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콩가루 내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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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임춘훈(언론인)

한국에서는 요즘 한재림 감독의 영화 <관상>이 3주 연속 박스 오피스 1위를 차지하며 누적 관객 수 9백만을 향해 질주하고 있습니다. 이 영화는 조선왕조 초를 시대적 배경으로 한 역사물로, 어린 조카인 단종를 몰아내고 왕위를 찬탈하려는 수양대군과 이를 막으려는 충신 김종서 사이에 명 관상가가 등장해 역사적 역할을 한다는 줄거리입니다.
지상파 방송의 9시 메인 뉴스에서도 한국 고유의 관상과 이를 소재로 한 영화가 소개될 정도로, 관상이 사회적 이슈가 되고 있습니다. 관상을 잘 본다고 소문 난 명 관상쟁이들이 매스컴의 조명을 받으며 주가가 오르고 있는가 하면, 사람 잘 못 써 생고생을 하고 있는 대통령에게 “관상 공부를 하든지 유명 관상쟁이를 ‘인사참모’로 써, 사람 제대로 가려 쓰는 방법을 배우라”는 따위의 별난 주문도 나오고 있습니다.
영화 <관상>의 흥행 성공은 탄탄한 시나리오와 재미, 호화 출연진의 열연 등 3박자가 맞아 떨어진 결과라는 시각이 지배적입니다. 계유정란은 사실 그동안 여러 차례 TV 드라마나 영화로 만들어져, 소재 자체는 식상한 것 일 수 있습니다. 이처럼 흥행 대박을 칠 줄은 아무도 예상치 못했지요. 그래서 이 영화의 흥행 몰이엔 작품의 완성도나 출연배우들의 열연 이외의 ‘영화 외(外)적인’ 어떤 이유가 숨어있지 않을까, 이 시대의 특정한 사회적-정치적 흐름이 영화 속에 담긴 숨은 메시지와 만나 예기치 않은 흥행 토네이도를 일으킨 게 아닐까 하는 분석이, 대중문화 전문가들 사이에 회자되고 있습니다. 한 마디로 인사실패로 고전하고 있는 박근혜 대통령과 그의 ‘얼음장 리더십’이 몰고 온 정치권의 ‘극한 대립’과 ‘무한 갈등’에, 이 영화가 어떤 메시지를 던져주고 있다는 시각입니다.


관상가를 청와대 인사참모에?


 채동욱 검찰총장과 진영 보건복지부장관의 사퇴파동은 박근혜 대통령의 리더십에 큰 상처를 입혔습니다. 아울러 요즘의 관상 붐과 함께 그의 ‘사람 보는 눈’에 대한 회의론을 다시 한번 부각시켰습니다. 채동욱은 자신의 도덕성을 거론하는 청와대에 음모론을 제기하면서 대통령에 맞장을 뜨자고 나섰고, 진영은 기초연금을 둘러싼 청와대와의 갈등에서 ‘양심’을 거론하며 대통령을 느닷없이 ‘양심 불량자’로 만들어버렸습니다.
원래 좌파색이 짙었던 채동욱의 반란은 그렇다 치더라도, 박근혜의 오른팔이었던 진영의 항명성 사퇴는, 출범 7개월을 넘기고 있는 현 정부의 권력 이너서클 내에 심각한 이상기류가 흐르고 있음을 보여주는 심각한 사건입니다. 박 대통령의 일방통행 식 국정운영이 정권 내부로부터 만만찮은 저항에 부딪히고 있는 방증이기도 합니다.
미국의 가장 위대한 대통령인 링컨은 내각을 꾸릴 때 나름대로 관상을 보고 장관을 픽업했다는 일화가 전해집니다. 삼성의 창업주 이병철은 신입사원 인터뷰 때 옆에 ‘전속‘ 관상쟁이를 앉혔고, 이 사람이 죽은 후에는 평소 관상 실력을 발휘해 ’배신하지 않을 상‘ 위주로 사원을 뽑았다는 일화가 있지요. 브랜드 가치 세계 8위의 글로벌 기업으로 우뚝 선 삼성의 오늘은, 창업주 이병철의 ’사람 보는 눈‘— 즉 프로급의 관상실력이 있었기에 가능했다는 얘기도 나돕니다.
이병철이 대통령이었다면 진영은 애시당초 장관자리에 오르지 못했을 것 같습니다. 유수의 ‘인터넷 관상가‘들에 따르면 진영의 관상은 ’믿거나 말거나‘ 전형적인 배신자 상(相)이라나요 뭐라나요?  영화 때문인지 요즘 홍대 앞 길거리에 돗자리 깔아도 될 ‘프로 암’ 관상쟁이들이 넘쳐나고 있습니다.


