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제의 인물> “코리아타운 개척자” 김진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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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형 명예회장은  “미스터 코리안 패스티발”이라는 별명을 지닌다.
오늘날 코리아타운은 이제 대한민국의 한 부분이라 할 수 있을 정도로 한국인의 문화와 정서가 살아 숨쉬는 곳이다. 또 코리아타운은 우리 국위를 선양하는 상징물이 되었으며, 해외 동포사회로는 가장 큰 규모인 백만 인구를 자랑하는 커뮤니티로 성장했다.  코리안 퍼레이드와 함께 펼치는 한국의 날 축제는 연인원 30만 명이 참가하는 해외동포사회에서는 가장 큰 행사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이것은 우리 민족의 자랑이요, 국제사회에서 한국인의 힘을 과시할 수 있는 좋은 성공 모델이라고 할 수 있다.
이번 LA시의회 공적서에 “올해 한인축제 40주년을 기념하면서 타운발전의 개척자인 김진형 박사의 공적을 기리며 ‘김진형 박사 광장’으로 명명한다”고 적혀있다. 또 공적서에는 “김 박사는 1968년 이민와서 올림픽 거리에 사업을 시작하고 1974년 최초의 코리안 축제와 퍼레이드를 시작하는 등 한인축제의 창시자”라며 “LA 한인사회 발전과 시 발전에 기여한 김 박사의 활동을 기리기 위해 한인타운의 주요 교차로인 올림픽과 버몬트를 ‘김진형 광장’을 명명하고자 한다”고 취지를 설명했다.


타운개척 공로로 명예 박사학위


김 회장은 1972년에 코리아타운 교민회를 창설하고 2년 뒤인 1974년에는 ‘한국의 날 축제 퍼레이드’를  최초로 주도하는 등 40여 년간 한인사회 발전에 앞장 선 ‘코리아타운의 산 증인’ 이기도 하다. 또 그는 지난 93년부터 동양계로는 최초로 LA시 경찰국 커미셔너로 13년을 봉직했으며, LA카운티 노인복지위원회의 커미셔너로 18년간 활동했다.
김 회장에게 있어 코리아타운은 어머니의 품이라 할 수 있다. LA한인축제재단에서 활동할 당시 그의 1년은 ‘한국의 날 축제’로 시작하고 끝나는 생활일 정도로 그의 활동은 ‘코리안 패스티벌’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었다.
김 회장은 1964년 도미해 1968년부터 LA에 정착했다. 6.25 당시 용산고를 거쳐 서울문리대를 졸업하고 미국에서는 페퍼다인 대학원에서 종교학을 1년간 수료했다. 그가 LA에 정착할 당시에는 한인동포수가 1만 여명 정도였다. LA에 살면서 먼저 온 중국인들의 ‘차이나타운’과 일본인들의 ‘리틀 도교’를 보고 나서 “우리도 우리의 마을이 있었으면….”하면서 자연히 한인들의 ‘코리아타운 ‘을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을 품게 되었다. 당시 한인들은 USC인근인 제퍼슨 불러버드에 조그만 상가를 형성하고 있었다.



서울문리대 불어불문학과를 졸업한 결과로 자연 문학에 관심을 두어왔던 그는 올림픽 불러버드에 책방을 열었다. 문화의 불모지에 서점을 열었다는 자체가 신선했다. 그는 올림픽 불러버드에 자리 잡은 수군데 한인업소를 대상으로 ‘한글간판 달기 운동’을 시작했다. 그의 특기인 서예솜씨를 살려 직접 페이트통과 사다리를 차에 싣고 다니며 한인상점에 무료로 한글간판을 써주기 시작했다. 이렇게 하기를 3개월 동안에 62개 업소에 한글간판이 올라갔다.
영어간판만 있던 거리에 띄엄띄엄 한글간판이 부착되어 자연히 한 울타리가 된 느낌이 들기 시작 했다. 동포들도 올림픽 불러버드에 가면 한인상가가 있다는 생각을 갖게 되었다. ‘코리아타운’의 태동을 알리는 ‘신호탄’이였다. 


LA한인사회 역사 산증인


한글간판을 써주었던 김 회장은 올림픽 블러버드에 한인들이 많이 다녀갈 수 있는 아이디어를 생각하기에 이르렀다. 그는 라티노계나 중국계 그리고 일본계들이 연중 그들의 타운에서 패스티벌을 개최하는 것을 보고 “우리도 전통축제를 열어보자”고 생각하기에 이르렀다. 그리고  ‘코리안 퍼레이드’를 구상했다. 그러나  모두 난색을 표명했다. 우선 막대한 자금이 필요 하고 ‘코리안 퍼레이드’를 보러 얼마나 관중들이 나올까도 문제였다.
1974년 11월 3일 올림픽 블러버드에 제1회 ‘코리아 퍼레이드’가 팡파르를 울리며 행진을 벌였다.
김 회장은 물론 행사 관계자들은 깜짝 놀랐다. 연도에 무려 3만 여명의 한인들이 몰려 나왔다. 당시 예상보다 엄청나게 많이 나온 한인들을 보고 대회 관계자들은 “한인들이 이렇게 많을 줄을 몰랐다” 며 놀랐다고 한다. 성공적인 퍼레이드를 보면서 김 회장은 ‘코리아타운’의 건설에 확신을 갖게 되었다.
실지로 올림픽 블러버드에 한인상가들이 급속히 들어서기 시작했으며, 한글간판이 많이달린 상가가 형성되기 시작했다. 
그는 지난 2008년 한국의 한서대학교에서 명예박사학위를 받았다. 한서대학은 미주지역에서 한인들의 위상 제고를 위해 노력해온 노고와 함께 한.미 양국 문화에 기여한 사회적 공헌도와  한서대 학생들의 미국내 연수 프로그램 지원 등 김 회장이 보여 온 업적을 인정해 명예 행정학박사 학위를 수여했다.
1980년대에 들어서 LA시의회는 정식으로 ‘코리아타운’(Korea Town)이라는 공식적인 행정구역으로 선포하기에 올림픽 블러버드  프리웨이에 ‘코리아타운’ 이라는 표지판이 건립되기에 이르렀다. 한인들의 해외 진출 이민역사에서 해외에 ‘코리아타운’이 공식적으로 인정받기는 처음 이었다.
이제 코리아타운 표지판에 자랑스런 이민 1세 한인 김진형 이름이 명명된 새로운 역사적 광장 표지판이 세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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