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전 美 조종사 허드너씨. 동료 유해 발굴 위해 혼신의 노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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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갠트 여사를 한인여성이 위로하고 있다.
    (내부사진은 갠트 상사)

한국전쟁에 참전했다가 포로로 잡혀 수용소에서 사망한 남편을  63년 동안 기다려온 95세 부인의 ‘순애보’가 전국적으로 화제가 됐는데, 미국정부와 사회의 전사자 및 실종자 수색작업과 예우는 세계적으로 존경의 대상이다.  전직 미국 해군 조종사 토머스 허드너(88)씨는 한국전쟁 참전자이다. 그는 6.25전쟁이 지난 1953년 휴전으로 총성이 멈추었지만 한시도 동료 전우를 잊어 본적이 없다. 1950년 12월 장진호 인근에서 공중 엄호 작전을 수행하던 허드너 조종사는 피격 당해 자신의 항공기와 함께 추락했다. 당시 함께 추락한 동료 제시 브라운 소위를 구하려다 실패한 뒤 “다시 돌아 오겠다”는 약속만을 남기고 현장을 떠났었다. 63년의 세월이 흘러 허드너는 지난해 브라운의 유해를 찾기 위해 미군 유해 발굴단과 함께 다시 북한을 찾았다. 허드너의 방문에 감명을 받은 북한 김정은은 허드너가 동료의 유해를 찾을 수 있도록 적극 협조할 것을 군부에 지시했고, 허드너 일행은 방북 기간 북한군으로 부터 극진한 환대를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허드너는 “그들은 조심스러웠고, 말을 많이 하지 않았지만, 매우 친절했다”며 마치 우리가 오랫동안 함께 한 동료인 것처럼 대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허드너 일행은 최근 북한 중북부를 강타한 폭우와 홍수 때문에 현장에 접근조차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전쟁에서 숨진 동료의 유해를 찾아 63년 만에 북한을 방문했던 허드너 전미군조종사는 미국 정부에 유해 발굴 작업을 위해 북한과 대화를 재개할 것을 촉구하고 나섰다. 북한을 방문했던 허드너씨는 귀국 이후 존 케리 국무장관에게 북한과 공동으로 진행하는 유해 발굴 작업을 재개해야 한다는 내용의 편지를 보냈다.


숨진 동료 유해 발굴 사업


허드너씨는 “나의 방북은 63년 전과 같이 우리(미군)를 다시 부를 수 있는 핵전쟁이나 다른 전쟁을 막기 위한 노력의 일환”이라며 “북한군은 내게 ‘각종 정치적인 문제에도 불구하고 인도주의적인 사업의 재개를 원한다’고 말했다”고 밝혔다.



앞서 미국은 북한과 공동으로 실종 군인 유해를 발굴 작업을 벌였으나, 발굴 인력의 안전이 보장 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2005년 작업을 중단했다. 미국과 북한 양측은 2011년 10월 태국 방콕에서 열린 회담에서 미군의 유해 발굴 작업을 재개하기로 합의했지만 2012년 4월 북한의 장거리 로켓 발사로 실행에 옮기지 못했다.
이런 가운데 올해까지 한국 전쟁에서 신원이 확인된 미군 유해는 145구에 불과하다. 이로써 1982년부터 지금까지 한국 전쟁의 미군 전사자 중 신원이 밝혀진 유해는 총 145구로 늘었지만 아직도 8천여 구가 넘는 미군 유해가 가족의 품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있다.


지난해 미군유해 17구 송환


미국 정부는 1996년부터 2005년까지 총 33번에 걸쳐 유해 발굴단을 북한에 파견했으며 중공군와 전투가 치열했던 함경남도 장진호와 평안북도 운산 등 격전지를 중심으로 수 천여구의 미군 유해 가 남아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미국 정부는 북한에 있는 미군 유해를 미국에 송환하는 일이 여전히 국가적으로 중요한 사업 이라고 거듭 강조 한다.
미국은 이미 오래전부터 국가가 적극적으로 나서서 북한, 베트남, 독일 등지에서 전사한 자국군의 유해를 발굴해 오고 있다. 미 정부는 남북전쟁, 1차-2차 세계대전, 한국전, 베트남전 등 각종 전쟁으로 희생된 미군의 유해의 발굴ㆍ감식ㆍ송환을 전담하는 육군중앙신원확인소(실하이ㆍCILHI)를 구성, “Until they are home”라는 모토를 내걸고 자국민이 조국의 품으로 돌아 올 때까지 시간과 비용, 인력을 아끼지 않으며 전사자를 찾기 위해 매진하고 있다.
이 부대의 구호인 ‘당신을 잊지 않는다’에서 알 수 있듯이, 미국은 세계 어디라도 달려가서 미군 유해를 찾아온다. 왜 미국은 이렇게 포로 구출이나 전사자 유해 발굴 사업에 매달릴까.  전사자 유해발굴은 국가 독점 사업이다. 국가는 ‘나라를 위해 희생된 자는 국가가 끝까지 책임 진다’는 무한 책임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이다. 이를 통해 나라가 위기에 처했을 때 국민이 애국심을 발휘할 수 있다는 것이다.


