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경원 원로大기자 수기- ‘랜초 세코 원전 폐쇄의 숨은 주역’ 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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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자력발전소(원전)가 처음 건설될 당시는 오염이 거의 없고 비용도 적게 드는 꿈의 에너지원으로 각광 받아왔다. 하지만 지난 1979년 미국 펜실바니아주 ‘쓰리마일 아일랜드 원전’(Three Mile Island  Power Plant)사고가 터저 일시에 10만여명의 주민들이 영화속 장면처럼 도망치는 장면은 미국민들에게는 악몽으로 남겨져 왔다. ‘꿈의 에너지’라는 시각은 한 순간에 뒤집혔다. 지구상에서 최첨단 과학기술 수준을 자랑하던 미국에서 일어난 사고였기에 시민들의 충격은 더 컸다. 그로부터 10년후인 1989년 캘리포니아의 주도인 새크라멘토 주민들은 주민투표장에 달려가 당시 가동중인 랜초 세코 원전(Rancho Seco Nuclear Power Plant)을 폐쇄시키는 안에 찬성표를 던졌다.  지금 랜초 세코 원전 지역은 자연환경 보호지구로 선정되어 원전 대신에 태양광 발전소가 들어섰고, 풀밭에는 아프리카산 영양들이 한가롭게 풀을 뜯고 있다. 이 랜초 세코 원전이 폐쇠된 이면에는 이경원 기자의 폭로기사가 주민 들의 마음을 흔들었기 때문이다. 펜으로 거대한 원전을 무너트린 것이다.    <정리: 성 진 취재부 기자>

미국에서 ‘쓰리마일 아일랜드 원전’ 사고(1979년)가 나기전 이경원 기자는 새크라멘토 유니언지 에서 탐사폭로기자로 유명세를 날리고 있었다. 1974년 말 편집국 신문더미 속에서 타자기를 두드리는 이 기자 책상위의 전화벨이 요란하게 울렸다.
새크라멘토 신문사에서 동남쪽으로 25마일 거리에 있는 랜초 세코 원자력 발전소의 한  직원 으로부터의 전화였다. 내용은 랜초 세코 발전소의 고위 임원들이 발전소에 사용될 자재를 외부로 빼돌려 엉뚱 하게 자신들의 집을 짓는 데 사용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전화를 받는 이 기자의 머리속에는 순간 무엇인가 떠올랐다. 당시는 미국내에서 원자력 발전소의  안전 문제가 논란이 되고 있던 때였다.
랜초 세코 원전은 1966년에 새크라멘토시 정부 산하 기관인 SMUD(새크라멘토시전력회사, Sacramento Municipal Utility Department)가  랜토 세코 지역 2,100 에이커를 구입해 건설하여 1974년에 가동을 시켰지만 종종  운영 중에 문제가 발생하곤 했다.
새크라멘토 유니언 신문사에서는 즉각 이 기자를 팀장으로 하는 취재팀이 구성됐다.


한 통의 제보 전화가 핵단추













그로부터 수개월 동안 치밀한 취재를 통해  제보를 받은 다음해인 1975년 초에 ‘되돌아 본 랜초 세코’라는 제목의 기사가 유니언지 지면을 장식했다.
이 기자는 취재하면서 원전의 건설과정부터 이 회사가 운용하면서 건설회사와의 계약문서들을 포함해 관련 증빙서류들도 조목조목 살폈다. 보통 이런 계약서류들은 일반인들은 이해할 수 없는 내용들이 많은 법이다. 때로는 전문가들의 조언도 받기도 했다.
이 기사는 애초 랜초 세코 직원의 고발 내용에서 나타난 고위직 임원들의 자재 빼가기나 운영 부실 로 인한 근무태만은, 이 원전이 그동안 알려지지 않았던 문제들에 비하면 빙산의 일각이었다. 기사가 보도되자 다른 제보들이 줄을 이었다.
이 기자팀은 이어 20여회에 걸친 시리즈 기사를 통해 랜초 세코 원전 비리를 세세하게 까발렸다. 고발 기사에서 거대 기업 벡텔과 SMUD 전력회사간의 흑막에 쌓인 비밀스러운 거래 내용이 한꺼번에 터져 나온 것이다. 문제의 랜초 세코 원자력 발전소를 설계-건설하고 발전기를 납품한 회사는 국제적 기업이며 세계적인 원자력 설계회사 벡텔(Bechtel Corp.)이었다. 벡텔은 핵발전소 건설 뿐 아니라 석유, 광산, 가스 등 여러분야에 걸친 업종을 다루는 거대 공룡 기업이다.
벡텔이 1967년 SMUD와 랜초 세코 발전소 설계와 건설 그리고 발전기 설계와 납품을 하기로 하고 맺은 계약에 따른 총 건설비는 1억9,300만 달러였다.
그러나 이 건설비는 해를 거듭하면서 눈덩어리처럼 불어나 두배에 육박하는 3억7,300만 달러에 이르렀다. 가장 중요한 문제점 중의 하나는 벡텔과 원전 주체인 SNUD간에 체결한 계약서 내용 이었다.  계약서에는 독점 계약자인 벡텔이 건설 중에 계약내용을 위반했건나 공사 내용에서 잘못을 저질렀거나 또는 추가  건설비의 요구 등등을 포함, 계약 조건을 위반할 경우에 이를 조치할  단서 조항을 확실하게 규정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독점 기업인 벡텔의 입장에서는 땅짚고 헤엄치듯 위험부담없이 공사를 진행하면서 수억 달러의 건설비를 거두어드렸다. 이 돈은 물론 주민의 세금에서 나오는 것이다. 이같은 작태는 시당국 공무원들의 직무유기와 부패한 경영진들이 거대 기업  벡텔  기업과의 결탁에서 이뤄진 것이다.


