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격취재> 美 CNN 기자, 한국전쟁 정전 60주년 취재 북한 방문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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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은 한국전쟁 정전 60주년 기념행사 취재를 위해 서방기자들을 북한에 초청했다. 정전 60주년 기념행사를 취재하기 위해 초청된 서방 기자들은 5일 동안 공식행사 외에는 취재가 금지돼 호텔 외의 지역은 출입도 제한됐다. 기자들은 북한 주민들과의 접촉도 허용되지 않는 등 심한 통제 속에서 퍼레이드와 공연 등 북한 당국이 지정하는 행사에만 갈 수 있었다. 이 행사를 취재한 CNN 기자는 구 소련과 이란 리비아 등지를 취재했어도 이처럼 통제받는 취재는 경험한 적이 없다고 밝혔다. 제한된 취재 환경에서 주민들과 인터뷰 한 번 못해 봤다는 CNN 기자의 북한 취재기를 소개한다. 
김 현(취재부기자)












북한의 국적기에 탑승하면서부터 시작된 북한의 애국적인 음악은 내릴 때까지 계속됐다. 소리가 너무 커서 이어폰을 끼고 있어도 사회주의자들의 음악을 안들을 수 없었다. 조그만 화장실에도 크게 들렸고 비행기 내에서는 이 음악을 피할 수 없었다. 북한 고려항공의 피할 수없는 음악 소리는 기자가 5일 간 방문한 평양과 다를 바가 없는 것이다.
취재가 제한되고 선전과 정치극으로 연출된 여행이었다. 이 엄격한 독재 속에서 살고 있는 보통의 북한 주민들의 생활에 대한 어떠한 관찰도 할 수 있는 기회는 제공되지 않았다.
외국 기자로서 이것은 열쇄 구멍으로 들여다보려고 하는 것과 다름이 없었다. 그리고 문 밖의 다른 쪽에 숨겨진 세계를 상상하도록 남겨졌다.


김정은 우상화 외국 언론 초청


북한은 10여 명 이상의 외국 TV 취재진을  초청해 한국전쟁을 끝낸 정전협정 체결 60주년 축하행사를 취재토록 했다.
북한은 이 행사를 ‘조국해방전쟁에서 미 제국주의자들을 물리친 대승리’라고 선전한다.
김정은에 대한 대중적 인기를 과시함과 함께 구스 스테핑(다리를 굽히지 않고 높이 들며 걷는 행진)하는 군인들의 퍼레이드와 군사 무기, 이것이 북한 지도부가 외부세계에 보여주기 원했던 이미지다.      
김정은은 그의 아버지가 2011년 사망하면서 권좌를 물려받은 20대의 지도자다. 경험이 적은 김정은은 그의 할아버지 김일성과 놀랄만큼 닮았다. 일부에서는 이를 의도적이라고 한다. 박한식 조지아 대학 국제관계학 교수는 “북한은 김일성과 김정은을 연관시키려고 노력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김정은의 뚱뚱한 모습은 최근 유엔에서 발표한 통계와 극히 대조를 이루고 있다. 지난달 유엔 세계식량 프로그램은 북한의 여성과 어린이 2백40만명에게 나눠줄 외국의 식량원조를 요청했다. 이는 심각한 영양부족 상태에 있는 어린이(6개월~4세)들과 그들의 어머니들을 위한 것이다. 이 2백40만명은 북한 인구의 10%에 해당한다.
지난 90년대에 북한에서는 경제가 무너져 기아로 1백만명에 가까운 사람들이 사망했다.
북한 방문은 나의 기자 경력 중 가장 엄격하게 통제받은 취재 임무였다. 북한은 이전에 내가 과거에 취재한 이란과 심지어 나토의 폭격 중에도 살아남으려는 리비아의 카다피 정권 취재 때보다도 제한돼 있었다.
우리는 버스를 타고 가는 것을 제외하고는 양강도 호텔밖으로 나가는 것도 허용되지 않았다. 북한에서 5일 동안 그들은 내가 북한의 화폐조차 어떻게 생겼는지 보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행사 외에는 대화 촬영도 금지


2명의 정부 안내원들이 우리 3명의 TV제작진 곁에 항상 있었다. 공항 도착과 출발을 제외하고 우리가 탄 버스는 5일 동안 평양의 중심가에서 5마일 이내를 벗어난 적이 없다.
도시 모습은 김 씨 왕조의 영광의 순간들과, 소련식의 아파트 건물들과, 텅빈 차량 도로들, 그리고 잘 관리된 잔디밭으로 이뤄졌다. 북한의 노동자들이 무릎을 꿇고 손으로 잔디를 다듬는 모습을 몇 차례 볼 수 있었다.
밤에 도시는 으스스할 정도로 어두웠다. 전기가 모자라는 것으로 보인다. 공항에서 호텔로 가는 깜깜한 밤에 우리가 탄 버스는 하이웨이의 갓길을 걸어가는 보행자들을 잠깐 비추기도 했다. 그들은 손전등도 갖고 있지 않았다.












