 조속한 송환 촉구


한편 지난 28일 오후 3시에 개최된 사진전개막식에서 주최 측을 대신하여 정용봉 회장은 “미국 사회에서 6.25를 모르는 세대들에게 역사를 알려주기 위해 이 행사를 마련했다”라고 의의를 설명했다. 신연성 LA총영사는 전시회 축사를 통해 “미국사회에서도 다양한 6.25 행사가 개최되고 있는데 이번 사진 전시회는 그런 면에서 의의가 있다”면서 “대한민국 정부를 대신하여 감사드린다” 고 말했다. 그리고 김봉건 건국대통령이승만박사기념사업회장은 축사를 통해 “우리에겐 광복절만 있을 뿐 건국기념일이 없다”면서 “건국기념일을 제정 기념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번 전시장에 마련된 방명록에는 많은 글들이 적혀 있었다.
ROTC 1기생 회장 주영세씨는 “한국사람이 한국의 역사를 모르면 한국사람이라고 할 수 있을가! 대한민국의 전통성을 부인하는 사람들, 애국가를 부르지 않는 사람들은 이북에 가서 살도록 해야 합니다.”라고 적었다.



LA동포 권정자씨는 “사진 전시회를 보고 너무나 마음이 아팠습니다. 많은 사진들을 가지고 계신데, 너무나 오랜 세월이 지나 그냥 묻혀 질까 걱정입니다. 혹시 사진첩을 만드실 계획이라면 매우 좋을 것 같습니다. 저도 힘껏 돕도록 하겠습니다.”라고 글을 남겼다.
전시장에 걸린 ‘국군포로는 돌아와야 한다’는 포스터를 본 LA성광한인장로교회에 출석하는 강원영씨는 국군포로 1호  고 조창호 중위를 추모하면서 “북한에 있는 우리 국군포로들을 모두 데려와야 합니다”라고 말했다.
이희수씨는 “선조들의 고난과 피 값으로 오늘 내가 그리고 우리가 살아가고 있습니다”라고 적었다.
한 동포는 “6.25종전 60주년이라니…시간이 총알처럼 빠릅니다. 한국전쟁을 ‘잊혀진 전쟁’이라고 하지만 우리에겐 결코 잊을 수 없는 전쟁입니다.”라고 적었다. 유남식씨는 방명록에 “북한인민군이 서울에 와서 시민 2/3를 죽여야 한다고 했습니다. 지금도 그들은 살생을 하고 있습니다. 6.25를 절대로 잊어서는 안됩니다.”라고 적었다.
연씨라고 밝힌 한 동포는 “이 민족의 아픔, 결코 잊지 않습니다. 6.25는 생각만 해도 마음이 아픕니다. 젊은이들이여 부디 6.25를 상기합시다. 대한민국 만세!”라고 적었다.  평통 위원인 김복임씨는 “하루빨리 남북통일이 되기를 기원합니다”라고 적었다. 한인사회와도 밀접한 미국인 로렌스 펙씨는 전시장을 돌아 본 다음  “소위 종북세력은 미국에서도 반대해야 합니다”라고 썼다. 6.3동지회의 박양종 회장은 “역사의식을 갖고 훌륭한 사진전시회를 열어 주시는 분들께 정말 감사한 미음을 전합니다. 인생은 역사이며, 역사는 바로 이 같은 사진전시회 같은 사업을 통하여 이뤄지는 것입니다.”라고 적었다.




















지난 28일 6.25전쟁 사진전시회가 열리는 갤러리아 마켓 2층 전시장에 한국에서 LA동생집을 방문했다가 6.25사진전이 열린다는 소식을 듣고 찾아온  배인구씨는 전시장 포스터에서 “국군포로는 돌아와야 합니다”라는 구절을 보며 하염없는 상념에 젖었다. 6.25전쟁에서 포로가 됐다가 휴전조약으로 포로송환으로 고향땅을 밟은 그는 이날 “수만명의 동료 전우들은 포로가 되어 휴전협상에서도 돌아오지 못했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지금으로부터 63년 전 배인구(82)씨는 꿈에 남쪽 고향의 어머님을 만났다. 그 꿈이 길몽이었다.
배씨가 꿈을 꾸던 곳은 북한의 강동 포로수용소였다. 그는 당시 6.25전쟁에서 중공군에 포로가 되어 다른 전우들과 함께 포로수용소에서 기약 없는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제2사단 소속이었던 배씨는 꽹과리와 막대기로만 갖추어진 중공군의 인해전술에 사단 전체가 붕괴되는 바람에 포로가 되었으며, 나중 북한군에게 인계되었다. 그때 나이 18세때 ‘인민군을 한명이라도 죽이기’ 위해 국군에 입대해 1951년 1월 소위 ‘가평 전투’ 에서 중공군에게 포위되어 북한군에 넘겨 강동포로수용소에 수감 되었다.  기약 없는 포로생활 중 1952년 9월 12일 수용소의 인민군 한 명의 협조로 11명이 수용소를 탈출해 무작정 남쪽으로 뛰었다.
며칠을 산등성이만 넘다가 하루는 산속에서 버섯을 구워먹다가  다시 중공군에게 체포되어 포로수용소로 넘겨졌다. 고문도 당해 척추를 크게 다쳤다. 악착같이 버티었다. 수용소에서는 하루 쌀 200 그람, 강냉이 400 그람이 배급되었다.
하루는 수용소 소장이 고향집에 보내는 편지를 쓰라고 했다. 내용을 불러 주는 대로 적었다. ‘휴전이 되면 고향으로 돌아갈 것’이라고 썼다. 그러다가 수용소 생활 2년이 지난 1953년 7월 31일에야 처음으로 휴전소식을 들었다. 휴전조약은 당시 7월 27일 이었다.
휴전소식이 있은 후부터 수용소의 대우가 달라졌다. 배씨는 고향에 가기위해 모든 언동을 조심 했다. 자칫하면 포로교환 명단에서 빠지게 될지도 모르기 때문이었다. 강동 포로수용소에서 천마포로수용소에서 대기하고 있다가 중대 단위로 남쪽으로 후송되기 시작했다.
배씨는 1953년 8월 10일 동료 포로들과 함께 개성 근처 포로교환 대기소에서 마지막으로 북한군으로부터 검색을 받았다. 이날 동료 포로 중 한 명은 품에 태극기를 감춰오다가 마지막 날에 발각이 되어 포로 교환에서 제외되는 운명을 맞이했다.
그는 포로송환 전 중립국감시단으로부터 면담을 받은 적이 있는가라는 기자 질문에 “전혀 그런 것은 없었다”면서 “고향으로 갈 것인가, 여기에 남을 것인가”라는 질문도 받은 적이 없었다고 말했다.
배씨가 타고 있는 트럭은 판문점 남쪽으로 향하고 있는데, 남쪽에서 올라오는 공산 포로들의 트럭들이 보였는데, 그 트럭에서는 공산 포로들이 입고 있던 옷들을 마구 벗어 던지는 모습도 마주쳤다. 배씨는 판문점 남쪽 캠프 브리스에서 대한부인회 회원들이 만들어 준 볶음밥을 맛있게 먹은 다음 화랑담배도 맛있게 피웠다.
그 후 문사역을 거처 인천을 지나 서울에 도착해 완전한 자유의 몸이 되었다.  배씨는 다시 원대복귀 하여 군복무를 계속하여 4년여 만에 제대를 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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