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 31주년 특집 <이경원 원로기자의 수기 ➊> ‘이철수를 사…

이 뉴스를 공유하기







이경원 원로기자는 미국 일간지의 최초의 한국인 기자다. 지난 50년간 주류 언론에서 활동하면서 하루도 ‘한국인’임을 잊어 본적이 없는 대기자다. 폭로 탐사기자로 명성을 떨치던 그에게 ‘이철수 사건’은 그 자신이 한국인의 정체성을 새롭게 인식된 계기를 마련해 주었다. 사형수였던 이철수를 무죄로 이끌어내기 위해 그는 120개의 기사를 써내려 가면서 진실을 추구했다. 그리고 끝내 억울한 살인 누명으로 쓰고 감옥에서 자칫 최후를 맞일할뻔 했던 사형수 한인청년 이철수를 무죄로 이끌어내 구했다. ‘나는 살고 싶다’고 절규하던 이철수의 구명은 개인 이철수 문제가 아닌 진실과 정의가 승리한다는 사실을 증명해준 일대 사건이었다. 선데이저널은 “미국 역사상 최초의 동양인 인권운동의 승리”라고 기록된 ‘이철수 사건’의 알려지지 않았던 진실을 이경원 원로기자의 수기로 재정리한다. 정리: 성진 (취재부 기자)












 
1978년 10월 7일.
이날은 10월 치고는 무척이나 더운 날씨였다. 인디언 섬머의 영향이다.
캘리포니아주 샌호킨 카운티 트레이시(Tracy)에 자리잡은 듀엘 교도소(Duel Vocational  Institute)는 악명 높기로 유명하다. 운동장에서는 항상 긴장감이 감돌고 있었다. 이곳은 캘리포니아 교도소 중에서도  살육이 가장 많이 발생하는  곳이다.
이 교도소는 백인, 흑인, 라티노 그리고 아시안 등 여러 인종들간의 증오와 갈등이 거대한 가마솥 같이 부글부글 끓는 곳이기도 한다. 여기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수감자들끼리 서로 칼질을 밥 먹듯하는 폭력의 정글지대이기도 하다.


경계선 속 또 하나의 살인


이날 교도소 운동장 안에  수감자들이 약 25명 정도 있었다. 이 운동장 안에는 눈에 보이지 않지만 금단의 경계선이 그어져 있다. 그 경계선은 누구나 다 알고 있다. 백인 구역과 흑인 구역을 갈라 놓은 인종 분계선이다. 누구라도 목숨을 내 걸지 않고는 이 경계선을 함부로 넘어 다닐 수 없음을 모두 알고 있다.
백인들은 남서쪽 모퉁이, 흑인들은 동북쪽 모퉁이에  끼리끼리 모여 있었다. 동남쪽 코너에는  멕시코계를 포함한 라티노들과 아시안 들이 자리하는 보통 ‘자유구역’이라고 부르는 곳이다. 이날 여러 명의 라티노와 2명의 동양계가 동남쪽 코너에서 서성거리고 있었다.
그런데 백인 두 명이 경계선 쪽으로 다가 오고 있었다. 운동장 안에는 서서히 긴장에 쌓였다.
두 명이 걸어 오면서, “우린 이제 때려 눕힐 준비 다 돼어 있지?”라는 말이 백인 구역의 남쪽 철망 뒤에서 근무 중인  교도관 해이 헛슨의 귀 속으로  날카롭게 파고 들었다.  이 말은 누군가를 해치겠다는 신호이기 때문이다.
그는 즉시 전화로 제9번 감시탑에 근무하는 다른 교도관인 해리 빔에게 이 말을 전달했다. 감시탑은 지상 35 피트 위로 높이 솟아 있다. 해리 빔은 감시탑 근무만 7년째 하고 있는 고참 교도관이었다.