박근혜 리더십 빨간 불 켜졌다


지난 한달 사이 박근혜 정부에서는 양건 감사원장과 채동욱 검찰총장, 진영 보건복지부 장관 등 3명이 임명권자인 대통령과 갈등을 빚으면서 물러났습니다. 이전 정부에선 없던 희한한 권력 내부의 파열음입니다. 대통령이 인사 스타일과 국정운영 방식을 획기적으로 바꾸지 않으면, 앞으로 제2 제3의 진영 파동이 일어 나 내각이 콩가루 꼴이 되고 대통령의 레임덕을 재촉할 것이라는 우려의 목소리가 여권 내부에서 나오고 있습니다.
박근혜 리더십을 ‘만기친람(萬機親覽)형 일방통행’이라 비판하는 목소리가 높습니다. 만기친람은 소소한 것 까지 혼자 다 챙긴다는 뜻으로, 구시대적 상명하복(上命下服) 정치문화의 전형입니다. 청와대엔 요즘 적자생존 원칙이라는 게 있다지요. 잘 적응하는 쪽이 살아남고 그렇지 못한 쪽이 죽는다는 적자생존(適者生存)이 아니라, 대통령이 하는 말을 열심히 받아 적는 참모, 혹은 받아 적는 척 하는 참모들만 살아남는다는 뜻입니다. ‘적는 사람’ 즉 ‘적자’만 자리를 보전할 수 있다는 얘기지요. 박 대통령은 지난 5월 어떤 자리에서 “내가 말 할 때 참모들이 안 적고 있으면 불안하다”고 ‘적자‘ 생존의 속내를 내 비친 적도 있습니다.


진영의 반란, 심상찮다


진영 파동은 노인들에 지급키로 한 기초연금에 국민연금을 연계시키자는 박 대통령과 이를 반대한 진 장관의 갈등에서 비롯됐습니다. 지난 대선 때 박근혜 후보는 모든 노인들에게 한 달 20만원의 기초노령연금을 지급하겠다고 공약했습니다. 경제불황에 따른 세수감소로 이 공약을 지키지 못하게 되자 그는 지난 달 2차례나 대국민 사과를 하고, 그 대신 노인들의 수입과 생활형편에 따라 연금을 차등지급하는 방안을 제시했습니다.
공약파기라는 비판도 나왔지만, 국가재정의 건전성 확보 차원에서 이해할만 하다는 의견이 더 많았습니다. 문제는 노후를 위해 국민연금을 들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이들이 은퇴 후에 받게 되는 국민연금도 수입인 만큼, 박근혜 안 대로라면 기초노령 연금을 덜 받게 됩니다. 노후를 위해 열심히 덜 쓰며 연금을 적립한 사람들이 기초연금을 돌 받게 되면 역차별이 되는 것이라고 진영의 ‘양심’은 외칩니다.
박근혜의 정책 브레인인 그가 대통령의 오랜 지론이고 선거공약인 기초연금-국민연금 연계 를 모르고 복지부 장관직을 수락했을까 하는 의문이 남습니다. 설사 자신의 소신이 다르다 해도 여러 부처에 얽힌 이슈 중 하나를 문제 삼아 장관직을 이렇게 무책임하게 내 던질 수 있을까 하는 비판의 소리가 높습니다.


법률가들이 나라 망치나


진영은 2004년 한나라당 대표 비서실장으로 박근혜와 처음 인연을 맺었습니다. 친박(親朴)의 시작이었죠. 2007년 대선후보 경선에서는 중립을 지킴으로써 탈박(脫朴)을 했습니다. 작년 대선 때 다시 박근혜 캠프의 정책의장 겸 행복추진위 부위원장으로 컴백해 복박(復朴)을 했지요. 그리고 이번에 다시 뛰쳐나갔으니 도박(逃朴) 혹은 재탈박(再脫朴)을 한 셈입니다. 아마추어 관상쟁이들 입에서 ‘배신자 상’이라는 관상풀이가 나올 법도 한 화려한 숨바꼭질입니다.
대한민국은 요즘 사법고시에 합격한 똑똑한 법률가들에 의해 망해가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엉뚱한 생각을 해 봅니다. 양건 채동욱 진영, 이 정부 출범 초 인사파동의 주역이었던 이동흡 김학의, 그리고 청와대의 ‘왕수석’으로 대통령의 만기친람-상명하복 리더십의 열혈(?) 추종자라는 김기춘 비서실장–. 이들 모두가 쟁쟁한 판검사 출신 법조인들입니다. 법을 잘 아는 법조 엘리트들이 자신의 법 지식을 나라의 기강과 사회정의를 바로 잡는데 쓰지 않고, 법망을 교묘히 피해 자신의 이익과 입신출세를 도모 하는데 만 악용한다면, 그 나라는 희망이 없습니다. 판사출신 진영, 검사출신 채동욱을 보며 갑자기 떠오른 소회(所懷)입니다. 대부분의 법조인들은 물론 긍지와 사명감으로 자기 일을 열심히 하고 있다고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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