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안의 화제> 차영-조희준의 치정 불륜 ‘막장드라마’ 전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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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시중의 최대 화제는 차영 전 민주통합당 대변인의 친자확인 소송으로 촉발된 조희준, 조용기 목사와의 얽히고설킨 지저분한 스토리다. 돈, 여자, 불륜, 배신, 음모, 소송, 종교등이 뒤범벅된 종합 대하드라마라고 할 수 있다. 최강 된장녀로 떠 오른 차영은 누구이며 여성편력이 화려한 조희준의 과거는 물론 첫 만남에서 부터 막장으로 치닫는 전 과정을 낱낱이 공개한다. 돈과 여자 그리고 권력이 탐나 유부남, 유부녀가 온갖 추태를 다 부리고, 그 와중에 자살한 딸을 자신의 정치적 입신을 위해 사인을 심장마비로 죽었다고 거짓말을 하면서 사랑하는 딸이 어머니가 국회의원이 되달라는 평소의 소망을 이뤄지기 위해 출마 했노라고 출사표를 던지는 기자회견까지 한 뻔뻔한 차영. 그런 내면도 제대로 읽지도 못한 채 청와대 비서관, 당대변인, 대통령후보와 서울시장의 측근 선거참모에 발탁한 우리 정치지도자의 안목이 새삼이 의심스러울 정도다. 국회의원의 꿈을 이루기 위해 2008년 비례대표 의원 공천 신청했으나 탈락하고, 지난 총선에서 서울 양천구 민주당 후보로 출마해 접전 끝에 낙선을 했다. 만약에 국회의원에 당선됐으면 이런 소송은 제기했을까하는 것도 의문이다. 
<이 기사는 본지에서 취재한 내용이 아님을 알려드립니다. >  <편집자주>

차영(51세, 이하 직함 생략) 전 민주통합당 대변인 뉴스로 세간이 떠들썩하다. 혼외정사로 낳았다는 아들의 친자확인 소송 때문이다. 소를 제기한 상대는 아이의 생부와 조부. 순복음교회 조용기 원로목사가 할아버지고 그 장남인 조희준(47세) 전 국민일보 회장이 아비라는 것. 차영 씨는 조 씨 부자에게 지금까지 받지 못한 양육비 7억9천8백만원 중 우선 1억원을, 향후 양육비로 매달 7백만원과 극심한 정신적 고통을 겪은 자신에 대한 위자료로 1억원 배상을 요구했다.


차영 ‘대한민국 최고의 된장녀’ 등극?


기사를 보니 돈·여인·불륜·배신·음모·소송·종교 등이 뒤범벅된 대하드라마 급이다. 보도에서 드러난 단편적 사실만 보더라도 막장도 이런 막장이 없다는 게 대다수 누리꾼 반응이다.
또한 누리꾼 반응에 따르면 이번 사건으로 차영 씨는 조만간 대한민국 최강 된장녀라는 별명을 얻게 될 공산이 크다. 학식 많고 고상하고 권위 있는 여성정치인인 줄 알았는데 부나비처럼 돈과 권력을 좇고 고위층과 재벌이라면 환장하는 연예인이나 돈보고 남자 고르는 소위 된장녀들과 뭐가 다르냐는 비난이다.
조용기·조희준 부자에 대한 질타도 만만치 않다. 조희준은 수십억 원의 배임·탈세·사기 혐의로 법정에 수차 섰던 인물. 국민일보 회장으로 재직하면서 거액의 순복음교회 자금을 유용해 주식투자로 개인의 사욕을 채우는 등 각종 비리를 저질렀다.
그는 1심에서 2년 징역형을 선고받고 법정 구속됐다가 항소해 최근 집행유예로 풀려났다.
조용기 목사는 아들들의 규모와는 비교할 수 없는 의혹의 장본인이다.
순복음교회 의혹 진상조사특별위원회에 따르면 조용기 목사와 부인 한성혜 씨, 그리고 그 자녀들 및 조 목사 일가는 지난 20여 년간 순복음 교회가 설립한 주요 기관과 재단을 장악하고 사유화한 결과 교회에 약 2000억 원의 피해를 입혔다고 지난 7월 발표했다.