경계선을 향해 오던 백인 두 명, 그중 한 명이 인종 분계선을 태연히 넘어 섰다. 분명 심상치 않은 일이 벌어질 것 같은 행동이었다.  이에 두 교도관은 신경을 곤두세우고  백인 청년을 지켜 보았다. 그 청년 수감자는 큰 몸집에 힘세게 보였으며  이처럼 더운 날에 털 스웨터를 입고 있었다.
바로 그 무렵, 다른 편에서 탱크 탑을 입은 깡마른 동양인 한 명이 ‘자유구역’을 떠나 북서 쪽 흑인 구역 옆에 있는 핸드 볼 놀이터로 향해서 걸어 가고 있었다.
이 백인 청년과 동양인 두 사람이 가는 길은 서로 마주치게 되어있는 방향이었다.
백인 청년이  먼저 경계선을 넘어 몇 발자욱 안으로 들어 섰다. 멕시코인들의  ‘자유구역’을 무리 하게 침범하고 있는 것이었다. 선전포고나 마찬가지 행동이었다.
순식간, 그백인 청년은 동양인을 향해 몸을 홱 돌렸다. 그러자 동양인도 거의 반사적으로 백인에게 뛰어 들었다. 그리고 둘은 싸우는 것 같이 보였다. 동양인은 날쌘 동작으로 세번 찌르는 것 같은 움직임을 보이고 백인은 이를 막는 것 같은 자세였다.
“멈추라 !”고 두 교도관들이  동시에 고함쳤다.
동양인은 뒤로 여덟 발자국 정도  물러서면서 무엇인가를 운동장의 동쪽 끝 건물 지붕 위에 내 던지는 것 같았다. 그러나 두 교도관은 그 싸웠던 두사람 사이에 무기가 사용되는 것을 보지 못했다.
이윽고 백인 청년이 땅바닥에 쓰러졌다. 그리고는 곧 죽었다.


“때려 눕힐 준비 됐지?”


1978년 10월 7일 듀엘 교도소에서 벌어진 백주의 ‘하이 눈의 결투’는 이렇게 끝났다. 한 백인 수감자가 한 동양인의 의해 칼에 맞아 쓰러진 사건이었다.
이 사건으로 교도소가 발칵 뒤집혀졌다. 악명 높은 폭력의 정글지대, 최고의 흉악범들을 가두어 놓은 듀엘 교도소 안에서 막강한 힘을 과시하던 백인 갱단, 그 것도 기회만 있으면 유색인종을 제거하겠다고 공공연히 외치던 백인 우월주의 갱단이 대낮에 교도소 마당 한가운데서 작고 깡마른 동양인에게 맥없이 살해된 사건이었기 때문이다.
이 동양인은 살인죄로 기소되어 유죄로 확정되고 결국 사형언도를 받게 된다.
이날  ‘하이 눈 결투’에서 살해된 백인은 모리슨 니드햄(Morrison Needham)이라는 21세 젊은이 였다. 그는 신나치파 백인 우월주의자였으며 아리안 브라더스(Aryan Brotherhood)로 알려진 옥중 갱단 멤버라고 알려졌다. 니드햄은 키가 6피트이고, 몸무게가 180 파운드의 건장하고 단단한 몸집 이다. 그는 당시 ‘자살방조죄’ 혐의로 선고를 받고 듀엘 교도소에서 복역 중이었다.



니드햄을 쓰러트린 동양인은 바로 이철수(Chol Soo Lee)였다. 한국에서 태어나 미국에 온 이민자 였다.  그는 이 사건이 있기전 1974년 7월 11일 새크라멘토 법정에서 백인들만으로 구성된 배심원들로부터 13개월전(1973년 6월 3일) 일어났던 차이나타운 갱두목 임이택을 총격으로  살해 했다는 혐의로 종신징역을 선고받아 듀엘 교도소에서 복역 중이었다.
이 당시 이철수씨의 나이는 25세. 키는 5피트 4인치, 몸무게는 140 파운드인 작고 빼빼한 체구였다.
이 사건이 이철수의 ‘옥중살인사건’이다.
이철수씨와 모리슨 니드햄과의 결투가 있은지 수시간 후에 지붕에서 감옥내에서 만든 칼 2개가 발견되었다. 이철수가 니드햄을 찌르고 내 던졌다고 했던 방향에 있는 지붕에서 나왔기에 그 칼이 그가 니드햄을 찌를 때 사용한 살인무기라고 검찰 측이 재판에서 증거물로 제출했다.
이 사건으로 이철수는 이제 “겹치기 살인자”라는 오명을 쓰고 다시 한번 법정에 서게 됐다. 그리고 결국 제1급 살인행위로 유죄평결을 받아 끝내 사형언도를 받는다.
샌호킨 카운티 법정에서 ‘옥중살인사건’ 재판이 진행되는 동안 이철수는 니드햄과의 옥중  결투를 재현했다.