미정부, 열정적 유해 발굴 지원


이 같은 미국 정부의 열정은 자국민들에게 미국은 세계 어디에 있던지 자국민을 끝까지 책임진다는 믿음을 심어주어 주었다. 6.25 전사자들도 예외는 아니어서, 미국 정부는 한국전으로 희생된 8100여명의 미군 중 북한에 있는 5100여명의 유해를 찾기 위해 1996년부터 운산, 장진호 등지 에서 북한과 공동발굴을 적극 추진, 2005년 5월 중단될 때까지 유해 225기를 발굴한 바 있다.
이처럼 미국정부가 자국군의 유해발굴사업에 지원하는 돈은 연간 5천만 달러가 넘는다. 이는 한국 이 현재 연간 4억원(40만 달러) 정도의 비용으로 발굴 작업을 진행하는 것과는 크게 대조적이다.



미국은 호국영령을 국가적 영예와 존경으로 예우하는 나라다. 이 같은 한 목숨 한 목숨의 희생이 밑거름이 돼 오늘의 번영을 이룬 나라가 미국인 것이다. 미국엔 마을 마다 참전비와 그 지역 출신 전사자 묘역이 세워져 있다. 미국인들에게 메모리얼 데이는 ‘감사하는 날’이자 ‘은혜를 잊지 않는 날’이며 동시에 ‘보답하는 날’인 것이다.
미국 정부가 한국전 실종 미군 유해를 찾기 위해 엄청난 예산을 쏟아 부으며 북한 전역을 뒤지는 것도 이 때문이다.
 ‘자유는 거저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라는 사실을 상기시키는 것이다.   <성진: 취재부기자>



















 ▲ 63년동안 남편을 기다린 클라라 갠트 여사의 사은 모임이
    타운에서 열리고 있다.
한국전쟁에 참전했다가 포로로 잡혀 수용소에서 사망한 남편을 63년 동안 기다려온 95세 부인이 지난달 남편의 유해를 맞이해 이들의 ‘순애보’가 전국적으로 화제가 됐는데 한인사회가 이 부인을 초청해 감사와 위로를 보냈다.
지난 21일 오전 코리아타운 다울정 앞에서 열린 사은모임에 나온 클라라 갠트(95) 여사는 “한인 사회에서 나를 초청해 위로해주어 감사하다”면서 “지난 1945년 제2차 대전에 참전한 뒤 조국의 품으로 돌아왔던 남편이 한국전 발발소식을 듣고 전쟁터로 다시 나간 뒤 돌아오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어 “한국전쟁에 참전하기 전 남편은 자신이 전사하면 재혼하라며 유서를 남겼지만 그럴 수 없었다”며 “그분은 나의 영원한 남편이다”라고 말했다.
이날 95세의 고령임에도 불구하고 정정한 모습으로 나온 갠트 여사는 마이크 앞에 서서 “남편에게 약속한 것이 있었다. 그가 가는 곳이면 어디든 함께 가겠다고 했다. 하지만 함께 한국에 따라가진 못했다”고 말했다. 갠트 여사는 목걸이에 남편의 모습이 담긴 팬던트로 장식했다.
이날 LA한인회(회장 배무한)와 한미동포재단(이사장 임승춘), 재미한국노인복지회(회장 김교원), 한국정책연구원(원장 박미출), 재미경제사회복지재단(이사장 데이비드 김) 등 한인단체들은 갠트 여사에게 감사패와 위로금을 전달했다.
이 자리에서 배무한 LA한인회장은 한인사회를 대표하여 “우리 한인사회는 한국전쟁에 참전해 전사한 고인의 희생정신을 결코 잊지 않을 것이며 후손들에게 영원히 기억될 것”이라면서 “지난 1950년 한국전쟁에 참전 해 목숨을 바친 미군 용사들에게 심심한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고 말했다.
이날 마이크 깁슨 카슨 시의원과 스캇 서 재미경제사회복지재단 국장 등이 사은 모임을 진행 하였으며 한인 노인 여성분들이 갠트 여사와 함께 기념촬영을 하며 위로했다. 이날의 모임은 프랭크 박 한국노인복지회사무총장 등이 준비해왔다. 
갠트 여사는 한국전에 참전했다 사망한 고 조지프 갠트 일등상사의 미망인이다. 갠트 전 일등 상사는 한국전쟁이 한창이던 1950년 12월1일 군우리 전투에서 북한군에 포로로 잡혔고 북한 포로수용소에서 1951년 사망했다. 지난달 갠트의 유해는 다른 미군전사자들과 함께 미국으로 귀환했다.
하와이에 본부를 둔 미국 국방부 ‘전쟁포로∙실종자 합동조사본부’는 북한과 베트남 등지에 묻힌 미군 전사자 유해를 꾸준히 발굴해 미국으로 귀환시키고 있다.
‘순애보’의 주인공인 두 사람은 1946년 텍사스에서 로스앤젤레스로 오는 기차 안에서 만나 사랑에 빠져 2년 후 1948년 결혼했다. 남편 갠트는 동료 군인들과 기차 안에서 클라라와 데이트 하는 내기에 이겨 사랑이 시작됐다.
1924년생인 갠트 일등상사는 1942년 육군에 입대해 제2차 세계대전 때 남태평양 전선에서도 싸웠고 나중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나라의 부름을 받고 전쟁터로 나갔으며 많은 훈장을 탔다. 훈장에는 대한민국 정부가 수여한 대통령표창과 호국기장도 있다.
한편 갠트 일등상사의 장례식은 지난달 28일 로스앤젤레스 인근 잉글우드 포스케어 교회에서 갠트 여사 등 유족과 커뮤니티 인사들 그리고 박홍기 재향군인회장, 김대벽 영관장교연합회장 등을 포함한 한인 향군 관계자들이 참석한 가운데 거행됐으며, 유해는 잉글우드 팍 묘지에 안장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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