배신으로 끝난 불륜













 ▲ 차영(왼쪽), 조희준(오른쪽)
순복음교회 측이 자체 조사한 피해액만도 335억원에 달한다.
드러난 것만 해도 이 정도인 조용기 목사 일가족의 비리와 추문 장부에 차 영 씨의 친자확인 소송 스캔들이 하나 더해진 셈이다.
보도에 따르면 차영 씨와 조희준 씨의 만남과 이별, 그리고 그 뒤  벌어진 일들은 드라마 ‘전쟁과 사랑’을 방불케 한다.
만나서는 안 될 두 사람의 악연이 시작된 것은 지난 2001년 3월. 차영 씨가 DJ 정부에서 문화관광비서관으로 재직하던 중 청와대 만찬에서 만났다고 한다.
문제는 차영 씨가 당시 딸 2명을 둔 유부녀였다는 것. 조희준 씨 역시 3번째로 맞아들인 아내가 있던 유부남이었다.
조희준의 첫 아내는 왕년의 청순 아이콘이었던 탤런트 나종미. 재혼 아내는 일본 여성 나까무라 유끼꼬, 그에 이어 지난 2000년 11월 말, 여성지 ‘엘르’ 과장이던 12세 연하의 장안나 씨와 결혼했다. 결혼하고서 불과 4개월 만에 차영 씨와 눈이 맞은 셈이다.
만남 당시 조희준 씨는 순복음교회 재단 중 하나인 넥스트미디어홀딩스 회장이었다.
조희준은 조용기 목사와 한세대 총장 김성혜의 세 아들 중 장남. 지난 1997년 32세에 국민일보 사장에 취임, 이듬해 회장이 됐다.
이후 스포츠투데이·파이낸셜뉴스 등을 창간하고 현대방송을 인수하는 등 미디어 계열사를 확장하면서 이를 관리할 목적으로 설립한 통합미디어 회사가 바로 넥스트미디어홀딩스다. 조희준 씨는 기업을 경영하면서 한편으로는 세금포탈 및 횡령을 일삼았다.
25억원의 세금 포탈, 회사돈 183억원 횡령 등이 세무조사에서 적발되어 2001년 6월 징역 3년 집행유예 5년과 벌금 50억 원, 사회봉사명령을 선고받았다. 그 와중에도 만나서는 안 될 유부녀와 사랑행각을 벌인 것이다. 차영 씨가 제기한 소장에 따르면 각기 가정이 있던 중년의 남녀는 첫 만남 뒤 2002년부터 본격 교제에 들어갔다.
그해 7월, 조희준 씨는 차영 씨를 넥스트미디어홀딩스 대표이사로 임명했다. 같은 해 초겨울 조 씨는 차영 씨에게 청혼하기에 이른다.
1천만원 이상을 호가하는 명품 피아제 시계를 선물하면서 남편과 이혼하고 자신에게 와 달라고 했다.
차영 씨가 조용기 조희준 부자를 상대로 제기한 친자확인 소송 소장 조 씨는 두 딸이 있는 차 씨를 내 사람으로 만들기 위해 자녀들의 미국 유학비 전액과 양육비도 책임지겠다고 약속했다. 2002년 11월일이다. 그리고 그 다음 달 조 씨는 세 번째 부인과 이혼했다. 차 씨 역시 2003년 1월 남편과 이혼했다. 당시 차 씨는 이미 임신한 상태 소장에 따르면 이때부터 동거가 시작됐다. 사실혼 관계의 부부나 마찬가지 생활이었다.
 
비극의 서막과 조희준의 변신


차 씨의 바램에도 불구하고 이들의 동거는 매우 짧았다. 조 씨와 생활한지 불과 2달 만인 2003년 3월 차 씨는 하와이로 출국한다. 소장에 따르면 원치 않은 출국이었다.
“하와이에서 출산해 아이를 데리고 있으면 새 법인회사를 설립해 대표이사를 시켜주겠다, 생활비와 양육비로 매달 1만 달러(한국 돈으로 약 1200만원)을 보내주겠다, 최고급 숙소 및 기사 딸린 최고급 리무진 차량 등을 제공하겠다, 결혼해 최상류층 생활을 누리게 해주겠다”는 등의 말을 하면서 조 씨가 강권했다는 것이다. 어쨌건 간에 하와이로 출국한지 5개월 만인 그해 8월, 차영 씨는 하와이에서 아들을 출산했다. 말로만 듣던 그 원정출산이다.
부드러운 아이스크림은 더 빨리 녹는다. 빨리 불붙는 장작 역시 빨리 꺼지는 법. 조 씨의 사랑이 그랬다.
소장에 따르면 약속대로 매달 생활비를 보내주고 여러 혜택을 지원하던 조 씨는 2004년 1월부터 갑자기 연락을 일절 끊어버렸다. 당연히 모든 지원도 끊겼다는 게 차 씨의 주장이다.



심상치 않은 낌새를 간파한 차 씨는 조 씨를 만나기 위해 즉시 일본행 비행기에 올랐다. 당시 조희준은 비리 혐의로 국민일보 회장직에서 쫓겨나 일본과 미국을 오가며 생활하는 처지였다.
비행기 타기에는 아직 무리인 갓난아기를 데리고 도착한 일본 땅에서 차 씨는 극도의 불안과 극심한 배신감에 치를 떨어야 했다.
조 씨에게 갖은 경로로 연락을 취했으나 그가 만나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는 수 없이 차영 씨는 마지막 방법을 택해야 했다. 조 씨와의 만남을 포기하고 한국으로 돌아온 그녀는 아이의 조부인 조용기 목사를 만나 자손 인정 및 조희준 상봉 확답을 받았다. 하지만 10여 년이 넘도록 이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다.
모든 지원이 끊기고 아무 희망도 보이지 않는 상태에서 차 씨가 극도의 배신감과 우울증에 시달렸던 무렵이다.
조희준의 말만 믿고 차 씨가 함께 하와이로 데려갔던 딸들 역시 학업을 중도에 포기하고 귀국해야 했다.