사형언도가 내려지다













 ▲ 이철수의  ‘옥중살인사건’의 상황 도표
이 사건의 담당 검사인 케네스 엔 멜리코(Kenneth N. Melyco)는 최종 공판에서 “우리 형법제도 상 사형언도를 내려야 할 사례가 있다면 바로 이 사건이 해당된다”면서 이철수에게 사형을 구형했다. 또한 검사는 이철수는 개스실에서 사형당해야 한다고까지 말했다.
하지만 이철수 측 변호사는 강력히 맞섰다. 레오나르도 타우만(Leonard Tauman) 변호사는 이 사건이 ‘전형적인 정당방위’ 사례라고 변론했다.  해리 빔 교도관은 법정 예심 청문회에서 “때려 눕힐 준비 다 돼있지”와 같은 말을 수감자들이 사용할 때는 “그들이 타인종, 즉 백인이 흑인을 해치울 준비가 되어 있다”고 전달하는 분명한 신호라고 증언했다.
타우만 변호사는 “교도관들이 사건 현장을 직접 목격했으며, 그들이  본 것은 말 그대로 이철수가 정당방위를 했던 장면”이라면서 “비록 교도관들은 사소한 점까지 보지 못했지만, 그들이 목격 한대로 진술한  증언은 진실을 말하는 것이라고 믿는다”고 말했다. 그리고 타우만 변호사는 “우리는 진실을 말하고 있는 사람들과 시비하지 않는다”라며 이철수의 무죄를  강력히 주장했다.
그러나 멜리코 검사는 한 치도 물러서지 않았다. 그는 이철수를 가리켜 ‘피도 눈물도 없는 냉혈인간’ 으로 묘사했다. 그는 이철수가 1973년 차이나타운에서 중국계 갱단 두목 임이택을 잔인하게 살해 한 장본인이라고 지칭했다.
그리고 이철수가  전문적인 ‘킬러’이기 때문에 듀엘 교도소 내의 백인 갱조직 아리안 브라더후드의 적대관계에 있는 멕시코 갱단 노에스트라 파밀리아(Nuestra Familia)의 청부를 맡아 니드햄을 살해 했다는 논리를 전개했다.
백인 청년의 사망원인은 목에 위에서 아래로 내려 찌른 치명적인 칼침을 세번 맞았기 때문이라는 것이 후에 실시된 부검 결과이다. 이런 식의 칼질은 멕시코 갱 들이 상대방을 처형할 때 사용하는 전형적인 수법이라고 나중에 검사가 법정에서 주장하며 이 동양인을 멕시코 갱단인 노에스트라 갱 단원이라고 몰고 갔다.
검사는 흑백인종으로 갈라진 두 개의 갱조직이 지배하는 듀엘 교도소에서 힘없는 동양인이 갈 곳이 어디 있겠는가 ? 살아남기 위해서 이철수는 유색인종인 멕시코 갱 쪽에 붙어 의지할 수 밖에 없었고, 그 대가로 백인 갱단원을 제거하라는 지령에 따를 수밖에 다른 도리가 있었겠는가?라고 그럴듯하게 논리를 펴나갔다.
폭력이 난무하는 감옥 속에서 끊임없이 꿈틀거리는 인종갈등의 미스테리를 그럴듯하게 엮어가는 멜리코 검사의 이런 추론과 판단이 배심원들에게 제시되면 될 수록 이철수의 정당방위 주장은 점점 더 어려움에 빠지고 있었다.
결국 1979년 3월 12일. 이철수는 교도소내 수감자 모리슨 니드햄을 ‘처형식 ’으로 살해했다는 혐의로 유죄평결을 받았다. ‘처형’이란 다른 사람의 명령이나 지시에 따라 표적을 제거, 즉 암살대상자로 지목된 사람을 죽여 없엔다는 것이다.
샌호킨 카운티 법원 배심원들은 이철수의 ‘옥중살인사건’ 공판이 결심된 후 3일 동안 계속된 토론끝에  이철수가 제1급 살인죄를 범했다는  유죄평결을 내렸다.
 ‘옥중살인 사건’은 1979년 1월 15일부터 재판이 시작된후  3개월  동안 계속됐다. 이 재판의 배심원들은  이철수가 교도소내 갱 멕시코 갱 조직인  ‘노에스트라 파밀리아’의 지령을 받아 신나치파 백인 우월주의를 주장하는 갱단인 아리안 브라더후드 단원인 모리슨 니드햄을 살해했다는 검찰 측의 주장을 받아 들였다.
캘리포니아주는  1978년에 그동안 폐지 되었던 사형제도를 부활시켰다. 사형언도가 내려지면  독가스로 사형이 집행될 가능성도 있었다. 제1급 살인죄는 사형언도를 받을 수 있는 범죄였다.
(다음호에 계속)




@SundayJournalUSA (www.sundayjournalusa.com),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뉴스를 공유하기

선데이-핫이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