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를 ‘디스’하는 대한민국의 ‘절반’

이 뉴스를 공유하기















 ▲ 임춘훈(언론인)

박근혜 대통령이 6박8일 간의 유럽 3개국 방문을 마치고 귀국했습니다. 정부 여당은 대성공이라고 입에 침을 튀기고, 대부분의 국내 언론들도 ‘현지에서의 환대‘를 중점보도하며 ’기대 이상의 성공‘이라는 투의 호의적 기사를 쏟아 냈습니다. 어떤 보수언론은 “박 대통령이 왕실마차를 타고 영국의 버킹엄 궁에 들어설 때 햇빛이 쨍쨍 비쳤다”고 낯간지러운「박비어천가」를 읊기도 했습니다.
야당과 진보 좌파 쪽의 시각은 싸늘합니다. 제1야당 대표가 나서 현지에서 호평을 얻은 프랑스어 연설에 대해 시비를 걸고, 어떤 좌파언론은 런던에서 빗길에 넘어진 박 대통령이 “크게 다치지 않고 멀쩡한 것”에 열불(?)이 난 듯 “넘어질 때 꽈당 하는 소리가 제법 컸다”고 썼습니다. 국빈 방문한 영국에서 엘리자베스 여왕과 함께 왕실마차를 탄 것을 두고 “유신공주 박근혜가 여왕이 되고 싶어 여왕의 마차를 탔다”고 쓴 좌파언론(오마이뉴스)도 있습니다.
박근혜의 유럽 3개국 순방외교의 성과는 이렇듯 ‘대박’과 ‘쪽박’ 사이를 극명하게 오갔습니다.


유럽순방, 대박인가 쪽박인가


프랑스 파리에 거주하고 있는 목수정이라는 여류작가가 있습니다. 대통령이 프랑스를 방문하고 있던 때 에펠탑과 루브르 박물관 앞에서 두 차례나 ‘반 박근혜 시위’를 주도한 인물입니다. 그가 사회를 직접 본 이번 반한 시위의 구호는 “박근혜는 한국의 합법적 대통령이 아니다”였습니다. 극동의 작은 나라 꼬레아에 대해 ‘대체로 무식한’ 유럽 사람들은, “한국의 합법적 대통령은 아마 김정은 인가 보다”라고 생각했을지 모릅니다.
목수정은 좌파언론 경향신문에 ‘파리에 온 한국 대통령, 무엇을 얻었나’라는 글을 기고했습니다. 요지는 이렇습니다.
“…한국의 국가원수를 맞는 프랑스의 태도는 뜨겁지 않다. 극소수의 언론만이 박근혜의 방불(訪佛)을 언급하고 있다…대부분의 언론이 하나같이 지적하고 있는 사항은 부정선거 스캔들이다. 경제지 레제코는 ‘국정원의 트위터로 흙탕물 튀긴 한국 대통령’이란 제목으로 국정원과 군의 조직적 대선개입을 상세히 다뤘다…시사지 엑스프레스는 ‘박근혜에 대해 알아야 할 다섯 가지’라는 제목으로 부모가 모두 총으로 죽은 비극적 인생, 윤창중 섹스 스캔들, 선거부정 등을 다뤘다… 에펠탑과 루브르 박물관 앞에서 펼쳐진 재불 한인 집회는 열띤 기운이 감돌았다….”


경향신문 “박근혜는 국제 사기꾼”


목수정은 ‘누가 누가 잘하나’ ‘따르릉 따르릉 비켜 나세요’같은 주옥같은 한국동요 수십 편을 작사한 30년대 최고의 아동문학가 목일신이 쉰일곱 살에 늦둥이로 얻은 딸입니다. 민주노동당 정책위원 등을 역임한 파리 교민사회의 대표적 ‘좌빨 운동꾼’이지요. 11월7일자 경향신문엔 목수정의 활약상을 소개하는 기사가 실렸습니다. 기사의 제목이 ‘나라 안에서 속이던 박근혜, 전 세계 상대로 사기(詐欺)’였습니다.
 보수층은 대통령의 해외 세일즈 외교를 “전 세계를 상대로 한 사기 행각”으로 몰아간 경향신문 기사에 대해 ‘빨갱이 언론다운 망발의 극치“라고 흥분하고 있지만, 어찌 보면 화 낼 일 만은 아닙니다. 대통령은 전 세계를 상대로 사기를 치고 다니는지 몰라도, 자기네 대통령을 사기꾼으로 불러도 되는 대한민국의 왕성한 민주주의와 넘치는 언론자유를 온 세계에 알린 꼴이 됐으니까요. 박 대통령은 이번에 영국 프랑스 EU 등과 여러 건의 경제협력을 성사시켰습니다. ”당신 나라의 언론보도를 보니 아무래도 우리가 사기를 당한 것 같다“고, 계약취소를 통고해 오는 나라가 있을까 걱정입니다.
동아일보 방형남 논설위원은 90년대 중반 프랑스 파리 특파원을 지냈습니다. 95년 3월 김영삼 대통령이 프랑스를 공식 방문했을 때 그는 초등학교와 유치원에 다니던 아들과 딸을 데리고 김 대통령의 차량행렬이 지나는 거리에 나가 태극기를 흔들었다지요. 허지만 잠시의 감격은 안타까움으로 끝났습니다. 프랑스 언론은 극동의 ‘별 볼 일 없는 작은 나라’ 꼬레아에서 온 대통령을 철저히 무시했습니다.
대표언론 르몽드를 비롯해 어느 신문도, 어느 TV에도, 김영삼 대통령의 방문기사는 실리지 않았습니다. 방 위원은 말합니다.
“…이번에는 달랐다. 프랑스 최대 신문인 르피가로가 박 대통령을 인터뷰해 방문 당일 1면과 7면에 크게 보도했다. 최고 권위지인 르몽드와 24시간 뉴스방송도 관심을 보였다. K팝을 좋아하는 프랑스인들은 한국 드라마 파티를 준비해 박 대통령을 초청했다….”