‘순복음’ 장손, 생부가 면하는 이유는?


엄마의 불안과 우울이 자녀들에게 영향을 미쳤음일까? 한 학기만 마치고 영문도 모른 채 돌아와야 했던 차 씨의 큰 딸은 부모의 이혼과 따른 충격 등으로 어린 나이에 자살이라는 극단적인 선택을 하고야 만다.
아이까지 낳게 만든 남자의 배신, 그리고 딸의 죽음 등 모질고 혹독한 3년을 보낸 뒤 차영 씨는 2004년 8월 이혼했던 전 남편과 다시 혼인신고를 하고 재결합했다. 한편 차 씨가 아무리 만나려 해도 만날 수 없었던 조 씨는 지난 2010년 먼저 연락을 해왔다.
“순복음 재단이 어려움에 처했으니 도와달라”는 요청이었다. 이에 대해 차 씨는 “조 씨가 너무 괘씸했지만 아이의 생부이기에 조건 없이 도왔다”고 소장에서 밝혔다.
그러다 올해 2월께 조용기 목사가 만남을 요청해왔다는 것. 조 목사는 족들을 불러 모은 자리에서 아이를 장손으로 공식 인정했고 향후 법적 절차를 밟기로 했다고 차 씨는 소장에서 주장했다. 그러나 아이 아빠는 그 자리에 참석하지 않았다. 온 가족이 인정한 장손에 대해 정작 아이 아빠 조희준 씨의 생각은 달랐다.



차 씨에 따르면 징역형을 선고받고 구속되었다가 지난달 집행유예로 풀려난 뒤부터 조 씨의 태도가 돌변했다는 것. 조희준 씨가 차 씨가 낳은 아들을 외면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유난한 여성 편력으로 소문이 자자한 조 씨이니 만큼 또 ‘다른 여성이 등장한 것이 아닌가’하는 추측할 뿐이다. 차 씨의 아들은 현재 10살이다.
그간의 사실이 공개되면 어떤 사태가 벌어질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을 사람은 차영 씨 본인이다. 자신과 조 씨에게 쏟아질 온갖 비난과 손해 득실을 계산하고 각오했으니 소송을 제기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번 일이 공개되면서 딸의 죽음을 둘러싼 비난이 빗발치리라는 예상은 미처 하지 못했던 것 같다.
딸이 부모 이혼의 충격 등으로 자살했다고 소장에서 밝혔던 차영 씨는 지난 2008년 민주당 비례대표 국회의원에 지원하면서 언론과 가진 인터뷰에서 전혀 다른 말을 했기 때문이다.
당시 그녀는 “심장마비로 사망한 딸이 죽기 전 소원했던 게 국회의원 엄마를 보는 것”이라는 취지로 여러 매체와 인터뷰했다.


딸의 죽음까지 이용하는 비정한 정치가


이에 딸의 죽음까지 팔아서 정치를 하겠다는 이해할 수 없는 모정을 놓고 차 씨 딸의 사망 원인이 무엇인지 논란이 분분하다.
차 씨의 인터뷰 내용대로 그 딸이 대학생 때 사망했다면 사망 시점은 2008년이 맞다.
소장대로 부모의 이혼 충격 등으로 자살했다면 사망 시점은 2004년 8월 이전이어야 한다. 법적 서류에 거짓말을 할 리가 없다고 전제하면 딸은 자살로 사망한 게 맞다.


배신의 상처 딛고 승승장구


당시 한 인터뷰에서 “한(恨)을 가슴에 묻었다”던 차 영 씨. 어지간한 풍파 그 이상의 질곡을 겪은 그녀에게 정치는 딸의 죽음을 팔아도 될 만큼 가치 있는 것이었을 수 있다.
하지만 이제 차 씨는 그런 정치를 버리겠다고 한다.
이슈가 된 후 차 씨는 언론과 인터뷰를 갖고 “조 목사 일가족이 장손으로 인정한 아들을  법적 책임을 피하기 위해 대외적으로 부인하는 조 씨의 파렴치함”을 거론하며 “모든 정치적 입지를 포기하고 소송을 제기했다”고 밝혔다.
지난 13년 간 차 씨의 인생에서 거론 된 주요 키워드는 불륜, 이혼, 출산,자살, 배신, 재결합, 복수, 친자 확인, 위자료 소송… 그리고 마지막은 돈으로 점철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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