원전은 폐쇄, 태양광 발전소로
 
이 기자팀이 시리즈로 보도한 랜초 세코 원전 비리가 폭로되자 주민들은 분노했다.
또한 주민들은 독점적인 핵산업계 폐해를 인식하기 시작했다. 이 기자팀의 보도 이후 벡텔과 SMUD가 계약한 2차 핵발전소 계획도 백지화됐다. 원래 계획대로였다면 10억 달러가 투입됐을 공사였다. 나중 새크라멘토 유니언 편집국장 켄 하베이는 이 기자팀의 기사가 란초 세코 원전을  폐쇄하는데 큰 역할을 했다고 전했다.
이 기자팀의 시리즈 기사는 고발적인 내용도 있지만 랜초 세코 원전에 대한  근본적인 대책에 대한 대안도 제시했다. 이같은 기사는 당시 캘리포니아주정부가 원전에 의존한 에너지 자원에 대한 정책을 바끄는데 크게 영향을 주었다.
그래서 캘리포니아 주정부는 태양광 에너지와 풍력 발전소에 대한 연구는 물론 이미 개발한 석유와 석탄 등 다양한 에너지 원을 찾아 나섰다.
 랜초 세코 원전 비리 기사가 나간 후 1976년 미국에서 소비자운동의 기수로 불리는 랄프 네이더가 설립한 환경소비자단체인 웨스턴 블럭(Western Bloc)에서 이 기자에게 특별상을 수여했다.



1979년 3월 28일 미국에서 최초로 발생한 ‘쓰리마일 아일랜드’ 원자력 발전소 사고로 주민 10만 명이 피난하는 사고로 핵발전소에 대한 캘리포니아 주민들도 우려가 커지고 있었다. 다름아닌 새크라멘토 인근에 세워진 랜초 세코 원전이 있기 때문이다.
많은 주민들은 4년전인 1975년에 이경원 기자팀이 보도한 ‘랜초 세코 원전 비리’에 대한 기사를 기억하고 있었다.
그러던중 랜초 세코 원전이  1985년 12월부터 제어계통 설계 결함 때문에 27개월이나 운영을 정지하게 되었다. 발전수 수리비용만으로 3억 달러라는 엄청난 돈을 쏟아 붇던 상태였다.
그런데  여기에 다시 유럽에서 ‘체르노빌’ 원전사고가 발생했다.
체르노빌 원전 사고는 1986년 4월 26일 당시 소비에트 연방 우크라이나 SSR의 체르노빌 원자력 발전소에서 발생한 폭발에 의한 방사능 누출 사고였다. 이 사고로 발전소에서 누출된 방사성 강하물이 우크라이나 SSR과 벨라루스 SSR, 러시아 SFSR 등에 떨어져 심각한 방사능 오염을 초래했다. 사고 후 소련 정부의 대응 지연에 따라 피해가 광범위화되어 사상 최악의 원자력 사고 가운데 하나가 되었다.
이같은 세계적인 원전 사고 공포에 캘리포니아 주민들이 들고 나서서 주민투표를 발의했고, 랜초 세코 원전은 1989년 6월 6일 주민투표에서 53.4%가 폐쇄에 동의해, 바로 다음날 폐쇄가 선언 되었다. 이로서 랜초 세코 원전은 가동한지 15년만인 1989년 영구 폐쇄됐다.


핵발전소 조기폐쇄, 시민의 위대한 힘


오늘날 랜초 세코 주변 들판에 두 개의 냉각탑이 황량하게 서있다. 지난 2009년 해체와 정화작업을 완료했지만 여전히 모니터링과 시설운영을 위해 약간 명의 직원들이 일하고 있다.
미국에도 고준위폐기물 처분장이 없어 사용후핵연료 493개 다발을 발전소 내에 건식저장하고 있는데, 방사능 수치를 모니터링하면서 24시간 감시체계를 갖추고 있다. 혹시 모를 사고나 범죄이용 가능성을 염려하기 때문인데, SMUD는 연간 6백만 달러를 관리비용에 쏟아 붓고 있다.
SMUD는 랜초 세코 원전 폐지 후 부지 옆에 태양광 발전단지(3.9메가와트)를 건설했다. 2002년 에는 천연가스발전소(50만킬로와트)를 신설했다. 이곳에서는 한 눈에 폐쇄된 원자력발전소, 가스발전소, 태양광발전소가 다 들어섰다. 시민 힘으로 핵을 버리고 태양을 선택한 것이다.
핵발전소 조기 폐쇄에 따른 손실은 주민들이 자발적으로 1킬로와트 당 1센트씩 전기요금을 더 내서 충당하고 있다.
캘리포니아 주민들의 핵에너지에 대한 인식을 전환하는 데는 1975년대 당시 새크라멘토 유니언지 탐사보도팀장으로 활약했던 이경원 기자의 ‘랜초 세코 원전 비리 고발 기사 덕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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