박근혜 보다 국력의 힘이 통했다


 박 대통령의 유럽 순방외교는 대박도 쪽박도 아닙니다. 목수정의 주장처럼 “프랑스의 반응은 차갑고 자기가 주관한 박근혜 반대시위만 뜨겁지도” 않았습니다. 왕실마차를 탄 박근혜를 “햇빛이 쨍쨍 비추며 환영했다”는 따위의 신문기사도 뻥입니다. 확실한 건 18년 전 김영삼 때와 비교해 이번 박근혜의 유럽 순방외교가 ‘기대 이상의 성과’를 올렸다는 것, 그리고 그가 ‘기대 이상의 환대’를 받았다는 사실입니다.
박근혜의 힘이 아니라 나라의 힘-국력입니다. GDP 1조 달러를 돌파한 세계 12~3위권의 경제 강국 대한민국을 콧대 높은 유럽이 괄목상대(刮目相對)하기 시작했습니다. 국력 외에 박근혜가 아시아에서는 보기 드문 여성 대통령이라는 점, 독재자이면서도 한강의 기적을 일군 박정희의 딸이라는 점, 방문국의 영혼이 담긴 현지어 구사, 한류 열풍 등이 그의 유럽 여정에 빛을 더 해 줬습니다. 목수정이 목이 터져라 외쳐 댄 ‘불법 대통령, 사기꾼 대통령’ 구호는 거의 먹히지 않았습니다.

국내정치 성공 못하면 이명박 꼴


많은 국민들은 으쓱했습니다. 그러면서도 대통령의 순방성과를 과장하며 호들갑을 떨어대는 청와대와, 이를 시시콜콜 보도하며 ‘박비어천가’를 읊조리는 일부 언론의 보도 행태에는 이맛살을 찌푸렸습니다. 박 대통령을 수행한 새누리당 김진태 의원은 목수정 일행의 파리시위에 대해 “이들이 과연 대한민국 국민인가. 이들을 보고 피가 끓지 않으면 대한민국 국민이 아니다. 시위꾼들이 대가를 톡톡히 치르도록 하겠다”라고, 자신의 ‘피 끓는 심정’을 페이스 북에 올렸습니다. 집회와 시위의 자유를 보장하는 민주주의의 기본조차 거부하는 이런 멍청이 아부꾼들이 대통령 주변을 에워싸고 국정을 그르치고 있습니다.
대통령은 외교성과에 자만할게 아니라 그것을 동력으로 나라 안 문제, 나라를 산산조각 내고 있는 국내 정치문제에 눈을 돌려야 합니다. 취임 초부터 국내정치는 나 몰라라 하고 해외 세일즈 외교만 하고 다니다 쪽박 찬 이명박 대통령의 실패를 반면교사로 삼아야 합니다.
국정원 사건의 대처를 잘못해 나라가 저 지경이 됐습니다. 이명박 정권이 광우병 촛불난동을 제 때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해 5년 임기 내내 개고생을 한 것과 닮은꼴입니다. NLL대화록 파동, 검찰총장과 수사 팀장의 교체 파문, 계속되는 인사잡음 등은 예삿일이 아닙니다. 통진당 해산청구도 성급했습니다. 이석기 내란음모 사건의 재판결과를 지켜보고 유죄판결이 나오면 그 때 해산청구를 했어야 옳았습니다.
청와대 최측근 참모들 하고도 밥을 같이 먹는 일이 없다는 이 ‘불통 대통령‘을 대한민국 국민의 절반이 ‘디스’하고 있습니다. 디스는 디스리스펙트(disrespect ; 불존경)에서 유래했다는 국적불명의 신조어로, 요즘 젊은이들이 ‘싫다’ ‘거부한다’라는 뜻으로 아무 때나 써먹는 슬랭입니다. 통진당의 이정희나 파리의 목수정 뿐 아니라 대한민국의 절반이 ‘사실상’ 박근혜를 디스하고 있습니다. 해외순방만 하고 돌아오면 지지율이 4~5%씩 올라가는 이 ‘황금마차 이펙트’가, 박근혜에게는 독이 되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SundayJournalUSA (www.sundayjournalusa.com),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뉴스를 공유하기

선데이-핫이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