북한 당국은 우리가 마음대로 촬영하도록 허용하지 않았다. 안내자들 중 한 명이 촬영을 중지하라고 거의 습관처럼 말했다. 버스 창밖의 보행자들을 왜 촬영하지 못하느냐고 묻자 그 안내인은 “외국 언론이 우리 조국에 대해 사악한 선전을 퍼뜨리는 것을 원치 않는다.
인터넷을 검색하면 누더기를 입은 북한인들 사진 투성이다”라고 대답했다. 그는 외부세계에 북한에 대해 말할 수 있는 권한을 가진 소수의 엘리트 중의 하나라고 밝혔다.
 5일 동안 북한 당국은 의식행사인 새 재향군인 의식, 아리랑 공연 – 수천 명의 출연자를 자랑하는 실제로 경탄스러운 공연 – 그리고 가장 초현실적인 행사인 김정일화와 김일성화 꽃 행사에 우리를 데리고 갔다.  
 이 축제는 2명의 전 북한 지도자들의 이름이 붙여진 붉은 꽃송이와 자주색 꽃송이에 초점이 모아졌다. 행사 조직자들은 2명의 전 지도자들의 이미지로 꽃들을 엮고 미사일과 탱크 그리고 다른 전쟁무기로 사진들로 꽃  전시장을 만들었다.
이 꽃들을 보면 우리의 지도자들을 그리워하게 된다”고 축제 공식 안내를 맡은 리수종(21) 양은 말했다. 이 축제에는 2만 개가 넘는 화분이 있다고 리 양은 밝혔다.
어느 꽃을 좋아 하는냐고 리 양에게 묻자 “두 꽃 모두 좋아 한다”고 즉시 대답했다.


브래드 피트 좋아 한다는 안내원


내가 북한에 있는 동안 단 한 명의 북한 주민과도 진지한 얘기를 나눌 수 없었다. 북한 정부가 보여준 규율과 통제는 완벽했다.
이는 내가 80년대말 소련에서 경험한 것과 극심한 대조를 이룬다. 당시 소련에서 외국인들은 호텔 밖에서 서양의 담배와 껌,  청바지를 원하는 암시장 상인들과 쉽게 만날 수 있었다.
평양에서는 노병이나 퍼레이드에 가는 사람들과 인터뷰를 하면 안내원이 우리를 데리고 가기도 전에 미 제국주의를 비난하는 목소리를 높인다.
12살 소년에게 좋아 하는 TV쇼에 대해 묻자, 김일성에 관한 만화영화와 기록영화라고 대답했다. 북한 학생들 모두가 북한인민공화국 설립자를 사모하는 것은 가능한 일이다.



일부 북한인들 중에는 그들 지도자에 대한 전기보다는 다른 것을 갈망하고 있다는 것을 한 안내원을 통해 알 수 있었다. 맛있는 냉면과 북한제 맥주로 점심식사를 하면서 21살의 안내원이 영화배우 누구를 좋아 하느냐고 물었다. 그는 브레드 피트를 좋아 한다고 했다.
그는 대학에서 영어시간에 헐리웃 영화를 여러 편 보도록 허락받은 적이 있다며 내게 말을 계속했다. ‘Se7en’이나 코메디물 ‘Big Daddy’를 제외하면 모두가 옛날 역사물들이다. ‘Troy’, ‘Gladiator’ 그리고 ‘사운드 오브 뮤직’ 등이다. ‘에델바이스’ 노래를 아느냐고 묻기도 했다.
이 젊은 안내인은 내가 빌려준 아이폰을 보며 행복한 모습을 보였다. 일부 북한 주민들은 휴대전화를 갖고 있지만 북한당국이 인터넷과 이메일, 국제전화는 금지하고 있다.


북 주민, 인터넷ㆍ국제전화 금지


그러나 이 안내원은 나의 휴대전화 사용법을 알고 있고 아이폰 게임에 몰두하기도 했다. 내가 그의 사진을 찍었지만 그에게 이메일로 보낼 수는 없다.
전쟁 기념일을 축하하는 군대 퍼레이드가 있던 날 북한의 가면은 벗겨졌다. 7월27일 북한의 수도의 날씨는 찌는 더위와 습기 찬 날씨였다. 군대 정복을 입은 80대의 노병들이 옥외 관중석에 군대 퍼레이드를 지켜보고 있었다. 
이들은 김정은이 모습을 보일 때까지 몇 시간을 기다리고 있었다. 군인들과 주민들은 한 여름의 뜨거운 햇빛 아래서 군대 행진 음악에 맞춰 구스 스테핑으로  행진하고 열광하면서 몇 시간을 보냈다.
정오가 되면서 존경하는 지도자는 작별의 손을 흔들었다. 그가 떠나자마자 퍼레이드 참가자나 관중들은 그대로 쓰러졌다. 대부분이 열사병과 탈진에 의한 것이다.


마실 물 없어 지쳐 쓰러지는 주민들


군악대의 정복을 입은 한 병사가 악기인 심벌즈에 의해 만들어진 조그만 응달에서 거의 의식을 잃은 모습을 볼 수 있었다. 한 노병은 보도의 응달에서 탈진 상태로 제대로 숨을 쉬지 못하고 있었다.
CNN의 카메라맨 데이빗 호울리는 우리가 갖고 있던 마지막 병물을 거리에 쓰러진 여성에게 주려고 달려갔다. 이 광장에는 퍼레이드를 하거나 공연을 하거나 관람을 하는 사람들을 위한 물이 없었다.
북한군의 위용을 과시한다는 행사의 조직위원들에게는 그들의 주민들이 탈수 상태에 빠질 것이라는 고려가 없는 듯이 보였다.
그날 밤 북한은 또 다른 애국 쇼를 보여주기 위해 외국 인사들과 엘리트 지지자들을 소집했다. 관중들이 모인지 몇 시간이 지나서 김정은이 나타났다. 그의 옆에는 중국의 부주석이 자리했다. 그들은 조국해방전쟁 박물관 위에서 터지는 장관의 폭죽을 관람했다.
나는 거의 모든 좌석의 북한 관중들을 보았다. 그들의 얼굴 앞에서 터지는 승리의 폭죽을 의식하지 못한 채 적어도 한 명은 깊히 잠든 듯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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