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장재구 회장 사면초가 ‘구속영장 청구에 이어 경영권 박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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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문은 누구도 이용할 수 없다”-1954년 6월 창간한 한국일보 창업주 고 장기영 사주 어록이다, 언론자유와 편집권독립의 중요성을 가장 함축적으로 표현되고 있으나 정작 1977년 창업주 장기영의 사망 이후 2세들의 방만한 경영으로 한국일보는 끝내 몰락의 길을 걸어 왔다. 검찰은 장재구 회장의 200억대 배임 횡령 혐의로 사전구속영장을 청구하고 5일 영장실질심사를 실시한다. 여기에 설상가상으로 서울중앙지법 파산 1부(부장판사 이종석)은 1일 한국일보 전현직 직원 201명 명의로 신청한 회생절차 신청을 받아들여 사실상 한국일보 장재구 회장의 경영권은 박탈되었다. 파산 법원의 결정에 따라 한국일보 장재구 회장은 더 이상 신문 편집 발행권을 포함한 모든 경영권을 상실 당해 장기영 창업주가 창간한 한국일보는 59년 만에 장씨 일가의 파문을 알렸다.
한국일보는 70년대 상당한 정치적 영향력을 발휘하며 80년대 초반 매출액·발행부수 1위를 기록하던 대표 일간지였다. 그러나 창업주인 고 장기영 전 경제부총리가 사망한 이후, 아들들이 번갈아 가며 회사 경영을 맡아오면서 사세(社勢)가 기울기 시작했다는 것이 대체적인 평가다. 장남 장강재 전 회장이 사망한 1993년 이후 형제들이 번갈아 가며 경영권 다툼을 벌였고, 급기야 장재국 사장은 라스베가스에서 수백만 달러의 거액 카지노 도박을 한 혐의로 구속까지 당하는 등 ‘사주일가’의 방만한 경영과 전횡으로 몰락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지난 69년 미주에 진출한 한국일보는 둘째 아들 장재구씨가 혼신의 힘을 다해 미주 한인신문 1위 자리를 만들었던 장본인이다. 그리고 장재구 회장은 한국일보의 잃어버린 명예와 아버지의 영광을 되찾겠다는 야심찬 의지를 보이며 한국일보 입성 했지만 이미 기울일 대로 기울인 사세를 일으키기에 역부족이었다.


경영권 분쟁·경영난…‘잃어버린 20년’


1993년 8월 장남인 장강재 전 회장이 사망한 후, 한국일보는 4남 장재국 회장 체제로 전환했다. 차남 장재구, 3남 장재민, 5남 장재근 등 형제들은 계열사인 미주한국일보와 서울경제신문, 일간스포츠 등을 나눠 맡았다. 장강재 회장의 장남 장중호 현 일간스포츠 사장도 경영수업을 받았다. 그러나 무리한 증면 경쟁에 뛰어들면서 경영난이 악화되고 경영권 분쟁으로 장재국 회장이 두 차례나 경질(1997년, 2002년)되는 등 불안정한 상태가 이어졌다.



한국일보는 이미 IMF 외환위기 직후인 1998년 4300억원, 1999년 5590억원에 달하는 금융권 부채로 몸살을 앓고 있었다. 그런데도 ‘장씨 일가’가 한국일보에서 가져다 쓴 돈(주주단기대여금)은 2001년 당시 460억원에 달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이후 이 돈은 대부분 대손충당금 등의 방법으로 ‘탕감’됐다. 그 밖에도 ‘장씨 일가’는 빌린 돈의 이자를 회사에 떠넘기거나 근무하지 않으면서도 봉급과 해외출장비 등을 챙겨갔다는 게 비대위와 회사관계자들의 증언이다.
이 기간 동안 한국일보의 위상은 추락을 거듭했다. 장재국 전 회장은 90년대 초반까지 증면경쟁을 주도하며 은행권 대출을 대폭 늘려 대규모 부실을 낳았고, 장재구 회장은 수백억원의 회사 자금을 횡령해왔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한때 ‘기자사관학교’라는 별칭이 자랑처럼 여겨졌지만, 이는 ‘기자 대기소’, ‘기자 세탁소’라는 불명예스러운 별명으로 변했다. 1998년 IMF 이후 한 차례 ‘엑소더스’를 겪은 이후에도 수많은 한국일보 기자들이 꾸준히 회사를 떠났다.


빚 얻어서 증자 후 돈 빼서 변제


현 장재구 한국일보 회장은 2002년 1월, 장재국 전 회장이 경영난과 불법 해외 원정도박 등을 이유로 주총에서 해임된 직후 회장 자리에 올랐다. 1997년 이후 두 번째 취임이었다. 막대한 부채와 지속적인 경영난에 시달리던 한국일보는 그해 9월부터 ‘기업개선작업(워크아웃)’에 들어갔다. 장 회장은 이에 앞서 같은 해 6월 채권단과 재무구조개선 약정을 체결하면서 미주한국일보 지분 매각 등을 통해 500억원을 증자하겠다고 약속했다.
장 회장은 8월과 9월 각각 100억원을 증자한 이후, 나머지 300억원은 여러 차례 약속을 어긴 끝에 2005년 6월에 가서야 완납했지만 이 역시도 미국 현지 법인인 미주한국일보가 골드만삭스에서 차용한 9천만달러의 일부에서 조달된 것으로 장 회장의 개인재산으로 보기 어렵다. 장 회장은 미주법인에서 조달한 차입금을 변제하기 위해 문제의 200억을 임의로 사용한 것으로 검찰은 보고 있다. 이후 장 회장은 2006년 채권단과 2차 양해각서를 체결했다. 사옥 매각과 인력구조조정, 200억원 추가 증자 등의 조건이 붙었다. 그러나 200억 추가 증자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고, 창간 당시부터 머물렀던 ‘중학동 14번지’의 사옥 매각 과정에서 배임 혐의가 불거졌다. 노조 비대위가 이번에 장 회장을 고발한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장재구 회장의 영장 실질심사는 당초 1일 열릴 예정이였으나 변호사측이 낸 준비부족을 이유로 5일로 연기되었다. 200억 배임 혐의와 자회사인 서울경제신문에서 130억원을 추가로 횡령한 사실을 적발하고 구속영장을 청구한 것이다. 법조계에서는 횡령액이 커서 구속은 불가피하다는 것이 중론이다. 여기에 이미 파산법원의 판결로 경영권을 박탈당한 장씨 일가는 한국일보 콘텐츠를 더 이상 사용할 수 없어 미주한국일보 발행에도 상당한 지장을 초래할 것으로 보여 향후 향방에 초점이 모아지고 있다. 경우에 따라서는 한국일보 본지 판 없이 현지 판만 발행될 가능성도 적지 않다. 한국일보 노조는 꾸준히 미주한국일보의 지난 10년간 콘텐츠 사용료를 요구하고 있어 팽팽한 대립을 보여 왔었다.
5일 구속 여부가 판가름 나는 장재구 회장에 대한 미주 한인들의 관심도 뜨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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